무우회 무우야록

국립중앙도서관 장서번호: 인문과학실(4층) 041-10-15 /326.2-11-17            

 林  承  宅 

2000~     : EC Plaza(株) 會長(현)
2010~     : JA Korea, KRX 經濟金融敎育봉사단 講師(현)
2009-2013 : 貿友會 (貿易協會 OB클럽) 會長
2000-2001 : 檀國大學校大學院 講師(貿易情報論)
1997-2000 : 韓國貿易情報通信(株)常務理事(經營技術本部長)
1994.1997 : 韓國香港有限公司 總經理(社長)
1994-1997 : 韓國貿易協會 (常勤理事)

<저 서>
2008.12 : "(未來를 여는) 感性 時代"
2012.08 : "Orient 文明史"
2012.02 : "世紀의 僞善"
2011.02 : "旅行記 A/ B/ C/ D"(web)
2006.12 : "새나라 어린이는"
2013.06 : "明心 菜根鑑"(web)
2013.02 : "孫吳 武經"(web)
2013.03 : "國軍의武器體系"(web)

2009-13 : 貿易實務講義(안)(web):
            1/2/3/ 4/5부/부록A/B
2001-2012:貿友集 :
             野錄/ 論壇/ 責論/ 隨想
1997.02 :  홍콩의 産業動向"
1996.08 :  廣東省 投資案內書"

1992.07 : "EDI 革命으로 가는 길"
1994.04 : "EDI 通信과 保安"
2010.02 : "XML文書標準"
2007.05 : "e러닝 國際標準化(SCORM)"

2001.09 : 國際産業協力 大賞 受賞
1989.11 : 貿易振興有功 大統領 表彰受賞

揭 載 論 壇
1.  貿易自動化事業推進 (貿協50年史, 1996.7.31)
2.  우리나라 EDI 發展을 위한 提言 (컴퓨터타임스, 1992.6.5자)
3.  電子文書標準 商工部 所管 마땅 (中央經濟, 1992.4.20자)
4.  韓香同闖華南市場 (亞洲週刊,1996.1.28자)
5.  韓國與香港通力合作共創繁榮 (經濟導報, 1996.1.8자)
6.  韓國與香港 經濟合作 新趨勢 (經濟導報, 1995.1.2자 新年特輯)
7.  97年 홍콩의 中國返還과 經濟的影響 (1996.7 商工消息)
8.  中國과 홍콩의 超大型 建設熱風 (1995.6 商工消息)
9.  中國經濟交流增大와 홍콩의 役割 (1994.11 商工消息)
10. 促進韓國對外貿易的戰略和政策 (1990.10 中國貿易培訓)
11. 女性小規模事業의 特性 (1988.10.14 韓國日報 週刊女性)
12. 원貨切上이 企業에 미치는 影向 (1988.3. 高合)
13. 企業의 長期安定成長을 위한 經營危險管理 (1987.7 危險管理 25號)
14. 輸出支援金融縮小와 企業에의 影向 (1987. 4 高合)
15. 國際競爭力强化로 輸出擴大에 注力 (1987.1 光州商議誌)
16. 美國經濟와 國際貿易의 不安 (1988.2 電子振興)
17. 中國의 經濟構造와 市場接近 (1988.2 企業經營)
18. 駐在員活動에 의한 海外市場 浸透戰略 (1987.7 마아케팅)
19. 中國의 貿易政策과 輸出入制度 (1985.8 光州商議)
*** 라틴中美에부는 코리아熱風 등등 타名義 執筆論壇 다수
講義 및 演說
1. JA Korea & KRX 經濟敎育 講義奉仕(현)
2. 檀國大大學院貿易情報論(碩博士課程)講義 (3학점/2년)
3. 崇義女專會計學 講義 (2학점/1년)
4. 貿易實務(貿易英語 保險論 關稅還給 INCOTERMS) 출장강의
5. 最高經營者課程 出講 (인터넷新貿易情報)
6. 新入 또는 幹部연수 社內特講
7. 中國 對外經濟貿易部 硏修訓練院(RTC) 講義 (1주일간씩 2회)
8. 證券會社 社員敎養特講
10. 韓國女性開發院 創業課程開發 및 講義(수차례)
11. KBS 라디오 아침(9:15-45)定規生放送 생활안테나”進行(光州/서울 4개월)



발  간  사

     무우회 회장에 새로 부임하자, 여러 회원들이 다방면의 건의와 지도 말씀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매월 한 번씩 모이는 모임에서 매번 단순한 오찬만으로 끝 낼 일이 아니라,
토픽을 정해서 발표를 하던지, 또는 토론을 하던지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좋은 아이디어였었지만 그처럼 추진하기가 계면쩍은 면도 있어, 우선 간단한 토픽을 정해서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기로 해서, 이른바 Chairman Report라는 형식으로 그동안 16회가 나오게 되었다.

또 선후배간의 모임을 주선해서 좌담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분분하여
이 또한 Y&O Parlour라는 이름으로 협회 초급간부와 모임을 갖고
우선 Lunching topic 몇 개를 논의케 한 바도 있었다.

그리고 오래전에 운영하여 온 우리 무우회 홈페이지에도 이른바 Member's column이라는 코너를 두어
몇 가지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의 그 어느 하나도 알차게 운영되지 못하였던 것을 자못 부끄럽게 여긴다.
우선 일부의 의견은 있었지만 전반적인 관심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을 통해서 쌓이게 된 자료들이 제법 되는 지라,
이들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이 그간의 아쉬운 부분이 다소라고 보충되지 않을 가 하여
부족하지만 이를 묶어, 지난 2009년을 정리하면서 부끄럽지만 사사로이 우선 내어 놓는 것이므로 혜량을 기대합니다.

2009. 12. 24.

임 승 택

목차
발간사
草創期 이야기(5)
    1. 1946년 貿協 出帆 前夜(5)
    2. 金度演, 貿易協會초대회장의 抗日鬪爭(10)
    3. 李 活 會長 시대의 協會基盤 토대(21)
    4. 貿友會 初代會長(羅翼鎭)과 逸話들(32)
    5. 18년 미도파시대 (주)貿易會館 내력 (44)
모시는 글(53)
    1. 근대화의 발자취와 우리의 진로(南悳祐 고문)(53)
    2. 장보고 후예의 길 (金在哲 고문)(67)
    3.생태적 환경에서 좌우 동서 갈등의 탄생

貿友會 소식지(No75)(70)
圖畵書 展示會(78)
(KITA) Y&&O Parlour 운영(81)
    1. 經濟團體로서의 現在와 未來(83)
    2. 서비스와 軟性化(93)
    3. 情報化社會(113추가)

시사經濟常識 탐색 (Chairman Report)(113)
    1. 美國發 글로벌 金融危機(113)
    2. 國際石油 需給과 우리經濟(126)
    3. 溫室가스 減縮과 環境 復元(142)
    4. 指標로 본 오늘의 韓國經濟(156)
         A. 공급과 수요 그리고 GDP(156)
         B. 통화의 흐름(165)
         C. 국제수지의 구조(186)
         D. 상품 수출입 무역(194)
         E. 서비스 무역(204)
회원 문학 코너(215)
    1. 하늬 바람 외 (황호익 회원)(215)
    2. 서울, 산, 나 (이호윤 회원)(216)
    3. 山 水 訓 (郭 熙)(220)
    4. 식사 문화 (임승택 회원)(228)
    4. 고추잠자리 (권오경 회원)(231)
유머와 속담 코너(235)
健康 敎室(240)
새해와 새 달력248
歷史의 교훈(I) : 祖國光復의 共産左翼活動(280)
          (II) :人類史上 最大 災殃, 두 차례의 世界大戰(285)


<草創期 이야기>>
Chairman Report No.1(2009.5.26 운영위)


1.1946년 무협 출범 전야



    해방되던 1945년은 전례 없는 대풍이었지만 식량통제가 해제되고, 공출제도 폐지되자, 굶주렸던 백성들 , 특히 농가에선 마구 쌀을 낭비 했다.
도시 소비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예기치 않은 쌀 기근을 맞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미군정 당국은 마침내 안남미를 긴급 도입하여 배급하는가 하면, 외국에서 면포를 들여와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쌀을 공출 시키는 등으로 부심해야 했다.

    그러나 절대량이 부족하고 보니 일본 중국 등지에서 귀환하는 동포, 그리고 월남해오는 동포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전국을 헤매야 되는 지경이었다.
    호남선 야간열차는 쌀장사로 메워질 정도였고, 서울역전에는 쌀부대를 실은 손수레와 마차로 줄을 이었으며, 쌀장수 부녀자들이 북적대는 모습은 하나의 장관이었다.

    1946년 년 말의 일인데 러치 군정장관은 “한국 국민은 쌀만 먹지 말고, 빵과 고기도 먹으라.” 하는 담화문을 발표하는 넌센스를 빚는가 하면, 신문들은, “칠면조 고기만 먹으란 말이지.”라면서 꼬집고나 서는 등 나라가 온통 식량소동으로 덮였다.

    식량난은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주요 식량 공급 기지였던 한국과 대만을 패전으로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귀환 일본인들의 증가에 다 계속된 흉작으로 극심한 식량 위기를 맞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은 쌀 반입자에게 가능한 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기까지 했는데, 그 같은 사정이 우리나라의 식량 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행정의 공백을 틈탄 상인과 어민들이 백 톤급 내외의 기동선 아니면 어선을 이용하여 남해안과 서해안에서 쌀을 만재하고 일본으로 건너가는 일이 흔했던 것이다. 이들이 쌀을 넘겨주고 화장품 의류 학용품 의약품 기계부속품 등을 받아오면 4~5배의 올릴 수 있었다.

    당시 일본 세관을 통해 정식 통관된 쌀만도 연간 8만석이나 되었으며, 밀수량은 그보다 몇 배에 이르는 실정이었다.
해방 후로부터 미군정에서 6.25를 치르는 시기는 한마디로 밀수 극성기였다. 물자부족에 따른 현상이기도 했지만 대외무역행위 자체가 변태적으로 행해져 무역업자의 대명사가 모리배였던 시기였다.

    군정무역은 1945년 몇 차례 있었지만 중국의 정크선이 몰려들어 민간무역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1946년 9월에 가서였다. 자립정부가 수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정의 일방적인 계획에 따라 물자교류, 통화유통, 해외여행 및 통신 등이 이루어 졌으므로 자주적인 무역이란 있을 수도 없었다.
    1946년 1월 공포된 미군정 법령 제39호로써 대외무역 규칙이 처음 발표되었는데, 미군 사령관의 허가 없이는 다른 지역과 일체의 동산 부동산 채권의 가래 및 운반을 금한다는 내용으로써 대외무역이 완전히 군정청의 통제 하에 놓여 있었다.

    대외무역은 면허제였으며, 거래방법은 물물교환제였다.
해방 후 한국 무역이 처음 개시된 것은 1945년 9월 맥아더 사령부의 지령에 따라 한국의 소금과 일본 및 미국의 석탄이 교환 된 것이었다. 이후 관영무역은 일단 미국에 있는 미국 상사회사(USCC)의 손을 거쳐 교역이 되었다.

    그때 일본에의 수출은 정부 수출대행기관인 대한교역주식회사를 통해 이루어 졌다. 그런데 1946년에 들어와 인천항을 중심으로 만주, 북지나(북중국) 방면에서 일군이 남기고간 전시 물자를 털어 정크선에 적재하고 들어오는 중국 밀선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
    그런 것이 1946년 5월 24일에 와서는 일시에 중국 정크선 35척이 인천항에 들어와 항구를 메운 일도 있었다. 신문들은 인천항에 “무역선 운집”이란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미 군정청은 몰아닥치는 무역선을 앞에 놓고 우왕좌왕하는 형편이었고, 국내 상인들은 제멋대로 정크선하주들을 상대로 거래하기에 바빴다. 마치 보물선을 맞아들인 것처럼 아우성이었다.
“목당 이활의 생애” 124p-126p에서
   당면한 사업은 일방적으로 싣고 들어온 중국 정크선의 수입물자 처리였다. 무역협회 설립이 서둘러졌던 이유도 이들 정크선 하주들이 특정인 상대의 거래로 유리한 대상물자를 폭넓게 구할 수 없는 불이익을 덜고자 미군정을 움직인 데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발족한지 사흘 뒤인 (1946년)8월 3일에 벌써 협회는 거래를 원하는 회원업자들을 회동시키고, 대책회의에 들어 갈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수입품과 수출품과의 교환비율이었으며, 우리네 측은 모두가 원산지가격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거래를 원하는 회원사들은 그들과 직접 부딪쳐 가격 조정을 하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런 사정을 타개하기위해 협회가 창구 역할을 맡아 양쪽 주장을 듣고, 이견의 폭을 좁혀 나아가는 가격조정회의를 처음 연 것은10월2일에 가서였다.

     견지동의 모 한약회사에서 회의가 열렸는데, 회원상사들은 개별적인 상품인수 교섭을 전개하느니 보다 공동 인수와 공동 판매로 대처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정크선 하주들도 그것을 원했다. 이에 따라 중국상품공동인수 판매위원회가 조직되기에 이르렀고, 회의는 연사흘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양쪽은 배 단위로 팔고 사기로 합의한 다음 수입품과 대상품의 점검과 가격 협정에 들어갔는데, 가격은 국내가격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10월 9일 최종타협을 보기위해 공동인수판매위원 박면(朴錦) 등 8명과 김도연회장등 한국측대표와 중국상인대표4명이 인천 익태동(益泰洞) 화상(華商)에서 회합, 마침내 타결을 보았다. 그날밤 중국상인들은 연회를 베풀어 거래 성립을 축하 했고, 기념사진 까지 찍었다.
마치 큰 국제회의라도 치른 양 양족 대표들은 들떠 있었다. 이리하여 이틀 뒤인 10월 11일 무역협회 회의실에서양쪽 대표사이에 상거래 약정서가 교환되었고, 원만한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무역협회가 출범하여 이룬 첫 사업이었다.

    또 10월들어서자 사과산지인 대구의 청과물상들로 조직된 사과(?果)수출단 결성에 대한 문제까지 협의해 왔다.
협회로서는 임원회에 회부하기로 하고, 10월21일 식은(殖銀:산은 전신) 별관 회의실에서 임원회를 개최했다.
    수출시장이 열려 있는 것도 아니고,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처지에서 일방적으로 유리한 수출 대상 품이란 생각만으로 추진되는 것이니, 임원드간에 의견이 속출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채 사과수출협의회는 11월 4일 또다시 열리는 등 몇차례 회의를 거듭한 끝에11월30일에 가서야 사과수출협회와 사과무역단 사이에는 겨우 계약서가 교환되고 일단락을 지었다.

     이런 가운데 한편으로는 무역조사단의 파견문제가 구체화 되어 갔다.
10월18일군정청은 대중무역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위하여 상해에 외교관을 주재시켜통상을 보호케한다는발표에이어, 군정청은 상해출장소장을 임명하고있었다.
그리고 이에 발 맞추어 상무부는 중국과의 무역가능성을 타진하고자 무역조사단을 파견할 것을 계획했다.
    그러자 협회는 협회대로 회원사대표의 참가를 요청하였고 승인이 났다. 민간측으로서 2명이 참가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무국 무역과장 최만희(崔萬熙)를 단장으로하여 미국인 고문단 2명, 협회회원사대표 장건식(張健植 동아상사전무)외 1인으로 구성된 5명의 조사단은 11월23일 상해로 출발하였다.
이들 일행은 홍콩 마카오를 돌아본 후 돌아왔다. 이것이 해방 뒤 최초의 해외무역 돌파구를 연 조처다.
전게서 156~158p에서

<==처음으로   <<== 목차로   <<== 무협출범전야   전 이활 회장 ==>  
Chairman Report No.6(2009.7.15 회원의 날)

常山 金度演, 貿易協會 초대회장의 抗日 鬪爭 내력



우리 무역협회의 초대 회장님은 어떤 분이신가?



    대부분 KITA 맨들은 협회 초창기를 말 하면, 언뜻 이활 회장님은 떠 올리면서도,
정작 우리 협회의 초대 회장이시었던 常山 金度演 박사를 연상하는 것은 마치 퀴즈문제 푸는 듯이 아련히 떠 올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이는 그 동안 이활 회장님과 함께 했었던 선배들은 많지만, 1940년대에 상산 김도연 초대 회장님과 함께하셨던 선배들을 뵙기가 아주 드물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분은 민주당 때는(구파로) 국무총리 물망에(3표차로 장면에 패배)오르는 등 정치적으로 너무나 거물급 애국지사이셨기 때문에
당시의 협회로서는 오히려 경외감마저 가져, 마치 독립투사의 초상화를 쳐다보는 기분으로 처다만 보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이제는 그런 느낌마저도 희미해져 가는 감이 없지 않다

    여기 그의 애국 족적의 인생을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첫째는 보성중학시절 渡日하여, 慶應大學 재학 중에, 1919년 2월 8일 동경유학생 독립선언(이른바 2.8독립선언사건)을 주동하였던 것이 가장 뚜렷한 족적일 것이다.

    둘째는 동경에서 2년의 옥고를 치른 후에 도미하여, 오하오대학을 거쳐, 뉴욕 콜럼비아 대학에서 MA 학위를,
그리고 워싱턴 아메리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기간에는 당시 유학인사(후 대부분 한국정계의 거물로 등장한)들과 교우하면서,
그의 전공인 경제학과도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민족의 독립기반을 위한 재미 실업계에 대한 프로모션에 주로 가담하였다.

    셋째는 1932년 귀국하여 연전강사를 잠시 하다가, 1934년에 재미시절 지인 유학파를 주축으로 공동 투자해 朝鮮興業(주) 창립하고, 그 사장이 되었다.
이 회사는 산림개발, 주택건설 등을 경영하였는데, 나중에 朝鮮語學會 자금지원 혐의로 관계자 다수와 더불어 체포돼, 또 다시 2년간의 옥중생활을 하였다.

    넷째는 해방과 더불어 건국 전후의 혼란기에 정계의 거물로서 등장, 정계로 진출한 입법회의에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유학 전공 경력 등이 참작되어 군정시절부터 경제 분야에 연관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한민당 결성을 비롯하여 어수선한 정치일정의 와중에 있다.
그럼에도 이때 다만 한국무역협회 회장 자리를 맡게 되었을 뿐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협회의 업무보다는 당시 혼란스런 정계의 와중에 서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우선 그의 약력을 보면 건국초기 이후에는 민주당 당적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이 보인다.

약 력

1894년 6월16일 김포군양동면
         염창리20번지에서 출생
1907년 阿峴太極學校 졸업(2년편입)
1911년 普成중학교(중2)수료후 도일
1913년 일본 錦城중학교 졸업
1919년 동경에서 대한독립당 조직,
         韓國獨立宣言(2.8사건)으로2년간 투옥
1919년 일본 慶應대학 理財學部 수료
1929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전공 MA학위취득
1931년 워싱턴 아메리카 대학에서 경제학박사 학위취득
1932년 미국서 귀국후 延專경제학강사 취임
1934년 朝鮮製絲 감사역 취임
1934년 朝鮮興業(주) 대표이사 사장 취임
1942년 朝鮮語學會 사건으로 2년 투옥
1945년 韓國民主黨 總務(8명중1인) 피선
1945년 군정청 중앙노동위원 취임
1946년 大韓國民代表民主議院 의원피선
1946년 韓國貿易協會 초대 회장취임
1947년 입법의원 의원(서울시을구민선)당선
1947년 立法議院 財政經濟分科委員長 피선
1948년 제헌국회(서울 서대문구)의원 당선

 


1948년 제헌국회 재정경제분과위원장 피선
1948년 初代 財務部長官 피임
1949년 대한 수상경기연맹 회장 피선
1950년 救國總聯盟부위원장 피선
1950년 금융통화위원회 대리위원 피선
1953년 민주국민당 부위원장 피선
1954년 제3대민의원 (서대문갑구)의원 당선
1955년 민주당 고문 피임
1956년 民主黨 最高委員 피선
1958년 제4대민의원 (서대문갑구)의원 당선
1959년 민주당 중앙위원회 의장 피선
1960년 國會 民議院 副議長 피선
1960년 제5대민의원 (서대문갑구)의원 당선
1961년 신민당주비위원회 부위원장피선
1961년 新民黨 中央黨副委員長 피선
1963년 自由民主黨代表最高委員 피선
1963년 제6대 국회의원(전국구)당선
1965년 民政黨 副總裁 피선
1965년 한일조약비준 저지의원직 사퇴
1967년 신민당 운영위원 피선
1967년 제7대 국회(전국구)의원 당선
1967년 십이지장궤양으로
향년 73세로 장거

東京 慶應大 유학중의 2.8 獨立宣言事件



    그의 조부 金寧圭는 官沓管理人인 舍音으로 기반을 잡아, 부친 金鐘遠에 이르러서는 陽川郡(지금김포)내의 수 천석군 부농이 되었다.

김도연은 1894년6월16일 김포군 염창리에서 칠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종조부에게서 천자문과 동몽선습 계몽편을 공부하고,
백석동 서당의 金近行 선생에게서 통감, 소학, 대학, 맹자를 배웠다고 한다.
14세 되던 1908년에 서대문 밖 아현동에 있던 맏형 金周演 댁에 머물면서 4년제 태극소학교 2년에 편입하였다.
그 후 보성중학에 입학하여, 崔承萬 李起鵬 등과 동창이 되었다.
그는 반장으로서 축구선수였다 한다.중2시절에 金敎翼선생의 도움으로 1914년 10월 친우 崔演澤과 함께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한다.
그 후부터 20여 년간의 일본과 미국의 유학생활이 시작되었다 한다.

     동경 도착 후 이듬해인 1916년에 일본 錦城中學校 3년에 편입하여, 3년후에 졸업하고 나서,
尹相殷 卞熙鎔 黃佑天 李重國 등과 함께 일본 후쿠자와(福澤諭吉)가 설립한 慶應大에 입학하여, 理財科에서 수학하였다.
    당시 재일 유학생수는 7~800명이었는데, 東京留學生學友會가 조직되어 있었다.
그 중심인물들은 金性洙 宋鎭禹 金炳魯 張德秀 安在鴻 申翼熙 鄭魯湜 玄相允 崔斗善씨 등이었다 한다.
김도연은 여기에서 간부로서 활동하는 중 이들이 속속 졸업하여 귀국하자, 회장에 白寬洙와 더불어 총무로 피선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 신자가 되어 白南薰 씨가 총무로 있는 기독청년회의 이사가 되었고, 한때에는 회장이 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1917년 10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 다음해 6월에 미국 윌슨 대통령이 이른바 民族自決主義를 제창한 바 있다.
일본 靑山學院 문학부의 尹昌錫이 말하기를 동경에서 발행하는 영자지 "Japan Advertise 12월1일자에
“미주에 있는 한국인 중 李承晩 閔贊鎬 鄭漢景 등 3인이 한국민족대표로 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되었다.”는 기사가 났었고,
또 2주일후인 12월 15일자 동경매일신문에는“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류하는 한국인들이
독립운동 자금으로 30만원의 거액을 모금하였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또 당시 동경 神田區에 있던 崔元淳과 鄭光好를 찾아온 金安植 金賢準 등이 윌슨선언을 토의 하던 중
“독립운동을 일으킬 절호의 찬스는 지금이다.”하여 여론이 분분하였다 한다.
이에 12월에 겨울방학을 이용한 웅변대회를 개최하여, 4~500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사로 나선 徐 椿 李琮根 尹昌錫 金尙德씨 등이 “세계사조에 따라 또한 민족자결의 대원칙에 입각하여
우리 민족은 반드시 자주독립을 획득해야 할 것이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어 숙의한 결과, 이 운동을 일으킬 11인의 대표를 뽑았는데,
여기에는 崔八鏞 白寬洙 尹昌錫 徐椿 金喆壽 金尙德 李光洙 宋繼白 李琮根 崔根愚 金度演씨 등이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이들은 선언문과 영문과 일문의 번역문, 그리고 태극기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국문활자와 인쇄기 및 자금을 마련코자 宋繼白씨를 본국에 밀파하여, 崔麟 宋鎭禹 崔南善 玄相允씨 등에 거사계획을 알리고,
자금도 마련해 돌아왔지만 활자구득이 여의 못해서 하는 수 없이 등사기 인쇄키로 했다.

    2월 8일 12시에 기독청년회관에서 조선독립청년단의 이름으로 대회를 개최하여,
만장한 가운데 白寬洙 씨의 독립선언문 낭독과,, 金度演 씨의 결의문 낭독으로 박수갈채 속에 채택하였다.
곧 포위된 이 학생들은 언제나 그렇듯 친일반역자 鮮于 甲이란 자가 무장경찰 틈에서 "저 놈 잡아라, 이 놈 잡아라." 하며 지목하여,
일본 무장경찰대에 의해 50여명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들은 지독한 고문과 형옥 생활을 당한 것은 물론이다.

그 선언문에는
朝鮮靑年獨立團은 我二千萬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得한 세계만국의 前에 독립을 期成하기를 宣言하노라.
四千三百年의 長久한 歷史를 有한 吾族은 실로 세계 古民族의 一이라, 비록 有時乎中國의 正朔을 奉한 事는 有하였으나,
此는 兩國王室의 형식적 외교관계에 불과하였고, 조선은 항상 吾族의 朝鮮이고,
一次도 통일한 국가를 失하고 異族의 실질적 지배를 受한 事 無하도다.
일본은 조선이 일본과 脣齒의 관계가 有함을 自覺함이라 稱하여, 1894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한국의 독립을 率先 承認하였고,
美 英 法 德 등 제국도 독립을 승인할뿐더러 正를 保全하기를 약속하였도다.
한국은 그 恩意를 感하여 銳意로 제반개혁과 국력의 충실을 圖하였도다.....

     이 이른바 2.8 독립선언은 3.1독립 운동 불과 20여일 전에 적지 한 복판에서 동포유학생들이 항일투쟁의 역사적 선구적 역할을 한 것이었다.

    그 중심에 바로 貿易協會 初代會長이신 常山 金度演 박사가 계셨었다는 것을,
적어도 한때 무역협회와 함께한 바 있는, 우리 貿友會 會員들 만은, 모름지기 이를 상기해두는 것이 道理일 것이라 믿는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역사의식을 우리라도 지켜드리어 후세에 전하는 것이 하나의 소명이기도 하다.

    김도연 박사는 동경의 감옥에서 1920년 4월에 출옥하셨다.
일본은 3.1운동 이후에 이른바 간교한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다소의 언론자유를 푸는 가운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되었다.
이에 동경유학생학우회에서는 고국전국 순회강연회를 개최했었는데 몰려드는 청중에 겁먹은 일제는 중도에서 해산시키기도 했다.

美國留學에서 經濟學 博士學位 취득



    慶應大 本科 2년 재학 중에 2.8 독립선언사건에서 투옥된 후 출옥하여,
1922년 6월 요꼬하마에서 미국행 太陽丸에 李憲寧 曺應天(후에 국방차관 체신부차관)과 함께 몸을 싣고 결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그 후 오하이오주에 도착하여 9월에 개학이 되자 오하이오대학 경제학과 3학년에 편입하였다.
당시 이 학교에는 柳瑩基 金基厚 金活蘭 세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2년 후에는 좀 더 큰 도회지인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 뉴욕에는 약 30여명의 유학생이 있었는데, 마침 동경에서 알고 있었던 張德秀 尹弘燮 金良洙시 등도 와 있었다 한다.
이때 뉴욕대학에 다니던 崔淳周씨(후에 貿易協會 會長)와 함께 롱아일랜드 신부 집에서 숙식하면서
그 집일을 돌 보아주고, 매달 70달러씩 받았다 한다.

    그는 만2년의 고학으로 콜럼비아 대학에서 “마샬 교수의 균형가격론을 분석함”이란 논문으로 MA를 받았다.
뉴욕에서 만난 유학생 중에는 趙炳玉(유학생회 회장) 張德秀 金良洙 尹弘燮 崔淳周 李育種 張利郁 張錫英 金佑坪 尹致暎 金活蘭 金마리아 등이 있었고,
이들이 모여 어느 3.1절 기념일 날에는 학생연극을 하기도 했었다 한다.
마침 보성중학 교장으로서 3.1운동 에 참가했었던 崔 麟 선생이 뉴욕에 들리어,
뉴욕 명소를 안내 중에 싱싱 감옥을 돌아본 다음, 중국집에서 유학생들은 국내외 연계비밀결사를 조직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金度演은 崔淳周 韓相億씨와 함께 실업계를 프로모션하기로 하고 “産業”이란 잡지도 발행하였다.

    그는 당시도 이미 재미 동포사회가 이승만 박사 중심의 同志會系 僑民團과 안창호 선생의 興士團系 國民會로 대립반목하고 있었다.
흥사단계는 務實力行 忠義勇敢을 지표로하는 수양단체로서, 주로 서북계 지식청년층을 포섭하였고,
동지회 측은 지식층도 있었지마는 상업 및 노동자들을 보다 많이 포섭하였다.
    그는 일본에 있을 때 이미 수양단체라 해서 흥사단에 가입은 했었지만, 뉴욕에 와서는 교민단에도 가입했다.
그래서 뉴욕대학 등에 수학 중이던 張德秀(전 동아일보) 金良洙 (전조선일보) 홍윤섭 최순주 윤치영씨 등과 許政(사장) 洪得秀 등과 협의하여
1926년에 “3.1신문”이란 것을 만들어 대동단결과 임정지지를 내세워 엄정 중립으로 양파를 융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사장인 허정은 이승만을 적극 지지하는 등 同志派가 우세하여 반대측의 불만이 있었고,
이승만 측에서마저도 자기를 적극 지지하지 않는다 하여 달갑지 않게 생각하자, 고립으로 재정난에 의해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는 워싱턴 아메리칸 대학원으로 옮겨 여기서“한국의 농촌경제”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워싱턴대학의 동창으로서는 송필만 윤치영 김종철 김현철(같은 날 Ph.D.를 받은 후에 재무부 장관, 부흥부장관) 등이 있었다.
그 해는 1929년 11월3일에 광주 학생사건이 있었던 해였었다.

實業界에 투신



    그 후 39세인 1932년 7월에 귀국하여 마침 최순주씨가 교수 겸 재무를 맞고 있는 연전에서 경제학원론과 경제사 강의를 맞게 되었다.
강단에선지 2년 후 金良洙 씨와 호남 부호이었던 조선제사의 김종익(후의 수도여자의대 창립) 씨와 상의 하였던바, 朝鮮製絲 감사역으로 취임하였다.
     2년 후 김종익씨가 병사하였으므로 새로이 朝鮮興業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이는 유학친우들이 주축이 되어 김양수 신윤국 서민호 최순주 장현식(이상 취체역)
윤치창 이훈구 이기붕 채규봉(감사역) 李 仁(감사역)등 10여명이 발기인이 되어,
주로 지주 식자층으로부터 모인 30여 만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되었다.
    그는 전무로 취임해서 곧 사장이 되었다. 이 회사는 토지매매, 토지개간, 산림벌채, 광산, 정어리유공장 등 이른바 산업진흥개발을 위한 일종의 지주회사였다.

    그러던 중 1942년 8월 함흥 영생여중 4년 白永玉 학생의 일기장을 촉발로 해서 일어난 조선어학회 사건의 자금지원 혐의로
김도연 사장은 물론 다수 회사관계자와 더불어 체포되었고, 함흥형무소에 2년간 수감되었다.

    그 후 회사는 崔淳周 씨에게 맡겨졌다가, 다시 상해 사업가인 金承植씨에 인계되었다.
그 후 이 회사 관계자들 대부분이 해방 후 정계로 진출함에 따라 상산도 재계에서 손을 떼고 정계로 자리를 옮기었다.
한민당 결정에 분주한 활동의 어수선한 정국의 와중에서도 한국무역협회 초대회장 자리만은 이를 맡게 되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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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man Report No.7(2009.6.28)

李 活 會長 시대의 協會基盤 토대



-전후 혼란중에도 이뤄낸 미도파시대-

    무역협회는 회현동시대를 연 1973년 이전 까지는 몇 분의 다른 회장님이 계셨지만,
그 과정의 내용을 엄밀히 보면 이활회장의 재임에 중 몰려오는 정치적 격변에도 협회의 정통을 유지하면서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임시처방의 과정이었고,
바람이 가라앉으면, 다시 이활회장이 복귀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는 수많은 경제단체가 부침하였음에도 전란중이나 정권 격변기에도
한 번도 협회 자체의 성장과 발전을 멈춘 일이 없는 저력을 지속해오는데 기둥이 되어,
그는 오늘의 모습이 이루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할 것이다.
    목당 이활은 1945년 한민당 설립에 관여하면서 김도연과 함께하게 되었고
민주의원으로 김도연은 서울에서 이활은 경북에서 당선되어,
그들이 유학시의 각각의 전공인 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영국 유학 시절에 교분이 있었던 연유로 자연 그들이 참여한 정치의 한 계열의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은 어쩔 수는 없었지만
성품이 은연 자중하고 과묵한지라, 회오리에 휘말리지는 않았다.

    당시 엄중한 상황에 대처하는 중에, 미국 MIT출신의 상무부 오정수 부장(현재 장관급) 측에서는
상의에서 지연되고 있는 협회설립이 그 중요한 당면과제를 시급히 처결해야 할 중요성이 있었다.
    이에 영국식 민주주의를 익히고 경제를 전공한 김도연박사(당시 한민당 8총무중 하나)를 회장으로
(우계 金用淳을 통해서)내세워, 그 설립에 나서게 된 것이었고,
이에 당시 48세이었던 목당 이 활 회장 씨를 상무로 콤비를 이루게 하였던 것이었다.

     이러한 김도연회장 이활 상무 등 에에 대하여 상의 측 준비위원들도 감히 이견을 낼만한 처지가 못 되었고,
상의 측 주선으로 준비된 창립총회도 그 설립의 역사적 웅지와는 달리 43명만이 참석하는 초졸한 것이었다.
상의 건물에 있었던 협회 사무실에는 입법의회 선거 관계로 거물급 정치인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상의 측에서는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상산 김도연과 목당 이활은 임원진의 면모가 사실상 상의 분신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서,
협회의 인사와 은밀한 얘기는 화신 백화점 4층에 있었던 그들이 속한 민주의원 특별경제위원회 위원장 실에서 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라인진 부장도 김도연 씨가 이활씨에게 소개한 것이었다 한다.
결국 상의 건물에 있던 사무실을 을지로 입구에 있었던 (라익진 씨가 근무한 바 있었던)조선식산은행 건물로 옮기게 되면서,
이것으로 상의의 삼 바라지는 끝났다고 하겠다.

     사실 목당은 무협상무로서 실무 적격자는 아니었다고 지신이 술회하고 있었지만,
마침 라익진 조사부장이 31세 청년으로서 실무보좌를 빈틈없이 잘 하여,
(사실 라부장은 31세라는 연륜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실무형인지라) 잘 조화 되었었고,
그 후로도 이 활 씨는 무역협회에 관한한은 라익진 씨의 지극한 보좌가 아니면 그의 명성에 빛이 나기도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목당은 거구에다 목소리도 어눌하고 언변도 그리 영악하지 못하시지만,
과묵하고, 넓은 품성과 덕성이 있으면서도 청렴 담백하시어 스스로 버티고 서서만 있어도 그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품을 갖추었다.

     그런데 라익진 씨는 성격이 반대로 꼬장꼬장하고 강직하며, 말의 조리가 얄미울 정도로 빈틈이 없고 해서,
이둘 사이는 안성맞춤 이었다고 할 것이며, 이는 초창기 무역협회로서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할 것이다.
만약에 목당이 라익진 씨 같은 보좌역을 두지 못했다면 풍파를 헤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며,
또 만일 목당이 없었다면, 라익진 씨는 협회에서 그의 성격상 그리 오래 버텨내지 못했을 것은 거의 틀림이 없어 보인다.

李活 會長 時代의 理事會에서는 업계 목소리 커



     또 하나는 협회운영에 있어서 이활 시대만큼 업계의 중간 리더 그룹이 잘 가동 된 예는 없었으므로,
어찌 보면 운영의 업계 민주화가 가장되었던 시기였다 할 것이다.
즉 업계의 중계 리더로서는 누가 뭐라 해도 金益均 시대가 있었고, 이어 朴龍學 시대가 있었다.
이러한 것은 임원회(지금 이사회)의 격론이 많았던 발언록을 훑어보면 더욱 명백해진다고 하겠다.

     오히려 90년대 중반에 불어온 민주화 물결 이후에 업계 회장이 들어서면서부터, 그 후 이어서 행정부측에서 온 회장 때에,
오히려 격론이 적은 이사회 운영에서의 업계 목소리의 주체성이 많이 엷어진 것은 사실이고, 우선 참석률이 낮았다.
즉 이사들의 참여 열성도가 현저하게 낮아진 것은 틀림이 없다하겠다.

미도파 시대에 財政 初期基盤 탄탄해져



     협회의 외형성장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미도파를 운영해서 자체적 초기 재정기반의 기초를 다지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50년대부터 미도파(왜정 때 丁字屋 건물)의 법적 명칭이 (주)한국무역회관 (물론 무역협회는 주주)이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른다.
     (주)미도파라는 상호는 회현동 무역센타 건설을 위해 매각한 후인 1973년에 대농그룹에서 설립해서 비로서 생긴 이름이다.
그러면 그동안 미도파라는 사회적 통칭은 1953년 협회가 부산으로 피난가서 환도하기 전에,
조달청 어느 사람이 이 건물을 사취하기 위해 건설업자에게 수리를 시키면서, 건물이름으로 만든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온 것이다.
     협회로서는 기왕에 세상 사람들이 그리 불러주니, 구태여 협회의 이름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아니하였던 것이었다.
1970년에 만해도 간판은 5층 안쪽에만 달았으며, 직원 모집광고에도 한국무역협회 이름과 주소를 쓰지 아니하고,
우체국 사서함 1116호만을 써서 돈 많은 무역협회라는 이름을 숨겨온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당시 미도파의 매출은 전국 모든 백화점 매출보다도 많았었다.
한번은 한은 부총재 하시었던 분이 협회부회장으로 오시었는데,
이에 놀라서 협회의 모든 봉급수준을 한국은행보다 무조건 좋게 하라 해서 한때 신난 일도 있었다 한다.

     협회가 외부 세상에 거대 경제단체로서 노출된 것은 1970년대 회현동 건물로 옮기면서,
박충훈 부총리가 회장이 되고, 특계가 운영되면서부터 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일반회비와 특별회비는 있었지만, 이미 이른바 내면적으로 알짜부자 단체이었다.

협회의 특별회비제도는 이미 1947년 강상태 전무가 수출입실적에 일정%를 회비로 하는 방안을 제시해서 결정되어 시행되어 내려 왔었던 것이었다.

    이에 김정렴장관과 김우근 차관보(후에 협회회장과 무우회회장 역임) 시절에 석탄산업 진흥자금에 힌트를 얻어,
무역업계에서도 스스로 필요자금을 걷어서 스스로 사용하자는 생각에서 기왕의 협회 특별회비를 1% 인상하토록하고,
징수편의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1%를 추가로 인상해서 함께 더 받도록 하자는 제안이, 협회 총회의 의결로서 정해진 것이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마치 새로 나온 것인양 특계라 불리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점들을 잘 모르고, 사람들이 정부 세금이라고 하니, 굳이 아니라고 떠들어서
징수편의만 지장을 주게 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므로 계속 알면서도 애써 해명하지 아니한 것이었다.
또 하나는 정부에서 굳이 자기들 것이라고 하면서 간섭을 해도,
    사실 무역진흥을 위한 자금배분을 업계단체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은 분명하므로,
그 지원배분에의 정부가 실질적 역할은 한 것은 틀림이 없지만,
사전적이든 사후적이든, 순서야 어떻든 모든 법적 의결절차와 집행은 협회 내의 기구에서 이루어 진 것이었다.
이에 관계한 많은 공무원들이 말하기를 "아, 그거 내가 했지.”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협회 삼성동 처음의 무역센터를 지은 1978년의 일을 가지고도, 사무관에서부터 과장 국장 차관보 모두들 자기가 결재해서 지었다고 한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고, 굳이 뒤집어서 좋을 것도 없으므로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법적 문제만 발생하기만 하면 모두 뒤로 빠진다. 그러니 명분은 그들에게 돌리더라도 업계실익을 챙긴다면 나쁠 것이 없는 것이다.

     협회는 홍콩무역센터를 세울 때에도 박정희 대통령의 동남아순방 귀국 중에 후라마 호텔에서 이뤄진 구상을 구체화했었던 것이었고,
뉴욕의 무역센터도 당시 김종필 총리의 발언을 뒷 받침해서 이뤄진 것이다.
삼성동 무역센터도 당시 회장이 대통령의 이른바 마패 싸인 한 장을 얻어서, 이를 먼저 손에 쥐고 나서 실무 절차에 착수한 것이었다.

    그 후에 실무추진에 중에 행정부에 협의하고 보고도하여 행정서류 결재를 돌리는 것이지,
어찌 말단 사무관에서 시작하는 사무결재로 대형 사업이 전개 되었겠는가.
    대부분의 일은 서류로 결재를 올리는 단계에는 이미 상당 수준 진행된 연후의 것이며,
대부분 중간 찍자를 놓은 일을 마치 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품속에 감춰진 마패를 뒤엎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내어 미는 입장에서 보면 좀 성가신 인내만을 요구되는 것이었다.

    대부분 말하기를 “그것을 (허가든 인정이든, 하도록 하여는 줄 테니, 어쩌고...”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하지는 않지만,
하기는 네가 하지만, 그래도 나는 (방해 또는)못하게 막을 수는 있다는 것이었고,
이 가로막았었던 대부분(공직자들)은 내가 했었다고 하는 것이 상례이었다.

     무역협회에서는 역사상 국회를 통과한 예산에 의한 정부 보조금을 직접 타낸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그 반대야 뭐 말로 할 필요도 없지만)
무역협회 재산과 돈은 세금을 내고 난 후의 돈과 재산이었고(the money after tax paid to them),
정부 또는 그 산하의 이른바 공공기관은 그 낸 세금을 가지고 운영되는 것들(by the money with the tax from private sectors.)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반세기 역사를 가진 협회가 그들이 보기에는 허름하고, 헛개비 같지만
그리 녹녹하지 아니한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자칫 망각한다.

    그런 면에서 牧堂 이활은 곧 貿易協會의 간판이었다 할 것이다.
물론 朴忠勳, 南悳祐 두 분은 지난날의 자기직분에 비하면 협회의 장의 자리가 초라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협회의 일을 스스로 즐거워했고, 또 커다란 업적을 남기시었다.

     이에는 牧堂 李活시절 오랫동안 쌓아온 역사적 기반도 크게 한몫을 하였다고 볼수도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어찌 생겨난 지 단 몇 달도 안 되는 특계만으로서 회현동센터를 지을 용기가 났겠으며,
또 회현동의 기반이 없는 가운데 삼성동 6만평 대지를 넘겨나 보았겠는가.
또 6만평 대지가 없었다면 어찌 이 웅대한 센터를 지어낼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특계라는 보템은 크게 되었지만 생짜로 특계자금 만으로 한다면
그 많은 정부와 언론계(또 국회의원이나 학자까지도)의 시샘과 참견의 감시의 눈살에 가능이나 했겠는가?

우리가 즐겨 쓰던 말은 있었다. “아. 그렇기도 하지요.” 즉 뭔가 숨겨온 내심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도히 흐르는 빙하와 같은 역사의 흐름은 한 두사람이 발버둥 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의 흐름을 타야하는 것이다.
70년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한 두 사람을 본 것이 아니다.
일 할 때에 가만이 있는 듯해도 태산을 움직이는 중후함이 있어야 이 큰 거함을 소리없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목당 이활의 사람됨은, 외람되지만 솔직히 좀 우둔하게 보이는 면도 있지만,
협회에서는 자기의 지도적 권위 안에서 난상토론이 격렬하게 이뤄지도록 한 지금까지의 유일한 회장일 것이다.

거물급 회장마다 웅장한 모습 나타내



     협회의 오늘은 역대 회장단과 이사(상사) 수많은 업계 회원상사와 임직원의 오랜 협력하게 이룩된 것임에는 틀림없다.
과거는 아련해지기 쉽고, 현재는 혼란스러우며, 미래는 아득하기 마련이라,
섣불리 예단키 어려워, 대부분 회장님들은 겸양하시어
과거 회장님들의 구체적 공적을 거론하는 것을 꺼리시는 느낌을 받아왔지만 역사적 평가와 세평은 바람처럼 생겨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협회 역사에서 김도연, 이활, 박충훈, 남덕우 분과 같은 회장의 공적은 특히 두드러졌다 할 것이다.

    협회의 역사상 10년마다 大幸運 主氣說이 있는데,
마침 거물급 새 회장을 맞아, 무엇인가 역사적 전환을 불러올 것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으며,
특히 세계정상회의를 다루며 상대하는 그 장대 함으로 보아 또 그리 될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은 협회와 업계가 가진 모든 전 유산과 역량을 하나의 리더쉽으로 뫃아,
새롭고 웅대한 모습으로 航進跳躍 할 절호의 기회라 믿는다.

牧 堂의 履 歷

    牧堂 李活은 1899년 9월8일(음) 산적 떼가 들끓던 시절에 “영천 장에 콩 팔러 간다.”는 속설이 있는 永川郡의 동북방에 있는,
臨皐面에, 鄭夢周의 모친 永川 李씨가 태어났다는 良巷洞(69번 지방도 변, 당시는 우항동)에서 아버지 李璘錫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세 동생은 泓, 潭(전 동아산소 사장), 澔(전 법무부장관)이었다.
그의 문중은 이곳에 약 18대를 세거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의 가세는 증조부 李洛運이 적수공권으로 이룬 오백석의 재산이 기틀이 되었다.
이어 1837년생인 조부 李基模 씨가 초시에 급제하여 중추원 議官으로 있었다. 조부는 목당이 18세 되던 1916년 82세로 타계하였다. 그는 유산의 영농도 게을리 하지 않고 손바닥이 굳도록 일도 했다고 한다.

     당시 농민들이 동학혁명과 마침 부산개항 등으로 도회지로 많이 이농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농토를 박하지 않게 사들여준 덕분에,
마침 화적들의 표적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한다. 46세에 늦게 아들 李璘錫을 낳고, 82세에 3천석의 유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타계하였다한다.
    목당의 부친 李璘錫은 20대 초반에 초시에 합격하여 경상도 관찰사 사법과 주사로 시작했고, 28세 되던 해에 한일 합병이 되었다.
    목당은 이러한 할아버지 아버지가 살아 계신, 양반 부자 가문에서 7세부터 한문을 수학,
22세에 대구僑南學校에 편입, 와세다 강의록 통신교육을 받다가, 4년후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 1927년(29세)에 정경과 3년을 수료하였다.
    곧 런던대학 경제연구과에 입학하였고, 雪山 張德秀와는 같이 4년간 동숙하였다.
1930년에 런던에 유학온 仁村 金性洙와는 유럽 시찰을 함께 하기도 했었다. 37세 되던 1935년에 학업을 마치고 귀국했다.
해방되어 1945년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 했다.
    1946년 5월31일 재단법인 보전을 해산하고, 중앙학원이 인계 흡수케 하면서 중앙학원에게 천이백석 지기를 희사했다. (金秊洙 2천석, 蘇秉崑 7백석 金相万 5백석)

1946년 7월 31일에 무역협회 상무로 취임 했다.

     10월3일 대구 폭도들이 군수를 살해하고, 몰려와 그의 사저를 방화하는 와중에도, 10월 과도정부입법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 후 48년 협회 2대 회장으로 선임되었고, 1951년4월 부산에서 3대회장으로, 54년에 제4대 회장으로 연임 되었지만,
서북 족청계의 부산 정치 파동이후 스스로 사임하였다.
    그 후 1960년 제8대 회장으로 다시 컴백해서, 박충훈 회장이 들어선 1973년 4월 까지 연임하였고,
이어 산학협동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그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으며, 1982년 10월 6일 암수술 후 지병으로 永眠하였고, 정부에서는 무궁화훈장을 추서하였다.
                     李 活 회장 약력
                     생년월일 1899.9.8
                     본적: 慶北 永川郡 臨皐面 梅湖洞 802번지
                     1927. 3 日本 早稻田大學 專門部 政治經濟科 卒業
                     1935. 4 영국 런던대학경제연구과 졸업
                     1946. 5 재단법인 중앙학원에 1,200석지기 출연
                     1946. 7 한국무역협회 회장 취임(2, 3, 4대)
                     1946.12 과도정부 입법의원 피선
                     1955. 3 고려대학교 재단이사장 취임
                     1960. 6 한국무역협회 회장 취임(8~13대 연임)
                     1963.11 국회의원 피선
                     1968. 5 고려대학교로부터 명예경제학박사 학위수임
                     1969. 8 한국수출진흥주식회사(후 고려무역) 회장 취임
                     1970.11 은탑산업훈장 수훈
                     1973. 4 한국산학협동재단 이사장 취임
                     1982.10 향 83세로 영민 (무궁화훈장 추서)
                    
Chairman Report No.7(2009.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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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man Report No.5(2009.6.15 회원의 날)

貿友會 初代會長(라익진)과 당시 逸話들



--라익진 조사부장, 협회에 대한 프라이드 높아--


     무협 설립당시 金度演 회장과 李活 상무는 정치에 너무 바빠, 협회 일에는 소홀했었던 것 같았다.
1946년 무역협회 설립당시에 羅翼鎭(31) 조사부장은 초대 상산 金度演 회장과 姜聲邰 부장(곧 상무로)의 협회 업무에 대하는 자세에 불만이었다.
     회장은 워낙 거물이라 바쁘고, 상무는 이름만이 상무이지 정치에만 골몰하였다고 불평 하였다.
다만 이활 상무는 자기보다 5~6세 연상인 장택상 조병옥 김준연 장면 장덕수 등과 사귀고 있어,
이들 거물급 인사들이 우리의 협회 셋방 사무실에 자주 출입하자, 이런 면에서는 집주인인 상의보다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의 화제는 무역과는 전혀 관계없는 국내정세만을 화제로 삼고 있었다 한다.
특히 강 총무부장은 羅 조사부장보다 10세정도 위로서 해방 후 滿州拓植(주)에 근무하다 귀국했는데,
기안도 못하고, 글도 잘 못쓰면서, 경성제대1기생이라면서 兪鎭午(1906-) 李在鶴(경성대 문과)씨를 비롯해서
동기생 자랑과 테니스 얘기만 늘어놓으면서, 김 회장 댁과 김인병 부회장 집에 드나들면서, 정치 얘기만 좋아한다고 하였다.
사실 상무는 강 부장을 훨씬 좋아한 것이었다 한다.
그러나 羅 부장으로서는 김도연 회장과 이활 상무도 군정청 입법의원을 비롯한정치에만 관심을 두어,
심지어 그만두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羅 부장이 무역협회에 오게 된 것은 金度演 회장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한다.
그는 26세인 1940년, 연전 상과 졸업반 때에 식산은행에 추천을 받아 동창 李贊烈씨와 함께 합격하여 이리 지점에 배속되어 근무했다.
해방을 맞아 상경, 미군 재무부장 찰스 고든 씨의 소개로 군정청 재무국에서 우편물을 검열하는 일을 맏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김도연씨 아들의 친구인 이재국 李致寧씨(후에 무협부회장)가 중앙청에서 회의가 있다는데 함께 가보자고 해서
참관하였는데, 주제는 토지분배에 관한 것이었고,
김도연씨가 주재하는 토의로 참여자 중에는 金佑枰(군정청외자청구매처장), 孫奉祚 李順鐸(연전초대상대학장)씨 등이 있었다고 한다.
     회의의 결론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즈음에 30세의 나익진 씨는 질문을 했는데,
이 회의 의장이었던 김도연씨가 “그래 말해보시오.”하여 소견을 말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몇 가지 의견을 말했지만 회의가 곧 끝나서, 김도연씨가 “羅군, 그것을 글로 써서 내일까지 갖다 주겠는가?”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산 김도연과 첫 만난 계기가 되어, 군정청 입법위원회 산하 경제연구소의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결국 상산이 무역협회 회장으로 내정되자 조사부장 자리를 권유하여, 무역협회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羅부장이 협회에 입사 할 이즈음에는 일본 동지사대에서 영문학을 하고 귀국하여 문교부에서 근무하던 여직원(金玉羅)과 사귀고 있었고, 입사 이듬해인 47년에 결혼하였다.

     협회를 마치 이활 상무와 라익진 조사부장이 주체적으로 협회를 창립한 듯이 표현된 기록이 몇 군데 보이지만,
이때의 羅 부장은 사실은 31세의 신입직원이었었다.
     또 김도연 씨나 이활상무도 당시 정황으로 보아 스스로 무역협회를 만들고자 생각해 내었다는 것은
좀 과장 수식된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냉정한 판단이다.

     2.28동경 독립만세를 주도했었던 김도연 회장은 당시에 대단한 거물 정치인이었고,
그의 자서전에 보면 무역협회 회장이 되었던 기록은 단 여섯줄에 불과하다.

     이활 상무도 당시 그의 집안이 어수선하였고, 특히 대구 폭동 시에 사저가 폭도에 의해 소실되는 등 혼란스런 가운데에도,
영국 유학시설에 친교와 안면이 있었던 인촌 김성수나 설산 장덕수 등과 어울려 입법의원에 더욱 관심을 두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 활 상무는 사교성은 약하지만 그래도 대여섯 살 위인 유학시절에 영국에서 알게된
雪山 張德秀(“평화와 산업”이란 논문작성차 3년간 런던에 체류), 仁村 金性洙, 金相万 金善琪 申性模(1891-1960) 海葦 尹潽善(1897-1990 )등과 교류하였다.
     그러다 협회설립 불과 석 달만인 46년 10월에 김도연 회장과 이활 상무는 입법의원(의장 金奎植 중도파)에 피선되어(12月월12일개원)가고,
姜聲邰 총무부장이 상무로 승진되어, 경쟁의식을 갖고 있었던 라 조사부장은 상당히 심란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羅 부장이 협회와 더불어 스스로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은 입사후 5개월 후인 47년 1월 16일에
각 금융기관 조사부장들 8명이 모이는 서울경제연구소(일명 수요회)라는 모임에 참여하면서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이 모임의회장인 金奉鎭(1916년생 서울신문사 조사부장: 후에 협회 전무 서울경제신문사장)
     張基榮(조선은행 조사부차장: 후에 한국일보 사장)
     金永徽(식산은행 조사부차장: 후에 산은총재)
     宋仁相(1914년생 식산은행 심사부차장: 후에 재무부장관)
     安鎬烈(환금은행 조사부장)
     金基燁(환금은행 심사부장: 후에 협회 부회장)
     金益均(협회의 업계부회장: 납북후, 형인 시인 김광균씨가 대신 협회관여)

     이들은 후에 모두 한국경제의 거목들이 되었지만, 특히 무역협회의 Strong speaker였던 金益均은 경제이론은 물론,
각종 정부부처들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얻어진 정보와 실무에서 팔방미인이었다고 한다.
처음에 참석했었던 수협조사부장 柳龍大씨는 잠시 후 나오지 아니하고, 후에는 朴忠勳 군정청 상무부무역국장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경제 실무 책임자들의 실제적인 정보를 듣다가,
협회 내부의 김도연 박사나, 이 활 상무, 강성태 부장의 정치지향적인 대화의 허상성세들을 대하자니,
비록 나이는 30대 초반이었지만, 실무 스타일인 羅 부장으로서는 실망하는 점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른바 관점이 틀린 것이다. (나중의 결과는 그들이 더 출세했지만)
     그는 아마 여기에 자극받아 월간 무역(무역통신의 전신) 이나 무역연감을 간행해서
이들 그룹 멤버들과 어울리는 위상과 지위를 유지하려 했을 것으로 보이고, 특히 조사업무에 정열을 보인 것은 이와 같은 배경으로 여겨진다.

     그럼 왜 무역협회를 만들고자하는 움직임이 있었을까?
당시 정세로 보아 보통은 “조국해방과 더불어 100여 무역업계에서는 스스로 우리나라 무역을... 어쩌고”하는 우국충절형 허사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1946년 당시의 몇 가지 당면실정을 살펴보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면 상의에서 그런 의도가 생태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미군정당국이 당시 너무나 혼란스런 당면현상에 대처하기 위해서 민간 단체인 협회 설립을 재촉하였다는 방증이 오히려 설득력을 가진다.
     협회설립 불과 3개월전인 46년4월30일에 군정청 상무국이 발족하였다.
그 중심인물은 평남출신으로 MIT를나온 吳楨洙이 상무부장(상공부장관)이 있었고,
그아래에는 주로 연전출신으로 차장 羅基湖, 상역국장 崔萬熙 차장 趙範行, 수입과장 黃時淵 수출과장 任在珏 라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1940년대 몇안되는 민족자본계 실력자로서 경성상공회의소에는 다음의 6명의 의원 구룹이 주도하고 있었다.
     李東善(朝鮮賣藥)      金用淳(友溪1901-1961 金剛製藥,)
     李定宰(永保合名)      邊相昊
     金圭三                金秊洙 (京城紡織)
     이중 金用淳은 1945년 미 군정청에서 고문으로 임명된 (金性洙(의장) 金用淳, 金東元, 李容卨, 吳泳秀, 宋鎭萬, 金用茂, 姜柄順, 尹基益,呂運亨, 趙晩植(평양거주 불참) 등 11명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인척인 李東善과 함께 해방직후의 재계 재편 작업을 담당하고 있어서 이른바 실세중 실세이었다.
     해방전 재계는 永保合名그룹의 閔씨들, 경성방직의 金秊洙, 화신산업의 朴興植,
태창방직의 白樂承, 약업계의 柳一韓 金用淳 등이었다.

     특히 군정청으로부터 상의 설립을 위촉받은 閔奎植(런던대 출신 납북)은 李定宰 金用淳 李東善을 규합하여,
1946년 5월 19일 상의가 재 창립하면서, 초대회장이 되었고,
金用淳이 상의 부두취(부회장)이 되면서 상의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이때 광공국장이었던 吳楨洙(1899~)는 과도정부 상공장관으로 눌러앉아 있었다.
군정청 과도정부는 安在鴻 민정장관을 임명하고, 재개재편과 상의창립을 촉구했고,
이어 吳楨洙 상공부장의 권유로 상의에 무역협회 창립을 위촉하였다.
     이에 상공회의소 측에서는 金龍周 李定宰 등이 자기들 우계 김용순을 무역협회회장으로 나서도록 권유했는데,
그가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보류하고 6월 24일에 상의 의원들 가운데에서
金用淳 李東善 朱耀翰 金承植 張基昌 黃泰汶 柳明韓 尹宇植 金仁炯 金恒燮 등으로 무역협회 창립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당시 상황이 혼란스럽고 또 긴급함에도 회장 선임 등 진전이 없자 상무부(부장 吳楨洙)에서는 협회설립을 재촉하게 되었다.
당시에 만주 등 북방지역에서 일본군 전쟁물자를 털어서 싣고 오는 정크선이 무질서하게 운집해 크게 당황한 미 군정청에서는
     다급하게 7월4일에 교역통제령을 발표하고, 곧이어 11일에는 무역국과 상무국을 설치,
18일에는 관세와 세관법 관계를 재무부 조사1과에서 관장토록 했고,
19일에는 대외무역 면허신청을 8월 1일부터 받겠다고 발표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
이런 경황스런 와중에 서둘러 무역협회도 설립되었다.

     결국 무역협회 회장으로 내정된 분이 常山 金度演 박사이었다.
그는 김포염창 출신으로 미국 콜럼비아대학을 나와, 연전에서 교수로 봉직하다, 종전 직전에 인사동에 興業社라는 것을 운영하면서,
한국민주당 총무가 되면서 서울 태생의 金用淳과 알게 되었다.
     김도연박사는 당대 경제전문가 중에서도 가장 신망이 높았고, 또 한국민주당(韓民黨) 중진이었으므로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그는 한국주당의원으로 화신 백화점 4층에(지금 국세청자리) 있던 특별경제위원회에 牧堂 李 活씨 와 함께 배정되어 있었다.

     7월 30일 무역협회 창립총회에는 최만희 국장과 상의 의원등 43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당시 이활 상무는 김도연씨의의 권유로 오게 되었지만, 이날 그가 알고 있었던 사람은 김도연 이외에 東隱(金容完 1904-1985: 인촌 매부, 목당과는 겹사돈)과 友溪(金用淳) 뿐이었다고 한다.
牧堂은 사실 경제계는 생소했다고 한다. 오히려 友溪가 마치 주인인양 경제계 인사들을 소개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역협회는 출발부터 상의와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었다.
당시 상의에는 우계가 그 주변 인물들로서 주도권을 잡고,
정치적 색채의 압력단체의 성격을 강하게 띤 보수 민족 자본가들이 주축이었다.

     그러나 협회는 비록 상산과 목당은 실업계 중진은 아니지만, 구미 유학파들이었던 유력인사들이 참여하였고,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이사진 구성에 진취적 신진자본의 소장 수출업자들을 참여시키는 등
이사회 중심의 민주적 운영 전통의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출발과 더불어 무역현장의 난제들을 척결하고, 정계의 거물들이 출입하자,
오히려 상의 쪽에서 부러워하는 기색이 보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무역협회의 위상이 한층 높아진 것은 우리 역대 무우회 원로 회원님들의 누적된 공과의 산물이 아니겠는가하여
아래에 당시 인사들의 나름대로 내력을 열거해 놓았다.

무역협회 초창기 주요 인사들
46.7.31 金度演 초대 회장(~48.5까지)(초대 재무부장관부임으로 사임,)
       李 活 상 무 (그후 무협회장 중앙학원(고대재단)이사장 산학협동재단이사장)
       姜聲邰 총무부장(김인형 상의부회장과 고교동창, 현민과는 대학동창
       초대 관세청장부임으로 사임. 후에 상공장관)
       羅翼鎭 초대 조사부장(그 후 협회전무 상공차관)
46.9    柳炯極 입사(~67.10)
46,12.1 부산지부 결성 지부장 金智泰(大同産業)
47.4.16 姜聲邰 상무를 2회 정기총회에서 전무이사로 승진
47     崔在繕 기획과장 (배 과장 후임, 영어와 타자 능숙 병사)
       吳興根(?) 서무과장
       裵慶道 총무과장(세무국으로 이직)
       李載沆 조사과장 (라부장과 연전동창, 관재처 처분국장으로 이직, 후에 상의 부회장)
       裵 ?? 편집과장
       朱極南 金庚順(여)
49.4 제2대회장 李活 선임
49.8.16. 月刊 “貿易” 창간 (150부발행)
(9.21. 일간 “무역통신”으로 題號 變更)
       발행인 李活 회장(~53.5)
       편집인 羅翼鎭 전무(~53.5.)
       조사부장 2대 高承濟(환도후 학계로 복귀)
              조사과장 魯哲漢(李載沆 후임 6.25 행불)
              조사원 柳炯極 ?恒晟 金龍殷
             통신과장 安 霖(환도후 성대 교수로)
              기자 申大澈(49.9~71.5 상무로 은퇴 후 재미)
             필경원 金鎭恒(6.25행불)
              총무과장 辛在敦(6.25. 행불)
50.2. 신입직원채용
       李 承 輔(무역국과 외자구매처 출입기자)
       金 命 潤(조사과 직원)
       李 熙 明(외자총국 출입기자 6.25행불)
       金辰煥 ?羲性
51.5.9 金容善 기자채용(상공부출입)(81.6 무역진흥공사 설립기획 입안 인연으로 KOTRA로 이적)
   6.1   李根培 기자채용
51.7.1 승진 尹國一 총무과장, 柳炯極조사과장, 申大澈 통신과장
51.7   李海運 입사(~59.5 재미 NY)
51.8.21 李東旭 3대 조사부장(편집국장격)52.5.31 퇴임, 후에 동앙일보 사장)
       申泰煥 조사부 고문( 그후 서울대 총장)
51.9.1  鄭海珠 기자채용(재무부 한국은행출입) 河在奉 필경사
52.3    金福基 입사(~60.2)
52.4.10 孫椿植기자 (부산세관 출입 시황 물가조사)
52.4.27 金斗萬기자(부산세관 출입, 시황 물가조사~65.10)
52.7.4  金判淳 기자 (외자청 출입)(~53.8)
52.717. 金在鎬 기자(편집, 시황 물가조사)
52.7.30 吳學根 총무부장 취임(정인승 관재청 처분국장의 연전 경신후배)
52.9.15 黃昌玉 기자(상역국출입)
52.9.19 제4대 金斗熙 조사부장(12월말 퇴임)
52.12.4 李日均 기자(편집, 시황 물가조사)
53.2    崔健溶 입사(59.4)
53.4.25 李活 제4대 회장으로(부산상의 회의실에서) 선임
53.5.5  李活 회장 10일 만에 사임(민주국민당적 문제로)
53.5.23 任文桓 회장 취임(원외자유당 족청계, 전 농림부장관 출신)
53.5.23 李重春 전무
53.     李一鎔 인쇄원 (후에 뉴욕판)
53.6.27 崔昌洛 편집기자 채용(후에 산은총재 기획원차관 동자부장관 전경련부회장)
53.7    李炫龍(~74.9) 申斗雲 연락원 채용
53.9.25 徐鎭英 金大洪 부산 채용 53.11. 金三柱 채용(~59.4)
53.11   羅翼鎭 전무이사 사임 李重春 전무이사취임
53.12.26 李允榮(그후 고대법대 학장) 宋秉湖(~56.9) 기자채용
       崔文基 입사(~78.12전 서울문리대 최문환 학장 종제)
54.1   李日均입사(~83.5), 54.3 姜東燮입사(~66.3)
54.4   李尙浩 입사(~61.6 고모부 정인승 서울관재처분국장)
54.5   崔淳周 회장 취임(~56.6)(전국회부의장, 미국수술후 귀국)
54.5   鄭雲近 전무이사 취임(전 국회사무처장, 부인 황진주가 신익희의장 주치의)
54.5   吳學根 상무이사 (~69.8)취임
54.6.12 金上瑞 채용(부산).7.24 林升準 吳正南 채용, 7.26 吳猛 채용
54.8.   羅敏柱 입사(~63.3)
54.9.15 李漢相 (재일동포) 일본서 영문발간
54.9.27 盧在煥 기자 채용(91.3상임감사로 은퇴), 12.1 朴周禮 채용(부산)
54.10   黃宇性입사((주)무역회관~59.3)
54.11   鄭雲近 초대 상근부회장 으로 승진(족청계)
55.2    李昌洙 전무이사 취임
55.4.21 林東湖 기자 채용 55.9 鄭求哲 입사(~57.10)
56.8    姜聲邰 회장 선임
56.12   金在鎬 기자 재입사(~85.12편집국장은퇴)
57.2.14 李揆一(홍콩주재상사) 홍콩주재 대리인
57.3    權五經(~63.3) 李台徽(~63.11) 張世勳(~59.7)입사
58.3    金顯璣(~63.4) 車東會(~62.10)입사
58.4    金良秀입사(~62.2) 58.5 楊佑鎭 입사(전 국회사무처 속기사~91.2)
58.7.   朴鍾植 전무선임
58.11   尹政熙 입사(~81.5)
59.2    宋秉浩 입사(~62.3)
59.5.   金奉鎭 전무 선
59.8    羅萬柱 입사(~88.6) 59.9 禹完植(=禹武男)(~77.12)
60.7    禹康生 입사(~87.10)
60.6    吳學根 전무 선임
60.10   南宮琇 채용 (주 일본) 60.11 都時煥 입사(~73.7)
60.11   李東煥 부회장 선임(~61.6)
61.1    李國豪 입사(77.12)
61.6    金基燁 부회장 선임
61.7.31 무역통신 정간으로 직원휴직명령 14명
       楊佑鎭 禹武男 金東圭 鄭雲赫 李相憲 李元植 金永浩 등
61.12   梁在賢 과장 통신복간에,
       李炫學(~77.12)金永鎬 입사(~77.12) 李元植(~69.9)鄭海珠 입사(~75.2)
62.1    邊東均 입사(~71.9)
62.1.9  吳正秀 기자 입사(~75.4, 1.16 鄭允雄 朴錫埈 편집기자, 金英健입사(~77.2)
62.1.29 權在均편집기자(부산)입사, 6.28 具滋京기자 입사 62.1 李熙宗입사(~77.12)
62.2.22 金基燁부회장 부임
62.2    具吉會 입사(-88.1)
62.8.2  韓相元부회장 취임(~67.4)
63.2    洪永杓(~81.12)
63.3    鄭明謨 입사 (~67.6재미); 63.5 李堈鍵 입사(90.12)
63.7    柳炯極 상무이사 승진
63.11.29 일본어판 무역통신 동경발간요원 구성
       南宮琇 宋基鵬 崔卿植 金金子
63.11  金重圭 입사(~67.9)
64.2   金鎭國 입사(~67.2) 64.9 柳炳龍입사(~75.10)
65.1.11 金星鉉 외신2과장입사 ; 65.7 沈演 입사(~73.3)
66.3   李東旭 입사(~78.2)
65.4   韓相元 부회장 유임 柳炯極(유임~67.10)申大澈(신임) 상무선임
65.4   林東湖 입사(~78.1 주 카나다)
65.7   吳敏彦 입사(~67.4)
66.3   南基昇 입사(~78.2)
66.5   朴建海 입사(~89.5) 朴性九 입사(~97.3);65.6韓相烈입사(97.3)
66.6.1 許永亭 동남아 통상사절단 간사로 참여
66.6   黃 敦(~83.12 영어실력 대단해),李熙延(~71.6 재미)입사
66.7   金榮坤(~90.8KTNET상무로이직) 朴勳植(78.3) 申東洙(~75.2 홍대로)입사
66.10  李昌垣 입사(부산~81.9)
67.2   崔聖學 (~93.1)입사;67.3張枓柄(~88.1)입사;66.7孫完洙(~92.6) 林永昌(~97.3)입사;
66.8   申 弘(~68.3) 元容先(~82.1) 金敬玉(여~90.2)입사; 66.9 金宅中입사(~82.1)
67.4   朴鐘植 상근부회장 선출(~71.3)
67.8   睦禎祐 (~73.11) 徐泰源(~80.7)입사; 67.9 李明植 입사(~82.6)
67.3.1 許璟 뉴욕지부장대리 임명
67.3   李斗源(~94.2)李喆圭(~87.4)입사; 67.10 金昌鎭(~95.2) 朴良漢 입사(~74.7)
67.9   尹熙洪 (~94.12) 李相國 (~98.9) 康潤斗(~80.7)입사;
67.10 .金鐘賢(~71.3) 吳武弘(~68.7) 朴櫓進입사(~80.7,88.10~96.11)
68.1   崔宗範(~91.9) 李英鶴 (~77.9)입사; 68.3 崔昌鎔입사(~98.9)
68.5.10 康潤斗 외신2과장승진 68.6 李天福 입사(~88.1)
68.7   金彰漢 상무 선임(전 체신부 국장)
69.8   張 郁 입사(72.1 재미)
68.9   李東得 (~94.1) 車在潤(00.12) 李弘烈(~78.10)입사; 68.12 元容煥입사(98.9)
68.12  林龍雲 과장 입사(~94.2)
69.2   李石珩(~71.7) 趙聖五(~80.8)입사
69.3   李康範(~97.2) 咸胤鎬(78.2) 玉鐘錫(~76.11) 金炯世(~79.3)입사
69.4 13대 임원 선임
       회장 李活 부회장 朴鍾植(69.4.15)
       상무 申大澈 金彰漢(69.5.6) 崔文基(70.2.26~) 감사 吳學根
69.4   崔丹鈺(~80.11) 張和洙(~73.9)입사
69.6   沈範求 과장 입사(~77.1) 柳鳳振과장 입사(~82.1) 69.7金南稷입사(~80.7)
69.7.5  함부르그 지부 설치 구주판 통신 발간
       지부장 徐義敦 인쇄원 金相浩 서무 金永吉(교포) 69.7 李允周(~73.6) 吳薰根(98.7) 李海萬(~98.9)입사;
69.11  李相旭(~82.1)張子龍(88.6)입사; 69.12金榮仁(~73.6) 朴幸雄(~71.1) 입사
**** 착오발견시 연락 바람****



<==처음으로   <<== 목차로   <<== 초대 무우회장   근대화의 발자취 ==>  
Chairman Report No.18(2010.4.15)

        5. 18년 미도파 시대의 (주)貿易會館 내력


    셋방살이 떠돌이 시절


    한국무역협회는 1946년 7월31일, 을지로 입구 코너의 식산은행(현 산은) 별관1층 사무실에서 업무를 개시한 이후,
곧이어 2층과 3층으로 이전해서 2층은 金度演 회장실로, 3층은 사무실로 사용하여왔다.
그 후에 잠시 상공회의소 건물로 사무실을 옮겼다가, 또다시 미도파 건물에 이전 입주하여 있던 중에 6.25를 맞이하게 되었다.

    일정 당시 丁字屋(현美都波) 건물은 해방으로 귀속자산이 되어, 미군 24군단 PX로서 사용되어오다가 정부에 반환되었고,
이에 1949년에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동 건물은 우리나라의 무역진흥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하라는 유시가 있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국민은행 본점 구 건물에 있었던 상역국과 무역국(국장朴忠勳)을 이곳 5층으로 입주시켰고,
곧이어 정부의 대일무역 대행기관이었던 大韓交易振興株式會社(사장 吳禎洙)시켰다.
이어 朴국장의 주선으로 韓國貿易協會(회장 金度演)도 4층에 입주하게 되었다.
이에 동 건물을 貿易館이라 명명하고, 관재청과 협약하여 그 관리를 일단 大韓交易(주)에 맡기게 되었다.
이때 무역협회는 이 건물에서 외국과의 무역상품 교환전시회를 개최하여 다대한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정부수립과 더불어 초대 김도연회장은 재무부장관으로 갔다.
재무부차관은 장희창(납북)이엇는데, 이재과장은 金장관의 장남 金慶大 의 친구인으로 李治寧(후에 협회 부회장)이었다.
이들의 배려로 외화 매입허가를 얻어 南鮮貿易의 외산차를 3천달러에 구입하기도 했다고 한다.

    부산피난 곁방살이 시절


    1950년6월15일 사변으로 인하여 협회는 일시 부산으로 이전하였는 바,
먼저 부산시남포동1가 21번지에 있었던 美進金屬(李年宰)의 후의로 그의 1층 사무실에서 집무를 계속하다가,
51년 여름에 광복동2가 41번지의 전기 상회의 소유 건물 2층으로 옮겨 피난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사변의 戰禍를 남기고 서울이 수복되어 협회도 환도하게 되었으나, 무역관은 파괴되었고,
사변전의 관리인이었던 대한교역(주)이 51년 4월에 해산 되었으므로,
무역협회만이 동 무역관에 대한 유일한 민간 연고권자로 남게 되었다.

    이에 협회에서는 53년 6월11일에 상무임원회를 개최하고, 무역관의 관리권 인수를 교섭하기로 결의, 정부와 교섭을 진행하였다.
이에 정부에서는 민간에서 사용한다면 한국무역협회에서 사용토록 하겠다는 언질을 받았다.     1953년 7월10일 관재청에 동건물을 무역관으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관리인 변경 신청을 수속하던 중에
우드 사절단에서 FOA자금으로 수리하여 사용키로 하였다는 내용을 기획처장으로부터 통고를 받게 되자,
협회는 할 수 없이 동 건물의 일부사용으로 방침을 변경하고,
6인 교섭위원회를 구성해서 우드 씨와 기획처장을 방문하여 진정케 하였다.


    우선 상공회의소 건물로 환도복귀


    무역협회는 1953년 7월1일 상무임원회의의 결의에 의해 무역관의 문제를 미해결로 하는 상태에서
우선 서울의 상공회의소 건물로 1953년 7월 6일에 선발대(申大徹 통신과장)를 상경시켰고,
이어 53년 8월 24일 완전 환도 복귀하여 상의 1층에서 무역통신을 발간하고, 3층은 특정 상품수출조합과 공동으로 사용하여왔다.

    당시의 정황에서 볼 때 정부는 환도하였으나 많은 회원 상사는 아직 부산에 남아 있었으므로
서울에서 서류를 송부하여야 할 문제가 자주 제기되어, 협회에서는 1953년 7월 9일부터 4명의 직원에 의한
경부간 서신연락 업무를 개시하여, 그 후 30 여 년간 그 임무를 수행하여 오게 되었다.

     한편 무역관관리권인수를 위한 교섭은 그해 10월경 李 大統領이 우드 사절단에게 대여키로 내약하였다고 전해 졌으므로
이를 일단 보류하고, 남대문 서측에 있었던 구 商工장勵館 건물관리권인수를 병행 추진하여 오던 중에,
우드 사절단이 상기 건물의 사용계획을 폐기하였으므로 상공부에서는 1953년 12월에 그 상정을 보류한바있는
무역관의 협회사용안건을 1954년 3월에 국무회의에 재차 상정한바 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정부의 귀속재산운용에 대한 방침이 결정되어있지 못하였으므로 그 결정을 기다릴 수밖에 수 없었다.

    그러고 있는 중에 1954년 4월10 돌연 관재청은 大韓不動産株式會社(사장 玄槿)와 무역관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現代建設(사장 鄭周永)로 하여금 수리케 하였으므로,
협회는 급기야 그 부당성과 이대통령의 그간의 유시와 사변전의 상용연고관계 및 협회의 역할의 중요성 등을 들어
1954년 4월15일 그의 시정을 관계 요로에 진정하였으며, 상공부에서도 관재청에 항의문을 보내는 한편
서울특별시장에게는 동건물의 수리공사 중지를 요청하였다.
     협회는 1954년 4월30일 정기총회에서 동 건물은 반드시 무역관으로 재건해야한다는 데에 총의를 모았고,
이어 5월 8일 상무임원회에서는 시내 모 일간지에 성명을 발표하기로 하고,
동 건물에 대한 관재청과 대한부동산(주)간의 귀속재산 임대차 계약을 취소하고, 무역협회와 재계약 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7월 중순 경에도 재차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대한부동산(주)에서는 1954년 8월1일에 백화점으로 개장하여 개관하였으므로
상무임원회에서는 그간의 경위와 부당성을 성명하고, 8월17일에 관재처장에게 소원을 제출한바 있으나, 이것도 기각되고 말았다.
최후로 8월26일 이대통령에게 진정하여 선처를 기다리게 되었는데, 이 진정이 주효하여 이대통령으로부터 승낙을 얻은 것이다.

     이에 드디어 54년 9월20일에 관재청장으로부터 동건물에 대한 대통령의 유시에 따라
협회와 귀속재산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것을 통보하여 왔다.
일이 이같이 성사되게 된 데에는 협회의 초대 총무부장이었던 당시 姜聲邰 상공부장관의 노력이 컸었다.
    협회에서는 9월 29일 상무임원회를 개최하고, 대책 안을 수립하여 이를 10월 1일 및 4일자 임원회에 부의하여 토의케 하였다.
이어 다음날 10월 5일에는 임시총회를 즉시 개최하고, 동 건물을 무역회관이라 명명하고,
이를 운영할 무역회관 운영위원회를 설치하는 한편 동 회관인수기금을 모금키로 하였다.


    貿易會館에 대한 임대차계약 체결


    1954년 11월13일 무역협회는 관재청장과 동 건물에 대한 귀속재산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 10,701,000환과 당월 11월분 임차료 3,567,00환으로 합계14,268,00환을 관재청에 납입하였다.

    그리고 54년 11월19일에 관재청장으로부터 전 관리인 대한부동산이 실시한 제1차 수리비 90,243,000환을 12월18일까지 납부할 것을 고지하여 왔으므로 이를 납부하였다.
대한부동산에 대하여는 2차수리비 3,822,00환, 비품대 20,000,000환, 권리금 15,000,000환, 기타 775,00환으로 인수지급경비는 모두 1억3천만환이 되었다.

    1955년1월17일에 무역회관임시구주총회를 개최하고, 대한부동산에 지급할 1억3천만환을 승인하고
동 회관 대책위원으로서 鄭雲近(위원장) 韓宗敏 趙永一(부위원장) 羅翼鎭 朴三俊 씨 등을 선임하였다.

    1955년 1월19일에는 대한부동산과 회관인수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고, 수리비등을 지급한 직후인,
1955년 1월20일에 상의로부터 무역회관 4층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관재청은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여 왔으나, 백화점 입주 전쟁미망인이 다수 있어 이들에 대한 배려를 건의하였고,
현 영업인들과 55년 7월30일까지로 계약을 모두 갱신하였다.


    무역회관 인수기금 모금과 불하계약


    무역회관 인수기금 모금은 전회원이 각각 2개 口座(40만?)씩을 의무적으로 申立하여, 1억?의 기금을 마련키로 하였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균등모금이 어려웠고, 총회 시에 기금의 법적 실체(entity)에 관하여 다소의 논의가 있었지만,
이에 대하여는 훨씬 후일에 재론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어떻든 기금모집을 추진하여 1954년 11월30일에 무역회관 口主총회에서 운영규정을 승인하고, 운영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선출하였다.

    협회는 관리권인수에서 한걸음 나아가서 1955년 3월23일 에는 서울시 관재국장에게 회관건물 優先買受願을 제출하고,
회관의 완전한 인수를 위해 계속 노력하여 오던중, 드디어 1955년 8월20일 무역회관에 대한 귀속재산 공매 입찰에서
4억5천만환으로 무역협회에 낙찰되어, 동월 31일자로 불하계약이 체결되었다.

     이 명동입구인 남대문로2가123번지의 지하1층 지상7층의 이 건물은 대지 487.4평, 건평 2,160.831평이었다.
불하가격 중 기 납부수리비 9,423.1만 환을 공제한 3억5,576만9천환을 10년 10회 균등분할 납부키로 된 것이다.

     이리하여 그동안 협 회분을 비롯해서 249명으로부터 14,761구좌, 1억4,761만환의 자금이 모금되었고,
회관(백화점)운영면의 개선 등으로 착실히 불하대금을 납부하여 가고 있었다.
더욱이 백화점운영은 전국 여타 백화점 매출규모 보다도 커갔다.


    이권다툼 되어버린 株式會社 貿易會館(미도파)


    온간 난관을 겪으면서 협회의 천신만고 끝에 인수하게 된 회관이었건만, 협회가 구성한 무역회관운영위원회가 협회기관으로서 보다는
오히려 口主權에 의하여 현실적으로 지배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 조성됨에 따라, 새삼스럽게 회관에 대한 주도권문제가 거론되는 불행한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구주기금 모집 시에 출연에 대한 해석이 모호하였던 점을 기화로 하여,
몇몇 일부 口主가 시중의 구주를 매집하는 등의 권리 주장에 의한 이권이 개재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1957년 7월31일과 8월5일에 협회에서는 임원회를 개최, 이를 논의한바,
본질적으로 무역회관 구주개인의 이권으로 귀결될 수 없는 것이므로 모금 당초부터 이권의 편재를 막기 위해 균등 모집을 주장하였던 것이었다.
    비록 일부회원의 사정상 균등분담이 이뤄지지는 못하였지만 벌써 수삼 주주의 이권대상이 되어 재론 된다는 데에 통탄하고,
그렇다고 구금을 반환 할 수도 없는 형편이므로 회관 운영위원회 위원들도 또한 협회의 회원인 만큼 이들을 설득하여
협회와 회관운영회 측의 지분비율을 최소한 50 대 50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회관운영위원회측은 협회지분으로 35%를 주장하여 타협을 보지 못하자,
63년 10월22일 협회회장단과 이른바 회관운영위원회측 7인위원(崔泰涉 金龍成 李漢垣 趙永一 朴炳敎 金基鐸 吳楨洙)간에 40%선으로 내약하고,
64년 3월10일자 임원회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협회측 5인 대책위원으로 吳楨洙 張炳希 羅翼鎭 黃相根 沈相殷 씨 등을 선출하였다.

    1964년1월 중순에 불하대금이 완납되고, 결국 무역회관은 주식회사의 형태로 운영할 것으로 낙착을 보아,
7월4일 임원회의 위임에 의거 회장단과 전기 5인대책위원은 초안된 주식회사 무역회관의 정관을 검토하고,
24일에 발기인회와 7월30일에 주식회사 무역회관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1964년 8월31일자로 자본금 1억4,761만환의 법원등기를 필하였다.
    주주분포는 모금 구좌수대로 현물출자를 인정, 주식으로 전환하여, 협회가 40%, 14개 대주주가 39.9%,
기타 회원 220명이 나머지 20.1%로 배정되었다.
    대주주의 면면은 다음과 같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그 이후로는 협회출석을 아니하였다.

             대주주 배정 주식수 내용

        무역협회      59,044 주(40%)
        同和産業 崔泰涉 5,040 釜山公司 尹參永 4,062 주
        崔泰涉         4,602 大成産業 趙永一 3,708
        三星物産 金善珌 5,496 天友社 全澤珤   3,630
        三護貿易 鄭載卨 5,010 和信産業 朴興植 3,576
        大韓物産 金龍成 4,788 永進物産 金生基 3,460
        大韓産業 薛元植 4,628 濟東産業 沈相俊 3,018
        大隆産業 鄭夢印 4,538 韓國生絲 金知泰 2,022

    1964년 8월4일 (주) 무역회관 제1차 이사회에서는 협회안대로 대표이사 崔泰涉, 전무이사 趙藺相 씨를 선임하고,
본격적인 백화점운영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이로부터 협회는 배당금을 받고, 사무실에 대해서는 임차료를 내게 된 것이었다.
무역협회는 이 회사 설립전에 3년간에 3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은 데이어,
64년 이후 69년까지 6년간에 배당금 2,742만4천원의 배당금을 받은 반면,
임차료로서 3,066만3천원을 지급하게 되었으니, 주객이 전도된 형국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이후부터의 협회운영 체질은 이들 대기업들은 스스로 소외되었고,
신진 중견기업 회원 주도로 운영되는 전환의 계기가 된 점도 있었다.

    그간 10 여 년간 무역협회에서는 진실로 무역인을 위한 전당이 될 명실상부한 무역관을 갖고자 하는 염원을 이루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여 온 결과가 이렇게 엉뚱한 결론으로 맺어짐에 따라
이에 그치지 아니하고 면면히 이어온 협회의 숙원을 기어이 실현시켜야 하겠다는 굳을 결심과 노력이 계속되었다.

     여기서 협회는 재산운영과정에 외세의 불평등한 독과점적인 요소의 침투는 경계해야할 역사적 뼈저린 교훈을 겪었으련마는......
요즘도 글쎄 잘들하고 있겠지요?

        

(*본고는 “貿協30年史”에 35년전인 1976년에 본인이 직접 집필했었던 부분을 참고한 것임)




<==처음으로   <<== 목차로   <<== 미도파 시대   삼성동 시대 ==>  
Chairman Report No.19(2010.6.15)

        6. 회현동 15년의 貿易會館



지난날 (주) 貿易會館 경과에 실망하여, 보유주식 매각



     주식회사 무역회관(미도파)이 설립된 후 1년이 지난 1965년 10월8일자 회장단회의에서는
그동안 미도파 건물이 어처구니없게도 주객이 전도된 전말과 더불어,
미도파로부터의 배당금보다도 임차료를 년 4백만 원이나 더 내야하는 형편에 실망한 나머지,
(주) 貿易會館(美都波) 주식을 처분하고, 새 건물과 대지를 물색하기로 논의하고,
다음달 25일 임원에서 12개 후보지를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1965년12월 8일자 임원회에서 무역회관 주식 처분과 신회관 구득을 위한 회장단 5명과
위원 5명 (金善珌 林鍾洙 金秉煥 金容順 金八淑)으로 10인 소위원회를 구성하였고,
1967년 5월24일에는 위원 5명을 새로 개선(金基鐸 金容順 金鎭河 金八淑 金光均)하여 계속 미도파측과 협의를 하였다.
     1968년 7월 23일에 동 위원회에서는 주식평가액을 5억원으로 보고 미도파측 인수단(대표 崔泰涉)과 교섭을 진행,
결국 1968년 12월27일에 협회 보유주식 60,208주(40.8%)를 2억392만원에 70년 3월1일까지 3회 결제조건으로 양도키로 합의, 매각하였다.

회현동 垈地 확보



     이른바 미도파 주식이 처분되자, 곧이어 1969년 1월7일에 그동안 검토되어 왔었던 후보지 중에서
회현동 대지를 최적지로 채택하여 매입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동안 여러 후보지의 구득 추진이 결말을 보지 못하고 있던 중에, 1968년 4월22일자 청와대 輸出振興擴大會議에서 무역회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국유 또는 사유지의 불하 또는 대여에 정부가 적극 협조키로 한 바에 따라,
상공부에서는 대통령지시에 따라 관계부처와 협의 결정토록 하였다.(상역진1312.11~24)

     이에 당시 남산 세무서가 회현동2가 10번지1에 소재하고 있었던 국유지 628.2평과 동 건물을 6,370만원에 불하를 추진하여,
이를 1969년1월6일에 취득케 된 것이다. 이어 주변 개인소유 8필지도 확보해서, 모두 7,474평을 총1억556만원에 구득하기에 이르렀다.

풍랑 맞는 建物委員會



     1969년 2월21일 임원회에서는 신회관 건축을 위한 건물위원회를 구성,
李活 吳楨洙 張炳希 羅翼鎭 朴鍾植(이상 회장단) 金容順 金基鐸 金鎭河 南相水 崔泰涉 宋英洙을 위원으로 선임하였다.
     이어 위원회 기능의 기동성과 효율성을 위해 3월28일자로 羅翼鎭 朴鍾植 金容順 文炳赫등 4명으로 건물소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69년 5월9일자 임원회에서는 임원의 임기만료로 건물위원회 개편:
          위원장 이 활
          위 원 장병희 라익진 김용순 박용학 박종식 (이상 부회장)
                   조군실 송영수 김진하 김기탁 남상수 최태섭

     1969년 11월27일자 건물위원회에서는 건축본부위원회를 설치키로 한 바에 따라, 1970년1월15일에 건축본부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장 라익진, 부위원장 송영수, 위원 남상수 문병혁)

     물론 1971년 4월 정기총회에서 제위원회의 임기가 모두 만료됨에 따라, 새로이 건물위원회 위원 15명을 선임하였다.
          위원장: 이 활, 부위원장 : 장병희 이치영,
          위 원: 라익진 박용학 김팔숙 김기탁 김진하 김광균 서장욱 최준규 문병혁 남상수 조군실 송영수

     1971년 5월18일에 건축본부위원회를 건물소위원회로 의결기구로서 개편하고,
(위원장 김팔숙 위원 이치영 남상수 문병혁) 집행기구로서 상근건축본부장(송영수)를 선임하였다.
     장병희 부위원장이 사임하고 건축본부 사무국체제로 전향하고, 7월31일 이후에는 건물위원회 직속 의결기구로 개편하였다.(위원장 이활, 부위원장 최준규 이치녕)
최 부위원장에게 인사와 자금 및 공사 진척 등의 전권을 일임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빈번한 개편은 그간의 건축과정이 순탄치 못한 난관들이 있었음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1972년 2월 11일에는 그간 건물운영위원회 체제를 건축본부(본부장 陳翼相(72.2.28~73.9.6)의 사무국운영체제로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직원으로서는 우보현부장과 남기승 과장 그리고 직원 김형세 등이 파견되었다.
     시공주측 의사결정은 당시 박종식(후임 이치영) 상근부회장과 회장단과 그리고 이활 회장간의 원활치 못한 상태에서
사무국의 간섭은 소외되고, 주로 회장단을 주축으로 한 건물위원회에 의해서 이뤄졌었다.
     건물위원 구성과 운영은 건축관련 제 문제와 더불어 협회 임원개선 등으로 인하여 빈번한 개편이 이어지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산적한 난제들을 헤쳐 왔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호텔 겸 사무실 建築 設計와 許可



     제4회 건물위원회 에서는 李喜泰 설계사무소를 선정하고, 7월14일자로 계약을 체결하여,
제안된 A, B, C 안중에서 제7회 건물위원회에서는 호텔 겸 사무실로 하는 C안을 채택, 본 설계에 착수하였다.
최종으로 지하 2층 지상 22층 120실 총9,464.84평의 설계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미 확보한 대지 628.2평의 제약으로 인하여 허가를 위해서 별도의 설계를 하여,
1969년 9월10일자로 서울시 관광사업과에 관광호텔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하였다.
     그러나 종전과는 달리 건축허가를 먼저 받아야한다며 취하되었고,
또 이어 10월10일에 제출한 건축허가 또한 11월3일자의 건축억제조치와 건축법 41조를 걸어 취하되었다.

     이에 협회는 동법규정에 대한 적법성 유권해석을 얻어 재 제출 중에
상공부와 건설부의 중재협조로 다음해 190년 2월9일자로 지상19층 지하2층 6,915평의 호텔 건축허가를 취득하였다.
1970년 3월19일에 기공식을 거행하였고, 4월27일에 호텔 사업계획에 관한 교통부의 승인이 났다.

우여곡절의 사무실 전용 건물로 용도변경



     이러는 와중에 1970년4월4월10일자 대통령령 4915호로서 관세법28조1항10호의 지정물품이 8개로 축소강화 됨으로서
실질적 호텔용품의 면세도입이 불가능하게 되다.
이에 9월1일자 위원회에서는 사무실 겸 호텔의 실익이 없어졌으므로 사무실 전용으로 용도를 변경키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경에 따르는 행정상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업지역내 방화지역고시가 필요하게된 것이었으므로,
서울시에서는 1970년 4월 13일자 도시계획위원회의 통과를 보아 8월27일에야 건설부에 회부되었다.
     이에 기 승인된 관광호텔사업계획은 1972년 2월 25일 취소 신청하여, 3월6일자로 그 승인을 얻었고,
6월9일 건설부 고시 216호로서 용도변경이 이루어졌었다.

     이러한 진행 중에 감리와 준공검사에 관한 계약을 光進建築硏究所(조탁균)와 1970년 2월20에 체결하고,
그동안 준비하여왔던 변경허가신청서를 6월18일에 제출하였고,
이에 29일자로 변경허가(허가번호53호)를 얻기에 이르러 그동안의 건축허가상의 제반요건을 완비하는 데에 이른 것이었다.
     새로이 변경허가된 것은 높이 86.44m, 건축면적 525.87평, 연면적 9,989.57평이었다.
건축중 일부임시사용 허가를 받아, 1973년 3월18일 무역협회가 이전하였다.

     이어 4월20일 당초 전시장 예정했등 건물 2층에서 열린 총회에서 朴忠勳 회장이 취임하였고,
8월1일에는 KOTRA가 입주하는 등 수출유관기관의 입주가 이루어졌다.

     이후 1973년 10월1일자로 정일건축연구소의 준공검사와 준공신고로, 준공검사필증(제637호)를 10월6일자로 받았으며,
이어 1973년 12월5일자로 법원등기를 마치었다. 이어 1974년 3월30일자로 건설가계정 24억5,475만4,844원을 건물계정으로 대체하였다.

主施工社인 豊田産業의 경영난으로
철골조및 건축본체 공사 등 工期 遲延



     인허 관청을 상대로 하는 각종 인허가 행정절차 면에서 어느 것 하나 쉽게 풀린 일이 없었듯이,
비록 민간 시공사를 계약상대로 하는 건축현장 또한 마찬가지로 그리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골조 철골공사를 맡은 바 있는 풍전산업(대표 李漢相)이 이어서 건축본체공사를 맏게될 즈음에
이 주력 시공사의 경영난으로 인한 공기지연의 문제가 심각하였다.

     1969년12월2일 철골관련 공사 지명공개입찰에서 현대, 대림, 신흥을 물리치고 1억5,112만원의 공사를 낙찰 받았다.
이어받은 옹벽공사와 철공단열공사까지는1971년9월까지 세건 모두 무리 없이 잘 마무리하여 9월28일에는 상량식까지 거행하였다.

     그 후 건물 본체공사 입찰이 1971년11월1일에 실시했는데, 5개사가 참가, 3차에 걸친 입찰결과
전기 풍전산업(대표 李漢愚)에게 1억9,720만원으로 낙찰되었다.
그런데 이미 이때 즈음에 풍전의 경영사정으로 인하여 대표이사기 경질된 등의 내부변화가 있어왔었던 것이었다.

     결국 공사미확정 채권을 상은용산지점에 양도하여 줄 것을 요청하여 와서 이를 승인해 주었는데, 결국 1972년 2월28자로 부도가났다.
     이후로는 콘크리트 타설과 창호 및 샤터 조석공사 미장공사 등이 중지되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후 경영진의 개편 등등 부심하다가, 5월6일자로 공사 포기서를 제출하였다.
이에 협회에서는 도급계약해지를 통보하였고, 6월26일부터는 공사가 중지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7월 31일에 최준규 부위원장에게 수습전권을 위임하였다.
막상 사태를 수즙해야 할 처지에 이르러 공사승계를 위한 재 발주를 검토한 바 원가상승 및 공기지연 등 부수문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시공사의 부도이후로 공사부진을 만회하기위하여 풍전과는 별도 분리하여 金聲哲씨가 시공을 계속해오던 중에,
경영난도 다소 해소되고 또 마침 7월27일자로 대표이사에 취임하였으므로
여러 가지 상대적 유리점도 있다고 보아, 8월1일자로 해약취소를 통고하였다.
     물론 그 이후에도 설계변경 또는 연결공사 등을 이유로 두 차례나 공기연장을 승낙하여,
결국 5개월이 지연된 1973년 5월 31일에 완료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관련 과정을 관리했었던 건물위원회 위원이나 숱한 관련 직원에 대하여 공로보다는 과로서 평가되었고,
사무국은 온갖 수모와 힐책을 당하기 일 수인 가슴 아픈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었다.

     건축에서 “현장은 사람을 삼킨다.”는 속설이 여기에서도 나타난 것이었다.
이처럼 오늘날 후배들이 보이는 곳 뒤에는 보이지 아니하는 한숨들이 쌓여 있다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떻든 회현동시대는 오늘날 무협 발전 과정의 하나의 징검다리였음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 기회에 한마디 추가할 말은 이러한 애환의 스토리는 이른바 특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그 이전의 사실들이 었다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주: 이는 본인이 1976년에 직접 집필 작성한 “무협30년사”의 관련 부분을 참고해서 작성한 것임)         




<==처음으로   <<== 목차로   <<== 회현동시대   근대화의 발자취 ==>  
Chairman Report No.20(2010.7.15)

        7. 상공센터 준비와 구 貿易會館



    지금의 전시장 건설은 세 단계의 과정을 걸쳐, 오늘의 모습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선 초기 부분의 얘기는 1973년 3월18일 협회가 회현동 무역회관으로 이사 온 뒤,
한 달 뒤에 열린 총회에서 새로 선임되신 박 회장님께서 부임하시었는데,
회현동 회관은 당초에는 호텔 겸 사무실로 설계되었던 것이라 전시장이 없었다.

    회현동 무역회관에 각종 수출조합이 대부분 입주를 마치고 안정기에 들어선, 1975년 여름에
일명 상공단지에 무역 분야뿐만 아니라 전상공업 관련분야와 유관기관까지 포용할 수 있는,
회현동 무역회관보다 훨씬 큰 규모의 상공단지를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입주할 수요사항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당시에 좀 의아했지만 아마 무역 분야만 회현동 센터를 갖게 되었으니,
이에 자극 받아 공업 등 다른 분야까지 포함하는 더 큰 것을 구상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서대문 이대 앞의 도자기협회에서부터 신설동의 완구조합에 이르기까지,
사방에 분산되어 있는 크고 작은 각종 조합과 협회의 사무실의 소유 또는 입주 실태와 직원 및 회원 수 그리고 예산과 기금 상태 등을 조사하였다.

     이 과정에서 알고 보니, 1970년 10월 당시 상공장관이(1) 서울시에 부탁해서 봉은사 앞 10만평을 한전 등을 통하여 5억 3천만 원에 구입한 바 있었다.

    그후 불과 한 달 후인 1970년 11월5일에 서울시에서는 이를 포함한 375만평의 영동 제2구획지구를 발표하면서,
삼성동 청담동 일대의 제2서울 개발계획 가운데, 상공단지를 비롯한 시청과 정부 및 사회단체를 입주 유치한다는 것이 있었다.

    그러던 중 1975년 월남을 비롯한 동남아 공산화의 국내외 위협으로 인하여, 정부청사 이전 대상지는 서울외곽으로 변경되었다.
이에 상공부산하 기관이 계획발표전에 남보다 앞서 미리 사두었던, 영동 부지에 대한 장래가 불투명하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방향이 선회되자, 상공부 심지어 일부 직원들까지도 자금을 모아 봉은사 앞의 땅을 사두었는데,
주변개발은 요원한 사태가 발생하자, 하는 수 없이 산하 기관에 이를 매각하고 환불하는 등 소위 문제 소지를 안고 있었다.

    특히 한전 외에도 석공, 광진공, 포철, 대한중석 등이 상공부 산하 정부 출자기관이므로,
한전, 포철 등 외채를 쓰고 있는 상태에서, 소위 비업무용 토지를 소유한다는 점에서
국정 감사를 받는 입장이므로 난처한 입장이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상공센터에 대한 수요를 조사하였지만, 유관기관의 숫자는 많았음에도 모두 재정이 궁핍하여,
대단지를 개발할 만한 여력이 되지 못하여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1976년 봄에 윗분의 지시로 다른 직원과(2) 함께 짚차로 은밀히 흙먼지 나는 길을 따라 현장에 가보았다.
한마디로 허허 벌판에 먼지가 휘날리는 황량한 것이었다. 봉은사 앞길 건너편에 기와집 한 채가 있었는데,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으며, 집 뒤로 약간의 낮은 지대로 웅덩이 비슷한 것이 있었고,
별다른 장애물은 보이지 않았고, 블록별 구획은 대략 되어 있었다.

    이어 은밀히 무역상담소로 하여금(3) 전시장의 필요성을 보고 건의케 하는 등 주변여론 환기를 진행시키는 한편,
결과적으로 부지 4만평(39,658평)을 평균 56,600원인 총액 22억4천만 원으로 확보케 되었다.

    건설현장의 당시 상황 하에서는 군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였던 관계로 건설의 추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현장 책임자로 당시 군 현역에서 옷을 벗은 세분을(4) 건설요원으로 임명하였다.
건설 본부장은(5) 독일어를 잘하는 머리가 좋은 완벽주의자였다.

     4만평 대지 위에 7천평의 무주공간의 전시동을 123억원에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본 하루미 전시장과 독일 메세 등에 출장하고 돌아와, 우리 것은 규모가 너무 작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당시 회장단은 오히려 덩그렇게 너무 크다고 했었다. 하여튼 당시로는 엄청 크게 보였다.

     협회 감사에 의하면, 군 출신들이라서 얄미울 정도로 행정 결점을 안 만들려고,
모든 서류를 재작성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 등 완벽을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협회에서는 기획관리실과(6) 무역상담실에서(7) 한 명씩을 건설본부로 발령 파견하였었다.

     한번은 회장님이 삼성동 현장 지하수 착정공사에 잡음이 들려오니, 조사해오라는 은밀한 지시를 나에게 하시어,
현장에 직접 갔었는데, 군 출신인지라 현장 추진력은 대단하여 모든 일을 차질 없이 해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른바 당시 군부에서 진출한 정계의 실세였던, 스리 허(8)와 군부실세 동향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엉뚱한 허장성세로 대하기가 일수였고, 그런 태도가 회장단에게도 결코 곱게 보이지는 않았었다.
결국 분별없이 자기들의 배경만 믿고, 눈앞의 주인까지도 망각한 상태에서 열심히 일만하다 허망하게 물러났다.
이제 아무도 그들의 노고에 감사할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서, 군에서 몸에 배인 허세와 단순성이 가련하기도 하다.

     모두들 대지 4만평에 건평 7천 평이니, 대지가 너무 넓은 듯 했었지만,
7천 평 전시장도 너무 크다고 생각하면서도 별다른 주장을 삼가는 것 같았다.
     마당 한 가운데에는 지구본을 본뜬 분수대가 있었고 넓은 지역을 시멘트광장으로 인해서 눈이 부셨다.
당시로서는 우리나라 최초 최대의 전시장이었다.

     대통령이 첫 방문키로 되어 있어서, 협회 박 회장님이 현지 예행 연습차 갔을 때, 우리 이 실장과 함께 수행 했다.
대통령의 동선을 설명해 드리는데, 협회회장은 지금 무역회관 본관과 전시장 사이의 통로(현 29번선 좌표)가 당시에는 앞길 통로의 정문이 있었고,
건너편에는 지금 무역회관, 호텔, 백화점, 공항터미널의 자리 2만평은 연금공단 소유였었다.

     그쪽에 쓰레기가 쌓여 있었는데 치우겠다고 보고하였다. 회장께서는 그대로 놓아두고,
이 정문 앞을 대통령께서 걸어 나오시게 안내해서, 앞으로 이 전시장 확충을 위해서는 저기 저 2만평이 더 필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회장님의 욕심은 끝이 안보였다.

     그로부터 훨씬 후인 1983년 8월18일에 연금공단과 2만평을 평당 1,175,000원으로 235억 원에 매입,
현재의 무역센터 자리 6만평이 확보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터전 위에서, 새로운 회장님이(9) 부임하시면서 종합센터로서의 대규모 건설이 다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후의 이어서 오신 민간 출신 회장 재임 시에(10) 구 전시장을 헐고, 아셈센터와 함께 확장 재개발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 센터의 재개발 겸 리모델링은 또 신임 회장 때에(11) 이르러 전관 입주가 마무리됨으로서,
서울의 새로운 명물로서의 새로운 모습으로 개관되었다.

     이처럼 역대 회장들의 노고와 임직원들의 노력이 쌓여, 오늘의 웅장한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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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   

    (1) 이낙선 (2) 신담균 (3) 과장 박노진
     (4) 백형걸 준장, 조희석 대령, 유인선 중령, 임흥규 중령 (5) 백형걸 준장
     (6) 김재하(서울대출신) (7) 권석종(성대출신) (8) 3 허:허화평 허삼수 허문도
     (9) 남덕우 회장 (10) 구평회 회장 (11) 김재철 회장


*출 처 : “살며 커온 삼사오십” 임승택 pp89~92(국립중앙도서관326-204-4-4)에서    



***

<모시는 글>


<==처음으로   <<== 목차로   <<== 미도파 시대   장보고의 길 ==>  

1.근대화의 발자취와 우리의 진로

南悳祐 전 무역협회 회장 (현 본회 고문)

 

  以銅爲鑑 可正衣冠 以古爲鑑 可知興替 - (당 태종)

동으로 만든 거울을 보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역사의 거울을 보면 나라의 흥망을 알 수 있다.

    20 세기의 우리나라 근대사를 돌이켜 보면 한말에는 개화운동이 있었고, 해방 이후, 특히 박정희 시대에는 근대화가 강조되었고 지금은 선진화가 시대적 과제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개화나 근대화나 선진화는 결국 세계 정세 변화에 적응하여 우리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추구하는 혁신 운동이었다는 점에서는 근대사의 일관된 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화와 근대화의 발자취를 돌이켜 보고 지금 우리가 직면한 선진화의 주요 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 보고자 한다.

    먼저 이조 후기의 개화주의는 이 나라의 근대화의 첫 걸음이었다 .
당시의 柳馨遠, , 李瀷 , 朴趾源 金正喜 등의 실학파들은 민권 사상과 자유 평등론을 펼치고 상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체제와 통상개국론을 제창 했다.
이러한 실학 사상은 마침내 한 걸음 더 나아가 서구적인 이념과 제도를 수용하자고 했던 개화주의의 밑 거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개화주의자들 중에는 金允植 , 申?善 등과 같이 서구의 문물을 받아드리되 삼강 오륜 (三綱 五倫), 효제충신(孝悌忠信)과 같은 유교적 가치관을 보존해야 한다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을 주창하는 이도 있었고, 金玉均, 朴泳孝, 徐載弼 등과 같이 전통적 유학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 없고, 문벌을 폐지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널리 학교를 설립하고 외국의 종교를 끌어들여 교화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당시의 전제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개혁해야 한다는 급진파도 있었다.

이와 같이 개혁주의 자체 내에도 노선의 분열이 있었으나 그러나 양 진영의 목표에는 다름이 없었다 .
한국의 철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당시의 개화주의의 기본 목표는 “ 허구와 관념을 배척하고 실사구시 ( 實事求是 ) 의 가치관에 입각하여 개인의 삶과 국정을 개선 ” 하는 것이었다 .

    주지하는 바와 같이 급진적 개혁파들은 개화당을 조직하고 마침내 갑신정변 ( 甲申政變 ) 을 일으켰으나 불행히도 “3 일 천하 ” 로 끝났고,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게 되었고 서재필은 다시 미국으로 망명했다 .
그러나 이들의 개혁운동은 한말의 조정으로 하여금 세계정세에 눈뜨게 했고 , 1894-96 년의 갑오개혁 및 을미개혁의 추진력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
    이러한 개혁은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평도 있으나 그러나 朴泳孝 , 徐光範 등이 주도했고, 현대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역사적 개혁임에는 틀림이 없다 .
    그러나 李朝의 정치적 무력과 일본의 침략으로 개화주의는 빛을 보지 못했고 결국 우리 민족은 36 년간 일제의 식민통치하에서 신음해야 했다 .

그러나 해외로 망명한 지도자들은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 안중근 , 윤봉길 , 이준 등의 구국 열사가 나타났고 김구 선생이 이끈 상해 임시정부와 미국으로 건너간 서재필 박사와 이승만 박사는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

    서재필 박사는 갑신정변에 가담 했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후 그곳에서 의학 수업 (1889-1893)을 마치고 1895년 귀국하여 개화와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국내 개화 독립파와 함께 순 한글과 영문판으로 독립신문을 창간했고(1896),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1896) 독립문을 세우는데 (1897) 주도적 역할을 하는 한편 배재학당에서 청년들에게 주권재민의 민주 상상을 가르쳤고 協成會를 조직하여 인재 양성에 주력했다.
그러나 그가 발행한 독립신문(1896.4.7)이 수구파 정부를 산란하게 비판한 것이 화근이 되어 다시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그는 미국에 있는 동안 의업(醫業)으로 얻는 수입으로 각종 독립운동을 계속 했고 해방 후에는 일시 귀국하여 금요일 중앙방송국 (지금의 KBS)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설명하고 우리 국민이 가야 할 길을 강론하기도 했다.

이승만의 실사구시

    이승만 박사는 서재필 박사의 영향하에서 개화주의를 이어받은 대표적 정치가였다 .
그는 배재학당에서 서재필 박사가 젊은이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강연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다.
그 후 그는 서재필 박사가 주도한 (獨立協會)에 가담하여 지도자의 자리를 구치고 독립협회를 통한 기금 모집으로 독립문 을 세우고 ,
[황성일보], [매일 신문]의 주필로 활약하면서 만민공동회를 조직했다.
     1904년 고종의 밀서를 지니고 도미하여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났는데, 바로 이때에 미국 국방장관 타프트와 일본 수상 가쓰라 사이에는 밀약, 즉 일본이 비율빈을 침공하지 않으면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묵인한다는 밀약이 체결되고 있었다.
     그 이듬해 1905년 11월 17일 불법적인 을사늑약(乙巳 勒約)이 체결되자 실의에 빠진 이승만은 미국에 체류하여 수학의 길을 걷게 된다.

    그 후 이승만 박사는 하와이에 거주하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하고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 총리와 대통령을 역임한 바도 있다 .
해방 후 귀국한 이박사는 소련의 한반도 공산화 전략과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직시하여 남한만의 단독 정부수립을 주장하여 남한을 자유민주의 나라로 이끌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실사구시의 노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일부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을 폄하하는 소리가 높다 .
즉 그들은 김일성은 북한에서 해방직후 친일파를 숙청하여 민족 정체성을 바로 세웠는데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를 관용하고 중용하여 민족정기를 말살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민족적 정통성이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민족을 중요시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 그러나 “민족정기”니 “민족 정체성” 이니 하는 것은 하나의 관념인데, 관념 만으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관념과 현실을 동시에 동찰 하는 실사구시의 경륜과 정책이 필요 하다.

    소련 공산주의 세력의 남하를 저지하는 것이 최대의 민족적 과제라고 믿었든 이승만은 친일 인사들을 숙청하는 것 보다 포섭하는 것이 그의 반공 정책에 유리하다고 판단 했고 ,
신생 정부를 운영하자니 일제 통치하에서 행정경험을 싼 사람 외에는 시민사회를 위한 행정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신생국가의 국군을 창설해야 했는데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이란 소수의 광복군 장성 (이 청천 장군과 같은 )외에는 일본 군 및 일본의 만주(滿洲)군 출신과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군 출신이 국군 창립의 주역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관념론과 실사구시의 어느 편이 발전적이었는지는 결과를 놓고 판단 할 수 밖에 없다 .
민족 정기와 정체성을 세웠다는 김일성은 동족 상잔의 6.25 동란을 일으켰고, 김일성 부자는 북한 사회를 지금과 같은 비참한 상태로 만들었다.
반면에 실사구시 노선을 택한 남한은 파란 곡절을 겪으면서도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일본군 출신의 장병들이 6.25 동란 때에 공산화를 저지하는 데에 크게 공헌한 것도 사실이다.

박정희의 실사구시

    해방 후 무엇보다도 긴급한 과제는 경제개발을 통해 조상 전래의 가난으로부터 탈출하는 일이었는데 여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실사구시의 지도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
그는 경제적 기초가 없는 민주주의는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경제 개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었고 그래서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초를 만드는 것이 그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믿고 있었다 .

    박정희 대통령은 한마디로 말해서 북쪽의 무력적화통일 전략을 거부하는 안보태세를 확립하는 동시에 이 나라 국민을 전통적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 성공한 지도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참고로 1960년 10월에 발간된 미국의 권위지인 Foreign Affairs는 당시의 한국경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960년의 국민 1인당 GNP는 100불 이하이고, 전력 산출량은 멕시코의 6분의 1, 수출은 200만 달러, 수입은 2억 달러, 이래서 한국의 경제적 기적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계획의 가장 실망적인 국면은, 원조 계획이 생활수준 향상을 지속할 만한 성장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경제성장의 조건은 북한이 남한보다 순조로운 상태에 있다.…
결국 한국인들이 직면한 선택은 워싱턴이냐. 모스크바냐가 아니라 서울이냐, 평양이냐 하는 것이다
."

    이 비참한 현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 다시 말해서 우리의 현실은 경제적 빈곤과 침체 속에서 북쪽의 적화통일전략의 함정에 빠지기 일보직전의 상태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력과 지도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이러한 사정을 무시하고 5.16 군사혁명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던 그 후 불과 18년 만에 세계의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한국이 각광 받는 산업국가로 탈바꿈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상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 박정희대통령을 실사구시의 정치가라고 평 했는데 그들의 부정적 행적을 고려 할 때 무엇이 실사 구시의 기준이냐고 반문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개화파주의가 말해 주고 있다. 즉 개인의 삶과 국정을 개선 하는 것이 개화의 목표인데 이승만 대통령은 개화주의가 그토록 염원했던 개인의 자유와 물질적 후생을 가져 오는 데에 결정적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삶과 국정을 개선하지 못하면 실사구시라 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념적 갈등이 우심 한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나라가 직면한 현실을 외면한 관념주의가 과연 국민들의 민생을 개선하고 나라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지도자들의 고난과 비운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폄하하는 소리가 높다. 아니 박정희 대통령 뿐만 아니라 선진화를 이끈 지도자들은 모두가 정치적 응징의 대상이 되었다 .
    金玉均, 洪英植 朴泳敎 등의 개혁주의자들은 개혁을 시도하다가 살해되었고, 朴泳孝, 徐光範, 徐載弼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나 서재필의 경우는 그가 역적으로 몰리게 되자 그의 부모, 아내, 형은 음독 자살했고 동생은 참형 됐으며 두 살 난 아들은 돌보는 이가 없어 굶어 죽었다 한다.
    이승만 또한 독립협회를 이끌고 개화운동을 하다가 정부의 탄압으로 5년간의 옥 사리를 한 후에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다.

    선진화를 추진한 지도자들의 허물 또한 없지 않았다 . 김옥균 등의 급진주의자들은 이 나라 국권 침탈을 꾀하는 일본의 야욕을 예견하지 못했고, 일본의 영향 하에 개혁을 추진했던 박영효는 파란 만장의 고난 끝에 저도 모르게 친일파가 되었다.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의 나라로 이끈 이승만 대통령은 4.19 혁명의 비극을 피치 못했고. 물질적 풍요의 터전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은 흉탄에 쓰러지고 군사독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도자의 공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 ?

    그러면 어찌하여 이 나라의 근대화를 이끈 지도자들이 예외 없이 불행한 종말을 보게 되었을까 ?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그 중에는 이조 시대의 4색 당쟁의 정치문화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조 500년 동안 정적을 숙청하고 죽이는 사화(士禍)가 12회나 있었는데, 그것은 국민 생활의 실리와 향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고, 세도와 권세를 위한 관념상의 싸움이었다.
     예컨대 조선 후기의 보수적 정치가들은 서양은 아비도 없고 군왕도 없는(無父無君) 오랑케 나라이니 사악함을 물리치고 바른 것을 지켜야 한다는 척사위정 (斥邪衛正)의 관념론을 주장했다.
    그래서 개화파들은 관념을 배격하고 실사구시의 가치관을 따르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 정치문화는 지금까지도 우리사회에 암영을 던지고 있다. 민족, 자주, 평등의 이름으로 관념주의와 실용주의 (실사구시)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공유한 과거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 본인은 이 문제 역시 실사구시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나라의 역사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고 그 역사에서 주역을 담당한 지도자 또한 양면이 있게 마련이다.

    지도자를 이념적 지도자와 실천적 지도자로 구별할 수 있다.
영국의 민주혁명의 이념적 지도자는 존 록과 J. S. 밀 등이 널리 알려져 있고, 실천적 지도자로서는 크롬웰 (Oliver Cromwell)을 들 수 있다.
    미국의 혁명에는 영국의 존 록의 영향을 받은 매디슨과 해밀턴 등이 이념의 지도자였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실천적 지도자는 워싱턴과 링컨이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이념적 지도자는 백범 김구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 등이 널리 알려져 있고, 실천적 지도자로서는 물론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을 손 꼽아야 한다.


    이념적 지도자는 현실을 비판하고 이상을 드높이지만, 행동적 지도자는 이념을 현실에 적용하려 할 때에 엄청난 난관에 부딪치고 때로는 그 이념에 반하는 행동이 강요되는 경우도 있다.
    영국의 크롬웰이 그 좋은 예이다. 영국 청교도혁명의 지도자인 크롬웰은 국왕의 전제주의와 왕당파와의 치열한 전쟁에서 영국의 의회주의를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그는 국왕 촬스 1세를 처형하고, 왕정을 해체하고, 귀족원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언한 청교도 혁명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1653년 호민관으로 취임한 후에는 왕당파, 장로교파 그리고 급진파인 레벨러(수평파라고 하기도 함) 등 반대세력을 가차 없이 탄압하였고 전국을 11개 軍區로 나누어 군인통치를 실시했다. 의회주의와는 정반대의 행동이다.
그는 1658년에 병사했는데, 촬스 2세가 왕정을 복구하자 그의 부왕을 처형한 보복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매장된 그의 시신을 파내 효수(梟首)형에 처했다.
    그러나 영국사람들은 크롬웰을 폄하하지 않는다. Encyclopedia Britannica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 그는 영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었고 그의 치적에는 질서의 확립, 경제의 재건, 종교적 관용의 실현, 교육기회의 확대, 사회 정의의 실현 등이 포함된다 "

    우리 나라에서는 글과 말로 좋은 소리를 하는 지도자에게는 존경을 표하지만, 나라의 각박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흙탕물에 뛰어든 행동의 지도자는 옷에 흙을 묻혔다 하여 지나치게 깎아 내리는 경향이 있다 .
이념의 지도자를 존경해야 하지만, 동시에 행동의 지도자도 이해하고 존경해야 한다.

    톨스토이는 "이해하는 것은 용서하는 것” 이라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선인들의 부정적 측면을 합리화할 필요는 없지만, 동시에 긍정적 측면을 평가하고 그들이 국가를 위해 이룩한 업적을 이어 받아 그 위에 싸 올리는 노력을 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 .
    일부 정치 세력이 허구적 관념으로 과거를 부정하고 맹목적으로 과거의 지도자들을 폄하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편협한 역사관에 현혹 되지 말아야 한다.

선진화의 역사적 맥락 (脈絡)

    이제 우리는 개화운동 , 근대화 운동에 이어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는 선진화의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 돌이켜보면 100年 전 개회기의 문제의식과 오늘의 문제의식이 주제(主題)에 관한 한 크게 다르지 않다. 예컨대 한국은 지금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4강의 틈바구니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말의 개화파의 고민과 같은 것이다.

    개화파들은 두 가지 진로를 제시했다 .
하나는 자강(自强) 혹은 실력양성이고, 다른 하나는 식산흥업(殖産興業)이었다.
전자는 교육을 개혁하여 국민 대중으로 하여금 근대적인 국민 의식을 지니도록 계몽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산업을 육성하여 경제력을 키우자는 것이었다.
    오늘의 우리의 문제의식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개화기의 문제의식과 오늘의 문제의식의 주제는 같다 하더라도, 지금의 선진화의 내용과 방법은 옛날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오늘의 문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20세기 후반기 이후의 세계사의 조류는 (1)시장경제의 확대, (2)정보혁명, (3)민주화, (4)세계화, (5)자연환경에 대한 각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조류를 타고 경제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에 성공한 예에 속하나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턱에서 그를 가로막는 내외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먼저 정치면에서는 후진적 정치문화로 대의정치의 운영이 난항을 겪고 있고, 국회가 민주사회의 다원화를 통합하는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

    둘째로 사회면에서는 이념의 갈등 , 집단적 이기주의, 계층간 지역간 격차와 대립, 노사 분규, 법치주의 이완, 국민교육 정책의 방황 등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셋째로 경제면에 있어서는 중국 경제의 도약으로 우리의 전통적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데, 이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들이 자신의 기술을 개발하고 신제품의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
    수출이 성장의 버팀목이 되고 있지만 소수 품목에 집중되어 있고 소재와 부품의 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고용 흡수력이 미약하여 청년 실업이 늘고 있다.
농업개방이 불가피한데 농업의 기업화, 과학화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는 농민들은 실의에 빠져 있다.

민주사회의 의사결정

    이러한 문제점들을 모르는 지식인은 없다 . 그러나 문제 해결 방법은 결코 간단치 않다.
민주화된 사회에 있어서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이해관계와 견해가 대립하기 때문에 당사자들, 혹은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그러나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합리적 결론에 도달 하자면 당사자들이 논리에 승복하고 결론이 나면 그 것에 따르는 시민 이식이 필요한데 우리의 실정은 그렇지가 못하다.
논리를 무시하고 당파적 주장에 몰두하거나 반대자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비판하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규탄하고, 논리에 승복하기보다는 군중 심리에 편승하는 풍조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논리에 승복하지 않거나 안에서는 승복하고 밖에서는 딴 소리를 하는 지도자가 있으면 사회적으로 매장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러한 사회적 응징의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화와 토론문화부터 선진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음에 위에서 합리적 결론이라 하였는데, 합리와 불합리를 가리는 가치관의 준거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의 궁극의 기준은 자유민주와 시장경제의 원리이다 . 자유를 제도화한 것이 대의정치와 시장경제 체제인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국가이념이자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이다.
    경제운용에는 네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자율과 경쟁의 원칙, 둘째는 공정경쟁의 원칙, 셋째는 균형과 형평의 원칙, 넷째는 시장 보완의 원칙이다.
모든 사회 문제가 복잡할수록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해답을 구하도록 노력 해야 한다.

    지금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 우리가 사회 각 분야에서 지금의 후진성을 탈피하지 않으면 과연 세계화, 정보화, 동북아 시대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유의 문화와 유능한 인적자원을 자랑하고 있고 , 수많은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해 온 민족적 저력과 경험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바탕으로 민간의 창의와 의욕을 자유롭게 발휘케 하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첩경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민간과 정부의 상호이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민간이 모든 문제를 정부의 탓으로 돌려서도 아니 되고, 정부가 민간의 창의와 에너지를 무시해서도 아니 된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감사합니다.
한국무역협회 최고경영자 조찬강연회  
일시 : 2005년 7월 4일  
장소 : 인터콘티넨탈 호텔 2층 위스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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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보고 후예들의 갈길

金 在 哲 (전 무역협회회장: 본회 고문)

    KBS 드라마 '해신 장보고' 가 막을 내렸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장보고가 비명에 간 것을 보고 많은 시청자가 아쉬워했다.

    "삼가 만나뵈옵지는 못하였습니다만, 오랫동안 높으신 인덕을 들어 왔기에 흠모의 정은 더해만 갑니다. 봄은 한창이어서 이미 따사롭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대사님의 존체 거동에 만복하옵기를 비옵니다. 이 엔닌(원인)은 멀리서 음덕을 입사옵고 우러러 받드는 마음 끝이 없습니다."

    일본 불교의 거목인 엔닌이 장보고가 당나라에 건립한 적산법화원(적산법화원)에 구법승으로 머물 때 장보고에게 보낸 편지의 일절이다 .

지금도 엔닌의 유지에 의해서 세웠다는적산선원에는 신라명신(신라명신)을 수호신으로 한 적산명신을 모시고 있다.

도전 벤처정신 이어져

    한 중 일 세 나라의 역사에 이름이 오른 우리나라 사람은 오직 장보고뿐이다. 그는 중국에서는 반란군을 진압한 무령군 소장이요, 청해진에서는 해적을 소탕한 해상왕, 그리고 외국과 교역하는 무역왕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권력은 그를 역심을 품었다하여 죽이고, 후한을 없애고자 주민들을 벽골제(지금의 김제)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후 1200여 년간 장보고는 역사 속에 묻히고 말았다.

    그런 장보고가 다시 회생하고 있다. 장보고를 세계의 인물로 등장시킨 이는 놀랍게도 미국 학자다.
하버드대 교수로 주일 미국대사를 지낸 라이샤워 박사가 엔닌의 당나라 여행기인 "입당구법순례행기(입당구법순례행기)를 번역람으로써 시작됐다.
그는 장보고를 해상 상업제국의 무역왕(Trade Pronce of the Maritime Commercial Empire)이라고 칭송했다.

    그러자 일본인들은 엔닌이 일시 머물렀던적산법화원을 마치 엔닌이 창건한 것처럼 단장을 시작했다.
이를 안 손보기 김문경 김성훈 같은 우리 학자들이 들고 일어나 장보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역적으로 기록된 그를 복권시켰으며, 그후 장보고 기념사업회가 설립돼 연구가 본격화하기에이 르렀다.

    장보고는 비명에 가고 그가 열어 놓았던바닷길은 오랫동안 굳게 닫혔지만 여기저기서 그의 흔적이 발견됐다. 그의 군영이던 청해진 장도가 발견돼고, 고려청자의 도요지로 알려진 강진의 가마터가 실은 장보고가 중국의웨저우요(월주요)에서 기술을 도입해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은 신라 때부터 남해안 주민들에게 전해져 내려온 조선술의 결정체였다.
정주영 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를 보이며 우리 조상의 뛰어난 조선기술을 설명하고 영국의 바클레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현대조선소를 설립했다.
    오늘날 우리 조선업이 세계 일등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수한 우리 조상의 기술이 오늘날 조선과 해운, 원양어업이 발전한 해양강국의 밑걸음이 된것 같다.

소질 발휘하도록 지원해야

    도전 벤처정신이 넘친 장보고의 후예들은 오늘날 231개국과 무역하면서 우리경제를 이끌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장보고의 피는 우리의 맥박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고려청자에서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시대의 영웅 황우석 교수와 같은 장보고의 후예는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수한 장보고의 후예들을 더욱 육성하고 보살피는 일이다.
장보고가 정쟁에서 실패한 김우징의 요청으로 본의 아니게 정치에 관여하게되고, 결국 불행한 최후를 맞이 함으로써 바다로 나가려던 민족의 길이 막혀버렸지 않은가 ?
    따리서 도처에서 자라고 있는 우수한 장보고의 후예들이 그 소질을 십분 발휘하도록 잘 지원하고, 사회가 이들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면 그들은 우리나라를 크게 빛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업적으로 온 국민이 더욱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중앙일보 기고문에서)

3.생태적 환경에서 좌우 동서 갈등의 탄생


해방전 한국의 생태적 역사환경하에서 무후탄생을 어렵게 출발


김구 정부의 좌익선점의 조직형성후 외부인사 입성



        김  구 : 중경
        김두봉 : 연안의 조선독립 동맹
        빨지산 : 하바로스크에서 입성

1945년 해방과 동시 건국준비위원회에 조선공산당의 참여



        인공의 조직화 급속 확산(45년 8월말에 이미 145개 지부 결성)
        초기 건준의 내홍과 개편: 여운형 위원장(중도좌파)_- 조선 인민당 소속
                안재홍 부위원장(우파) - 국민

해방 정국에서 정당의 난립



        조선공산당 조직 1945년 9월 조선공산당 재건파(박헌영)
                1946년 11월 남조선 오동당(남노당)으로 개편
                전국 138개 군지역 중 128개 군에 인민 조직(그중 29개군은 인민 자치
                3.7토지소작제 발표( 군정청은 황급히 제5호의 3.1제 발표)
        한민당 구성 1945년 9월 조공조직화에 놀라 연합해서 긴급 구성
                송진우 김성수 + 김병로 원세훈
                결국 국내 대지주 부르죠아성 친일 우익도 참여기회 얻어
        한국독립당 1946년 3월 김구는 귀국후 5개월만에 창당

남북합작위 탄생으로 좌우 혼성 재편



        건준의 중도우파(여운형)와 우익(안재홍 원세훈 김윤식 김봉균) 영입
        각자 자기 독자 조직으로 개편
                여운형 : 사회노동당을 근로 국민당으로
                안재홍 : 신한국민당으로

1945년 잠시 정치 실세



        조선공산당(박헌영) 조선인민당 (여운형)
        한민당 (송진우) 국민당 (안재홍)
        한독당 (김  구 김윤식)

1945년 9월 이승만 귀국 후 각종 사회단체 추대 가입권유를 보류하고 촉성회를 만들어


        건준촉성회를 국민회의로하여 이는 좌우와 중도로 구분돼

1945년 당시 정계의 인물



                원노3영수 이승만(71세)
                          김  구(70세) 피살
                          김규식(65세) 납북
                여운형(60세) 피살
                김병로(59세) 후에 대법원장
                백관수(57세) 납북
                송진우(55세) 피살
                안재홍(54세) 납북(민정장관)
                김성수(54세)(한민당 장덕수 후임 당수)
                      (한민당:친일+지주+브르죠아 포용, 지주 김성수는 토지를 사학에 헌납)
                       현 일부야당의 정치적 근본 뿌리인 한민당이 이념없는 이합집산의 혼합당으로 성장
                장덕수(50세) 피살(여운형비서)
                박헌영(45세) 자진월북후 숙청
        결국 남한 이승만은 잔존 유일 3영수중 1인으로 정국 주도로 독선적 충성정치(야당은 한민당)
                 북한 김일성 주도로 숙청과 공산독재의 단일 조직화완성

남한 난립정당 통합화의 혼란:



        해방정국의 남한건국과정의 좌우익 공존의 정세에 속에 무휴탄생실패하면서,
        특히 남한 남부지역의 좌익정서가 잠재
                "제주34사건은 민주화다." "여수순천 군반란사건은 인민학살이다."
                대구, 제주, 순천 사건 발발 ---> 잔여후유증 지금도 마찬가지로 상존
        좌익성향은 저항적 민주화 인권화로 위장 선전
        우익성향은 반사적 대항체로서 권위로서 사후 평정형태 지속
                언제나 살아나려는 뒷북 조치(심지어 한민당도 조공성립에 반사적으로 급조한 태생적 한계)
        결국 우익은 자체이론무장 없는 그저 생존키위한 이합집산의 생태적 유산에 이함집산의 정치혼란의 잡탕
                국회운영과 선거에서 민중선동의 풍토를 조성

북한 대숙청: 심지어 박헌영까지도


        ---> 일당독재기반 확립 남한 좌익화롱의 이념적 배경근원제공

최근 집권 형태와 동서 갈등



        건국시 좌익 중앙 세력의 지방확산에 성공한 생태적 배경
                 (지리산 거점의 빨지산활동 남한 510선거 투표용지의 북송과 집단월북 등)
        보통선거 제도에서의 절대적 인구 편차, 몰표사태협오와 다수결원칙에서의 패배 고정
        집권인사의 유형 미국과 북한에 대한 편향적 시각 표면화
                 이승만     미 유학파   지역안배인사 반공 반일 친미
                 박정희     군출신     영남 편중인사 반공 미국소외
                 김대중     저항정치인 호남 밀착형 지역동지 평화 반미 일본소외
                 노무현     달변정치인 386세대 운동권 친북 반미 반일

지역의 감성적 성격



        영남   직설적 표현     집착형관변 목표추구(집단적 금융점령형(특히모피아내) KDI조기인큐베이터)
        호남   감성적 표현     염원적 목표추구(이른바 광주사태 등)
        충청   중도 양비형표현 선망형 목표추구(약자형 케스팅보트 노려)
        기호   관망형 판단표현 기회획득형 목표추구(대선캠프참여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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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貿友會 소식지(No75)>


2009년도 貿友會 定期總會 열고 회장 등 임원선임


    우리 무우회에서는 2009년 4월 28일(화) 오후 5시 30분, COEX 3층 330호실에서 정기 총회를 개최였다.
이날 103명의 회원이 참석한 총회에서는 2008년도 사업보고와 결산,
그 리고 2009년도 사업계획과 예산에 관한 보고가 있었다.
    그리고 임원 선임이 있었는데, 임승택 씨를 회장으로 선임하였고,
최정남 씨와 구상회 씨를 감사로 각각 선임하였다. 이어 전형위원으로 하여금 , 부회장과 운영 위원을 선임토록 위임하였는바,
    이에 의해 선임된 부회장 과 운영위원은 다음과 같다.

* 副 會 長 (9명)
김장한, 김희수, 하인천, 염동철 이은삼, 주창현, 박태경, 김인규, 김용남

* 運營委員 (50명):
구길회, 구충회, 길충호, 김광성, 김시호, 김일용, 김장열, 김주식, 내종태, 라만주, 박윤배, 박종만, 박창생, 백원재, 신경열, 신담균, 엄익환, 원당희, 원용선, 이 승, 이두원, 이상빈, 이성희, 이종대, 이호윤, 장윤식, 전상록, 정구열, 정만근, 정회원
--- ( 이상 유임) ---
권석종, 김범수, 김철환, 김한명, 남궁완, 민경선, 박동우, 박양섭, 심상록, 양승연, 원두희, 윤병화, 윤홍상, 이구덕, 이세주, 이승선, 이운수, 장두병, 정동진, 황호익 ----(이상 신임 )--- 가나다순

    이번 총회에서도 무역협회 측에서는 신임 사공일 회장의 축하화환과 더불어, 행사 만찬에 관한 지원을 해주시었다.

運營委員會, 명예회장 및 고문, 자문위원 추대

    5월 26일(화)에 우리 무우회에서는 새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정관에 정해진 바에 따라 명예 회장과 고문을 추대하였다.
명예회장은 회칙에 따라 무역협회 사공일 회장과, 우리 무우회의 성효제 전임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만장일치로 추대하였다.
    또한 무역협회 전임 상근 부회장 들을 모두 고문으로 추대하였다.
이날의 참석 위원은 모두 40명이었고, 회의에 이어 목포 갈비집에서 회식이 개최되었다.

會長團會議, 사업방향 논의
    6월 8일(월) 13:00 신임 회장단 전원이 참석한 회의에서 앞으로의 무우회 운영방향에 관한 논의를 하였다.
이날에는 무우회의 운영 개선 방향과 새로운 과제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


春季體鍊會, 남한산성에서 시행

    5월 15일(금) 우리 무우회에서는 춘계 체련회를 남한산성의 한남장에서 개최하였는데, 이날 날씨도 마침 온화하여 참석한 45명의 회원 상호간에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특히 산성에서의 막걸리와 오리요리가 일품이었다.

山岳會, 검단산 산행 실시

    3월 1일(일) 산악회(회장 장윤식)에서는 관악산 에서 시산제를 겸한 산행 행사를 가졌다.
이날 36명의 클럽회원이 참석하였다. 그리고 6월 4일(목)에는 검단산 등산 행사를 가졌는데 이날에는 38명이 참석하였다.

낚시회, 월곶포구에서 대회치러

    3월 10일(화)에 낚시회(회장 박윤배)에서는 월곶 포구에서 낚시 대회를 가지고, 22명의 강태공들이 제 각각의 기량을 자랑하였다.

碁友會에서 바둑대회 개최
    3월 27일(금)에 기우회 (회장 이상빈)에서는 무우회 사무실에서 제3차 바둑대회를 개최하여,
바둑회 회원 18명이 A조와 B조로 나누어 토너멘트 형식으로 기량을 겨루었다.

會員의 날 行事 열어
    4월 15일(수)에 무우회에서는 회원51명이 참석한 가운데, 만천성에서 행사를 가졌다.
이날에는 협회에서 김무한, 박영배, 이재형 , 이왕규, 김치중, 이순중 씨등 상무들께서 직접방문 하여주시고 ,
당일 경비도 지원해 주셨다.


무역협회 정기 총회, 司空 壹 회장 선출,
상근부회장에는 吳永鎬 선임



    2009년 2월 24일 무역협회 정기총회에서는 제 27대 신임 회장으로
사공 일(司空 壹) 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을 만장일치로 선출하였다.
    신임 사공일 회장은 서울대학교를 나와 미국 UCLA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청와대 경제특별보좌관과 재무부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사공 회장은 "DDA(도하개발 아젠다)의 조기 타결, 한미 FTA의 조기비준, 한-EU FTA의 조기 타결 등을 위해 무역협회가 민간통상 협력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월 25일 무역협회에서는 신임 상근부회장으로 전 산업자원부 제1차관인 오영호(吳永鎬)씨를 선임했다.

    협회의 신임 오영호 부회장은 80년에 서울공대 화공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3회 (79년)로 합격,
당시 상공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 두루 요직을 거쳐, 2007년 2월에는 산업자원부 제1차관을 지냈다.
그는 2008년 7월부터 서강대 전임교수로도 활동한 바 있는 대미통상 전문가이다.

사공 일 신임회장,
G-20회의의 기획업무를 맡기로

    사공일 신임 무역협회 회장은 그의 세계경제에 대한 전문 지식과
특히 국제금융에 대한 경륜 및 세계 금융계는 물론 국제경제연구소(I I E) Fred Bergstein 소장을 비롯한
전략지도자와의 깊은 교분 등을 높이 평가하여 정부에서 이 G -20문제를 계속해서 담당해 주도록 한 바 있다.
    특히 사공회장은 미국발의 세계적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G- 20의 구성과정에 주요 역할을 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역사상 처음으로 G20공동의장국이 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세계적 경제 불황을 극복하려는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되어있는
이 G-20회의가 우리 한국에서 개최 되도록 되어 있어 그의 역할이 매우 긴요하게 되어 있다.


* 신임 司空 壹 회장 약력



    1940 경북 군위 출생

학 력
    1964. 2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1966.9 미국 UCLA 석사
    1969.9 미국UCLA 박사

주요 경력
    1969-73 미 뉴욕대학교 교수
    1973-82 KDI 재정금융실장,/부원장
    1981-82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자문관
    1983 산업연구원 원장
    1983-87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1987- 88 재무부장관
    1989-98 IMF 특별고문
    1998-2000 ASEM 비젼그룹(AEVG)의장
    2000-02 대외경제통상 대사
    2001-02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원
    2003-04 대통령 국민경제원로자문회의 위원
    2003.9~현재 고려대 석좌교수
    1993~ 현재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2007.12.-08.3 대통령직 인수위 국경위 위원장

    2008.3-09.3 국가경쟁력강화화위원장 경 경제특보
    2009.3 ?현재 G-20기획조정위원회 위원장 겸 경제특보

저 서
    2008년 세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1999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과 대책(공)
    1998년 한반도 통일 및 한미관계의 현황과 과제
    1995년 새로운 한미 협력체제의 모색(공저)
    1994년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한미 정치경제 협력관계(공)
    1993년 세계 속의 한국경제
    1982년 정부투자기관 관리 개선방안
    1981년 경제 개발과 정부 및 기업가의 역할 (공)

상 훈
    국민훈장 모란장
    청조근정훈장
    중화민국 大綬景星훈장
    벨지움 국왕 王冠大官章



*신임 吳 永 鎬 상근부회장 약력



학 력     1972년 서울고졸
    1980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
    1994년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 대학원 경제과 졸
    2002년 경제학 박사(경희대)

주요 경력
    1979년 행정고시 합격 (23회)
    1980년 상공부 사무관
    1988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1995년 주 미국 상무관
    1997년 통상산업부 총무과장
    1998년 산업자원부 무역위원회 조사총괄과장
    2002년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2004년 산업자원부 차관보
    2006-07 대통령 산업정책비서관
    2007-08 산업자원부 제1차관
    2008년 서강대 서강미래기술 연구소 전임교수(현)
    2008년 동 연구소 에너지환경연구소장(현)

저 서     2004년 미국 통상정책과 대응전략

수 상
    2006년 황조근정 훈장



협회 이기성 전무 등
임원 새 진용 갖추고, 새 출발



    한국무역협회에서는 전무이사에 이기성(51세) 씨를 3월 6일자로 임명하는 등
새 출발을 위한 사무국의 임원 진용을 새로이 갖추었다. 새 임원진은 다음과 같다.

    전무이사 이기성(경영관리본부장 겸직)
    상무이사 박영배 (국제통상본부장)
    상무보 이재형 (회원서비스본부장)
    상무보 이왕규 (e-Biz지원본부장)
    상무보 김치중 (무역아카데미 사무국장)
    상무보 김무한 (전략경영실장)
    상무보 윤재만 (무역진흥본부장)
    상무보 이순중 (국제물류하주지원단장)
    상무보 박제환 (상임감사)


취임사 (무우회회장)


존경하는 회원 님께

    지난 4월 28일 우리 貿友會 총회에서 존경하는 선배님들을 비롯하여, 동료, 동지 여러 회원님들께서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은 이 사람을 회장으로 하명하시어,
외람되게도 불초한 제가 그 소임을 맡게 되어 이에 인사드립니다.
    지난날 선배 회장님들께서 면면히 이어오신 전통과 공과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마저 느낍니다마는,
저로서는 앞으로 우리 회원들의 활동 참여도를 좀 더 높이면서,
특히 현업의 후배들과의 교감의 기회를 넓히고, 사무국 운영에도 점진적 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회장단과 운영위원의 수를 늘려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였고, 또 이들의 회비도 일부 경감하였지만,
보다 알찬 운영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지난날에도 많은 염려를 하여 주신 바와 같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애정 어린 지도편달을 하여 주신다면,
제가 이 작은 소임을 다하는 데에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회원님께서 하시는 바가 모두 이루어지시기를 기원 드리며, 이로서 불비한 인사로 가름하고자 합니다.
                                   2009. 4. .    

                                            무  우 회     
                                           회     장      임     승     택     


圖 畵 書 展 에 즈음하여,



    무슨 전시회라 할 만한 깜도 못되는 조그마한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이 허전한 공간을 다소라도 메워보려는 조그마한 생각에서
그동안 주섬주섬 입수해 소장했었던 그림들을 초라하게 벌려놓아 봤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무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인간들의 정서문화의 한 면을 일깨워주는 야릇한 감흥을 가져다주고는 합니다.
그래도 세상에서 제법 알아주는 모습들인지라 감히 무어라 말 할 수 없습니다.
    대영박물관, 루불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베르사이유 궁전, 고궁박물관, 그리고 우리의 중앙박물관, 경주박물관 등도 그런대로 소개되어있습니다.
    한번 눈에 익혀둔 식견을 가지고, 다시 접하게 되면 더욱 친숙하게 잘 보인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보며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2009.11.15.       임     승    택

도화서 목록



박물관

    1. 국립중앙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1986)
    2. 국립경주 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1988)
    3. 국립민속 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1993)
    4. 파리 루불 박물관 (The LouvreScala,1991)
    5. 신판 루불 박물관 (The New Louvreconnaissance,1989)
    6. 오르세이 박물관 (Musee D'Orsay,Stewart Tabori,1995)
    7. 오르세이(OrsayBeaux Arts,1990)
    8. 런던 대영 박물관 (British Museummajorie, Caygil,l1985)
    9. 빅토리아알버트박물관 (Victoria & Albert Museum, Julius Bryant,1986)
    10.자연사 박물관 (Natural History Museum, BM(NH),1987)
    11.과학박물관 (The Science Museum, Science Museum,1988)
    12.지구박물관 (Geological Museum, BM(NH),1987)
    13.북경 고궁박물관 (故宮,고궁박물원,1985)
    14.중국역사 박물관 (중국역사박물관,중국여유국,1992)
    15.대만 국립고궁박물관 (國立故宮博物院,고궁박물원,1992)

문명의 향기

    16.베르사이유궁 (VersaillesComlete guide,1986)
    17.베르사이유궁 (Versailles, Pierre Kegels,2001)
    18.퐁텡브라오 궁성 (Fontaine, Bleau Cliches Musee,1988)
    19.모나코 궁성 (Principality of Monaco, Escudo de Oro,1992)
    20.고대 이집트문명 (Splendrous Ancient Egypt, API/Asia Gate,1997)
    21.알타이 문명전 (The Altai Culture, 중앙박물관,1995)
    22.티벹 자수(西藏仲絲, 서장수공업관리국,1984)
    23.황금의 땅 미얀마 (Myanmar,Golden Land, Ho Group,1994)
    24.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集安高句麗 古墳壁畵, 조선일보사,1993)
    25.독립기념관 전시품(독립기념관전시품도록,독립운동사연구소,1988)

중국의 모습

    26.China Today (Harry & Abrams,1980)
    27.現代中國畵代表作家展 (韓經,1991)
    28.용 (The Dragon, 人民日報,1988)
    29.Chinese Brush Painting (Tmes Editions,1991)
    30.長江三峽 (四川人民出版社,1993)
    31.중국 복건 (Fujian, 鷺江出版社,1987)
    32.계림 양삭람생 (Guilin ,and Yangshuo,世界語出版社,1994)
    33.漢 唐의 繪畵 (瑞文堂,1989)
    34.五代 宋의 繪畵 (瑞文堂,1989)
    35.元 明의 繪畵 (瑞文堂,1989)
    36.淸 近代의 繪畵 (瑞文堂,1989)
    37.고화감상과 수장 (古畵鑒賞與收藏, 吉林科學技術出版,1994)
    38.골동품감정과 방법 (古玩鑒定與辨,學苑出版社,1994)

이곳 저곳 탐방

    39.Rome and the Vatican (Manzione,1983)
    40.영원의도시 (로마와 바티칸, Tullio Polidori,1981)
    41.파리 (Giovanna Magi ParisBonechi,1988)
    42.All Lodon (Escudo de Oro,1987)
    43.Belgium (Thill publishers,1988)
    44.日光東照宮 (日光東照宮)

명화산책

    45 The Story of Art (Phaidon,1995)
    46.The Ancient World (Hamlyn,1979)
    47. Renoir (Todtri,1994)
    48. Degas (Todtri,1994)
    49. Monet (Todtri,1994)
    50.반 고흐(Van Gogh,Todtri,1994)
    51.세잔느(Cezanne,Todtri,1994)
    52.그랜마 모세 (Grandma Moses,Todtri,1994)
    53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Todtri,1994)
    54.韓國服飾2000年展 (MBC,1988)
    55.韓國傳統刺繡매듭展(刺繡) (서울시,1988)
    56.韓國傳統刺繡매듭展(매듭) (서울시,1988)
    57.國立現代美術館所贓品傑作選 (國立現代美術館,1985)
    58.美術品競賣目錄 (memo&&arts)
    59 南農의 藝術과 壽石愛 (南農記念館,1985)
    60 빛따라 江山따라 (李潤采,1997)
    61.위대한 생애偉大한 生涯 (民族中興會,1989)

국보

    62.國寶圖錄 (韓國新聞硏究所,1960)
    63. 國寶(5) 靑磁 土器 I (藝耕産業社,1986)
    64. 國寶(5) 靑磁 土器 II (藝耕産業社,1986)
    65. 國寶(15)白磁粉靑沙器 I (藝耕産業社,1986)
    66. 國寶(16)白磁粉靑沙器 II (藝耕産業社,1986)
    67. 心岩陶磁器硏究所 (心岩 魯德柱,1985)
    68. 漢靑高麗靑磁作品圖錄 (漢靑 金福漢,1985)

시공 디스커버리사 시리즈

     69.잊혀진 에집트를찾아서(1997)
     70.고대 로마를 찾아서(1997)
     71.아스텍帝國,榮光과沒落(1997)
     72.마야,잃어버린都市들(1997)
     73.잉카, 太陽의 後裔들(1997)
     74.沙漠을넘어(1997)
     75.宇宙의 運命(1997)
     76.고야,黃金과 피의 畵家 (1997)
     77.가드가 舞姬의 畵家(1997)
     78.KOREA,the war 1950-53 (OSPREY,1991)

한국 서화연구회

     79.水墨畵-四君子 (翰林出版社,1985)
     80.水墨畵-山水畵 (翰林出版社,1985)
     81.水墨畵-花鳥畵 (翰林出版社,1985)
     82. 歐陽詢-楷書 (翰林出版社,1985)
     83. 顔眞卿-楷書 (翰林出版社,1985)
     84. 王羲之-行書 (翰林出版社,1985)
     85. 曹全碑-隸書 (翰林出版社,1985)
     86. 孫過庭-草書 (翰林出版社,1985)
     87. 篆書 (翰林出版社,1985)
     88. 木製茶器 (카다로그(日)1999)

그림으로 보는 지식 (The Illustrated Reference Books)

     89.예술 Art Windward1982
     90.고대역사 Ancient History
     91.발견의 시대The Age of Discovery
     92.인류 사회 Man of Society
     93.인간과 기계 Man and Machine
     94.현대 기술 Modern Technology
     95.과학 Science
     96.지구The Earth
     97.우주The Universe
     98. 동물 Animal
     99.신체The Human Body
     100. 신체 The Human BodyWishing Well 1993
     101. 과학 Science in ActionScience Museum1995
     102. 지구온난화Newton World-지구온난화Science2009
     103. 뒤집어 본 한국 미술-이규일시공사1993

 

미술감상을 위한 예비상식(쟝르별 미술사 개괄 )

1. 고대미술

(1)이집트 미술

BC3000∼300년경의 이집트 미술은 절대 왕권과 자연 숭배, 영혼 불멸의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분묘 내부의 신과 왕의 상, 부조와 벽화 등은 단순하면서도 뚜렷한 양감으로 힘찬 생명력의 표현, 정면성(正面性)이 특징이며 벽화는 고상한 색채에 비하여 원근법의 표현은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2)메소포타미아 미술

BC3500년~ 3000년경에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고대문명으로 이 시대에 성행했던 부조는 특히 동물 묘사에 뛰어났다. 이민족의 침입이 잦아 문화 역시 개방적 능동적인 성격을 지닌다.

(3)그리스 미술

BC800년경부터 8세기 동안 계속
- 서양 문화의 근원 (이상주의, 합리주의, 인간 중심의 사상에서 비롯된 균형과 조화의 아름다움 추구)
기하학적 양식기-기하학적 문양의 그릇이 많이 출토?
?아르카익기-근동 문화와의 접촉으로 반인 반수의 표현 많아.....?
?클래식(BC450∼320년경)-조각과 건축 등에서 전형적인 ???장중미를 지닌 그리스 미술의 전성기를 맞는다.
??건축 - 단순 남성적인 도리아식(파르테논신전), 우아하고 여성적인 이오니아식, 화려하고 기교적인코린트식 ?헬레니스틱(BC320∼30년경)-밀로의 비너스 등 능숙한 조각품 제작

(4) 로마 미술

로마 미술 : BC 1세기부터 시작 - 그리스 미술 영향 받아 성장. 콜로세움, 공중 목욕탕, 개선문, 공회당 등의 건물에 아치, 돔, 원통 등의 특이한 구조와 양식으로 실용적이고 장엄하게 만든 것이 특징적이다.
조각 - 철저한 사실주의의 초상 조각 성행

2. 중세 미술

(1)초기 그리스도교 미술

그리스 로마 미술의 인간 중심의 미술에 반해 신(神) 중심의 미술 성행초기의 크리스트교가 박해를 받던 때에는 지하의 카타콤에서 예배를 보았는데, 벽에다 교리와 관련되는 그림을 상징적으로 그렸다.

(2) 비잔틴 미술 (동로마제국 미술)

크리스트교 정신에 동양 정신이 가미된 미술로, 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정한 후,
미술의 중심이 점차 동방으로 옮겨져 약 1천 년 동안 서양과 동양 미술이 융합된 문화를 이룸(성 소피아 성당)

(3) 로마네스크 미술

게르만 민족의 향토적 전통 위에 고대 로마 양식을 받아들여 이루어진 미술로 서로마를 중심으로 발달한 미술
-원형 지붕과 두꺼운 벽과 창이 낮고 작은 것이 특색으로 무겁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피사 성당)

(4) 고딕미술

북 유럽에 거주한 고트인들이 프랑스와 남부 독일 등지에 창의적인 큰 성당을 건립
- 14, 15세기에 각지로 전파.

특징 - 뾰족한 지붕과 수많은 아치, 높은 창문, 수직선의 강조로 외광이 건축 내부로 들어옴.
(파리의 노틀담 성당, 샤르트르 성당, 아미앙 성당, 독일 쾰른 성당,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등이 대표적)

3. 르네상스 미술

(1) 전기

15세기부터 16세기 후반에 걸쳐 전개
- 중세 크리스트교의 신(神)중심에서 벗어나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운동에 의해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그리스의 미를 본받고, 이를 인체비율을 준수하는 이성적인 미로 나타낸 것으로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전파.

중세의 엄격한 화풍이면서도 이른 봄의 따뜻한 느낌을 풍기는 성당벽화를(조토, 프라 안젤리코), 보티첼리는 그리스 신화나 봄을 주제로[비너스의 탄생], [봄]등 감미로운 작품을 그렸다.

(2) 전성기

-투시원근법과 명암법의 새로운 기법이 사용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거장들에 의해 근대적 의미의 조형 정신이 싹틈으로써 르네상스의 황금기를 맞이함
[최후의 만찬],[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최후의 심판] 라파엘로의 [성모자상] 등

조각 - 도나텔로, 기베르티 등이 있다.

반 아이크 - 유화의 본격적인 사용

(3) 북부르네상스

반 아이크 형제의 유화 사용, 뒤러 등의 유화 이외에 목판화, 동판화의 작품을 남겼다. 당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인쇄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판화가 강성하였다.

(4)반 르네상스미술--Manoerismo(manneris)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Sacco di Roma사건 이후 과도기적양식으로서 인체표현의 불균형과 부조화로서 드라마틱한 의도적 극적표현과 과도한 장식적 요소를 표현하고맀다.

4. 바로크, 로코코 미술

(1) 17세기 바로크 미술

르네상스 미술에 상반되는 감성적인 성격의 미술로, 시선을 분산시키는 동적이고 불규칙적이며 과장된 남성적 표현이 그 특징이다. 교황청의 지지하에 반종교개혁을 선전하고, 역동적으로 과장된 장식성으로 귀족의 화려함에 상용되었다.

대표작가 : 루벤스, 렘브란트, 엘그레코, 벨라스케스 등

(2) 로코코 미술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사이에 18세기 프랑스 루이 15세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중심으로 유행한 미술양식으로 화려한 귀족 취미의 실내 장식과 가구에서 그 특징이 잘 나타나며, 섬세하고 우아하며 장식적이고 여성적인 것이 특징이다.나선형등 유려한 곡선으로 세련되고화려하며 우아한 것이 특징이며 은식기보다 도자기와 이의 공예품을 많이 사용했 다.

대표작가 : 샤르댕, 고야, 와토, 프라고나르 등

5. 근대미술

(1)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

?1760년 영국의 산업혁명과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자유와 평등의 민주적인 근대사회가 시작되고 자아의식이 강하게 대두되었고, 미술계에도 여러 유파와 개성적인 표현이 생겨났다.고대 그리스와 로마 예술을 모방하고 있다.

물론 신고전주의는 프랑스 대혁명이후로 나타난 시대적열망을 담아, 반바로크적으로 간결하고도 장엄한 고대 그리스 로마예술에 관심을 둔 것으로 이것도 광의의 고전주의에 넣기도 한다.

(2) 낭만주의

18세기 중엽 이탈리아 폼페이의 고대 유적이 발굴되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 미술에 대한 동경과 애호열이 높아졌다. 이성과 거리를 두고, 인간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대표작가 : 푸생, 다비드, 앵그르 등

(3) 자연주의

18세기말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서 프랑스 혁명 이후의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미술 경향으로 들라크루아와 제리코 등 젊은 화가들이 거센 정열과 고조된 감정을 강렬한 색채와 동적 분위기로 표현하였다.

(4) 사실주의

조형 표현의 기준을 사실적인 자연의 대상 속에 두었는데, 고전주의의 이성적 속박과 규칙을 탈피하고,교훈적 요소나 난만주의의 주관성을 배제하여, 대상을 충실히 묘사하려는 이러한 화풍은 후에 인상파 회화에 새로운 암시를 주게 된다. ??대표 작가 : 밀레, 터너, 코로 등

자연을 정확히 묘사함으로써 단순한 기쁨밖에 주지 않는 자연주의와는 다르며,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도 구별된다.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으므로 그리지 않는다" 라고 한 쿠르베와 가난한 서민 생활을 풍자적으로 그린 도미에 등은 각각[돌 깨는 사람], [삼등 열차] 등에서 보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림으로써 회화를 문학과 종교에서 해방시켜 사실주의의 기반을 닦았다.

(5)인상주의

1860년대 살롱의 진부한 아카데미즘 미술에 반대하며, 당시 중간색을 주조로 한 다갈색의 어두운 톤에서 탈피하여, 실제로 자연의 색채는 광선의 조건에 따라 미묘하게 변한다고 생각하고 보이는 대로의 진실을 빛과 색채의 순간적인 모습에서 잡으려고 하였다. 그들은 팔레트 위에서의 혼색을 피하고 잘게 분할된 터치로 색조를 구분하며,
난색과 한색을 병렬시켜 색채의 대비에 섬세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물체의 고유색을 부정하고 자연을 새롭게 추구해나갔다. 외광(外光)파로도 불림. ?대표 작가 :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피사로, 시슬레 등

(6)신인상주의

신인상주의 : 물감의 혼합에서 오는 탁조를 피해 원색의 섬세한 터치로 화면을 채움으로써 보는 사람의 안막을 통해 색채를 혼합시키려는 점묘주의를 제창하였다. ?대표 작가 : 쇠라, 시냐크 등

(7)후기인상주의

인상주의의 약점인 지성의 결여와 신인상주의의 지나친 과학성에 반발하여, 자연의 모습을 자기의 감정이나 의지를 솔직하게 투영하여 표현하려는 유파로 세잔의 "모든 자연은 공과 원기둥과 원뿔로 환원될 수 있다."라는 말은 20세기 회화 정신의 중추를 이루게 된다. ?대표 작가 : 세잔, 고흐, 고갱 등

(8)근대 조소

19세기 후반에 로댕은 미켈란젤로를 정신적 스승으로 하여 [생각하는 사람], [청동시대], [카레의 시민], [발자크 상] 등의 걸작을 남겼다. ??대표 작가 : 로댕, 부르델, 마이욜 등

6. 현대미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20세기는 국제간의 긴장과 계급의 대립, 기계문명의 도래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급격하고 다양한 변화의 시대를 맞아 19세기에서와 같은 조촐한 자연관과 풍부한 인간성을 뒤엎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우주를 보게 되었다.

(1) 야수파(Fauvisme)

야수파는 20세기초 수년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여 강렬한 색채와 주관적인 단순화와 변형을 특색으로 하는 주정적인 표현 경향을 대표하고 있었다. ?대표 작가 : 마티스, 루오, 뒤피 등

(2)표현주의

선이나 색채를 과장하거나 비뚤어지게 함으로써 극단적으로 주관적인 태도를 가지면서 강한 색조와 대담한 변형과 단순화를 추구하였다. ?대표 작가 : 뭉크, 칸딘스키, 코코슈카, 그로스 등

(3)입체주의(Cubism)

이지적인 태도로서 물체를 분석하고 새로운 조형성에 기초를 둔 주지적인 경향으로 대상을 분해, 조립할 수 있는 구조체로 보고, 시각적인 거리, 공간의 개재 없이 대상 자체만의 전체성을 표출하려는 20세기 모든 추상예술의 원천이라고 일컬어지는 조형운동의 하나이다.
1907~1914년간 7년동안 유행 했었지만 반전통의 기치아래 그후 실용예술분야에 큰 영향을 주고있다.
대표 작가 : 피카소, 브라크, 레제 등

(4) 파리파

제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세계 각지에서 파리로 모여든 화가들을 총칭하여 '에콜 드 파리'라고 부름. 모국(母國)의 미적 전통이나 민족성에 프랑스 미술의 전통과 국제성을 띤 파리의 특수한 분위기에 융화되어 개성이 강하면서도 이색적인 작품을 제작. ?대표 작가 : 위트릴로, 모딜리아니, 샤갈, 보나르, 루소, 로랑생 등

(5) 미래파

과거의 예술을 파괴하고 미래의 예술을 건설하려는 이탈리아의 예술 운동으로 1909년 시인 마리네티에 의해 선언되었다. 미래파 작가들은 조화, 비례, 통일 등의 전통미를 타파하고, 현대의 특징인 속력, 기계의 생동적인 소음과 소란을 현대의 징표로 생각하는 데서 새로운 형식의 미를 창조하였다. ??대표 작가 : 보치오니 등

(6) 다다이즘

1차 대전 중 중립국이었던 스위스에서 여러 나라의 반전주의자, 망명 정치인, 피난 예술가들이 1916년 모여들어 취리히를 그 중심으로 함. '다다'라는 아무런 의미 없는 이름을 붙이고 전통적인 가치나 이성, 예술의 기성적 가치와 형식을 부정하고 일종의 파괴적이고 허무적인 성격을 강조.뒤샹이 변기에 [샘]이라는 명제를 붙여 전시한 것이라든지, 피카비아가 엉터리 기계에 엉뚱한 감상적인 명제를 붙이는 것과 같은 행위는 분명히 기성 예술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었다.
다다이즘은 미술, 문예에 있어서 세기말적인 반항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7) 초현실주의

20세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미술사조로써 예술가들이 회화적 관념의 통속적인 연상과 모든 기성의 표현 수단에서 해방되고, 잠재적인 정신 및 시각의 합리적인 지령에 따라서 창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프로이드의 잠재의식의 세계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나, 미개인의 심성, 정신병자의 지성, 편집광적 비판을 사용한 무의식과 우연, 꿈과 환상, 광기와 도취, 유머 등으로 예술가의 상상력을 바꾸어 놓았다. 시, 연극, 영화, 사진, 상업미술 등 광범위한 예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대표 작가 : 달리, 키리코, 에른스트, 미로 등

(8) 추상주의(Abstract Art)

자연물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 비구상 미술. 선과 색채, 질감, 창조된 형태 등의 추상적 요소로만 작품을 표현함. ?기하학적 형태를 추구한 '차가운 추상(몬드리안)'과 직관의 감정에 의한 '뜨거운 추상(칸딘스키)'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대표 작가 : 칸딘스키, 몬드리안, 아르프, 니콜슨, 아르통 등

(9) (후기)추상표현주의

제2차 세계대전 후 1950년대의 미국의 추상회화를 가리킨다. 이미지보다는 드리핑의 수법을 사용한 행동하는 회화로서, 그린다는 순수한 액션자체를 중시하며 좁은 의미로 미국의 액션페인팅을 말한다. ?대표 작가 : 뒤뷔페, 폴록, 데 쿠닝 등

(10) 현대조소

재현 예술이었던 조각을 순수한 내적 세계의 조형화로 발전시켜 조각 자체의 아름다움의 창조를 추구함. ?대표작가 : 마리니, 무어, 자코메티, 콜더 등

7. 전위 예술 (Avant-garde Art)

(1) Pop Art

반예술적 지향 아래 신문의 만화나 상업 디자인, 영화의 스틸, ?TV 등 대중 매체의 이미지를 주제로 삼았다. ?대표 작가 : 앤디 워홀, 라우센버그, 올덴버그, 존스, 로젠키스트 등

(2) Optical Art

환각이나 착시 등 시각적인 일루전을 주어서 현혹감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의 작품들을 말한다.대표 작가 : 바자렐리 등

(3) Kinetic Art

움직이는 예술로 콜더의 '모빌'처럼 바람에 이해 움직이는 것에서부터, 관객이 작품의 일부로 그 이미지나 외관을 바꿀 수 있고 또 보는 각도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는 가변예술 등이 있다.

(4)Happening

비연극적이고 탈영역적인 연극 형식으로 우연 음악 등 즉흥의 개념을 배경으로 하고 미술가가 행위자가 되어 일상적인 연기를 즉흥적으로 행하고 관객의 참가를 요청함과 동시에 제시된 오브제와 일체가 된 환경을 만든다.대표 작가 : 카프로, 백남준(피아노를 톱으로 자르는 등 다다적 연주를 했고,
TV를 물체로 인간의 행위와 일상성과 영상과의 교차를 표현한 비디오 아트를 창시하였다)

(5) Performance

미술가의 신체를 이용하여 표현하는 행위로, 육체를 물질로 취급하는 것, 공중과의 대화를 중시하는 것, 의식적인 형식의 것, 연극적인 형식이 농후한 것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어느 것이나 행위의 시간적인 경위가 중시되며 비디오를 사용하는 수도 많다.
오늘날은 미술가의 표현형식으로 공인되어 현대미술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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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A) Y&O Parlour 設置 運營



目 的 : 우리 KITA Man으로서 국가의 경제 사회적 기대에 걸맞도록,
    1. 스스로의 內的 專門敎養의 자질을 함양하고,
    2. 시사 및 무역전문 토픽에 관한 健全한 常識基盤을 向上 시키며,
    3. 均衡된 認識感覺으로서의 사회적 지도적 역량을 배양하고,
    4. 先後輩 世代간의 情報交感과 親睦을 도모코자 함

構 成 :
    Member : 10명 내외의 Commenter(論評者)로 회원구성 : OB측 YB측
    Participant
        OB측 :원로회원중 희망자
        YB측 :중견 간부 사원 (Member의 수시소개)

進行 運營:
    Commentator(進行者) : Co-Chairpersons
    Topic 선정 :
    일 시: 매월 제2주 목요일
    주제 발표 : 40분간

    Topic 主題 選定 : 주로 KITA관련 內的 課題에 관한 深層 Review
    (단. 현행 전문 업무나 관련논란사항은 제외)

<==처음으로   <<== 목차로   <<== Y&O Parlour 소식지   서비스와 연성화 ==>  

1. 經濟團體로서의 現在와 未來

(I) 經濟團體의時代性



    한 조직의 그의 정체성을 알기위해서는 먼저 그 조직이 처해있는 時間的 空間的 社會關係의 座標를 確認하는 것이 필요 할 것이다.
생명체와 같은 조직체는 그 자체도 주변의 역사적, 사회적으로 그동안 집적되어 누적된 환경의 일부이라 할 것이다.
즉 어떤 조직이나 그의 역사성을 가지는 것이며, 현 상황의 생태적 환경 또한 여러 과정을 거쳐서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나온 궤적과 현재의 닥쳐있는 현상으로부터 앞으로의 나아갈 어떤 방향성을 찾을 수 있으며,
이러한 방향선상에서 선정되는 타킷을 가지고 활동해 나아갈 때에 그의 미래상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저 굴러가는 대로 맡겨만 진다면 조직의 주체성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을 이끌어 나아가는 구성원들은 주체적으로 사려 깊게 내일을 적극적으로 모색해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지속 적으로 이러한 조직생태환경에서 적응해야 생명을 유지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생이라는 것은 죽지아니하고 계속 살아 이어나가기 위해서 환경극복을 위한 꾸준한 신진대사를 의미한다.
생체적 신진대사는 물론, 사회적 신진대사, 지식의 신진대사, 문화의 신진대사, 세대의 신지대사가 이루어짐으로써
진화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우선 지금이라는 시간적 좌표를 찾으려면 상대적 흐름의 시대적 정황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時代的 融合特性의 生態的 背景을 通察하여, 각각의 시대성의 변화와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 할 것이다.

시대적 위치도 중요하지만 조직의 실체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너는 누구(Who)인가? 에 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What)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목적성을 규명해서, 꿩을 잡으려는 것인지 토끼를 잡으려는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어느 조직체이나 그 存在와 活動은 社會的 寄與가 있어야 한다.
보람과 가치로서 사회적 기여가 없으면 남에게 폐가되고 짐이 되는 것이므로
마이너스 존재 가치가 되어 사회적 신진 대사에서 퇴출되어야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이루어 나아가려면 맡은 바 分業的 專門 職務具現 能力이 있어야 할 것이다.

     1940년대는 해방의 년대이었다.
이 시기에는 조직적 인적자원이 없었으므로 주로 地主後孫의 留學派나 義憤慷慨型 亡命派들이 행방후 개인적 역량으로서 등장하였다.
이 시대만큼 개인이름이 간판으로 등장하는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1950년대는 사변동란기였다.
이때는 개인적으로 살아남아 생명을 유지하는 極限狀況에서의 克服이 절대절명의 과제이었으므로,
경제적으로는 혼란기를 틈탄 모리배가 득세했었던 시기였다.

    1960년대는 戰後 復舊 再建의 時代이였다.
휴전이후 폐허위에서 겨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지만 정치적 지체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 가지이었다.
그래도 다행이 사회관리면에서 일제잔재 지식이나마 번역 도입하면서, 사회적 조직화가 형성되어 나갔다.
사무행정면에서 총무관리 시대에서 경리관리 시대로 넘어 가면서 상고 주산출신자들이 각광받던 시기였다.

     1970년대는 成長의 時期였다.
조직관리의 행태를 보면 군 FM행정관리가 일반에 보급되면서,
잉크 철필 행정이 볼펜시대로 넘어가면서 포일말이가 클립과 호치키트로 대치되는 시기였었다.
횡서에서 종서로 바뀌고, 미농지 골펜 복사에서 타자행정으로 넘어갔었다.
인사면에서 신입직원의 공개보집이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일간 신문에의 일반공개 대졸 모집은 없었고 제한추천제이었다.
행정의 제도화라 할 규정화가 확산되면서 이른바 고시 공고 만능시대이었다 할 것이다.

    1980년대는 擴大發展의 時期였다.
자신감을 얻어 이른바 약진의 시대라 할 것이다. 웬만하면 년 30명씩의 신입직원이 채용되었고, 급여도 30%가 인상되는 일도 있었다.
숱한 아이디어와 제도의 정밀화가 이루어졌다.
특히 그동안 인재의 중심이 지도적입장의 정부로부터 종합상사를 비롯한 민간분야로 인재의 중심이 이동하였다.

    1990년대는 成熟의 年代이었다.
사회적 지식의 평준화가 이뤄지면서 관료를 비롯한 권위적 지도세력에 대한 권위가 봉사자로서의 낮은 자세의 지위로 변동하였다.
지과 제도에 대한 일반적 개발이 한계에 이르기 시작하여, 이른바 어설픈 개발 프런티어가 고갈 되면서, 질적 성숙 단계로 접어들었다.

    2000년대 초기는 先進化 開放化 時期였다.
새 기를 맞아 바꿔 꿔하며 IT와 인터넷을 비롯한 새로운 정보통신 문화가 전개되었으며, 탈공업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노동 의존형 산업은 경쟁력을 잃고, 디자인 서비스와 감성경영시대를 열기 시작하였다.
정보의 개혁과 조직의 구조개혁이 가속하면서 팀제가 일반화되고 민주화의 진전으로 권위적 지휘체제가 변모되기 시작하였다.

    자, 2010년대는 국제적 선진시대가 될 것이다.
이제는 기존의 것이나 주무르는 개선 개혁으로서는 의미가 없다.
이미 모방이나 밴취마킹은 아류에 머물 뿐이다.
    BT나 문화와 같은 새로운 창조나 R&D에의 신제품과 항공우주공학 원자력 녹색산업등이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즉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블루오션의 비경쟁 분야에서의 창의력에 의한 분야가 국제경쟁을 지배할 것이다.

결국 創意力 向上에 의한 未來 開拓이 당면과제이다. 기존의 정치 행정 사회 교육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평가가 내려져 있다.
     온갖 진흥이란 이름의 공공기관의 역할은 그 기능이 쇄잔하여 생명부지에만도 전전 긍긍 할 것이다.
피신을 던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 산업폐기물 처럼 죽어 주는 것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2) 社會 團體로서의 實體 (例: KITA)


社會團體性:
    협회는 다수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서 그 사람들이 다양한 각자의 특성중 공통된 요소로서 뭉쳐진 조직이다.
즉 업자이고 무역을 한다는 것이 공통점일 것이다. 그뜻을 간접적인 집단 대위 활동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法人獨立性:
    그 조직의 주인은 회원업자도 회장도 직원도 나라도 아니다.
진정한 주인은 독립적인 법적 주체인 그 법적 조직자체이다.

價値歸屬性:
    모든 가능성을 최종적으로 최대로 포괄하는 것이 나라이다. 모든 것은 그 울타리 안에서 일어난다. 그 울타리가 한국이란 나라이다.

活動目的性:
    What이라는 행위객체의 대상이 무역이다. 외국과 상사거래를 하는 것이 무역이다. 그중 물품교역에 중점을 두고있다.

意思 社會性:
    합의의사 결정 체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의 내면을 보면 의사개발과 생성의 대부분은 조직체 내에 의탁해서 만들어 진다.
의사기관은 그 제안된 사항을 의결하는 것으로 이뤄지고 있다.

(3) 組織의 召命



    어느 조직이나 그 조직이 갖는 역할로 인하여 당면한 소명사항(should be)이 있게 마련이다.
숙명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행위적 소명이 그것이다.
    韓國貿易의 總本山 또는 輸出貿易의 旗手 등의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전국적 포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 소 대, 지방, 업종, 국적, 직위의 구분이 없다. 모두를 아우르는 전체로서의 대표성을 갖는다는 뜻일 것이다.
    또 韓國 經濟의 支柱라는 말도 하는데, 이는 경제적 면에서 무역이 본질적으로나 규모로서나 긴요한 몫과 역할을 감당한다는
이른바 버팀목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잘못되면 모두가 무너진다.

     국가단위의 정체성을 세우며 또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에 당당한 성원으로서 참여하고 상호번영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은 국제진출이지만 그 후에는 그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4) 未來社會 先導



先進貿易서비스 開發 提供:
    미래사회를 선도하려면 모범적 무역패턴을 보여줘야한다. 퇴행적 국수주의는 사고를 응결시킨다.

情報化 社會의先鋒:
     앞으로 전개되는 정보화 사회는 먼저 이룩해야 한다.

國家社會發展에 寄與:
    각 분야의 활동이 총체적으로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그럼으로서 전체적 조화를 이룰수 있다.

國際的 指導 力量 提高:
    국가적 지도 역량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선도 지도적 입장에 서야 한다.

새로운 價値 寄與:
    모든 가치는 구태를 척결하는 신 사고에의한 파격적 창조에서 새로이 찾아야 한다.
과거 기존현상의 개선이나 개혁만으로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5) 組織成員의 職務遂行 能力 涵養



職務遂行 知識과 技能涵養:
     조직의 내부는 성원으로서 이뤄지는데 이들에 의해서 무엇을 이루려면 그럴만한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직무에 관련된 지식과 기능을 기반으로 한다.

社會的 公器運營者로서 價値觀 定立: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사회적 조직 기반위에서의 가치관을 확립해야할 것이다.

個人과 公人으로서 調和된 人生營爲:
    개인은 모든 활동의 시행자미며, 동시에 수혜자라야 한다.
사회적 가치의 생산자이며, 또 그 가치의 일부를 향유할 소비자인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자는 연주중에도 자기인생도 즐기는 소비자인 것이다.
직장은 개인적으로 생산의 장이며, 동시에 인생의 소비도 함께 일어나는 생활의 장의 일부이다.
스스로 농노나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창의적 참여에는 신분과 한계와 영역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손과 발은 단순히 부지런만 하면 되지만, 창의력을 요구하는 뇌는 새로운 가치를 硏究窮究하고 또 생각해내어야 한다.
즉 精進을 요구한다. 게으른 바보에게서는 창의를 기대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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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서비스와 社會軟性化


서 언

    우리나라의 2008년도 국민소득(잠정)을 보면, 모두 1,030조원인데, 서비스산업은 555조원으로 54%로서 이미 반을 넘어섰다.
그런데, 2007년도 생산구조로 보면 제조업이 28.1% 인데 비해, 서비스업은 60.3%이다.
생산, 소득 모두 서비스업이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도 서비스 업체 수는 218만개이며, 고용 종사자는 751만 명이다.
그러나 자영참여자까지 보면 1,583만 명으로 총 취업자의67.6%의 고용을 떠안고 있다.
이들의 한해 매출액은 878조원이고, 지출된 영업 비용은 785조원이며, 영업이익은 93조원이라고 한다.

    이제 서비스업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는 분야이며, 다른 경제활동 못지않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는 선진국으로 가는 터전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서비스업 수준은 선진국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이러한 서비스 활동의 속성인 서비스는 미래사회의 향방을 선도하면서
우리사회의 외적 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적 본질까지 변모시키고 있다.
서비스는 누군가를 위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이에는 세심한 배려와 온갖 정성이 들어가면서
사회의 체질까지 변혁시켜 탈 산업사회의 기초를 넓혀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서비스의 속성이 갖는 본질을 살펴보면,
서비스는 서비스를 받는 목적 고유대상의 활동에 대하여, 추가적인 보조 활동이라는 점이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그의 주된 기능과 활동을 보호하고 조장해야 하는 것이며, 그 주기능이 훼손되거나 저해하지 않는 서비스라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는 일종의 사회적 편익기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는 어차피 누군가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성적 예능적인 문화적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위하여 잘 하려다 보니 자연 저자세 봉사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I. 社會서비스의 本質

    사회서비스의 속성이 갖는 본질을 살펴보면 서비스는 서비스를 받는 목적 고유대상의 활동에 대하여,
추가적인 보조 활동이라는 점이 있다.
이러한 것 때문에 어디까지나 그의 주된 기능과 활동을 보호하고 조장해야 하는 것이며,
그 주된 본연의 기능이 훼손되거나 저해하지 않는 서비스라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는 일종의 사회적 편익기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는 어차피 누군가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성적 예능적인 문화적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누군가를 위하여 잘 하려다 보니 자연 저자세 봉사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1) 固有 對象活動의 追加的 補助 機能

        상업서비스의 大量迅速化의 원칙
             - 시간적 = 빨리 (속도)
             - 물 적 = 많이 (대량취급)
             - 인 적 = 적게 (능률적)
             - 문화적 = 보기좋게 (예능적)
         *시간적 물적 인적인 간극의 연결

    서비스 상대가 하는 일에 끼어들어서 도와주는 일로서 가장 전형적이고 체계적으로 발달된 것이 상업 서비스일 것이다.
상업서비스를 위한 각종 제도와 시스템을 보면 대량신속화를 도와주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빨리, 물적으로는 많이, 인적으로는 손이 적게 들게,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보기 좋게 해주는 것이다.
상사거래에서 속도와 대량취급 능률화 예능적으로 시간적 물적 인적 사이를 연결하고 메워주는 것이다.

        (2) 主 機能 保護 助長, 不沮害

     주객이 전도될 정도의 과도한 봉사활동이나 일부 일탈 퇴폐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협회와 같은 서비스 기관의 역할은 회원 활동의 보조 지원에 한정하며, 직접 경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되면 안 되겠지만 ,주인을 제치고 주제넘게 도를 넘으면 안 된다.
주객이 전도된 지나친 봉사나, 도를 넘는 자선활동은 서비스가 아니라 대행하는 것이다.
만약 도와준다면서 주인을 내어 쫓고 주인이 할 것까지 해버린다면 돕는 것이 아닐 것이며, 자선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또 가끔 서비스가 지나쳐 퇴폐의 길로 일탈하는 수가 간혹 있다.
특히 이발소 마사지 사우나탕 식당 영화관 게임장 여행업 등의 운영에서 유사한 일탈 사례가 지상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사회단체 활동의 대부분이 서비스인데, 협회가 그 회원의 활동이 지나치다 못해서
아예 직접 사업에 참여해서 오히려 경쟁자가 되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 아닌 주체를 가로채는 것이다.

    가정부가 안주인을 내 밀고 들어앉으면 되겠는가.
세상사 자기 직분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즉 자기가 맡은 분야의 범위가 있다는 뜻이다.

        (3) Social Facilitation 機能

    서비스는 어떤 집단의 다수가 활용하는 편익시설로서 일종의 사회간접시설이나 마찬가지이다.
신설아파트 단지에는 반드시 온갖 서비스 시설과 업체들도 있어야 한다.
이는 집단적으로 다수가 활용하는 편익시설과 제도로 보아도 된다.
         - 공중전화 교량시설 - 의료보험제도
         - 계도 홍보안내소 - 사회제도 연계 시스템
         - 편리한 카드제도
이러한 모든 것의 운영은 서비스에 속한다.

     비록 서비스 내용에 따라 특정그룹에 속하기는 하지만 다수구성원을 상대로 서비스 활동 범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 수혜자의 활동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일이다.

        (4) 文化的(感性的 藝能的) 手段活用

         - Favorable Soft Touch Approachablity-

    타인의 일에 끼어들어 무언가 도와주려니 눈치도 보이려니와
좀처럼 서비스를 받으려 하지 않고, 지금까지의 하던 그대로 하려는 경향이 많다.
    그러니 온갖 아양과 미소와 디자인 등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예능적 수단이 동원되는 것이다.
우리는 온갖 광고를 보면 그 서비스의 속성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화 콘텐트도 점점 더 감각적으로 치닫고 있다.

 

문화콘텐츠의 진화
 
1세대
중계미디어시대
2세대
멀티미디어시대
3세대
뉴미디어시대
미래시대
방송
라디오
B/W->Color TV
Cable/위성TV
HDTV/인터넷TV
디지털방송
쌍방향/입체형
/실감형
애니메이션
환등기
셀애니메이션
디지털3D
애니메이션
입체형
실사애니메이션
만화
출판 만화
인터넷 만화
인터랙티브만화
3D입체만화
게임
가정용게임기 PC게임
아케이트게임
온라인게임
모바일게임
3D무선온라인게임
감성기반지능형게임
인터렉티브게임
음악
LP CD/MD
파일스트리밍
/다운로드
MOD/VOD
영화
무성영화 B/W, Color영화
비디오
디지털 인터넷영화
오감형 입체영화
*서병문 (단국대)문화콘텐트의 변화


     무선화와 입체화 그리고 대화 쌍방형이 모색되고 있다.
입체(4D)영화에서는 향기까지 뿌리는 장치를 갖춘다고 한다.
특히 메스미디어인 방송과 종합예술인 영화에서 변화가 가속화 될 것이다.

        (5) 低姿勢 奉仕的 態度

사회의 융화연결 (Social glue oil)역할
전후 세대간 통섭 (전통의 이완)
상하 권위간 소통 (조직권위 해이)
국제간 상호 왕래 (국가주권 완화)
범 인류간 평등 (다문화주의 확산)

    사회에 서비스가 만연해짐에 따라 다방면에서 저자세 봉사적 태도로서 대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일종의 사회적 융화연결의 역할이 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고, 너나 나나 함께 부드럽게 함께 잘 지내자 하는,
어찌보면 어딘가 막 먹자는 버릇없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세대간에 전통이 전수되지 못하며, 조직의 상하 위계 질서간에 권위가 허물어져가고 있다.
국제간에도 국수적 국가주권에 대한 경직된 인식이 많이 완화되어,
이중국적이 낯설지 아니하고, 유럽지역에서는 국경이 느슨해지고 있다.

    또한 동서양간, 선후진국간, 종교간, 인종간에 제 잘났다는 식이 없어지고,
다문화 상호존중과 혼합의 시대로 범인류 평등의 시대로 발전하고 있다.

2. 社會의 軟性化


    요즘 소프트란 단어의 활용 빈도가 높아졌다.
Soft Ware, Soft touch, Soft power, Soft landing, Soft society....등이 그것이다.
본인도 2008년에 쓴 저서 “미래를 여는 감성시대”에서도 그 부제로 "-Sensible Soft Society-"라는 표현을 이미 쓴 바 있다.
이 Soft Society를 모 사회학 교수는 연성사회라는 단어를 두어 번 쓴 일도 있지만,
아직 Soften Society라 말하기는 좀 이른 것 같고, Soft화 되어 가는 과정 즉 연성화되는 중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 장에서는 주로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 감성시대의 출현
            - 가상문화와 문화고부가가치
            - 창의와 기술융합
            - 사회구조변화
            - 미래사회와 신 문명

    우리 사회의 연성화는 그 주체인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인간 본성인 감성을 표출하는 과정과 현상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감성에 의한 의사소통과 문화생활 욕구가 소프트화를 가져오게 된다.

     세상만사 치장을 하여 주려고 하는 관계로 색깔을 칠하든, 디자인을 하든 가상적 표현이 불가피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감성을 극대로 만족시켜주는 것에 문화고부가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중매쟁이가, "…그래도 마음씨 하나만은 ...."하면 일단 마음이 싹 가신다.
무조건 먼저 예쁘고 봐야 한다. 교양이나 버릇없는 것은 나중이다.

    현재의 극심한 경쟁을 이겨나가는 것은 종래처럼 인내 노력만으론 부족하다. 남다른 창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창의는 순수한 창조는 못할지라도 각종 아이디어와 기술의 융합에서 나오는 것이 많다.

     어차피 이런 추세라면 기존의 조직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구조가 변화 재편될 것이라는 것은 예측 가능하고,
또 그리 되어 가는 중에 있다.

미래사회와 신문명에 대해서는 많은 미래 학자들이 많은 출판물을 내어놓았다.


        (1) 感性時代의 出現


(A) 이지화와 감성화
         이지화 : 도덕적 해이의 자동억제 조절
                 Logos(이성적) 기반에서의 지식력 형성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집적지식의 재편성된 생각의 집적화
         감성화 : 예술적 승화(감각의 절제)
                 Pathos(감성적) 기반에서의 느낌의 반사
                순간적 이미지생성으로 문화콘텐트 형성
                이미지는 상상을 낳는 소프트파워기반(복사)

     사람은 천부적으로 사물의 내면적 진실을 밝히고자 의심을 품으며,
시비지심(是非之心)일으켜 규명해내고자 하는 지(智)의 본성이 있다.

    이것저것 이치를 비교형량하면서 선악을 판단 선택하는 것이 이(理)이다.
사람은 이처럼 진실을 따져서 밝혀내는 이지화(理智化) 로서 오늘날의 전통문화를 이루어왔다.

    이 이지화로 인하여 사람은 도덕적 해이를 자동 조절해 왔고, 이러한 이성(Logos)적 기반에서 지식력이 형성 축적되어온 것이다.
과거로부터의 집적지식을 가지고, 현상에서 이를 재편성해낸 생각들의 체계와 집적물이 우리들의 생각과 사고의 바탕인 것이다.

    그런데 이 이성이라는 것은 주관을 배제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의 하나인 감성과 감정을 억제시킨다.
심지어 중첩된 이성은 신념으로 굳어져 상대의 고려가 배제되고, 지배적 교조적 교화적 우위를 강점해서 지배논리로 비약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 밑바탕에는 감성에 이끌리는 순수한 이른바 성품이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칸트를 비롯해서 동서양에서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사람을 순수하고 즐겁게 해주는 감성이 특히 예술적 승화의 핵심이고
이는 감성적(Pathos) 기반에서의 느낌이 조작 억압되지 않은 반사라는 것이다.

    결국 순수한 순간적 이미지 생성이 많은 문화 콘텐트의 내용을 형성하고 있다.
감성에 떠오른 이미지는 창조의 원천인 상상을 낳은 소프트파워의 기반이 될 것이다.

(B) 감성유발 반응

     그런데 이 감성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것도 결국은 두뇌작용에 의한 것이다.

     오감감각기관을 통하여 접수된 감각은 두뇌의 초기반응을 일으키는 데,
이것은 가장 새것이고 인상적이며, 감흥적 영감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곰곰히 생각해서 나오는 지성적인 것이 아니다.
    대뇌피질보다는 속뇌의 구피질 변연계에서 주로 일어나는 초기 감성유발은 15초 이내에 일어난다.
즉 대략 느낌은 2초, 반응은 4초 반사감성은 9초에서 일어나는 초기현상이다.
        *(감정을 처리하는)3분터치 :조지프랫, 피터램브로
        * 네 가지 감정의 치유 :제임스돕슨

    대부분의 정보는 지속기간을 가지는데, 첨보는 길어야 2일, 정보는 2주, 지식은 2년 상품은 20년, 문화는 200년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비록, 15초에 일어난 것이지만 이러한 영감적 영상은 인문사회의 초기방향설정이며
심층심리에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가끔 심사숙고한 후 결정을 내린 다음에 나중에 잘못된 것이 밝혀졌을 때
"그래 처음 뭔가 이상하다는 감이 있었지!..." 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우리의 마음은 두 가지로 움직인다. 이성과 감성, 이 두 가지는 많은 성인들이 언급하여 온 과제이다.

        (2) 假像文化와 文化高附加價値


(A) 가상문화의 발생현상
         탈 문자화
         비 정적 동영상화
         비 이론화 비종속화
         비 기능화 비 현실화
         감성문화 상품

         이성으로 구축된 기존 문화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가상문화가 싹트게 된 것이다.
첫째 문자화 표시 문화는 이미 실체 즉 그림이나 형상화 표현이 보다 직접적인 표현이 된 것이다.
즉 탈 문자화가 시행되고 있다.

둘째는 그림의 모습 또한 2차원에서 3차원 입체화 그리고 움직이는 4차원 동영상화 표현이 일반화 되고 있다.
영화와 TV 애니메이션이 그것이다.

셋째는 이론적 체계적 전개를 탈피하여, 모든 개념을 어떠한 체계 내에로 엮어내는 종속화가 탈피되어
다양성이 오히려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는 모든 것이 어떤 목적이나 역할을 하는 데에 기능을 해야만 한다는
전체적 기능주의가 개별적인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
어떤 것은 전혀 현실과 맞지 않는 엉뚱한 일도 이뤄지고 있다.

여섯째는 감성문화상품이 넘쳐 나고 있다는 것은 인정될 것이다.
모든 상품의 실체에는 이미 컬러와 디자인의 껍질을 입혀 놓았고,
천장 벽체 장판에 이르기까지 미적 감각에 의한 설계의 색감과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다.

         물건이고 사람이고 학문이고 예술이고 이미 문화라는 것으로 각색 디자인되어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이미 한국의 문화로 각색된 사람이다.

(B) 가상문화의 표현과 고부가가치문화

가상문화:
        실물+덧씌우기=Extended, Hyper, Cyber Meta

     두뇌의 창(오감시관)의 창을 열라.
     눈과 빛, 귀와 진동, 혀와 미향, 코와 취향, 피부와 촉감.
     그중 시각이 가장 민감(1/12sec)해서 타 감각을 선도.
     보아서 느낀 감성적 모습을 보는 능력 (미적 감각)을 길러야 고 부가가치문화 :
         고부가가치탐색 -> 감성지수가 높은 곳을 찾아라
         (외적)해방->충족->쟁취->잉여비축->과시소비-> 환경체험->예능감 체험->고뇌 이완(쾌=미추구)(내적해방)

    가(假)란 글자는 허위 거짓을 의미하기에 어감은 좀 좋지 않지만 실물을 좀 더 예쁘고 편리하게 하기 위해 겉을 싸는 것이다.
실제 실물에 덧씌우기 포장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보통신에서 Extended, Hyper, Cyber, Meta...등등의 단어가 들어간 것을 보면
본래의 entity value에다가 정보통신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덧붙인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감성을 일으키는 것이 뇌인데, 이 뇌에 들어오는 감각은 오감기관을 통하여 들어온다.
그러면 이 두뇌의 창인 오감기관의 창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귀는 소리의 속도로 진동을 감지하며, 혀는 풍미하는 맛으로 미각을 음미한다.
코는 발산하는 향을 취각으로 분별하고, 피부는 접촉으로 촉감의 질감을 느낀다.
오감기관의 반응 속도와 만족도 분석 감지에서 눈은 형체와 색깔을 빛에 의존해서 빛의 속도로 투사되어 감지(1/12sec)한다.

    이 시각이 가장 예민해서 타 감각기관에 선행되어 영향을 주는 것이므로
우리는 화장 포장 라벨링 등 모든 상품에 문화적(감성적 습관) 덧씌우기를 해서 먼저 눈을 사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이들 오감기관은 창문에 불과하고 사실은 뇌에서 보아서 느낀 감성적 모습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미적 감성능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감성지수가 높은 곳에 고부가가치가 있는 것이므로 이의 탐색에 열중해야 한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 다이아몬드는 왜 그토록 좋아하는가?

    사람은 생태성장과정에서 외적 해방, 충족, 쟁취, 잉여비축, 과시소비, 그리고 환경 체험, 예능감 체험,
그리고 나아가 내적 해방인 고뇌의 이완(快=美)추구로 이른바 문화를 발전시켜온 것이다.
생존을 위한 생태환경을 극복해오는 오랜 과정의 불쾌해소에서 나아가, 이제는 본능적 쾌인 미감의 추구에 보다 적극적이다.
    연예와 스포츠에 환호하는 대중 심리는 결코 우연이 아니며,
특히 그 흥행의 행태가 미래사회에 무엇이 지배 할 것인가를 암시하는 것이다.

        (3) 創意와 技術 融合


(A) 창의 발현
        높은 감정지수 = 실물 +덧씌우기
        오감기관(두뇌의창) 반응 훈련
        창의기법 활용과 습관화
         발상의 흥기
        꿈의 형상화(창의의 선행)

    사람이나 조직은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환경적응 극복이 필수적이다.
기존여건이 여의치 못하거나 경쟁이 격화되면서 무언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는 새로운 창의이며, 기존 기술의 개선 융합발전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창의는 어차피 두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앞에 말한 고 감정지수를 높이는 데에 있고, 오감기관의 두뇌 반응훈련이 요구된다.
우리는 사실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보며 생각한 것을 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무관심으로 흘러간다. 즉 뇌가 본다.

    수많은 창의 기법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어느 것이든 자기에 맞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발상을 일으키는 이른바 격물치지 (格物致知) 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세상의 사물은 말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흔하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를 알아차린 것이다.

    우리는 꿈을 꼭 잠자면서 만 꾼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꿈은 저 깊은 잠재의식의 작용이며, 뇌에 축적된 한없는 정보의 일부가 대뇌피질 작업장으로 연결되어 일어난 것이다.

     뇌는 걸어갈 때에도 숙제를 한다. 뇌를 놀리지 않는 것이 창의력 향상의 지름길이다.
바보가 갑자기 천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시 아는 사람이 알아낸다.
최근에는 뇌의 분자생물학적 연구가 진행되어 감성작용의 비밀도 어느 정도 밝혀질 것이다.

(B) 技術의 融合
- 新時代의 時空統合과 未來價値-

     * 연계통합의 개념
               가격구조의 연계성: 과거+현재+ 미래=>Locking price
               시장구조의 연계성 : 장터+내수+무역=>Global market
               기술구조의 연계성 : 기반 + 연관 + 핵심=>Fusion Tech.

               축적자산의 현재화(과거희생가치)==>>
               미래가치의 현가화(미래창조가치)
     *기회포착과 창의로 경쟁현장에서 탈출해
               Red Ocean에서 Blue Ocean으로 나가야
     *고객주문형즉시생산배송의 유통혁명적응
     *관련산업 융합과 세계시장의 통합화
     *글로벌정보 네트워크 사회구축

     경쟁 신시대를 영위하려면 우선 현재의 자산을 시공통합차원에서 엮어보는 것이 그래도 손쉬운 창의의 한 방안이 될 것이다.
     오늘날에 상품가격은 재료비 노무비 경비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상고 부기 책에서나 있는 얘기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상황을 종합해서 메겨진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시장이 어디 장터나 국내에 만 있는가 ? 이미 글로벌화 되어있다.
우리는 매일 중국산 고사리를 먹고 있다.
기술 또한 기반기술이고 연관기술이고 핵심기술이고 를 가리지 아니하고 통합 원용되고 있다 특히 IT기술 그러하다.

     요즘 벤쳐기업의 평가를 보면 과거에 희생으로 축적된 자산에 대한 현재가치(present price)를 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창조해 낼 가치를 현재가로 환산한 미래가치의 현가화(現價化) 가격으로 평가하고 이에 투자한다.
이른바 장래 가치에 투자하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되었더라도 장래성 없으면 누가 투자하겠는가?
     그러나 과거희생가치와 미래창조가치(불확실성은 높지만)의 평가 괴리가 커서, 종전식 시장예측이 곤란하게 되고 있다.
오늘날은 시장이 유통혁명과 글로벌화로 치닫고 있다.
고객주문형 즉시 생산 배송의 유통 혁명이 이뤄지고, 관련 산업의 융합과 세계시장의 통합화가 진행된다.
세계는 정보로 얽혀지는 Global 정보 네트워크 사회가 된다.
    이러한 정보네트워크 사회를 장래 사회 변혁요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남다른 창의로서 잽싸게 기회를 포착해서 지겨운 다수의 경쟁현상 그룹인 Red Ocean에서 탈출해
Blue Ocean으로 나가야 한다.

        (4) 社會構造의 變化


     미래사회의 신문명은 어찌될 것인가 학자들 간에 논란들이 많다.
결국은 사회구조와 기존 조직의 재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 들이다.

    2000년대에 태어나는 사람이 앞으로 그 생애에 직면할 것들을 상상한다면,
우선 현재 사회의 조직의 근간인 가정 제도와 국가의 조직응집력이 이완 붕괴되어, 호적이 없어지고,
손쉽게 다국적 영주권 패스포트(여권)를 소지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윤리나 종교 사상 등의 가치체계는 허물어지고, 개인적 판단에 좌우될 것이라 한다.
권위가 사라지면서 무계층의 탈 조직사회가 형성 될 것이다.
이미 많은 조직에서 부과장 제도는 이미 사라져가고 팀제가 정착되고 있다.

    감성시대에 人性解放과 新人本主義, 그리고 無性時代가 될 것이라 한다.
종교적 교조나 신념집단의 주장에 대한 무관심이 보편화되고, 대중은 무지성화(無智性化) 경향을 보인다.

社會構造變化와 旣存 組織 再編

    사회적 가치관도 크게 바뀌어 진부한 이론적 사상가나 지식인보다는 기예 숙달자와 끼 많은 돌출 행동자가
대중의 무지성화의 틈새를 비집고,대중의 인기를 업고, 지도자로 등장한다면, 과연 미래의 변화를 충격이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배우나 탈랜트 가수 운동선수 등의 감성 의존형 인기 인사들도 다른 영역인 정치권으로의 진출이 급증할 것이다.

     누구나 일반 서민도 문화예술 생활을 즐길 것이며, 가상애인(假像愛人)이나 사랑사업이 출현할 것이다.
산업계에는 서비스와 문화산업의 진전이 이뤄질 것이며, 고도정보 지식 산업사회가 될 것이지만,
철학과 같은 추상적 인문학은 쇠퇴할 것이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2차 산업이 폐기되며, 바이오 경제가 시작될 것이다.
기업경영의 양태는 여러 가지로 변모될 것이며, 모험적 리스크 경영이 주목 될 것이라고 한다.

        (5) 未來 社會와 新文明

     미래학자 다니엘 벨이 미래연성사회를 "서비스의 즐거움에 충실하고,
정보에 바탕을 둔 지적 기술발달에 의한 인간 상호간의 게임사회"가 될 것이라고 함축하였다.
여기에서 "서비스의 즐거움에 충실 한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비스는 일단 즐거워야 한다. 즐겁게 하려면 결국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 예능적 수단을 동원해서 치장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정보와 기술이라는 것에 대해서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하여튼 보기 좋은 것은 잘 느낀다.
우리는 평범한 주부가 브랜드제품을 찾는 것은 무슨 특별한 정보나 기술적 지식이 있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보고 나서 이른바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것이다.

    국제 경쟁사회라 하지만 결국 마음에 드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요체이다.
일본 자동차가 미국시장을 휩쓰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경쟁이란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경쟁인 것이다.
    두뇌를 쥐어짜든 어떻든 창의적 발상으로 상대방의 감성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는 자가 승자가 되는 것이다.
인류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창의에 의해 발전해왔다.

    기술이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라, 전통사회에서는 파격적이며 충격적이다.
미래의 충격은 지금보지 못한 기술을 처음 직면하는 충격일 것이다.
1930년대에 태어난 오늘날 70대 노인들이, 유년시절에 처음 전등과 전화를 보고 얼마나 놀랐겠으며,
소년시절에 처음 비행기와 플라스틱 항생제를 보고 신기하였을 것이다.
청년이 되어서도 라디오와 TV를 처음 대하고, 어떠했을 것인가를 상상해보면, 그 충격은 짐작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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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사회

정보의 본질

(A)알림 (B)정보의 과정 (C)정보의 공조화 (D)인식매체 (E)정보활용양태

1. 정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A)정보의 본질(알림) (B)정보의 전달 경로 (C)정보의 공조화 (D)인식매체 (E)정보활용양태


A. 정보의 본질(알리는 것의 의미)

실생활에서의 정보의 본질은 생활주체와 외부객체 사이의 상황관계를 알리는 것이다.
즉 일련의 행위를 하기 전에 먼저 알 필요가 있는 지식
또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수한 수단으로 획득한 지식이다.
과학의 기초개념에서 본다면,
생물이나, 사회적 성립에 기본이 되고 있는,
상호간에 전달, 처리 축적되는 신호나 기호를 인식 평가한 것을 정보라고 한다.

정보를 광의로 해석한다면,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과 에너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의 속성 패턴(=in+form+ation) 즉 그 조합 관계, 구조, 배열, 배치, 형태 등을 가진다.
이러한 자연계의 본원적 존재요소인 속성 패턴을 정보라고 한다.

B.정보의 전달과 경로
주체와 객체 사이의 주기적인 싸이클을 가지고,
상황에 대한 통보, 전달, 평가, 선택, 실현의 과정을 통하여,
불확실성을 제거하면서 적정 반응행동을 선택토록 하는 것이다.

정보의 통지와 전달은
회화적, 회의적, 방송적 방식을 통하여, 발신 전송 수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정보의 축적은 이 송수신된 전달 자료를 기록, 보전, 재생하여, 이후의 활용에 대비하는 것이다.
전 역사에 걸치어 축적된 정보로서는, 자연계의 우주 생성과정을 제외하고는,
인류에게는 유전자 정보와 문화생활 유산이 가장 크다고 할 것이다.

정보의 처리과정은 출력 제어로서 변환 가공하여, 평가하고,
실현의 주요 기준으로 삼게 하는 것이다.

당사자 간에 전달표시 방법으로서 신호와 기호가 있는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의사소통 즉 상호간의 의사표시 수단인 것이다.

이는 (1)언어계 신호와 비언어계 신호,
(2)문자 도형등의 기호와 Morse부호와 같은 기계부호,
(3)후천적 습득신호와,?선천성 신호,
(4)아나로그 신호와 디지털 신호로 나눌 수 있다.
Shannon이 정립한 communication의 송수신 기술 계층구조를 보면,
정보원에서 송신코자 하는 송신메시지를 만들어서,
송신기를 통해서 송신 신호로 변환해서 통신로로 송신한다.

수신측에서는 통신로로 보내오는 수신신호를
수신기를 통하여 수신 메시지로 번안하여 접수한다.

그런데 이 과정의 모든 노드와 경로에는 잡음원이 추가되게 된다.
수신메시지는 송신메시지와 정확하게 같다는 보장이 없고,
잡음이 포함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상호전달과정의 Noise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검사에의한 기술적 검증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의 평가는 주관적 요소가 포함되어 결정을 내리고 반응하는 것이다.



정보 송수신 전달기술 계층 단계 구조
   표현 객체     
정보 제공원
원 의도의 표현 A
자기표현력
  
송신메시지
언어표현 제약
  
송신 신호
기기품질 신호변환 제약
통신경로
통신 신호
선로안전과 품질 잡음발생
  
수신 신호
기기품질 신호번역 제약
  
수신메시지

언어번역제약

정보이용자
수신 평가이해 A'
의도A가 A'로되어, 오류검증후 평가해야 {A-(A-A')}

그 외에 Berlo의 SMCR(Source, Message Channel, Receiver)모형의 각각의 요소를 들고 있다.
Source
Message
Channel
Receiver
기    술
   요   소    구   조
시    각
기    술
태    도
내  용
처  리
코  드
청    각
태    도
지    식
촉    각
지    식
사회체계
후    각
사회체제
문    화
미    각
문    화
Lasswel은 누가, 무엇을, 어떤 체널로,
누구에게 전해서, 어떤 효과를 주는가하는 공식을 설명하였고,
Osgood과 Sharamm은 메시에 대한 기호, 해석, 해독의 순환모형을 제시하였다.

학자들은 키잡이를 의미하는 Kybernetes(=Helmsman)에서 유래한 Cybernetics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미국의 수리 학자 Nerbert Wiener의 인공 두뇌학의 정보과학을 비롯하여,
1962년 프리츠 Machlup의 제4차산업인 교육 R&D 미디어 정보기계 정보서비스 등의 지식산업,
그리고, 1920년대의 Hartley와 , 1940년대의 Shannon의 정보이론 등에서 정보문제를 다루어 왔었다


C. 정보의 당사자간 인지 접합 및 공조화

정보의 당사자간 인지 접합기능에서 인식의 배경에는
당사자 간의 전달,? 즉 Communication의 과정이 있다.

그리고 전달 획득된 정보내용을 평가 즉 결정 조정한다.
그 결과에 따라 지령 즉 대응행동 기능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Media는
정보신호가 전달 통과하는 과정에
정보가 손상을 입지 않고, 그대로 전달 될 수 있기 위해서,
이들 신호를 유지해 줄 수 있는 경로상의 동질 인프라인 ,
즉 물리적, 사회적 균질 매체가 있어야 한다.
음성이나 전파가 흐르는 공기나 전선 도체 같은 물리적인 것은 물론이고,
언어와 같은 문화적인 공동인식의 기반이 되고 있는 사회적 동질성의 기반위에서,
정보의 진동(전달)의 공명현상을 확보 할 수 있는
공조(共調 :Syncronizing)에 의한 전달이 가능하다.



발신자 A->-------------------------------------------------------->B수신자 
 
A-발신자표현---매체선택--매체통과-Nois개입--수신 --Noise제거--원의해석---수신자평가--수반대응행위(자기목적비교 선택 조정 결정)
문화적사전공조 물리적ㄱ Sync학보 문화적공조 자기가치판단 (역지사지 격물치지 자기반성)
사회적 균질화 반사공명 decode 보안암호 확인
문화적ㅗ 공조화기반
*정보통신:세션설정, 정보Packaging 암호와 보안조치, 전송제어(TC) 포맷제어j(DC) 장치제어(DC), 정보분리(SI), 코드제어(CC) 특수제어
명령응답제어, 당사자(NAD)확인, 통신로 및 통신과정점검, 도착종료확인

즉 정보에는 상호연관성(Socio-metrix rule)이 있는 사회성으로 인하여,
인식과 시간과 공간의 ( inter-rest, under-stand, inter-face,)극복의 문제가 있다.
정보통신=>情+報+通+信 三間소통=>人+時+空+疏+通
Communication=>with 4ㅁs between us, or among them
정보통신기기의 발달로 최근에 당사자 공조통합 진행현상을 보면,
접군성해소, 다양한 정보내용, 지기표현수단진화(탈문자화), 당사자공동참여 등의
과정으로 발전 하고 있다.

상대에게의 정보전달의 공명공조화
정보전달
속성
매체포장
공조의 형태
물리적 신호
위상변화 node개체화 변위해석 기준 비교 (기준변위공조) 지진계(검사적)
사회적 인식
공유가치소통 집단언어 만나 말한다(장소와 언어공조) 대중웅변(상황적)
문화적 공감
생활관습 반복양태환경 유희 일과 (놀이와 행위공조) 명절유희(전래적)
인문적 상징
표현대위 선행교습 느낌과 회상(배움 이해의 공조) 문학이해(교학적)
생체적 반응
생존오감 위해해소 접촉 안정(불쾌해소(미)의 공조) 유아표현(선천적)
공조화란 상대와 역지사지로 문화차이, 지식수준, 처한 입장 등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 국제무역에서의 정보변이와 이동 및 Sync    
   격지자간      운송수단 표준    운송중 변질   B/L I/P
   국가제도      관세제도         가격구조변화  I/L E/L
   문화차이      취 향            취향적응      
   언어          Terms           해석통일      L/C
   통화          환율             환전결제      지정통화  
  
정보통신기기의 발달로 최근에는 당사자 공조통합 진행현상에서,
접근애로해소, 다양한 정보내용, 지기표현수단진화(탈문자화), 당사자공동참여의 과정으로 발전 하고 있다.(예M2M변화)
M2M의 진화
1995
2000
2005
2010
2015
AOL Google U-tube Facebook Yelp
??
Access information Self-expression Participation
??

D.정보 인식매체의 발전
정보 인식매체의 발전과정은 곧 정보화 혁명과정이라고 하겠다.
언어, 문자, 인쇄 컴퓨터의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의 정보통신 혁명에 이르게 된 것이다.

언어는 굳이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의 활동에도 있는 것이지만,
특히 사회를 형성해서 살고 있는 인류는 민족은 물론 부족에도 필요한 언어가 있어왔다.

그런데 언어는 표현력의 제한과 구전에 의한 와전 그리고 직접 대화라는 공간적 장애 등이 있다.
따라서 여러 사람에게 동시 전달이 어렵고, 시간이 흐르면서 마치 옛 이야기처럼 정확한 전달기능이 떨어지는 등
정보의 시공통과와 정확성의 효율이 떨어진다.

언어 이외의 비언어 요소인 소리 몸짓 표시등 등의 상호 의사전달 수단도 있지만,
이는 언어 전달 능력에 미치지 못한다.

문자는 사회 집단에서 전달 의사를 돌이든 종이이든 물체에 형상으로서 각인함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어느 정도 극복해서 정보전달에 크게 기여하여 왔지만
최근까지 만 해도 언어와는 달리 일부 지식 계층에 제한되어 왔다.

인쇄는 문자 발달사의 진전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문자 표현 생산기술의 혁신적 발달이 문자정보 지식의 보전과 일반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고,
지성의 개화 발전에도 한몫을 하여왔다.
물론 사진술이나 라디오 TV등의 공중 매체 등이 있지만, 인쇄에 비해 시공의 제약이 크다.

지금까지의 컴퓨터 기술에 최근에 통신 기술이 접합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보의 축적과 처리 전송뿐만 아니라, 정보의 전 과정에서
소리 형상 등의 시공극복과 원격 자동 처리에 이르기까지
Semantic 전자신호 언어로 재편성이 이뤄지고 있다.



E.정보 평가의 활용양태

오랫동안 근육노동에 시달려 온 인류는,
근육노동의 피로를 도구의 발견과 기계문명의 발달로서, 상당히 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복잡한 정보에 얽혀있는 오늘날의 새로운 사회생활에서는,
지적 근로의 피로인 스트레스의 고통에서 사람이 담당하여 왔던 문제 해결과
창조의 영역에까지 컴퓨터의 지원을 받기에 이르고 있다.
요즘에는 문화적 욕구로서 사회적 추상(문화)가치 추구 욕망이 높아
대중적 매체의 유행 정보에 직접참여, 자기실현 또는 적응으로 대응하고 있다.(예 유행모방 브랜드선호..)

온갖 정보의 홍수와 선택의 고민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지적 노동의 상당 부분을, 컴퓨터의 활용으로 대체하여 왔고,
이제 다른 영역으로까지 용도를 확대해가고 있다.

즉 단순 지적 두뇌노동의 대체뿐만 아니라 교육 연구개발 미디어 정보기계 정보서비스 등의 분야에
지식산업으로서의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차츰 정보의 활용에 의한 성숙도는
단순한 사실의 자료(Data)처리에서 나아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정보(Information),
특정부문의 정보가 추상화된 지식(Knowledge),
지적행동능력의 지능(Intelligence),
문화적 생태적 순화와 반응능력의 지혜(Wisdom)로서
인성에의 융화발전을 통하여. 원만한 개인 생활을 영위해 나아가고 있다.

자료는 아직 특정 목적에 의해서 평가되지 아니한 단순한 사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원자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정보는 각종 자료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행동판단을 위해 평가된 것이라 하겠다.
지식은 특정 목적 달성에 유용하도록 추상화되어,
일반화된 집적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지능은 지식을 활용하여 이성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적 행동능력이라고 할수 있으며, 이러한 성품을 지성이라한다.
지혜는 오랜 기간을 통하여 정보와 지식 지능들이
문화적으로 용해되어, 생태적으로 순화된 인생 지표 수단으로서,
반사적으로 순간에 번뜩이는 융합된 사고 능력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정보의 생활화와 성숙도는
마치 제조과정에서의 원자재 부자재 제품 상품 소비품의 진전 과정과 같으며,
포도주의 숙성 과정과도 같아서, 숙성된 포도주가 머리를 맑게 하듯이,
정제된 정보를 활용 할 때에 만이 현명한 생활을 영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의 생성전개 과정을 보면,
상황 ====> 첩보 =====> 정보
========> 집적지식(정보의 침착 ) 무형 Knowledge (숙달정보)
========> 1인 단독정보활동(역지사지 격물치지 연구활동)=>평가지식(전달은 없어)

정보의 개체화====>의사소통 (당사자간 정보유통)
===============>기술활용(정보의 체화=Embodyed유형화)
================>신호수단동원==>통신정보로 특성발생
통신정보의 특성으로서는
무형성, 적시성, (독점)비밀성, 비소모성, 비양도성(사용권만 있어)
상대적 가치성, 부가가치성, 누적가치성(DB), 매체 의존성 등이 있다.

2.기술과학과 문명발전

(A)문명의개척 (B) 기술과 과학 (C)산업기술의 발달 (D)산업시대정보기기
(E) Muli-Dedia 통합 (F)Ubiquitous사회 (G)미래후보기술

A.문명의 개척

   원시시대에 불의 발견이 있었고, 농경과 축산에 의한 농업혁명의 경제적 변혁이 있었고,
활과 칼 그리고 말의 이용은 커다란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인류는 문명시대에 이르러 표현수단으로서 문자를 발명하여 의사소통과 지식의 축적 전파가 이뤄지게 되었는데,
그후 채 륜의 종이 발명과 1455년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의 발명은 그 지식전달 기능으로 인하여
문화와 교육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여 왔다.
   송나라 때 나침반의 발명으로 항해가 가능하여, 견문의 세계를 넓혀 나가게 되었고,
그 외에 철 제련, 화약 제조, 석탄 석유 채광 기술로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특히 철과 화약의 발명은 무기 개발 체제를 촉발하여 전쟁과 권력의 핵심 수단이 되었다.
전기에너지의 발명은 세상의 어둠을 밝게하였을 뿐만아니라 차츰 산업경제의 원동력이 되기에 르렀다.
   1712년의 증기기관에 이어서 1733년 영국의  J. 케이의 방직기 발명이후로
각국에 산업혁명에 의한 공업화로서 산업사회가 최근까지도 진행되어 왔다.
1875년의 전화 발명은 컴뮤니케이션의 지평을 열었다.
1960년대에 컴퓨터가 있었지만, 1973년 Word Processor가 등장하면서
디지털 정보화와 더불어 신문 방송 등 정보 서비스를 비롯한 정보화사회로 진입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까지도 독점 체제하에 있던 통신 분야도 1984년의 Bellcore의 판결 이후로 통신 개방과 확산의 길이 열리며,
정보재화의 등장과 전자공간의 신경제를 탄생시키는 길이 열렸다.
이제 다시 사람과 사물 그리고 공간을 연결 통합하는 유비콤의 나머지 혁명이 움트고 있다.

   이러한 정보화는 21세기초에 각 분야를 장식할 것이며,
그 이후의 미래사회는 2020년경에 Bio-tech에 의해 주도 될 것이라는 학자가 많다.

슘페터는 기술혁신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하였다. 

과거의 발명에 의한 것 : 제련법 발명  화약발명     

첨단제품 정보활용에 의한 분야:농업공업  상업무역 금융서비스 국민생활

  

B.기술과 과학

nbsp;  J. Beckman이 설명하기를 "기술은 자연에 존재하는 자연 법칙을 의식 인식하면서
인간의 실생활에 이를 적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연 그 자체는 만물이 존재하고, 생물이 생활하는 공간이며, 이에는 자연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자연 법칙은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인 운동의 4대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무생물에는 자연법칙 자체만이 적용되는 것이며,
동식물은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것인데 반하여,
인간은 자연 법칙을 응용하여,그들의 생활 향상에 유용하도록, 자연의 원리를 계획하고 반복 생산 공정을 거치는
기술 체계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 기술로서 보면
 동력기술, 채취기술, 재료기술, 기계기술, 건설기술, 통신기술, 교통기술, 제어기술,
재배기술, 사육기술, 포획기술, 보건기술 등 12개 분야를 들고 있다.

기술은 생활관련 정보가 체화(Embodied)된 수단이다.

   자연과학은 인간의 실생활 적용 수단으로 보는 기술에 비하여 보다 광범한 개념이다.
자연과학은 자연계의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원론적 인식 체계라 할 수 있다.
과학은 기술 개발의 근원적 기반이 되고 있으며,
오늘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류문명의 도약을 가져온 원동력이라고 하겠다.

C.산업기술의 발달

산업혁명은 

1833년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 1837년 Morse의 전신기 발명 이후로 전기통신공업이 등장하였다.
  • 1879년 T. Edison이 전등을 발명 13.5일간 115개의 가스등을 밝히면서 전기시대를 열었으며,
  • 1901년 말코니의 무전전신기술 발명으로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 1904년 Fleming의 진공관발명 이후로 전자공업이 태동하였다.
     (1947년 John Bardeen의 TR발견으로 보기도 한다)

보통

  • 1924년에서 1939년까지를 라디오 시대,
  • 1940년에서 1946년까지를 레이더 시대,
  • 1947년에서 1950년까지를 TV 시대,
  • 1951년에서 1969년까지를 미사일 시대,
  • 1949년부터 컴퓨터 시대>라 하고,
  • 1973년의 워드프로세서의 등장과
    그후 동력기계가 정보기기로 이행되면서 정보화 시대라고 한다.
    (Timetable of Technology Bryan Bunch & Alexander Hellemans)
1992년 TCP/IP와 WWW 출현으로 인터넷 정보통신시대로 진화>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는 1990년대후반 이후부터 시대적 추세에 동승하기 시작하였다.

   MIPS당 마이크로 프로세서 성능은 18개월마다 배증되었지만,
가격은 1991년 230달러에서, 97년에는 3.4달러로 내려갔다.
   미국의 Big5(Micro, Intel, Compaq, Cisco 등)의 주가는 1987년 120억 달러에서, 97년에는 5,880억로 50배가 급성장했다.

Super Computer
Site Computer Cores Rmax Rpeak Power
1.Oak Ridge National Lab.US Jaguar-Cray XT5-HE Opteron Six Core2.6Ghz/2009 Cray Inc 224,162 1,759 2,331 6,950.60
14.KISTI Super Computing Center, Korea Tachyonll-Sun Blade x6048,x6275,IBQDR M9 switch, Sun HPC stack Linux edition/ 2009 Sun Microsystem 26,232 274,80 307.44 1,275.96
자료: top500.0rg(2009.11.17. 34th ed.)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4호기는 274.8 Tera Flops(1Trea=1조 Peta=1천조)로 14위이다.
1988년 도입된 Cray 2S는 초당 20억회연산의 성능이었음


   편익 생활을 추구하는 기술의 발명은 문명 발달의 에너지가 되어왔다.
이러한 기술 발명의 주요 사항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전기통신 기술

  • 1837년  영국  철도역간 통신
  • 1844년  미국 Morse가 워싱턴과 발티모어간의 전신기 설치(1877년 보스톤과 뉴욕간 가설)
  • 1875년  A.그라함 벨의 전화(1976년 보스톤에서 2마일 가설)
  • 1895년  말코니 무선기기(3 Km) (1912년 타이탄닉호 사건으로 설치의무화)

  • 1896년  조선 궁중에 전화 가설
  • 1902년  서울 인천간 전화 가설
  • 1907년  Lee D. Forest의 무선전화(30Km)
  • 1973년  경부간 자동전화망 설치
  • 1982년  한국통신(1.1)한국데이타통신(3.29) 발족
  • 1982년 TDX 개발(3월착수,6월개발단(양승택),사업단(서정욱)설치
  • 1986년  TDX-1개통(3월)
  • 1984년  한국이동통신 설립
  • 1985년  ETRI설립(3월)
  • 1991년  CDMA방식 채택(4월전파산업육성위원회:윤동윤차관)퀄컴(Irwin Jacobs)로열티:단말기 5.25-5.75%, 시스템 6-6.5%
  • 1993년  전자통신연구소(양승택)CDMA 공동개발 착수
  • 1996년  CDMA 방식 PCS결정, 무궁화위성 발사

라디오 기술

  • 1904년   R. Fleming의 2극관 라디오
  • 1906년   Lee D. Forest의 3극관 라디오
  • 1915년   W. Schotty의 4극관 라디오
  • 1920년   Conrad의 라디오, KDKA 정식 라디오방송국 개국 1924년에 500개로 증가
  • 1928년   Round의 5극관 라디오
  • 1933년   Amstrong의 FM 라디오 방송

레이더 기술

  • 1934년   미 육군연구소의 연속파 레이더(1936년에 SCR-268)
  • 1935년   영국 Watson Watt의 대공 경계용 펄스 레이더

TV 기술

  • 1875년   Caray의 병열식 송수상 장치
  • 1877년   Sawyer의 직열식 주사방식
  • 1884년   Nipkow의 니포우판 개발
  • 1920년   기계적 주사 방식에 의한 정지화상 송신
  • 1925년   영국 Baird, 미국 Jenkins의 동화상 송신
  • 1928년   Biard가 컬러 TV의 필드순차방식과 가스방전관 실험
  • 1929년   벨 연구소에서 비점 주사방식 실험
  • 1939년   Goldmark가 이메지틱 섹터관 이용으로 실용화
  • 1952년   독일, 1953년 일본 TV방송 개시

컴퓨터 기술

  • 1939년   진공관 컴퓨터(ABC:Atanasoff Berry Computer)개발
  • 1944년   H. Aiken의 Harvard Mark I 리레이식 계산기
  • 1944년   J.P.Eckert와 J.W.Mauchly의 ENIAC
  • 1949년   J.Neumann의 EDVAC, 영국의 EDSAC
  • 1951년   상업용 UNIVAC, 영국의 Manchester
  • 1952년   프랑스의 GAMMAIII
  • 1956년   일본의 FUJIC
  • 1957년   Sputnik 발사
  • 1958년   인텔사 설립, 일본의 JAC
  • 1974년   8 bit CPU 8080
  • 1975년   MS사 설립, 1976년 Apple사 설립
  • 1981년   MS Dos
  • 1985년   i80386 CPU, MS Window 개발

반도체 소자 기술

  • 1948년  W.Shockley,J.Bardeen,W.Brattain등의 점접융형 TR, 49년에 집합형
  • 1955년  C.S.Fuller의 가상확산기술
  • 1952년  영국의 Dummer의 IC구성
  • 1957년  Westing House와  미 공군에서 히나형 IC
  • 1958년  미육군과 RCA의 Micro Module, 미공군과 TI의 상위추이기개발
  • 1959년  J.A. Hoenri의 표면누전제거 기술
  • 1962년  TI에서 IC를 데이터 처리기에 사용
  • 1966년  LSI 고안,
  • 1985-90년 1-16M D-Ram,
  • 1992년에 64M D-Ram개발

 

D.산업시대의 정보기기

   디지털화에 의한 컴퓨터 통신으로서, 모든 매체는 물론, 정보의 형태와 기능까지도 통합화가 이뤄져,
기능과 시간 및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가능하면 먼저, 빨리, 정확하게, 여러곳에서, 많은, 정보를 주고받아,이를 처리 할 수 있어야 경쟁적이다.

   현상에서의 기회 발견과 창의가 관건이다.
편익생활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생활의 방법을, 편리하고 유익하도록 잘 짜는 것이다.
편리하다는 것은 간편하고, 능률적으로, 빨리, 값싸게 해내는 것이다.
   이는 곧 절차와 단계를 줄이고, 수단을 신속하게 동원하는 것으로서,
비즈니스에서는 거래상의 불신을 제거하여, 안전을 확보하면서, 정보와 물류 이동을 혁신하는 것이다.

정보 기기기능의 진화
  생성(1) 처리(2) 저장(3) 전송(4)
문  자(C)
상형그림
글  자
종  이
우편  송달
데이터(D)
수 신 호
타이프
디스크
TLX, e-Mail
소  리(S)
타악기기
스피커
녹음기
전화기, Radio
영  상(V)
환 등 기
사진기
V T R
HDTV, 인터넷
*C 에서 V로, 1에서 4로 진화발전

사용도구 발전 동향
도구
공정
사용요소
    컴퓨터     정  보     Bit
    네트워크     통  신     Node
    바이오텍크     삶     DNA
    나노테크     물  질     Atom
    양  자     공간/시간     Energy
자료:The Extreme Future, James Canton, 2000

(E) Multi Media Computting의 Conversions

정보의 통합과 보존

Micro Film : Micro fiche, Roll film, Cartridge, Film stlip, Micro jcket Arperture card, Diazp type
Elecronic Documents : TIFF, PDF ,JPEG. Text, MP3, MPEG, AVI CD-ROM, DVD

1985 CD-ROM 규격제안
1986 CD-ROM 국제규격(CD-I)제시(필립 및 소니)
1987 Macintosh II, Hyper Card , CD_ROM Driver 발표
1988 CD-ROM XA 규격과 ISO9660 결정 1990 CD-MIDI규격 추가
1993 MPC2규격 발표
1998 보편적 컴퓨터 사양(24배속 CD-ROM 32bit)

>
정보 미디어 성능과 진화
  대표값 정보량 실시간속도 압축비 압축후속도
편지 1000자 16Kb      
신문 1.4만자x24면
1000x1000x8bit
8.5M
사진 5,376Kb
     
전화 1시간 230M
64Kb/s
1/4
16Kb/s
음악CD 1시간 5.0 Gb
1.4Mb/s
1/5.5
256b/s
비디오(VHS) 1시간 190Gb
30Mb/s
1/20
1.5Mb/s
일반 TV(수신) 1시간 360Gb
100M/s
1/25
4Mb/s
HDTV(스튜디오) 1시간 4,320Gb
1.2Gb/s
1/40
30Mb/s

인터넷의 초고속 정보통신망 보급으로 새롭게 진화중

Muli Media = Graphic + Movie + Image + Audio + Text (by Director6 + Internet)

CD-ROM Title 응용 분야

  • 참고자료: 백과산전 e-Book
  • 교육분야 : 대화형 학습
  • 광고홍보 : 블로슈어 카다로그 회사소개
  • KIOSK : 무인안내
  • GAME : 시뮤레이션, 어드벤쳐,롤프레잉, 스포츠, 퍼즐

(F) Ubiquitous Computting 사회 태동

개념 : 제록스연구소에 근무하던 Mark Weiser(1952-1999)가 1988년 비젼을 제시한후,
1991년 9월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태동된 21세기 컴퓨팅 개년이다.
이 말은 라틴어의 도처에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의미인데,
사용자가 속해 있거나 관련이 있는 공간에서
유저의 상태(예를들면 느낌 맥박 체온 등) 발생한 상황(이동 출현 동작 대화 등)
외부환경(기온 시간 위치 등)이 지각 인식이 결합되어 컴퓨터에 의해서 지각되는 정보를 상황 인식 정보라한다.
(Context Awareness Information)
이러한 상황인식의 맥락은 Who, What, When, Where, Where를 캐취하는 것이며,
새로운 정보의 원천은Sensor와 전기의 상황인식정보(CAI), 그리고 Argumented Reality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일상환경과 사물들의 도처에는 각기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내장되어 있으며,
서로 정보를 교환 할수 있는 작은 컴퓨터(센서)가 보이지 않지만 심어져 있어서,
이러한 컴퓨터들과 공간 인간 정보가 하나로 통합되어
자율적으로 인간의 능력과 지식의 공유를 개선해주는 컴퓨팅 정보 환경이라는 것이다.

정보기술 활용의 페러다임 미래 (변화)
  전 산 화 정 보 화 지 식 화 유비퀴터스화
대   상 수작업(work) 정보흐름(Process) 지식수준(Stock,Level) 사물 (Things)
목   표 자동화 자유정보수발신 지식공유 기능 최적화
환   경 폐쇄성
Server2Clent
개방성 PC2PC 투명성 B2C B2B 사람+컴퓨터+사물 통합
Thing2Thing
도   구 전산기기  OA 정보시스템  MIS 지식관리시스템
   KMS
유비퀴터스Com+Net
성   과 인력감축 정보유통 지식학습 공진화 컨시어지
주요분야 데이터입출력관리 정보자원관리 지식관리 공간(환경과사물)관리
평가기준 능률성 논리탐색가능성 창조 협업화 연계성 무결점화
정보기반 Main frame PC+Internet PC+유무선Internet PostPC+Sensor Network
경제원리 전통적경제 네트워크경제 지식기반경제 공간 시너지경제
정책영역 공공부문 공공+민간 공공+민간+국제 제3공간(전자+물리공간)
시   대 1980년대 1990년대    현   재 이미태동 수년내의미래
* 자료: 전자상거래 표준화포럼

핵심기술분야

  • 센서기술 인식기술 디스플레이 기술
  • 상황인지기술 상호연결망기술 사람의도파악기술
  • 반응생성기술 통합환경기술

네트워크 관련기술분야

  • 유비퀴터스시스템 기술 고성능 네트워크기술
  • 어플리케이션고도화 기술 어플라이언스기술
  • 플랫폼기술

G.미래 후보기술

광통신

    광섬유 내에서 빛의 직진성 유지와 발광자와 수광자 및 신호변환기에 의한 기술로서
1870년 영국 물리학자 틴탈의 물기둥 실험 이후,1960년대에 본격 연구가 이뤄졌다

    동축 케이블은 18심인데 광케이블은 0.1mm 36심으로 되어있다.
광섬유에서는 1Km 마다 5% 정도의 빛의 손실이 있어서, 15-25Km 까지는 무중계전송이 가능하다.
또 초당 4억 회의 레저 사이클이 가능하므로 음성은 초당 64,000 회가 필요하므로 6천 회선이 가능하다.

컴퓨터

    1975년 스탠포드 대학의 파이겐 바움 교수는 이신아라는 진료 전문가 컴퓨터로 진단을 시도했는데,
이러한 지적대화 기능과 추론기능이 가능한 비 노이만형 지능컴퓨터를  5 세대 컴퓨터라고 한다.

    대략 10년마다 핵심부품의변화에 따라서

  • 진공관의 1 세대
  • TR의 2 세대
  • 1960년의 100개의 TR에 해당하는 IC의 3 세대,
  • 그리고 1970년 1,000 개 TR 이상의 LSI의 제4 세대 컴퓨터라고 한다.
    1970년에는 4,000 개, 1980년에 60만개 수준의 초 LSI 컴퓨터에까지 이르렀다.
  • 이제 제5세대 컴퓨터는 빛에 반응하는 죠세프소자, 칼리움, 비소 등의
    신소자에 의한 병열 처리와 비수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것이다.
  • 앞으로는 BIO침에 의한 인공지능의 제6세대 바이오 컴퓨터가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테크노 헤게모니는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빠른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이외에 연구 논의되는 분야는,

레이져
    엑시마 입체영상 광컴퓨터신소재
고분자재료 알마이드 초전도 극한재료 형상기억합금
자연력활용(태양열 조수 풍력)

환경복원 및 온실가스 감축



2. 에너지위기

    글로벌 에너지, 자원 고갈 위기심화
         -> 전세계적 경제성장 및신흥경제국 수요증가로 에너지 수급 불균형 심화
         o 중국 석유소비량 2배이상 급증(97~08)
         ->화석석유 중심의 에너지 소비구조는 자원고갈을 가속화
         o 전 세계 에너지원의 85%를 화석연료에 의존
         -> 화석연료 과다 사용으로 온실가스 배출량도 급격히 증가
    우리나라는 화석연료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높은 구조
         -> 화석연료의존도가 높고, 신재생에너지 보급수준 미미
         o 1차 에너지원별 비중(2006)
                  석유 43.6%, 석탄 24.3%, 원자력 15.9%
                LNG 13.7%, 신재생에너지 등 2.5%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 가겨변동에 민감
         o 에너지 수입액 : 1,415억 달러(08년 총수입의 32.5%)
         ->에너지 다소비 산업인 제조업등의비중이 높은 산업구조
         o 에너지다소비 업종 비중(2006) : 한국8.0%, 일본 4.6%, 미국 3.1%


  
  바이오기술

   1953년 DNA의 생명정보 전달 사실이 알려진 이래로 Bio와 Automation의 합성어인 바이오메션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1973년 유전자 개조 기술을 시작으로 신Bio-tech이 등장하였다.

     광합성의 과정을 이용해서 벼와 같은 C3 >식물과 다수확성인 옥수수와 같은 C4 식물,
그리고 선인장과 같은 CAM 식물을 교합해서 증수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클론생물, 증식배양, 생체모방기술, 광합성, 탄소자원 등이 연구되고 있다.

    생명체는 26 종의 필수원소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주 인체무게의 비중(%): O(65) C(18) H(10) N(3) CA(1.5) P(1.2)Na(0.2) K(0.2) S(0.2)
미량원소:Mg(0.05) CL(0.01) F(O.O1) Si(0.01) V(0.01) Cr(0.01)Mn(0.05) Fe(0.05)Co(0.05) Zn(0.05)
Se(0.01) Nb() Mo(0.01) Sn(0.01) I(0.05)

생명체의 모체인 세포에는약 60 억개의 염기가 있다.
단백질에는 6천~1백만의 분자량을 포함하고 있는데, 섬유형 단백질과 구형 단백질로 구분된다.
DNA는처음 추측되었던 10만개보다 적은 약 3만개(2.6~4만개)로 그 지도가 완성되었다.

    단위는 약 20종의 알파 아미노기(-NH2) 카르복시기(-COOH)의 아알파 미노산이 있어서,
이론적으로는 이것만으로도  20!(2.43x1018 ) 종류의 생명체 조합이 가능하다.

3 개의 염기가 1 개의 아미노산을 정한다.
 염기에는 아테닌(A), 구아닌(G), 티민(T), 씨프신(C)의 네종류가 있다.

RNA는 단백질 생성에 관여하는 RNA는 수천수만개의 염기가 일열로 이어 지는데, T대신 U염기를 사용한다.
1993년 국 앰브로스박사팀이 발견한 마이크로 RNA는 20~25개(23개쌍) 염기로 성되어 있어
단백질 생산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 져 있다.

여기에서 남성의 유전변이가 여자의 두배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인간 DNA의 1~1.5%만이 (당초예상 3~5%)단백질 생산 암호를 보유하는 으로 알려졌다.
또 200개의 유전자는 박테리아를 서서서 초기 척추동물에 삽입된 유전자에서 온것으로 알려졌다.

  DNA 지도완성

DNA(deoxynriobonucleic acid;데옥시리보핵산) 구조 해석 응용

생체로봇 연결기술

  • 1997년 일본 도교대 모야마 이사오 교수:
      바퀴벌레에 반도체 칩을 이식하고, 소형 컴퓨터도 붙여 리모컨의 지시에따라 움직이게 함
  • 1999년 독일 튀빙겐데 닐스 비르바우어 교수:
      사람의 뇌파를 잡아내어, 컴퓨터의 커서를 원하는 위치로 이동하도록 함
  • 2000년 도벨 연구소 연구팀 :
      30년전 시력을 잃은 60대 남자에게 눈대신 카메라를 달고, 영상신호를 뇌에 전달해 글자를 읽게 만듦.
  • 2000년 미국 듀크대 미구엘 니콜리스 교수 :
      원숭이의 뇌에서 나오는 전기를 받아 로봇팔이 원숭이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함
  • 2001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페르디난도 무사히발디 교수:
      칠성장어의 뇌를 바퀴달린 로봇과 연결, 로봇이 빛을 따라 굴러가도록 함.
  • 2002년 영국 리딩대 케빈 어윅 교수 :
      자신의 팔에 반도체 칩을 이식하고, 신경과 연결해 신경의 신호와 손의 움직임과의 관계연구 시작

     

    생활변혁의 미래10대 발명(뉴스위크2000.4.10.19)

    1. 리나레스사의 인조 다이어몬드-->차세대 실리콘 대치
    2. 캘리포니아 공대 마이클 디킨슨 교수의 초파리 후각기능
    3. 줄기세포 프로그램 (영국과 한국의 실적)
    4. 브래드리 에드워드의 신탄소물질연구
    5. 컴퓨터 차량개발
    6. 남가주대학 테드버거의 뇌신경세포 컴퓨터칩개발
    7. DNA구조변화에의한 신품종생산
    8. 켐브리지대 리처드 프랜드의 플라스틱칩 대체연구
    9. 탄소섬유 경량차 개발
    10.수륙양용 주택

    한국 10대 국책 연구과제후보(2005.4월까지 타당성검토후 학정키로)

    1. 자기부상 열차 :2020년까지 59조 매출
    2. 한국형 고속철도 : 2015년까지 3조3천억원 이익
    3. 저공해 LPG버스: 년300억원절감
    4. 해수담수화용 원자로 :수출1기당 3천억원수입
    5. 초고속 해상운송선:개발초기 1조2,500억원매출
    6. 복합양전자 단층촬영기: 18조원시장형성
    7. 소형열병합 발전용가스터빈 :연1,700억원매출
    8. 나노공정 반도체제조장비:생산유발 8조3천억원
    9. 뇌질환 치매치료제AAD-2004 :년5조원매출
    10.소형항공기: 20년간 4,800억원부가가치

    최근에는 또다시 21C 국가전략기술개발 15개 과제를 발표하였다.

    주력산업부문
    차세대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섬유,
    일반기계, 스마트철강소재
    미래유망분야
    나노가공장비, 생물바이오, 신기술융합,
    지능로봇, 미래자동차
    삶의질 개선
    청정기술, 차세대의료기술, 마이크로생산시스템,
    지식서비스, 지능형물류
    *자료 산자부(2006.8.16)

    생태계 발전형 신성장 동력 10대 프로젝트

  • 1.이차에너지 핵심소재    6.통합물류관리시스템
  • 2.고효율 박막태양전지    7. 스마트 콘텐츠
  • 3.에너지절약형 전력반도체    8. 차세대 소프트웨어 플랫폼
  • 4.스마트 LED 시스템조명    9.의료시스템
  • 5.해상풍력            10.줄기세포
  • 신성장 동력 협의회(2011.10.19)
    1012년 2000억원투입예정

    차원의 극복

    자연법칙은 고차원에서 표현 할때에 훨씬 간단해진다.

    (쉬카고대 Peter Freud 물리학교수)


    만물의 본질 인식의 역사는 차원극복에서

    Klauza-Klein이론
    빛은 5차원의 진동이며, 5차원은 4차원 시간의 진동이다.
    즉 5차원은 3차원 공간을 넘어서는 다른 공간차원이라는 것이다.
    N차원 확장시에 아원자 입자의 초중력 이론이 수용될 수 있다.
    힘은 서로 다른 형태의 초공간 진동이다.

    장 이론은 영국의 Michael Faraday가 처음 도입
          전자기력
          중    력 : 행성의 궤도유지
          강한핵력 : 별의 에너지
          약한핵력 : 방사성붕괘시 방출

    장(Field) 방정식 추구
          1960년 : 제임스 맥스웰의 전자기장 방정식
          1915년 : 아인슈타인의 중력
          1970년 : C.N.Yang, Mills의 아원자 입자방정식
          리만의 계량텐서와 Hypercube Equation

    10차원 탐색 원자분쇄기
          최대원자로 10의 24승K도(단한번 빅뱅시만 가능)
          10차원 = 4차원(현우주) + 6차원우주(무한축소)
          대칭우주의 연속 및 비연속상에서의 붕괘 증명(일본과학자)
          최근위스콘신주립대 개리 슈 연구진은 이러한 차원의
          존재를 볼수 있다고 피지컬 레뷰 레터스지에 발표
    통일장 이론과 대통일장 이론(GUT) 및 초끈이론(진동하는 에너지끈)

          물질의 근원을 입자 또는 진동(파동)으로 보는 입장이 있는데, 초끈이론은 파동으로보아,
          그 진동에 따라 여러 매개 물질이 된다고 보는 1970년대에 등장한 이론이다.
          1984년에 미 캘리포니아대학의 슈바르츠 등이 모순없는 10차원 초끈이론을 제시했고,(1차혁명),
          이어 1995년에 프린스턴 고등연구원 에드워드위튼이 11차원의 M(얇은 Membrane관)이론을 해석했다 (2차혁명),
          이는그동안 초끈이론이 5가지로 해석되는 모순을 제거했으나 아직 수학적기술 방법이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고,
          10의 30제곱분의1cm의 미시세계인지라 실험적 증명의 난제가 남아있다.

    3.정보통신 기술진전

     

    A.인터넷의 발달 B.Paradigm Shifting C.시공통합 경영과 미래  D.신메타표현모델링 국제동향

    A.인터넷의 발달

     
    국제
    국내
    제1단계
    DRAPA실험운영
    SNA의 실험운영
    • 1969년  미국방성 APANET (56Kb)탄생
      --자료의 분산보관공유
    • 1881년 BITNET탄생
    • 1983년 TCP/IP 사용
    • 1984년 인터넷Domain등장
    • 1986년  NSNET으로 활성화
    • 1889년 WWW탄생
    • 1971년 e-메일 상용화
    • 1990년  WWW개발완성
    • 1882년5월 SND탄생구축(KINET) (1.2Kbps)
    • 1983년 USENET
    • 1984년 CSNET 연결
    • 1985년 PACNET 구성
    • 1989년 교육연구망 탄생
    • 1989년  T1급,1992년 T3급
    제2단계
    (사업적 운용
    접속단계)
    • 1992년  TCP/IP의 완성으로 등장, WWW 등장,웹를라우져등장
    • 1994년  Netscape 발표
    • 1994년 온라인서점과 Yahoo등장
    • 1996년  Marketing
    • 1997년  Customer service
    • 1992년5월부터 상용화허용 현MCI는 155Mbps
    • 1986년 NIC에 .kr공식등록
    • 1987년 APANET 접속 승인
    • 1989년 교육망, 연구망 탄생
    • 1994년 상용 서비스 시작 (256 Kbps)
    • 1997년 인터넷협회 설립
    제3단계
    (상업화 확산)
    • 1998년 ICANN설립
    • 1998년 EC
    • 2000년 Worldwide market place
    • 1999년 KRNIC 설립
    • 1999.4 세계최초 ADSL서비스(하나로통신)
    • 2000.12 전국초중고교 인터넷 무료보급
    • 2001년 인터넷2,400만으로 유성트래픽 초과
    제단4계
    (국제화)
    질적성숙단계, ENUM DNS(E614 No.Mapping), IPv6, UIT 구현등
     
    우리 나라에서도 특히 최근에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으로 생활변혁을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현대 문명 기기가 처음 5천만명까지 보급되는 소요 기간은, 라디오 38년,  TV 13년 PC 16년이었는데,
      인터넷은 불과 4년이었다.

    대중정보(Public Data)의 통신문화 기반도 1876년이후의 전화, 1948년이후의 텔레비젼 그리고
    1969년이후의 인터넷의 사회적기반이 구축되어있다.
    . 컴퓨 기술환경의 변화를 보면
    1960~70년대의 대형 메인 프레임시기,
    1970~80년대의 Micro Computer시기,
    1980~90년대의 PC/LAN시기,
    그리고 1990~21세기의 인터넷 환경으로 변전하여다.

    특히 인터넷에는 종래의 데이터는 물론 음성과 영상을 통합(DVVI=VVID)하면서
    새로운 세상(New World)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음성통신의 가격파괴가 이루어지고, HDTV에 인터넷 기능과 오디오등의 퓨전 통합기능이 실현되고있다.
    뿐만아니라 일상생활 산업현장 교육 오락분야는 물론 정치 사회등 모든 분야로 광범하게 급속한 변화가 촉발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생 역사 기여한 인물들

    인터넷이 발생하게된 개념적 기초는 주로 세 인사와 한 연구회합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들 각자는 그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는 기술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Vannevar Bush는 "menex"라는 자동화 라이브러리 시스템을 작성하면서 잠재적 고객에 대한 가시적 설명을 처음으로 쓰게 되었다.
    Norbert Wiener는 미래 연구자들이 인간의 능력을 확대하는데에는
    기술을 사용하는 초점을 맞추어야한다는 점에 착안하여,사이버네틱스 분야을 개발하였다.
    Marshall McLuhan은 일반 문화에서 전자신경 시스템부분에의해서 연결되는 지구촌의 아이디어를 내어놓았다.
    1956년의 Dartmouth 인공지능 컨퍼런스에서는,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고 있고,
    그 결과는 사상초유의 심각성을 불러올 것이라는 개념을 확고히 하였다.

    그런데, 1957년에 구 소련에서 첫 인공위성 Sputnik 1호를 발사하면서 제기된 미 아이젠하워 대통령
    무기경쟁에서 기술적 주도권을 되찾기위해서 ARPA 기관을 창설하였다.
    이 ARPA 에는appointed to head the 신 IPTO 기구의 수장으로 J.C.R. Licklider을 임명하였다.
    그의 임무는 SAGE 프로그램 연구를 더 발전시키어, 우주핵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하는 것이었다.
    Licklidersms IPTO내에서 전국규모의 통신망의 잠재적 실익을 전도하여,
    그의 비젼을 구체화하기 위해 채용한 Lawrence Roberts 후계자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Roberts는 RAND에서 Paul Baran이, 그리고 수년 후에는 영국 국립물리연구소의 Donald Davies에 의해 개발된
    패킷스위치의 신 개념에 기반한 네트워크의 개발을 주도하였다.
    특수 컴퓨터는 이러한 설계를 실현시키도록 개발된 Interface Message Processor로 불리었는데,
    이 ARPANET 컴퓨터는 1969년 10월초까지 운영되었다.

    LA 캘리포니아대학교의 Leonard Kleinrock연구소와 스탠포드연구소의 Douglas Engelbart센터간의 첫번통신이 이뤄졌다.
    ARPANET상에 사용된 처음 네트워크 프로토콜은 네트워크 콘트롤 프로토콜 프로그램이었다.

    1983년에 이것은 Wby Robert Kahn, Vinton Cerf 등드이 개발한 TCP/IP 프로토콜로 대체되었다.
    이는 급속히 세계에서 가장광범하게 사용되는 네트워크 프로토콜이되었다.

    1990년에 ARPANET 은 퇴역하고, NSFNET으로 인계되었다.
    이 NSFNET은 곧 CSNET에 연결되어 북미전반의 범용링크를 이루게 되었고,
    그리고 나서 EUnet에 연결하여 유럽의 연구기관에도 연결하게 되었다.
    NSF의 투명경영의 덕택에 폭발적으로 웹의 인기는 확대되었다.
    1990년 이후 보급된 인터넷 이용은, 1995년부터는 미 정부가 그 관리를 독립기구에 이전하면서 촉발되면서, 기속화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Intrnet World States)


    인터넷 초기보급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세계(천개)
               
    Host
    1,776
    3,212
    8,200
    16,726
    26,053
    36,739
    Domain
    26
    46
    120
    448
    1,301
     
    한국(개)
               
    Host  
    13,856
    36,644
    73,191
    131,005
    202,510
    Domaim  
    192
    579
    2,664
    8,045
    26,166
    IPS(개)  
    11
    16
    21
    26
    26
    접속(천)    
    366
    731
    1,634
    3,103
    *자료 :정통부, 정보통신백서

    세계 인터넷 사용인구 통계

    지역

    인구
    ( 2011e)

    인터넷이용자
    2000
    .12.31

    인터넷이용자
    최신데이타

    인 구대 비

    성장율
    (2000-11)

    세계 구성비

    세 계

    6,930,055,154

    360,985,492

    2,267,233,742

    32.7

    528.1

    100.0

    북미주

    347,394,870

    108,096,800

    273,067,546

    78.6

    152.6

    12.0

    아시아

    3,879,740,877

    114,304,000

    1,016,799,076

    26.2

    789.6

    44.8

    (한국) 48,754,657 19,040,000 40,329,660
    82.7
    110.0
    4.0
    유 럽

    816,426,346

    105,096,093

    500,723,686

    61.3

    376.4

    22.1

    중 동

    216,258,843

    3,284,800

    77,020,995

    35.6

    2,244.8

    3.4

    대양주

    35,426,995

    7,620,480

    23,927,457

    67.5

    214.0

    1.1

    중남미.

    597,283,165

    18,068,919

    235,819,740

    39.5

    1,205.1

    10.4

    아프리카

    1,037,524,058

    4,514,400

    139,875,242

    13.5

    2,988.4

    6.2

    자료:Internet World States(2011.12.31)

    주요국 이동전화와 인터넷 사용자(1000명)
    이동전화보급(2010년)
    인터넷 보급(2009년)
    1.중국
    859,000
    1.중국
    389,000
    2.인도
    752,000
    2.미국
    245,000
    3.미국
    279,000
    3.일본
    99,182
    4.러시아
    238,000
    4.브라질
    75,982
    5.인도네시아
    220,000
    5.독일
    65,125
    6.브라질
    202,944
    6.인도
    61,338
    7.베트남
    154,000
    7.영국
    51,444
    8.일본
    121,000
    8.프랑스
    45,262
    9.파키스탄
    111,000
    9.나이제리아
    43,853
    10.독일
    105,000
    10.러시아
    40,853
    26. 한국
    50,767
    11.한국
    39,400
    CIA World Fact Book(2012.5.17)

    정보화지표

    정보화지수(2009)
    전자정부지수(2010)
    초고속인터넷가입자(2009)
    8.한국
    87
    1.한국
    0.8785
    5.한국
    33.5%
    1.스웨덴
    95
    >1.한국
    0.8785
    1.화란
    37.1
    2.화란
    91
    2.미국
    0.8510
    2.덴마크
    37.1
    3.한국
    90
    3.카나다
    0.8448
    3.스위스
    35.6
    4.스위스
    90
    4.영국
    0.8147
    4.놀웨이
    33.9
    5.덴마크
    89
    5.화란
    0.8097
    5.한국
    33.5
    6.홍콩
    89
    6.놀웨이
    0.8020
    6.아이슬랜드
    32.8
    7.영국
    88
    7.덴마크
    0.7872
    7.스웨덴
    32.4
    8.미국
    88
    8.호주
    0.7863
    8.룩셈불크
    31.9
    9.놀웨이
    88
    9.스페인
    0.7516
    9.프랑스
    30.4
    10.일본
    85
    10.프랑스
    0.7510
    10.독일
    30.4
    43.중국
    13
    18.일본
    0.7151
    15.미국
    26.4
            16.일본
    24.8
    - NIA(한국전산원) OECD,Topicstatsportal

    한국 전자상거래 규모

    (10억원)
      2005년 2008년 2009년
    총 규모
    358,450
    630,087
    672,478
       B 2 B
    319,202
    560,255
    592,965
       B 2 G
    29,036
    52,266
    59,455
       B 2 C
    7,921
    11,359
    12,045
       기  타
    2,292
    6,207
    8,012
     

    2000년말 세계 인터넷 인구는 4억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한국은 2천만 명 이상으로 보고있다.
    우리 나라는 2001년말 Host수는 694,2006개 접속 서비스 매출액은,1997년 536억원, 1998년 887억원, 1999년 2,199억원으로 집계되었다.

    세계의 전자상거래 시장은 1996년에 5.1억불, 1997년에 11.3억불, 1998년에 23.7억불, 1999년에 39.9억불이었고
    2000년에는 85.7억불이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1996년부터 차례로 14억원 62억원 150억원 344억원이되어,2000년에는 813억불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WEFA분석

              1998년    1999년    2000년     

    세  계    770억불   3,400     1조700

    미  국    587       2,156      5,414

    한  국     3.54       21.68      96.13

    B. Paradigm shifting

    이러한 폭증하는 수요와 더불어 각 분야의 수용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즉 가정에서는 비디오 오디오 사용의 통합 및 간소화가 요구되고 있고,
    개인의 사생활 보호문제, 교육분야의 저가보급과 확장성, 연구분야의 고성능화 요구,
    회사내의 인트라넷 지원, 상업분야에서 거래의 보안성과 신뢰성 확보의 문제등이다.

    디지털화 시대의 소비자 요구가 인터넷의 출현으로 인하여,
     보다 광범한 영역에 걸쳐 변혁을 가져오면서, 정보화의 접근과 융화와 사회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범세계적으로 격지자간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여,
    다양한 정보 수집과 상품구매가 가능해 졌으며,
    편의성 면에서 One stop 서비스로 시간과 비용의 절감을 기할 수 있다.
    Marshall McLuhan은 지구촌(Global Village)의 등장을 말하고 있다.

    자동차 구매정보, 보험 설계정보, 문화 행사정보 등, 보다 완벽한 정보를 획득 할 수 있게 되었다.
    규격상의 맞춤형 거래와 가격상의 공개된 경쟁가격으로 거래가 이뤄 질 수 있다.

    인터넷의 효용성은 무엇보다도 범 세계적으로 광범한 정보 접근성에 있다.
    누구나 백악관에서든, 루불 박물관에서든, 심지어 정보부처에서까지도 정보를 입수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사회 양태를 변화 시켜 C&C와 IT와 더불어 변모된 사회로서,
    사이버의 시공은 시간 공간 속도의 한계를 극복할 것이며, 다대다 직접연결이 보편화 될 것이다.


    P. 드러커의 지식사회에서는 재화와 서비스에서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한 자가, 신 권력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A.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 씻기는 사회에서는 Electronic 주택과 DIY와 같은 신조어 Prosumer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변화의 자체 페러다임이 전환되므로 대 변혁을 불러오는 것이다. 즉

    Changing Paradigm Shift
    전통적 양식
    새로운 조명
    지속적인 개선
    (Continuous Improvement)
    혁신적 개혁
    (Quantum Leap)
    대량생산
    (Mass Production)
    고객만족
    (Mass Customization)
    에너지 자원
    (Energy)
    정보와 지식
    (Information & Knowledge)
    경직된 (톱니)조직
    (Just In Time)
    유연한 조직
    (Quick Response)
    자국생산
    (Nationa manufecturing)
    글로벌 생산
    (Global & Virtual Manufecturing)

       C.시공통합 경영과 미래가치

    고객주문형 즉시 생산 배송의 유통 혁명이 이뤄지고, 관련 산업의 융합과 세계시장의 통합화가 진행된다.
    세계는 정보로 얽혀지는 Global 정보 네트워크 사회가 된다.
    이러한 정보네트워크 사회를 장래 사회 변혁요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 경 영 전 략
      사업정책 마케팅전략 운영전략
    복합성
    이동표적전략 대박전략 리스크헤칭
    개체성
    비젼제시 표적마케팅  
    가상성
      가상네트워크 디지털신경망
    자료:삼성연구소

    미국은 21세기 세계전략의 집중분야로서,S/W산업, 정보안프라, 슈퍼컴퓨터, 정보교육 등을 열거한바 있다.

    D.Web상 신메타표현 리모델링 국제활동(신SOC구축)

    -- 산업분야에서 국제표준화 선도 선착--

    4.사회의 연성화

    A.신시대의 창의와 기술융합
    B. 미래사회와 신문명


         감성적 퇴락(감성의 분출)
    [참고] *감정의 거시사회학:J.M.바바렛 2007 (331.1-7-4)
    *감정과 이성: 리처드 레저러스 1997(181.71-래314ㄱ정
    *감정사회학의 전개 :선율위 2006,(J331.16-23)
    *감정사회학 :이성식 전신현 1995 (331.2-01-379ㄱ)
    *감정과 이미지 사회학 이론:최항섭 2007(331.01-7-20
    *(감정을 처리하는)3분터치 :조지프랫, 피터램브로 2007(513.891-7-1)
    *4가지 감정의 치유 :제임스돕슨 1998(234.9돕796ㄴ남)

    A.신시대의 창의와 기술 융합

    감정지수가 높은 곳을 찾아라(문화 고부가가치)

         오감기관의 반응 속도와 만족도 분석 감지
        


    오감 감각기관(두뇌의 창)을 창의적 습관으로 길들여라.


    (1)눈으로 보라. 그러나 많이보고, 달리보라.

    • 여기저기 사방 다니며 많이보라.
    • 경청하라.
    • 달리보라
    • 과제의 입장에 연결하라
    • 의심을 품어라
    (2) 귀로 들어라.
    • 새 소식을 들어라.
    • 다른사람의 소리를 들어라.
    • 달리 들어라.
    (3) 마음으로 느껴라.
    • 화내지마라.
    • 감정의 뿌리를 존중하라.
    • 이해하라.
    (4)머리로 생각하라.
    • 인과관계를 생각하라.
    • 정리된 지식을 첨삭하라.
    (5) 메모 정리하라.
  • 기각 축적 수정 유보 연기 반응 파기(망각) 등으로 종합하라.

    아이디어 발상법

    원칙 : 많이보라.

    다른 눈으로 보라. 의문을 품어라.
    다른 사람의 불평을 경청하라.긍정적 생각을 갖으라.
    메모하라. 미결문제를 확인하여 생각하라.
    주의 깊게 관찰하라. 처음으로 돌돌아가라 .

    종류 :


    (1)Brain Stroming (1939년 F. 오스본)

    (2) 체크리스트법
    Osborn의 75개 질문서 요약의

    위계획 사고기법 :
    잠재적 문제분석법, 연구계획 다이어그램, PERT
    THINKING WAYs(Divergent, Convergent, Integrated, Behavioural)

    (3)SWOT
    ---내부환경분석(Strength, Weakness)
    ---외부환경분석(Opportunities, Treats)

    (4) TRIZ 기법
    (5) G. Altshuller의 40만가지 발명원리로 모순극복 : Teoriya Reshniya Ibretateiskikh Zadatch)

    (6) 연상법

     

    아이디어 발상의 환경조성
    • 자유확보: 장애물(위계조직 인맥지맥 친인척 미신)을 지워라.
      과욕(출세 돈 잡기)을 절제하라.
    • 여유공간을 가져라: 별도+3시간시간 인생,
      잠념제거, 갈등해소, 건강여유
    • 잘 보이는 곳으로 나아가라: 경계선 끝으로 나가라.
      새로운 어휘에 귀를 기울이라.
      오래되면 헌것이되기쉽다 새분야로 나가라.
    발상의 야기
    • 분노 부정 발광으로 기존체제 휘젓기(Storming)
    • 처음으로 되돌아가기.(Feedback)
    • 긍정적 공상으로 날개를 펴라
    • 현상을 압축하고, 미결문제의 변환을 기도하라.

      * 정보화 사회의 핵심은 Know-where와 Prosumption을 간파해야함


      * Triple Soft Power는 high Logic(이성적), high Touch(감성적), high Tech(기술적)에서 나온다.

      감성과 창조


      감성사회학 관련 서적 내용

      감정의 거시사회학(J.바바렛)
      Prologue
      1.사회적 삶과 사회이론속의 감정
      감정사회학: 이상한 커플
      사회학의 기원속의 감정
      사회학에서의 감정의 추방
      감정의 새로운 부상
      구성주의와 문화
      감정의 통일성

      2. 감정과 합리성
      서론
      전통적 접근방식 :
      ---합리성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감정
      급진적 접근방식 :
      ---연속적인 것으로서의 감정과 합리성
      이성과 감정의 구분의 토대

      3. 계급과 분노
      서론
      계급과 계급의 분노
      계급 불평등과 분노
      경기순환과 분노
      감정의 사회적 차원

      4.행위와 신뢰
      서론
      신뢰
      신뢰와 행위 이론
      기업신뢰의 사례
      결론

      5. 순응과 수치심
      서론
      동정심과 아덤스미스
      스미스의 숨어있는 수치심
      다윈과 내적과정
      셰프와 눈에 띄지않는 수치심
      수치심의 감퇴
      수치심의 사회적 토대
      결론

      6.권리 분노 복수심
      서론
      동정심
      복수심과 분노
      사회에서의 기본적인 욕구
      기본권의 역사적 기원과 목적
      결론

      7.공포와 변동
      서론
      기본감정으로서의 공포
      위험과 공포
      사회적 공포와 감정적 분위기
      엘리트의 공포분위기와 사회변동
      엘리트의 공포와 변동
      결론

      epilogue
      오늘날 일상에서의 감정의 지위
      축소되는세계
      졸아드는 감정
      자본주의 비판과 감정의 동학
      관리되는 마음
      관리되지 않는 마음
      시간성
      지적전통과 사회학의 고전들
      참고문헌

      감정과 이성(리처드 레저러)
      머리말
      1내용소개

      제1부 개별적 감정들의 초상
      2.위험한 감정들:분노 선망 질투
      3.실존적 감정들 : 불안/공포 죄책감 수치
      4.삶의 나쁜 조건에 의해 자극되는 감정들 :
      ---안도감 희망 슬픔과 우울
      5.삶의 좋은 조건에 의해 자극되는 정보들 :
      ---행복감 긍지 사랑
      6. 감정 이입의결과들 :
      ---감사 동정심 미학적 경험의 감정
      제2부 감정을 이해하는 방법
      7. 감정의 구성요소
      8. 감정에 대처하고 관리하기
      9. 생물적 조건과 문화가 감정에 미치는 영향
      10. 감정의 논리
      제3부 감정과 현실
      11. 스트레스와 감정
      12. 감정과 건강
      13. 대처에 실패할 때
      14. 마지막 생각들
      옮기고 나서
      感情社會學의 展開

      서언
      제1장 감정의 사회적 세계
        (船津 衛 日 放送大敎授)
        제1절 感情社會學의 동향
        제2절 감정의 사회적 구조
        제3절 감정 work, 감정 조작
        제4절 감정의 새로운 구조

      제2장 감정 조작
        (崎山 治男 立命大 助敎授)
      서론
        제1절 조작된 마음/안된 마음
        제2절 자기 마음과 타인 마음:
          감정을 통한 인간관계 조작
        제3절 타인의 감정조작의 양의성
        제4절 마음에 의한 통제

      제3장 감정노동
        (三井 사요 日法政大 講師)
        제1절감정노동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제2절 백의의 천사상:직업과 인격의 과도한 결합
        제3절 한번더 직업과 인격을 한데 묶기
        제4절 직업과 관계의존적 상황의존적 자기와의 관계
           --감정노동론의 잠재력 --
        제5절 감정노동의 잠재력을 일으키기 위해

      제4장 자기감정
        (小川祐喜子 日 東洋大)
      서론
        제1절 감정의 사회성
        제2절거울로서의 타인
        제3절자기감정의 사회성
        제4절자기감정의 생성
        제5절 자기의식적 자기감정

      제5장 타인 감정
        (李晟台 日 學術振興會)
      처음에
        제1절 A. R. Hochschild 에 있어서의 감정관리
        제2절 감정관리와 타인감정
        제3절 감정의 공동체와 타인
      결론

      제6장 수치와 조의 감정
      (永房 典之 東京文化大)
        제1절 대인불안으로서의 수치의 감정
        제2절 사회정 감정으로서의 수치와 죄
        제3절 수치와 죄의 감정과 사회적응
        제4절 수치문화와 죄의 문화

      제7장 상실감정
      (新島 典子 東京大 講師)
      처음에
        제1절 상실 감정이란
        제2절 Best 상실의 상실감정
        제3절 상실감정에의 보다 좋은 대처

      제8장 소외감정
      (橫山壽世理 日 聖學大)
        제1절 소외된 당사자
        제2절 소외체험에 기한 아이덴티티 형성
        제3절 일반화된 타인
        제4절 시간으로부터의 소외
        제5절 소외의 의미

       *船津 衛 편저 北樹出版社 간행(2006.1.25)
      ?
      감정사회학
      서문
      제1장 감정사회학에서의 주요과제
      1. 감정에대한 미시적 접근
      1) 감정의 형성
      2) 동기요인으로서의 감정
      3) 매개요인으로서의 감정
      2. 감정에 대한 거시적 접근
      1)감정경험과 감정문화의 형성
      2) 조직화 원리로서의 감정
      3.결론

      제2장 감정의 사회화와 감정구성
      1.감정의 사회화와 구성
      2.사회통제와 역활담당 감정
      3결론

      제3장 감정작용, 감정규칙, 사회구조
      1.감정에 대한 두가지 설명
      2. 감정작용
      3. 감정규칙
      4.구성틀로서의 규칙과 감정규칙
      ---이데올로기에서의 이슈
      5. 감정규칙과 사회교환
      6. 감정의 상품화
      7. 계급 자녀양육 그리고 감정작용
      8.요약 및 결론

      제4장 감정사회학에있어서ㅡ구성주의와 질증주의 접근
      1.감정과 생물학
      2. 감정에 대한 문화적 결정
      3. 상황분석, 해석 정의
      4. 감정의 연구에 있어서 문화
      5. 결론

      제5장 일차적 감정과 이차적 감정
      1.일차적 감정에 대한 접근
      2.일차적 감정
      1) 진화론적 가치
      2) 개체발생적 중요성
      3) 문화 보편성
      4)자율신경적 분화
      5)사회관계, 감정 그리고 신경화학
      3. 이차적 감정의 사회구성
      1) 죄책감
      2) 자부심
      3) 수치심
      4 결론

      제6장 감정문화 감정 자아
      1.감정과 자아
      2.제도적 충동적 감정문화
      1) 감정어휘
      2) 감정의 요소들
      3) 감정관리
      3. 감정에 대한 제도적 충동적 이론
      4. 결론

      제7장 사회구조와 감정
      1. 사회구조와 감정에대한 이론적 쟁점
      2.감정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의 정의
      3. 감정의 분화
      1) 감정규정에 있어서의 분화
      2) 감정어휘
      3) 감정의 사회구조적 분화에 대한 분석
      4. 감정의 사회화
      1) 사회화 과정
      2) 사회화에 대한 사회구조적 연구
      5. 감정관리
      1) 감정규범의 성격
      2) 공식적인 감정문화
      3) 감정의 제도화
      4) 개인의 사회구조에 대한 영향
      6. 결론

      제8장 사회구조에 있어 감정의 역할
      1.거시사회학의 미시적 기초로서의 감정
      2. 상호행위의례연결이론
      1)대화적(혹은 문화적)자원
      2) 감정적 에너지
      3. 문화적, 감정적 자원으로서의 상호작용
      4. 거시구조의 영향



       

    • B.미래사회와 신문명

       

      • 앞으로 2000년대에 태어나는 사람은 앞으로 그 생애에 직면할 것들을 상상한다면,
        우선 현재 사회의 조직의 근간인 가정과 국가의 조직력이 붕괴되고, 개인(민)주의화가 진행 될 것이다.
        호적이 없어지고, 손쉽게 다국적 영주권 패스포트(여권)를 소지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윤리나 종교 등의 사상체계는 허물어지고, 개인적 판단에 좌우될 것이다.

        사회적 가치관도 크게 바뀌어 진부한 이론적 사상가나 지식인보다는
        기예 숙달자와 끼 많은 돌출행동자가 대중의 무지성화의 틈새를 이용,
         대중의 인기를 업고, 지도자로 등장한다면,
        과연 미래의 변화를 충격이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배우나 탈랜트 가수 운동선수등의 감성 의존형 인사의 정치진출은 급증할 것이다.

        고도 정보화 사회의 구조변환
        공업화 사회
        고도정보화 사회
        규격화
        탈규격화
        분업화
        협동화
        동시화
        개별화
        집중화
        분산화
        극대화
        적정화
        중앙집적화
        분권화
        *정보사회와 멀티 메디아 세계:나상동 홍능과학출판사 2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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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事經濟探索>
Chairman Report No.9(2009.09.15.회원의날)


1. 미국發 글로벌 金融危機



     지난 2008년 9월 15일, 세계4대 투자은행이었던, 158년 역사의 리먼부러더스가 파산하였고,
94년 역사의 메릴린치가 BOA(Bank of America)에 팔리면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하였다.

     어떤 일이 벌어 졌기에, 이토록 한국에까지도 투자, 소비, 그리고 무역의 감소와 불황을 안겨주게 된 것인가.
그 원인으로서 인간의 탐욕에 의한 파생상품의 진화, 미 공화당정부나, 신자유주의,
심지어 자본주의가치 자체 등등 온갖 비난들을 무책임하게 쏟아내고 있다.

金融工學과 派生金融商品

     이른바 금융공학에 의한 파생금융 상품으로 나타난 탐욕의 실현 도구로서 진화하여 결국은 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직접 연관성은 무엇보다도 저소득층에 대한 비우량 주택담보(모기지)장기 대출,
이른바 서브 프라임모기지 대출 시장의 무분별한 팽창이 제일 클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한국주택건설 시장에서도 최근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어 우려되는 바가 큰지라,
우리는 그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내막을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구입 주택을 담보(모기지)로 주택구입자금을 보통 30년 원리금 분할상환으로 빌려주는 것이 일반적 관례이다.
미국에서는 전액 일괄지불로서 집을 사는 예는 거의 없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이와 유사한 저소득층 내집마련 주택담보대출이 급증추세가 우려됨)
1930년대 대공황시기에도 은행은 워낙 장기대출인지라 대출에 대한 인센티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1938년 루즈벨트 정부에서는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Fannie Mae라는 정부기구를 만들어,
은행들이 정부보증을 받은 모기지 대출 자산을 매입해 주어서,
은행은 이 매각 자금으로 새로운 모기지 사업을 확대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곧 모기지대출의 위험을 정부에 떠넘기는 것이 된다.

     1968년에 미 의회에서는 이 Fannie Mae에 대한 효율성과 월남전으로 인한 재정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이 회사를 주식회사로 민영화해서 증권시장에 상장시키면서 일반 모기지 매입도 허용하였다.
(그 이전에는 정부보증분만 매입허용)

     이어 1970년에는 경쟁도입을 위해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Freddie Mae를 설립하였다.
그런데 68년에 Fannie Mae를 민영화 하면서, 모기지 채권보증 국영기업인 Ginnie Mae를 설립하여,
70년부터는 MBS (Mortgage-backed securities)에 대한 보증을 시작하였다.

바로 이 MBS가 불씨의 원천이 되었다.(우리나라 MBC가 아님)

     즉 MBS를 만들고자 하는 회사는 은행이 가지고 있는 모기기 대출 자산을 매입해서,
이들을 모아 풀을 만들어 이 풀 자산을 담보로 새로운 채권을 발행해서 투자자에게 팔고,
모기지 풀에서 발생하는 원리금을 투자자에게 넘겨준다.
     그런데 Ginnie Mae는 사실상 정부기관이므로 정부정책에 의해서 발생된 모기지만 보증하였고,
여타 MBS는 monoline이라는 일반 채권보증회사들이 해주게 되었다.
이처럼 은행이 쓸 수 없는 은행자산(모기지)을 채권으로 유동화시켜 주어,
이 채권이 미국은 물론 세계(특히 유럽)의 은행에 팔려나갔다.

     이 채권을 팔아 미국으로 되돌아온 은행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리면서, 전 세계 금융이 미국부동산에 연동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클링턴 민주당 정부에서는 1995년 저소득층 주택마련을 위해 서브프라임 즉 불량 모기지의 매입을 허용하였지만,
Fennie Mae, Freddie Mae나 대형은행들은 이미 프라임 모기지만으로도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으므로 참여에는 소극적이었다.

     결국 이에 모기지 전문회사들이 이를 장악하여, 모노라인의 보증을 배경으로 공격 마켓팅으로
주로 변동금리의 서브프라임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부동산시장도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특히 이자율의 지속적 하락과 97년의 양도차익 과세율인하로 인해 서브프라임과 부동산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이에 그동안 점잔을 빼오던 대형 은행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자,
98년 서브프라임 대출 규모는 5년 전 보다 4배나 오른 1,450억 달러에 달하였다.

     이 같은 열기에 따라 MBS와 같은 파생상품들이 진화하여, MBS와 잡다한 채권들을 한데 묶어 풀을 만들고,
이 풀을 담보로 우선순위가 다른 여러 trenche로 쪼개서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또다시 채권을 발행하기도하였다.
     그런데 이는 위험도를 평가하기도 어렵지만, 근본적으로 구조적 거래유착관계가 있는 신용평가사들은
당연히 후한 평가를 하기마련이고, 심지어 발행자가 평가자에 대한 이른바 rate shopping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危機의 初期 徵候들에 대한
갈팡질팡 金利政策


     새 세기 2000년에 접어들면서 미국경제에는 악재가 연속적으로 나타났다.
2000년 3월을 피크로 닷컴 버블이 꺼지기 시작했고, 2001년에는 연초부터 불경기가 시작되던 중
9월11일에는 무역센터 테러로 투자심리가 급랭하였다.
     그리고 연말에는 대형 에너지회사인 Enrons를 비롯해서 여러 회사의 회계 부정사건이 터져 나오더니,
결국 Arthur Anderson이 문을 닫았다.

     이처럼 경기하락 조짐에 FED(연준)에서는 당시 6.5%하던 금리를 계속 인하해서 2003년 6월에는 1%로까지 내려갔다.
이런 저금리로 인해 모기지 대출 수요가 급증하여, 2003년에는 신규 대출이 4조 달러에 이르렀다.
     저금리 대출로 갈아타기와 주택에 대한 주거용 이외에 주택투자용 대출도 늘어났다.
물론 대출경쟁이 격화되면서 서브프라임 시장도 급성장하였고,
이제는 심지어 공공적 성격이었던 Fannie와 Freddie까지도 서브프라임 시장에 뛰어들어
2004년에는 서브프라임 MBS채권 발행의 44%를 점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서 도덕적 해이는 이미 막가고 있는 실정이었음)

     이러한 저금리정책과 그에 따른 금융공학에 의한 파생상품의 출현, IT산업발전으로 인한 주택수요의 팽창, 주택가격의 상승 등등
이러한 선순환구조에 금융기관의 대출심사 완화라는 도덕적 해이로 인해
서브프라임 대출이 폭증해 이른바 묻지마식 은행대출이 성행하였다.
     이에 놀라 FED에서는 2004년 6월말부터 기준금리를 0.25%씩 2년간 연속 17회를 인상시켜, 5.25%에 도달하였고,
그 후 2년 동안 이를 지속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번에는 모기지 이자율 증가에 따라 연체율도 증가하자 MBS가격이 하락하고, 모기지 대출증가도 한풀 꺾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융회사나 헤지펀드들은 1조 달러 이상의 모기지 채권을 보유하고 있었고,
심지어 Fennie Mae와 Freddie Mae도 2,500억 달러의 MBS를 발행하고 있었다.
이때 가장 공격적 영업으로 기록적 순익을 내었던 것이 바로 Lehman Brothers이었다.

     2007년 2월에 미국 최대 모기지회사인 NCF(New Centry Finacial)의 분식회계와 내부거래가 밝혀져,
주가가 폭락하여 파산보호신청하기에 이르렀으나, 이때만 해도 당국자들은 이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이어 2007년 6월에 막대한 자금을 차입해서, CDO에 투자한 Bear Sterns 헤지펀드 3개에 대한 신용평가등급이 하락되자, 결국 파산하게 되었다.
이어 다음해 2008년 3월에는 이 Bear Sterns의 유동성 위기설이 나오자
FED에서는 이를 구제하기 위해 시장에 2,000억 달러의 자금을 풀 것을 발표하자, 오히려 시장에 확인시켜준 셈이 되어 몰락은 가속화되어,
     결국 16일에는 정부알선으로 JP Morgan Chase에 주당 2달러(추후 10달러로 조정)에 매각되었다.
결국 정부에서 29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함으로서 대마불사인식을 키웠다.

     이쯤에 이르자 6월 중순부터 Fennie와 Freddie Mae주가가 폭락하면서 신용경색이 확산되어 악순환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7월 13일에는 긴급구제 금융계획을 발표했고, 이틀 뒤에는 공매도규제를 선언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결국 9월 7일에 두 Fennie와 Freddie Mae 두 회사를 국유화키로 하고
각각 1,000억 달러를 지원키로 하였지만 이들 주가는 80%나 폭락하였다.
물론 이 두 회사가 파산한다면 시장이 초토화 될 것이 뻔했지만,
어떻든 미 정부는 7,740억 달러를 투입하면서(이는 당시 한국 외환보유고의 4배의 규모임),
대마불사는 또 확인시켜준 셈이 되었고, 특히 공적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심해졌다.

     잔인한 2008년 9월에는
Leman Brothers, AIG, Citigroup, 투자은행, GM 등자동차 회사에게로 파급되었다.
Lehman Brothers는 부동산 금융상품에 공격적으로 투자해서 모기지 시장 위축에 민감하여 파산의 지경에 이르자
     정부는 9월12일에 파산보호신청을 하기에 이르러 15일에 파산결정이 내려졌다.
16일에 정부에서는, MBS에 대한 일종의 보험증서인 CDS(Credit default swap)를 대량으로 매도하였던,
대형보험회사인 AIG의 파산위기에 대해서 85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키로 하였다.
이어 Merrill Lynch는 BOA에 매각한다고 발표하였다.
     21일에는 Morgan Stanley와 Goldman Sachs는 독립된 투자은행을 포기하고, 은행지주회사로 전환을 선언하였다.
11월에는 Citigroup이, 12월에는 GM과 Chrysler도 구제 금융을 받게 되었다.
이쯤에서 거의 공항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미 정부에서는 9월 28일에 Paulson 재무장관이 모기지 관련 불실자산을 모두 매수해주겠다는
TARP (Troubled Asset Relief Program)을 발표한 바 있으나,
격론 끝에, 2009년 2월 17일에 7,870억 달러의 재정지출을 승인하는 “미국 회복 재투자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3월 23일에는 민관합작 기금계획을 발표하여, 겉으로는 국민 세금을 그리 쓰지 않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은행과 참여 펀드에 풋옵션 형태의 보조금을 주는 셈이 되어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유럽 金融市場을 强打하였다.


     서브프라임 상품에 투자한 독일 중소기업은행인 IKB, 화란의 NIBC,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 Paribas의 3개 펀드가 타격을 입었다.
이에 은행 간에도 믿지 못하는신뢰의 위기가 발생하여, 이는 신용경색으로 이어져, overnight loan 금리가 급등하는 등,
런던 금융시장이 크게 위축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현금 확보 차원에서의 주식매도로 인한 증시의 위축과, 해외 소비수요 급감으로 나타났고,
수출 수입 규모의 대폭 감소가 불경기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1년의 후유증을 겪으면서 G20회의가 개최되어, 재정투자 증대를 비롯한 세계 공조가 논의되고 있으며,
최근 일부호전 기미를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아직 탈출정책보다는 재정 지출 확대에 의한 경기보정을 권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9.9.15 회원의 날, Chairman Report에서)


<요약정리>
美國發 金融危機의 震源
-서브프라임 모기지-


2008.9.15 : 금융위기의 촉발
o Lehman Brothers 파산
o Merrill Lynch의 BOA에 매각
  Mortgage 시장정책의 진화
o 저소득층의 주택장려정책(1939)
   - Fannie Mae(FMNA) 설립
   - MBS(정부보증 모기지 채권보증서)등장
   - MBS Pool 분할채권(CDO) 발행
o Fannie Mae 민영화 상장
o Freddie Mae과 Ginnie Mae(GNMA) 등장
   不景氣 持續
o Dot com 버블 붕괘(2003.3)
o 불경기와 9.11 사태
o Enron회계부정으로 Arthur Anderson 폐쇄
   低金利 持續과 金利引上 反復
o연속 3년 기준금리 2% 저수준 견지(6.5%->1%)
   -> 주택에의 투자수요 촉발(묻지 마식 투자)
   -> 기준금리 0.25%식 17회 인상(5.25%)

   결과: 연체증가->MBS가 하락 ->주택가 하락

정부 의존형 大馬不死와 道德的 解弛 지속
   -> 주택가격 지지로 2,500만달러 MBS 발행
   -> New Century Financial 수익수정
   ->주가폭락->파산신청
   -> 당국 인식착오로 고금리(5.25%)지속
2007.6 : CDO가격 하락->헤지펀드 파산
   -> MBS금융자산가 위축->은행평가손
   -> 보유위험자산 매각 ->악순환 반복
2008.3 : Bear Sterns 유동성 문제 발생
   구제자금(2천억불) 풀자, 오히혀 몰락
   JP Morgan의 Chase에 매각(주당10달러)
2008.9.7 : MBS 대폭락
   -> 두 F사 국유화에 1,000억불투입
   -> 주가 80%추락
   -> 대형 CDS(채권보증서)발행사 AIG타격
   -> 정부서 두 F사에 7,440억 불 투입
   -> AIG 영국지사분 대응과 보나스 사태
2008.9.15 Lehman Brothers 파산 신청
   Merrill Lynch, BOA에 인수돼
   AIG에 850억 투입해 국유화
2008.9.18 7,000억 달러 정부구제금융 발표
2008.9.21 Morgan Stanley와 Goldman Soch 투자업무 손 떼고 은행 지주회사로 전환
2008.9.25 워싱턴 뮤추얼펀드 (최대은행)파산
2008.9.28 : Pauelson 재무장관 TARP발표 ->10월3일 의회통과( 7,000억불 )
   Citigroup의 와코비 인수를 예금보험공사 (FDIC)에서 승인
2009.2.17 : 7,870억불 재정구제금융 통과
2009.3.23 : 민관합작기금계획발표

過去 主要 金融危機

1918년 이후 48건, 20세기 들어서 반복된 12건의 금융위기 과정을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새로운 혁신이나 시장변화-->호황국면진입(낙관론지속)
      -->투자기회증대와 신용확대 --> 버블형성과 붕괴
      -->금융시스템 불안-->경제전반에의 충격
      -->최종대부자(정부나 국제기구)개입-->불황(장기침체)

1667년 화란 튜립 붐
1720년 South Sea bubble
1720년 프랑스 미시시피회사 버블
1907년 미국금융공황
1929~33년 증권시장 붕괴와 대공황
   고용, 생산 저하에 이어 10월의 증시붕괴
   기간중 9,755개 은행도산, GNP26.5% 감소,
   주가829.2% 하락, 실업률(8.7%에서) 24.9%
1973년 석유가 파동
1970년대 중남미 개도국 외채위기
1979년 석유가 파동

1980년대 개도국 외채(워싱턴 컨센서스)
1984~92년 미국 저축대부조합(S&&L)위기, 저중소득층 주택융자조합에 대한 금융자유화
   고금리에 다른 수지악화 만회를 위한 부동산과잉투자
   1,147개금융기관 도산
1991~3 북구 3국 금융위기
   대외자유화로 인한 금리상승 및 규제완화에 따른 증폭(4~9배)된 부동산 버블의 붕괴
   부실채권증가와 금융기관도산 마이너스성장
1991~2002.1 일본 금융위기
   85년 이후 금융완화 및 자유화 정책으로 기준금리인하(2.5%)로 주가(3배) 지가(3배)상승
   자산가격 억제를 위한 갑작스런 긴축으로 버블붕괴
142개 금융기관 도산, 1% 저성장 10년지속
1994년 멕시코 페소 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워싱턴 컨센서스)
1995~2000 나스닥 주식 버블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
1999년 에쿠아돌 금융위기
2001년 아르헨티나 금융위기
2008.9 미국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세계 마이너스성장(09년)예상

先進國(美國)發 金融危機 背景

      고소비 저 저축, 외환 편중누적
      투자은행의 레버리지규제(16배) 철폐로 단기자금 20~20배 차입
      미국과잉유동성, 기술주등락
      미국의 불경기와 9.11사태
      저소득층 주택보급정책과 지역 개발법
      자본주의적 이익추구탐욕(NINJA에게 무보증 무서류 대출)
      파생금융상품 개발로 고위험 누적지속
      국제금융기구 역할 쇄약
      저금리 지속과 고금리 시행의 부적시성
      국제유동성 급증(810조불->7,670조 일일거래40조불) (2007년 세계 GDP530조불)
      탐욕의 진화 반복(담보물, 부채의 유동자산화)
         M->MBS, CB->CMO(Low tranche "toxic물) ->CDO(1990)->
               MBS, CMO:70억불, ABS 21억불(2006년말)
      Subprime M loans :2002:+6.9% 2003:7.9%
         2004:+18.2%,2005:20%, 2006:20.6%
      모기지의 증권화 9%(2002)->40%(2006)

      결국 미국 자동차 등 제조업계를 강타하고,
      세계금융 불안과 경제 불황으로 이어져.
         - 특히 파생상품에 손댄 유럽국가와
         - 외환부족 개도국 타격심해

구제금융과 세계금융계 재편(2008.12.31현재, 10억달러)
국가 은행명 구제금융 자산액 변동사항
미국 JPMorgan
25.0
2,180
Bear Stren인수
  BOA
45.0
2,500
메리린치인수
웰스파고
25.0
1,300
와코비아인수
Citigroup
60.0
1,950
 
Goldman Sachs
10.0
880
 
Morgan Stanley
10.0
650
 
영국 RBS
80.1
3,520
 
  로이스
  8.1
1,650
HBOS인수
Barclays
-
3,010
리먼북미사업인수
HSBC
-
2,560
 
프랑스 BNP Paribas
 2.0
2,900
 
  소시에테 제너랄
 1.3
1,580
 
독일 도이치방크
-
3,080
 
스위스 UBS
 5.3
1,900
 
  크레디트 스위스
-
1,090
 
화란 ING
 7.8
1,860
 
스페인 산탄테르
-
1,470
RBS8%인수
일본 도쿄미스미시UFJ
-
2,190
 
  노무라
-
240
리먼 일부인수
자료: 블룸버그

      G20의 런던, 피츠버그 회의 개최와 국제공조로 금융규제 강화 모색
Chairman Report No.13(2009.12)

2.국제 석유수급과 우리경제



국제 석유수급과 유가변동에 왜 우리는 이처럼 예민한가?

- 石油需要의 非彈力性과 적당한 代替財不在-

    유가가 올라간다면 도두들 긴장한다.
한마디로 제대로 살아나갈려면 이것이 싸고 비싸고 간에 이를 안 쓸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수요의 비탄력 요인 때문이다. 석유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산업과 생활에 소요되는 근간자원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이다.

    이미 우리의 산업은 전력발전과 같은 동력자원을 비롯해서, 발전기 전동기 보일러 트렉터 화학제품 등
산업핵심요소에 석유자원이 제공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 항공기, 선박 등 운송용장비와 난방용 등 일상생활에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아프리카 저개발국은 석유 걱정 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유만큼 고효율 에너지자원으로서 풍력, 조력, 원자력 그리고 수소가스 태양에너지 등
대체재 개발이 쉽지 않으니 고민만 깊어진다.

- 生産과 供給의 偏重과 칼텔 構造的 勢力手段-

    그런데 석유는 미국과 중국에서도 생산되지만 자기 국내수요에도 모자라,
세계의 대외 공급처는 대부분 중동과 일부 중남미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
    세계 석유 매장량은 1조2,379억 배럴로서 그 가채 년수는 41.6년으로서 한정된 고갈 자산인데,
그 매장량의 61%인 7,339억 배럴이 중동에 편재해 있다.

석유 확인매장량

(단위 억 배럴)
지역 및 국가
석유협회
CIA
매장량
구성비
매장량
생산량
Gas매장
세계
   
12,930
8,300
172,800
중동
7,339
61.7
36.0%
(사우디)
2,627
22.1
2,619
947.5
6,654
(이란)
1,225
11.1
1,325
397.9
26,620
(이라크)
   
1,125
209.3
3,155
(리비아)
391
3.3
420
16.4
1,321
유럽 및 구 소련
1,392
11.7
8.7(유럽)
(소련)
723
6.1
744
915.0
47,570
아프리카
1,122
9.4
중남미
1,010
8.5
4.5%
(베네주엘라)
772
6.5
752
308.1
4,276
북미주
610
5.1
.
4.6%
(미국)
294
2.5
761.0
5,451
(카나다)
   
1,788
313.5
1,603
아태지역
411
3.5
8.1%
(중국)
171
1.4
161.0
363.1
2,350
*자료:석유협회, 석유 1일 소비량은 약 8천만배럴로 2020년 현유전70%,
가스전 50%는 바닥나
CIA(07.9.20) 세계총량은 2005년 추정치, 석유생산량단위는 만 bbl/일,
Gas매장량 단위는 10억Cu M

    그러나 그 개발에 대한 기술과 자본을 검어 쥔 이른바 서방자본인 Major그룹( 7 Sisters)에 의해서
과점적으로 개발생산 되고 있고, 산유국은 단지 조광권 등을 받는 관계에 있다.

    이에 12개 산유국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구성해서
그들의 매장량 9,347억배럴 (전세계의 75.5%)에 대한 국별 생산쿼타 배분을 비롯한 칼텔을 형성해서
주요 수요처인 선진 서방에 대항하고 있으므로 일반시장기능보다는 다분히 구조적 세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주요국 석유 생산과 소비(2005e)    (단위 만배럴/일)
No
생산국
생산량
구성비
소비국
소비량
수입국
수입량
? 세계 8,300.0 100 세계 8,259.0 세계 6,318.0
1 사우디
947.5
13.1
미국
2,073.0
미국
1,315.0
2 러시아
940.0
11.9
중국
653.4
일본
542.5
3 미국
761.0
8.5
일본
557.8
중국
318.1
4 이란
397.9
5.2
독일
265.0
독일
295.4
6 중국
363.1
4.9
러시아
250.0
한국
283.0
6 멕시코
342.0
4.5
인도
245.0
인도
209.8
7 놀웨이
322.0
3.9
캐나다
229.4
프랑스
189.0
8 캐나다
313.5
3.8
한국
214.9
스페인
171.4
9 베네줼라
308.1
3.7
브라질
210.0
영국
165.4
10 UAE
254.0
3.3
프랑스
197.0
카나다
118.5
*자료 :CIA(07.9.20 ) 2005추정치 ,단 세계및 수입은2004추정치



-이스람권의 宗敎 社會 政治的 不安과 對 西方關係 對立-

    이들 중동 지역의 정치적 사회적 불안 요소가 불안정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즉 미주, 유럽, 아시아(일본 및 한국 포함)의 대부분의 선진국의 공업화와 고소비 생활로 인하여, 수요가 이들 지역에 편향 집중돼 있다.
    특히 이슬람권 산유국으로서는 국제 정치적 (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의 제국주의에의)대항 수단으로서 석유수단이 작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사실 사우디와 몇몇을 제외하고는 중동과 남미 산유국으로서 미국과 사이가 원만한 나라가 거의 없다.
    이러한 국제적 관계의 틀 속에서 특히 이슬람권의 종교 정치 사회적 불안요소가 노출되거나 수송로의 불안요소가 제기될 때마다 석유파동은 뒤따라 왔다.
(예: 쿠웨이트 이락 이란 리비아 이스라엘 등의 사태)
    물론 북해산 Brent나 미국산 WTI 같은 중립적 분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지배력에 대하여 역부족으로 휩싸이기 마련이다.
결국 석유가격의 격변은 중동의 불안과 궤를 같이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같은 입장에서 수요자로서의 바게닝 파워는 아주 미약하고,
공급시장에 그저 눈치 봐가며 요령 있게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 현상이다.

격동하는 석유의 과거사
    1859 미 펜실베니아에서     유정굴착 성공
    1870 Standard Oil 설립(1911년 해체)
    1885 Royal Dutch 스마트라 유전 발견
    1908 Anglo-Persian(BP전신)이란 석유 발견
    1920 Standard Oil에서iso propyl alcohole 제조 (확학공업시초)
    1930 암모니아 제조법 발견    1937 아세틸렌 폴리에틸렌 제조 법 발견
    1938 사우디 석유 발견, 멕시코 석유국유화
    1948 사우니 Ghawar 유전 (세계최대)발견
    1960 석유수출기구(OPEC)출범
    1962 대한석유공사(현 SK에너지) 설립
    1964 울산정유공장 가동 (35,000 BPSD)
    1966 호남정유(현 LG-칼텍스) 설립
    1967 아랍이스라엘 6일전쟁
    1969 극동쉘석유 (현 현대오일 뱅크) 설립
    1970 북해 Brent 유전 발견
    1973 2차중동전발발과 아랍 석유 금수조치 $3 --> $ 12/ bbl
    1975 사우디 쿠웨이트 베네줼라 석유 국유화
    1976 한-이란석유(현 S-Oil)설립
    1976 IEA 출범
    1979 이란 혁명 $13 -->$34
    1986 유가 폭락 -->$7
    1990 걸프전쟁
    1991 IEF 격년 개최
    2003 이라크전 발발
    2005 고유가 항진
    2006 고유가 (8.8) $72.16
    2008 고유가 (7.4) $140.70


우리나라 경제에서 석유의 위치


-에너지 소비의 석유의존도 41.8%-

   우리나라는 공업화 산업발전단계를 거치면서, 이미 에너지 고소비 구조가 구축되어 있다.
어쩔 수 없겠지마는 전력발전에 석유에너지가 대규모로 소비되고 있다.
수많은 의류, 건축자재, 생활용품 자재의 기본인 화학제품의 원료로서 석유가 소모되고 있다.

에너지생산과 소비     (단위 :1,000 TOE)  
생산
석탄
수력
원자력
기타
+순수입
-벙커링
09 1~6
20,125
597
490
15,898
2,860
103,751
,326
08.1~6
20,185
685
481
16371
2,572
107,621
3,881
2008
40,548
1,289
1,198
32,459
5,389
208,875
7,828
2007
38,338
1,342
1,084
30,731
4,8286
205,603
7,738
2006
44,582
1,217
1,305
37,187
4,358
197,128
8,207
2005
43,745
1,274
1,297
36,695
3,961
190,454
8,555
2000
32,641
1,868
1,402
27,241
2,130
170,233
7,163
1995
21,751
2,574
1,369
16,757
1,051
소비
석탄
석유
LNG
수력
원자력
기타
09 1~6
118,684
?31,441 ?51,641 ?16,349
90
?15,898
,860
08.1~6
121,509
31,795
51,121
19,170
481
16,371
2,572
08구성비
100%
27.6%
41.8%
14.4%
0.5%
13.5%
2.2%
2008
239,757
66,060
100,181
34,473
1,198
32,456
5,389
2007
236,454
59,654
104,494
34,663
1,084
30,131
4,828
2006
233,372
56,687
101,831
32,004
1,305
37,187
4,358
2005
228,622
54,788
101,526
30,355
1,297
36,695
3,961
2000
192,887
42,911
100,279
18,924
1,402
27,241
2,130
1995
150,437
28,091
93,955
9,213
1,369
16,757
1,051
*에너지통계월보,KEEI(2009.9)
2008년도 에너지 소비 240만TEO 에너지자급율 16.9%로 수입의존율 83.1%로 너무커
환산율(KcalOE) : 원유kg/1.075,휘발유L/0.800, 나프타L/0.085,석유L/0.880, 디젤 L/0.905,
B/A L/0.930, B/B 0.965, B/C 0.990 ,JA/1 0.875 NLG Kg/1.300,
도시가스 1.055 석탄(국산)0.465, 석탄(수입)0.655,전기Kwh/0.086


에너지 수입동향     (단위 :1,000 TOE)  
 
수입계
석탄 석유 LNG
수출(석유)
벙커링
순수입
09 1~6
126589
28,187
80,334
18,068
?22838 ?-
103,751
08.1~6
128,585
30,313
78,500
19,744
20,964
-
107,621
2008
256,103
61,665
159,002
35,436
47,229
7,828
208,875
2007
246,773
54,237
159,298
33,239
41,709
7,738
205,063
2006
238,702
49,854
156060
32,788
41,574
8,270
197,128
2005
228,340
48,498
150,798
29,044
37,886
8,555
190,454
2000
213,810
40,559
154,300
18,951
43,577
7,162
170,233
1995
157,094
17,744
5,671
139,350
*에너지 통계월보, KEEI(2009.9)

 

에너지 용도별 소비 (1,000TOE)
구분 1995 2000 2005 2006 2007 2008 08.1H 09.1H
소비총계
121,962
149,852
170,854
173,584
181,455
182,886
94,036
91,313
산업용
62,946
83,912
94,366
97,235
104,754
106,754
53,721
51,998
석탄
16,244
19,129
21,237
21,343
23,235
25,130
12,433
10,535
석유
36,180
48,193
50,905
52,474
56,150
54,675
27,846
28,235
(연료유)
18,478
16,335
12,563
12,310
11,746
11,054
5,780
5,534
도시가스
863
3,308
4,656
4,847
5,225
5,933
2,972
2,834
전력
8,293
11,374
14,346
15,021
16,018
16,738
8,415
8,120
수송용
27,148
30,945
3,559
36,527
37,068
35,291
17,616
17,303
석유
27,010
30,770
34,982
35,780
36,149
34,253
16,968
16,726
(경유)
12,640
13,284
16,301
16,393
16,423
15,133
7,546
7,296
가정 및사업용
29,451
32,370
36,861
35,986
35,916
36,740
20,808
19,845
석탄
1,514
718
1,074
1,226
1,014
1,088
552
395
석유
17,632
13,492
9,437
7,513
7,049
7,329
4,199
3,385
도시가스
4,607
9,204
12,503
12,858
12,831
12,303
7,849
7,649
전력
4,801
7,891
12,233
12,883
13,513
14,401
7,222
4,059
공공기타용
2,416
2,625
4,068
3,386
4,143
4,100
2,050
2,166
*에너지 통계월보 2009.9,에너지경제연구소 *년1,828만TOE중, 산업용 1,067만TOE, 발전원료의 샥유(b-c)의존률 높아

- 국제 원유가 격변과 물가 연동화 -

   특히 생산에서의 제품 원가구조에 영향을 미쳐 물가와 수출에 직접 영향을 주게 된다.
자동차 선박 항공기 운행에 그리고 난방용 연료 등 일상생활에도 모두 석유가 관여하고 있다.
이는 소비에서 교통비와 전기세 난방유류대 등의 가계소비에 곧바로 영향을 준다.

   물가변동의 3대 영향력요인의 하나로서 유가 10%상승 시에 0.70%의 물가상승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유가 증폭의 범위가 몇 %가 아닌 몇 배씩으로 엄청날 뿐만 아니라 그것도 돌발적으로 격변사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즉 그 영향은 가히 충격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전 분야에 골고루 침투하게 되어 있어,
우리나라 경제운영의 주요 불안정 변수의 하나라 할 것이다.

각영향변수의 10%상승시 물가파급영향(%)
  2000년 2007년 비 고
1. 임 금
3.14
3.11
국내노동환경 안정화
2. 환 율
2.46
2.82
미 달러화와 수입물가
3. 원 유(평균)
0.43
0.70
돌발적 분쟁요소로 폭등
기초소비재
1.62
2.22
(석탄포함)
석유 제품
5.70
8.11
 
화학 제품
0.51
1.09
 
 비금속제품
0.60
0.89
 
 소비 제품
0.22
0.36
 
서 비 스
0.19
0.32;
 
 운수보관
0.25
1.35
 
4. 전 력
0.22
0.21
원유 석탄 등 국제가연동
자료: BOK 2009.7.20에서

원유 118만톤의 858억 달러수입(세계5위)
-국제수지와 외환수급에 중대한 영향-


   어차피 일정한 석유 물량을 수입하는데 따르는 엄청난 외화가 지급된다.
이것은 결국 국제수지에 주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며, 또한 외환수급과 때로는 환율에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한 나라 국가 경쟁력에 까지 영향을 주는 경제변수의 하나이니, 실로 그 위력은 막강하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2008년에 858억 달러를 원유수입에 외화를 지출하여, 그 규모는 전체 수입액의 1/5에 이르고,
지난 수년간에는 경상수지의 약 10배에 달하는 경우가 있었다.


석유류 수입동향 (단위:1M$,%)
  총수입(A) 원유 (B) 제품(C) 석유계(D) B/A D/A 경상수지E B/E(배)
09.1~9
229,912
35,450
8,628
44,078
15.4
19.2
32,220
1.1
2008
435,275
85,855
17,081
102,936
19.7
23.6
-6,406
-13.4
2007
356,846
60,324
11,665
71,989
16.9
20.2
5,876
10.3
2006
309,383
55,846
9,282
65,128
18.1
21.1;
5,385
10.4
2005
261,238
42,604
7,496
50,110
16.3
19.2
14,891
2.9
2004
224,463
29,874
6,606
36,480
13.3
16.3
28,174
1.1
2003
178,827
23,123
5,867
28,990
12.9
16.2
11,950
2.3
* 석유:HS2709 제품:HS2710


국제 석유질서 속에서 한국석유산업의 위상

-석유 정제능력 1일 266.8만 배럴로 세계 6위-


   한마디로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로서는, 그 당시로서는 좀 시건방진 듯도 하고, 무모한 듯이도 보였던
중화학 육성에 힘입어 오늘날에는 비교적 탄탄한 일관된 석유화학산업구조를 구축한 셈이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제6위의 석유정제국이며 세계 제7위의 석유제품소비국이다.
즉 원유(crude oil)를 매일 240만 배럴을 30여개국 (그중 81%는 중동에서) 수입해서,
이에서 매일 285.5만 배럴의 정유를 5개정유소에서 생산한다.
(생산능력과 실적, 조사기관, 년도의 상이로 숫치상 차이는 일부 보임)
   그리고 다시 3개 단지에서 7개 회사에 의해서 년간 570만톤(에틸렌기준)의 석유화학 제품으로 생산해서 쓰고 있다.
예를 들면 수입한 원유를 가지고서, 우리가 입고 있는 포리엘스텔 섬유를 (수입하지 않고) 만들어 쓴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간과정의 수입마진이 절약된다는 것이다.

주요국 석유정제능력 및 소비규모 (단위 : 1천bbl/일)
국별
정제량
구성비
소비량
구성비
세계
87,913
100.0
85,220
100.0
1. 미 국
17,588
20.0
20,698
23.9
2. 중 국
7,511
8.5
7,855
9.3
3. 일 본
4,598
5.2
5,051
5.8
4. 인 도
2,748
3.3
2,748
3.3
5. 러시아
2,699
3.2
2,699
3.2
6. 한 국
2,668
3.0
2,371
2.7
7. 독 일
2,390
2.7
2,393
2.8
*자료 : BP, 2007년도

원유도입과 처리양

도입량
금액
단가
처리양
정제능력
가동율
천bll
$bil(C&F)
$/bll
천bll
천BPSD
%
2008
864,872
85,855
98.27
 
2007
872,541
60,324
69.36
2,668
 
2006
888,794
55,846
62.83
 
2005
843,203
42,598
50.52
852,439
2,735
2004
825,790
29,867
36.17
826,551
2,438
2003
804,809
23,116
28.72
782,951
2,438
88.0
2002
790,992
19,168
24.23
768,805
2,438
88.4
2001
859,367
21,364
24.86
860,115
2,438
96.7
2000
893,943
25,222
28.21
890,304
2,438
99.8
*도입수량은 대체로 일정하나 단가상승이 큼
*자 료 : KNOC

우리나라의 원유 정제능력은 1일 285.5만 배럴이다.

석유 생산 시설능력(천b/d, 2008.8현재)
상사 상압정제 분해 재접촉 고도화비율
2,855
521
250
27.0%
SK(울산)
840
162
45
24.6
SK(인천)
275
-
34
12.2
GS칼텍스
770
153
101
33.3
S-Oil
580
148
45
21.3
현대오일뱅크
390
58
25
21.3

   *Refinering(정제)는 물리적 Distillation(증류), 화학적Conversion(진화=Cracking/Polymerizatio과
Reforming), Treating(정제 Purification), 그리고 Brending(혼합)등의 과정을 거친다.

업계는 최근에 고도화 시설에 집중투자하고 있어 차츰 제품 재수출여력을 높여가고 있다.

석유제품수출동향 (1백만달러)
품 목 Code 2005 2006 2007 2008 증가율
경 유 1332; 5,552 7,002 9,133 15,965 74.8
제트유등유 1333 3719 5,296 6,207 9,584 54.4
석유화성원료 2130 2,654 3,072 3,160 3,748 18.6

 


제품별 생산
  2005 2006 2007 2008 08상 09상 구성비
922,897
949,983
955,898
943,152 465,174 456,971 100.0
휘발유
73,823
79,677
78,212
92,864 40,277 52,078 11.4
등유
43,294
40,389
28,387
30,917 17,669 16,881 3.7
경유
230,964
238,350
253,196
264,470 124,139 131,630 28.8
B-C
206,331
203,110
180,022
146,894 81,668 62,828 13,7
납사
176,369
183,067
196,755
178,152 92,640 78,806 17.2
항공유
85,288
95,316
106,099
  50,023    
LPG
37,276
35,953
33,951
34,530 16,640 19,297 4.2
기타
69,552
74,121
79,276
  42,428    
*석유제품은 생산구조의 연산성으로 구성비는 대체로 일정함.
따라서 수급불균형이 발생해서 나프타 LPG 등이 수입되고 있음
*저유시설은 현재 4개 탱크수80, 저유량 3,185Kbl, 출하능력884Kb/d




석유수급동향 (1000배럴)
구분 1995 2000 2005 2008 08.1Q 09.1Q
수입총계
830,373
1,098,244
1,022,558
1,089,486
278,695
296,817
원유
624,945
893,943
843,203
864,872
222,989
229,872
제품
205,428
204,301
179,540
224,614
55,706
66,945
처리량
631,080
890,304;
852,439
865,663
220,116
219,205
가동율
95.1%
99.78%
85.39%
82.84%
86.14%
85.31%
정제능력
1,818
2,438
2,735
2,855;
2,808
2,855
생 산
643,422
911,761
922,897
943,152
238,043
236,389
소 비
836,921
1,095,318
1,079,359
1,143,880
286,088
291,582
국내소비
677,210
742,557
761,080
760,724
204,811
199,041
방 카 링
37,092
46,468
55,632
51,103
13,362;
10,846
재 고
48,012
61,556
58,392
53,713
58,240
67,568
원 유
10,376
11,691
15,804
13,815
14,436
21,216
제 품
37,636
49,865
42,588
39,898
43,804
46,352
*정제능력은 KBPSD *에너지 통계월보 2009.3,에너지경제연구소



세계5위의 석유화학공업 기반
- 에틸렌기준 년 570만톤 생산-


   한편 우리의 석유화학 제품생산은 울산 2개사, 여수 3개사, 대산 2개사 등
모두 7개사의 석유화학 공업단지(콤비나트)에서 에틸렌기준으로 년 570만 톤을 생산 공급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즉      울산의   S K     (73만톤)      대한유화 ( 40만톤),
       여수의   여천 NCC(143만톤)     LG석유화학(76만톤)
        대산의  호남석유화학(70만톤)   삼성아토피나(63만톤)
                현대석유화학(105만톤)

   석유제품의 생산의 특징은 일정비례로 산출되는 연산체제하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통 생산시설용량을 말할 때에는 제품구성의 약 31%에 달하는 에틸렌의 생산량을 기준으로하고 있다.
이 에틸렌기준 주요국의 생산능력은 다음과 같다.

주요국 에틸렌 생산능력

(만톤/년)
미국
일본
사우디
중국
한국
2,812
722
596
587
570

석유화학제품 수출입

(단위:억불)
수출 실적
수입 실적
2003
2004
%
05.~7
%
2003
2004
%
05.~7
%
합계
119.1
170.1
42.8
121.1
36.1
58.2
80.1
37.7
55.1
31.0
기초유분
13.5
22.3
64.9
15.7
49.3
8.8
16.8
90.5
10.2
19.0
중간원료
14.1
20.4
44.3
12.4
18.0
9.6
12.6
31.9
10.5
66.0
화섬원료
11.7
19.2
63.9
15.4
51.0
7.6
8.9
16.6
4.9
5.3
합성수지
62.6
84.2
34.6
59.6
31.9
15.3
18.7
10.6
13.4
27.3
합성고무
4.7
6.1
29.6
5.1
64.4
2.4
2.8
17.7
1.8
17.7
기타화학
12.4
17.7
43.3
12.9
36.6
14.5
20.2
39.5
14.3
36.7



- 당면 과제들-
수급안정화- 비축유지, 수입선 다변화 및 안정화, 자원외교 자력개발확대
국제유가와 국내유가의 연동
석유사의 지분 및 사업구조안정화
      * GS 칼텍스: GS Holdings 50%, 셰브론50%
      * 현대오일 뱅크: Hanocal Holdings 50%,
        IPIC(UEA)20%, 현대중공업 19.87%
      * S-Oil : 한진에너지 27.43% 아람코 34.9%
               사업비중:정유86.8%, 화학6.7% 윤활유6.5%
      * SK 에너지 : SK(주) 30.81%
               사업비중: 정유69.9%, 화학23.8%, 윤활유3.7% 개발1%
      주유소:4,479개(36.4%)
원자력 발전으로 석탄(33.0%) 석유(8.95) 가스(25.4%)등 화석 화력 발전(67.3%) 에너지 수요 대체
      * 원자력의 중유수입 대체효과 : 191 Mbbl
      * 화력비중 축소와 화력의 단기 대처는 지양하고,
      원자력 발전소 추가건설 가속화해야
      (2014년까지 6기 6.8GW 건설 중)

원자력 발전 생산량
  단 위 전 체 원자력 비 중
설비용량(2009.8)
GW
73.3;
17.7
24.1%
설비용량(2003)
GW
56.0
15.7
28.0
발 전 량(2003)
THW
322.3
129.6
40.2
* 원자력 설비가동율 제고에 의존
수소가스, 풍력, 조력발전 및 Hybrid 자동차 태양열 개발 등은 아직은 초기단계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석유 회사별 매장/생산량

세계 석유회사 순위(2007)
순 위 국적 매장량 생산량
석유
가스
석유
가스
백만bll
십억cf
백만bll
심억cf
1.Saudi Aramco
사우디, 국영
264,300
249,680
10,475
7,128
2. NIOC
이란, 국영
137,500
992,990
4,343
10,155
3.ExxonMobil
미국, 메이져
11,568
67,560
2,681
9,334
4.BP
영국, 메이져
9,781
45,931
2,475
8,417
5.PDV
베네줼라,국영
79,700
152,320
2,524
2,227
6.RD Shell
영국화란, 메이져
5,331
44,142
2,030
8,368
7.CNCP
중국, 국영
19,748
78,255
2,705
4,645
8.ConocoPhillips
미국, 메이져
6,696
26,835
1,698
5,214
9.Chevron
미국,메이져
8,249
22,884
1,759
4,956
10.Toral
프랑스,메이져
6,471
25,539
1,506
4,674
11.Pemex
멕시코, 국영
12,849
13,856
3,649
4,705
12.Gazprom
러시아,국영
8,928
642,460
912
53,772
13.Sonatrach
알제리, 국영
11,587
149,778
1,889
7,698
14.KPC
쿠웨이트, 국영
101,500
62,830
2,496
1,151
15.Petrobras
브라질,국영
9,484
11,843
1,920
2,268
16. Adnoc
UAE,국영
59,269
129,658
1,799
2,229
17.Lukoil
러, 독립계
12,742
21,278
1,541
1,238
18.Petronas
말레지아, 국영
7,908
107,781
751
5,550
19.Eni
이태리, 국영
3,481
16,965
1,079
3,966
20.NNPC
나이제리아, 국영
21,720
110,346
1,426
1,636
21.QP
카타르, 국영
10,944
644,570
816
3,447
22. INOC
이라크, 국영
115,000
111,900
1,899
339
23.Libya NOC
리비아, 국영
30,544
34,188
1,350
1,053
24. Rosneft
러시아, 국영
15,963
24,758
1,596
1,313
25. Repsol-YPE
스페인, 메이져
1,059
8,718
525
3,381
*자료: Petroleum International Weekly(2007.12)
M:Major,석유와 가스를 종합한 순위임



원유, 정유 및 제품 생산과 수출입( MT)
생산(08) 수출(07) 수입(07)
생산국 생산량
구성비
수출국
수출량
구성비
수입국
수입량
구성비
원유
세계
3,941
100
세계
1,957
100
세계
2,091
100
1.사우디
509
12.9
1.사우디
339
17.3
1.미국
527
25.2
2.러시아
485
12.3
2.러시아
256
13.1
2.일본
206
9.9
3.미국
300
7.6
3.이란
130
6.6
3.중국
159
7.6
4.이란
214
5.4
4.나이제리아
112
5.7
4.인도
122
5.8
5.중국
190
4.8
5.UAE
105
5.4
5.한국
118
5.6
6.멕시코
159
4.0
6.놀웨이
97
5.9
6.독일
106
5.1
7.카나다
155
3.9
7.멕시코
89
4.5
7.이태리
94
4.5
7.쿠웨이트
145
3.7
8앙골라
83
4.2
8.프랑스
84
4.0
8.베네줼라
137
3.5
9.쿠웨이트
82
4.2
9.스페인
59
2.8
9.UAE
136
3.5
10.이라크
81
4.1
10.화란
58
2.8
소계
2,430
61.6
소계
1,374
70.2
소계
1,576
75.4
정유
세계(kb/cd)
87,700
100
세계(Mt)
2,171
100
세계(Mt)
2,253 100
1.미국
17,610
20.1
1.사우디
387
17.8
1.미국
607
26.9
2.중국
7,770
8.9
2.러시아
351
16.2
2.일본
235
10.4
3. 구소련
7,740
8.8
3.이란
137
6.3
3.중국
182
8.1
4.일본
4,680
5.3
4.쿠웨이트
117
5.4
4.독일
107
4.7
5.인도
3,590
4.1
5.놀웨이
109
5.0
5.인도
105
4.7
6.한국
2,610
3.0
6.베네줼라
106
4.9
6.한국
103
4.6
7.독일
2,420
2.8
7.나이제리아
104
4.8
7.프랑스
91
4.0
8.이태리
2,340
2.7
8.UAE
104
4.8
8.스페인
79
3.5
9.사우디
2,100
2.4
9.앙골라
82
3.8
9.이태리
77
3.4
10.카나다
2,040
2.3
10.리비아
73
3.4
10.대만
49
2.2
소계
52,900
60.3
소계
1,570
72.3
소계
1,636
72.6
석유제품
세계
3,822
100
세계
417
100
세계
364
100
1.미국
836
21.9
1.러시아
96
23.0
1.미국
34
9.3
2.중국
316
8.3
2.사우디
48
11.5
2.일본
29
8.0
3.러시아
224
5.9
3.쿠웨이트
35
8.4
3.중국
24
6.6
4.일본
198
5.2
4.베네줼라
29
7.0
4.스페인
20
5.5
5.인도
157
4.1
5.이태리
17
4.1
5.멕시코
19
5.2
6.한국
123
3.2
6.알제리아
17
4.1
6.홍콩
16
4.4
7.독일
118
3.1
7.인도
17
4.1
7.인도네시아
14
3.8
8.카나다
103
2.7
8.한국
15
3.6
8.베트남
13
3.6
9.이태리
101
2.6
9.베라루스
13
3.1
9.이라크
11
3.0
10.사우디
96
2.5
10.놀웨이
12
2.9
10.프랑스
10
2.7
소계
2,268
소계
299
71.7
소계
290
79.7
*자료 :Key World Stastics 2009(IEA, 2009.9.7)


 

계통별 생산 능력

(천톤/년)
기초유분
제품
생산량
용도
NCC(Naphtha Cracker

Ethylene
7,730

LDPE
899
농업용필름
LLDPE
1,010
전선피복
HDPE
2,185
성형제품 필름 파이프
EDC
911
합성수지 용제 의약품
   VCM
1,497
   
    PVC
1,308
파이프 레자
EO
510
  
    EG
1,307
폴리에스텔섬유
Ethanol
60
주정 잉크 용제
AA
75
초산 용제
EPR
80
타이어 품

Propylene
5,389

PP
2,748
필름 성형제품 합성섬유
AN
550
아크릴섬유 ABS SAN NBR
PO
275
PRG 407 우레탄수지
PG 85 폴리에스텔수지 가소제
2-EH
365
부탄올
600
IPA
100
용제 도료 화공용
아크릴산
260
아크릴섬유 도료 접착제

C4 혼합물
1,541

MMA
266
PMMA 광학의료 기계부품

Butadiene
835

SBR
616
타이어 신발 산업용품
SB-LATEX
148/40
접착제 제지 섬유처리
BR
322
타이어 신발 산업용품

NCB(해분유)

석유수지
90
BTX Plant
 
Benzene : 4,120 SM
3,314
PS/EPS868/464 페인트
ASB 1,520 전기자동차부품
C-H
350
CPLM 270 나이론섬유
AB
178
합성세제
페놀 650 페놀수지 염료
아세톤
76/152
용제 아크릴수지
아닐린
34
MDI 211 우레탄수지
MA
64
블포화포리에스텔수지
Toluene : 1,865 DNT
125
DTI 302 우레탄수지 단열재
Xylene : 2,924 DX
445
P-X
3,380
TPA 5,220 폴리에스텔섬유
DMT 160 폴리에스텔섬유
유틸리티
 
메탄올 빙초산
477
MTBE
727
휘발유첨가제
  카본블랙
550
타이어 산발
*적색선은 중간원료,*자료 : KPIA, 2009.7 현재.

2.溫室가스減縮과 環境復元



기후변화협약회의 개최

     2009년 12월7일 덴마크 코벤하겐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COP15)에서도
선후진국간의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2010년 5월1일 독일 본에서 다시 그 실천방안이 논의될 것이다.
(그후 일부 협약으로 끝남: 말미 참조)
    선진국에 대해서만 우선 90년보다 탄산가스(CO2)를 5.2% (일본은 6%) 줄이기로 의무화한
도쿄의정서(1997) 효력이 2012년에 끝나기로 되어있다.
    13차 발리회의에서 개도국도 각자 능력에 맞게 참여키로 함에 따라,
한국은 감축의무가 없는 개도국 지위를 아직은 유지하고 있지만,
1960년에서 2005년까지 45년간의 탄산가스 누적 배출량을 보면, 90.8억 톤으로 세계 16위로 선진국과 별차이가 없다.
(호주 15위, 스페인 17위) 이에 한국은 2030년까지 BAU기준으로 30% 감축 자율목표를 최초로 솔선 제시한 바 있다.

탄산가스에 의한 지구 온실효과

    현재의 대기 구성인자 중 CO2는 약 0.03% 로서 매년 1PPM씩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CO2에 의한?공기 오염도는 산업혁명전에 280ppm이었던 것이 매년 0.5% 씩 증가해서 지금은 353ppm으로 올라갔다.
    1880년에서 1980년의 100년간에 CO2의 농도가 약 16% 증가하였다고 한다. 21세기까지는 두 배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대기는 CO2와 H2O로 인하여 적외선을 흡수하여 방사한 열을 보존하여 이른바 온실효과를 내는 것이다.
대기 중의 CO2/CFO3의 증가로 인한 앞으로 30년간의 온실효과로 인하여,
21세기 중반에는 섭씨 2~3도 기온이 상승할 것으로 예측 하고 있다 .
    이와 같은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해수면이 약 10미터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열대수림 훼손과, 야생서식지 파괴로 인해서도 이상기후를 촉발하고,
잦은 허리케인과 대홍수가 발생하는가 하면, 대규모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0년간 지구온도가 0.7도 상승했는데, 추가로 2도가 올라가면
북극동토가 녹아서 메탄가스(이산화탄소보다 20배의 온실효과가 있음)가 방출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2도 이내로 억제하려면 선진국은 2020년까지 25~40%, 2050년까지는 80%를 감축해야 하고,
개도국도 50년까지는 50%를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환경의 오염

    대기환경의 악화는 각종 공해를 유발하는 시발점이 되고 있다.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과 농축산물에서 주로 발생하는 CO2 CFCs N2O 등이다.
흰개미 배설물의 분해로 인하여 매년 5,500만톤의 CO2와 6,500만톤의 메탄가스(CH4)가 발생한다고 한다.

대기가스의 오염기여율
GAS CO2 CH4 O3 CFCs N2O
기여율
50%
16%
8%
20%
6%
화석원료의 CO2배출 구성비
 
1973년
1976년
석탄
34.9%
42.2%
석유
50.6%
37.6%
가스
14.4%
19.8%
기타
0.1%
0.4%
     
*자료: IEA
CO2배출량과 비중(1988년mTon)
국가
배출량
구성비
미국
1,426
24.2%
구소련
1,101
18.7%
중국
569
9.7%
일본
276
4.7%
서독
200
3.4%
한국
53
0.9%
?
    2007년 현재 한국은 9위이며, 전체 온실가스의 84%가 CO2 배출에 의한 것이다.

환경복원 및 온실가스 감축

이산화 탄소 배출량
국가
배출량(만톤)
증가율 (%)
1인당(톤)
2006년
2007년
2007/2006
2006년
전세계
271억3,600
289억6,200
3.4
4.2
OECD
129억1,000
11.0
1. 중 국
50억5,987
60억2,785
19.0
3.9
2. 미 국
58억1,696
57억6,931
-0.8
19.6
3. 러시아
15억4,376
15억8,736
2.8
10.8
4. 인 도
11억4,746
13억2,450
15.4
1.1
5. 일 본
12억1,419
12억3,634
1.8
9.5
6. 독 일
8억1,348
7억9,844
-1.8
9.9
7. 캐나다
5억4,857
5억7,294
4.4
17.0
8. 영 국
5억2,989
5억2,301
-1.3
8.8
9. 한 국
4억4,891
4억8,871
8.9
9.3
10. 이태리
4억5,400
7.8
*북 한
7,339
3.3
자료:IEA    
*전세계는 2006년분 *한국CO2배출은 전체 온실까스의 84%수준    

CO2 누적 배출량(1960-2005)
국가 배출량(억톤) 구성비(%)
세  계
8,250.0
100.0
1. 미  국
2,136.1
25.9
2. 중  국
  886.4
10.7
3. 러시아
  777.6
9.4
4. 독  일
  438.1
5.3
5. 일  본
  412.3
5.0
16. 한  국
    90.8
1.1
*그린피스2009.6.    
한국의 2020년온실가스감축목표(CO2, 만T)
구분 배출전망 감축량 감축률 비고
총계
*81,300
24,395
30.0
2014년 정점도달후 축소시작
산업
45,518
8,294
*18.2%
시멘트8.5, 기계7.9 자동차7.8
전기전자7.9(비에너지분야83.9 디스플레이39.5 IC27.7)
수송
10,725
3,682
34.3%
 
건물
17,896
4,806
26.9
 
공공기타
1,885
470
24.4
 
농림어업
2,910
152
5.2
 
폐기물
1,383
171
12.4
 
발전*
(25,500)
6,820
26.7
*석탄발전감소
탈루량
983
-
-
도시가스 이송, 냉매, 탄광채굴 등
환경부 2011.7.12, 471개업체 시행 세부계획요구(추가자료이므로 책자에는이표내용이 없음)


    빗물에는 탄산가스가 녹아서 보통 pH 5.6~6.5 정도의 약한 산성을 띄는데,
산성비는 주로 화석 연료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와 질소산화물에 의한 강한 산성을 띄고 있다.
산화물(산성비)는 산림을 고사시키고, 어류폐사를 일으킨다.
    독일의 Schwarzwald와 같은 유럽 침엽수와,?카나다 사탕단풍나무가 고사하고 있고, 열대수림도 매년 1,130ha 씩 없어지고 있다.
    그 여파에 의한 야생서식지 파괴로 수 년내에 10-15%의 생물이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한편 놀웨이 스웨덴 등에서는 2,000 여개 호수에서 어류의 폐사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관하여, 1985년 헬싱키 의정서에서는 황산산화물 배출 규제에 관하여,
1988년 소피아 의정서에서도 이를 다루었다.(질소배출규제에 관한 국제적 협약)

지구온난화의 피해

    지구온실효과 기여율이?농업이 13%, 산림이 14%, 에너지 분야 49% 이고, 산업이 24% 이다.
지난 100년에 대기 평균기온이 2.5도에서 5.5도까지 상승하여,?기후와 생태계에 변화를 주었다고 한다.

    그중 오존파괴로 인한 영향이 20%나 되어, 국제적 제한 움직임이 있다.
최근에는 남극 상공의 오존층이 반 이상 파괴되어, 남한의 323배나 되는 구멍이 났다고 한다.

    오존이 1% 감소하면 2%의 자외선 증가로 인해 피부암이 4-6% 증가한다고 한다.
이미 뉴질랜드와?호주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이대로 가면 2085년에는 오존량이 반감 할 것으로 본다.

    탄산가스가 두 배 늘면 대기 온도가 1.5-3.5도 상승하고,?이에 따라 해수면이 11~20cm 상승될 것이라 한다.
해수면은 5.6m-3.45m 상승하여 태평양 연안 섬과 방글라데시, 태국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
농업국 10억 인구가 100 년 안에 수몰케 될 것이다.

기후변화와 사막화 및 토양유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매년 6만 Km2가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고한다
잔체 육지면적 1억4천9백만 Km2의 1/3인 5천2백만 Km2가 사막화가 진행중이고,
이중에서 아시아가 32.3%(1,678만8천Km2), 아프리카 24.9%(1,296만Km2), 북미주 14.2%(732.4만Km2),
호주 12.8%(663.3Km2), 남미 10.0%(516만Km2), 그리고 유럽5.8%(299.6Km2)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몽고는 전국토의 90%가 직간접으로 사막화가 진행되어,2007년 현재, 20년간 호수연못1,181곳, 강852곳, 개울2,277곳이 말라라버렸다.
몽골에서는 가축 4천만 마리를 방목해서 초원의 사막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곳에서 일어난 황사 먼지가 우리나라에 까지 날라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국토면적의 1/6에서 년 0.5%의 농토 감소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매년 64억톤의 토양이 유실되고 있는데, 테네시 주에서 만도 매년 41톤/ha이 유실된다는 것이다.
온대지역에서 1cm의 표토가 쌓이는 데에 약 1백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사막화로 매년 21백만ha 지역이 황폐화되고, 그중 583 만 ha의 농경지가 사막화 된다.
사막화의 87%는 인위적 요인이고, 특히 극한 건조지역에서의 방목이 큰 원인으로 되어 있다.

    우즈베키스탄 북부의 아랄해는 1960년대까지도 6만8천 평방킬로미터의 세계 제4위 내륙 호수였다.
그러나 2009년8월16일 NASA에서 촬영한 인공위성사진에 의하면 주변 목화밭에 대한 관계와 온난화에 의한 증발로
호수면적은 1/10로 줄어들었고, 염분은 10배로 늘어나 물고기도 살 수 없는 상태의 환경재해가 발생했다고 하였다.

코벤하겐 협정의 주요 내용

지구기온 상승억제
        o 지구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억제
        o 과학적 사실과 선진국 개도국간의 평형성에 기반을 두고, 온실가스 감축

개도국 지원
         o 최빈국과 작은 섬나라, 아프리카 국가가 기후 변화에 적응 할 수 있도록 지원
        o 2010~2012년 3년간 개도국에 300억 달러 지원,
2020년에는 지원규모가 년간 1,000억달러가 되도록 확대
        o 코벤하겐 녹색기후 기금과 운영을 맡을 고위급 위원회 설치

선진국 감축 계획
         o 구체적인 2020년 감축게획을 2010년 1월말까지 협약 사무국에 제출
        o 도쿄의정서에 따라 감축을 이행하고, 실적을 투명하게 평가

개도국 감축계획
        o 2010년 1월말까지 감축계획을 제출          (최빈국과 섬나라 등은 의무사항 아님)
         o 감축결과는 국제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2년마다 국가보고서 형태로 제출
         o 국제지원을 받는 국가는 사무국에 감축계획을 등록하고 국제적인 검증을 받을 것

산림 전용방지
         o 개도국 토착민을 지원함으로써 산림 파괴를 방지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임

기술이전         o 오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적응에 필요한 기술이전을 촉진하기 위해 기술체제를 설립

이행평가와 추가협상
         o 코벤하겐 합의문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는 지에 대한 평가를 1915년에 완료
        o 평가에는 지구기온 상승을 1.5도로 억제하는 것에 대한 검토를 포함
                *자료:UNFCCC(유엔변화협약사무국)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현상

    우리나라도 온난화의 한 요소인 이산화탄소 농도가 1985년에 344ppm에서 2005년에는 379ppm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세계적인 추세에 더하여 한국도 자동차 등의 배기가스에 의한 대기오염과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열섬효과가 그 한 요인이다.
    기온상승은 1910년대 12도에서 1990년대에 13.5도로서,
1904년-2000년간 평균기온은 1.5도 상승하여 지구평균 0.6도의 두 배나 상승하였다.
이에 하루평균기온이 5도 이하인 겨울은 줄고, 20도 이상인 여름은 늘어났다.
    즉 20년대 겨울이 123일이던 것이 90년대엔 91일로 줄었고, 여름은 88일에서 105일로 늘어났다.

일일 최저 온도가 25도를 넘는 열대야 일수도 두 배로 늘어나, 서울의 경우 30년대 7일이 90년대에 22.5일로 되었다.

기온이 1도 상승하면 공기 수증기는 7% 늘어나, 년간 강수량은 1910년대에 1,150mm 이었지만, 1990년대엔 1,243mm로 늘어났다.
    그러나 강수일수는 오히려 1920년대 117일에서 1990년대엔 106일로 줄어들어 집중호우와 한발이 잦았다.
해수면온도도 상승(1968년-2000년간: 동해 0.72도, 서해 0.99도, 남해 0.53도)하고,
해수면도 년 평균5.5mm씩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월평균10도 이상 8개월 계속되는 아열대기후의 징후를 제주도 일부에서는 보이고 있고,
동식물의 생태변화도 감지된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의 조기 개화와 사과 배 등의 재배지가 북상하고, 아열대성 동백나무가 북상하고,
소나무 등 침엽수는 제주도로부터 점차 사라진다.

왜가리, 백로, 황로 등 여름 철새가 텃새로 변하고 동남아의 녹색 비둘기가 발견되었다.
고등어 오징어 자리돔 등 난류성 어류가 늘고, 명태 대구 등 한류성 어종이 줄어들고 있다.

    과거 30년간(1971~2000)과 최근 10년간(1999~2009)과의 15개 지역 평균 기온이 13.5도에서14.1도로 0.6도 상승 했다고 기상청은 발표했다(2009.6.14)

그중 봄은 13도로 0.7도, 여름은 24도로 0.2도, 가을은 16.1도로 0.6도, 겨울은 3.2도로 0.8도 높아져, 특히 겨울철 기온이 더 올라갔다.

    한편 강수량은 지난 10년간에 약 9.1%나 증가해서 1,435.9mm에 달하였고,
겨울철 강수량은 11.5%가 줄고, 여름철 강수량은 12.9%나 증가해서 861.3mm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는 곧 강수량이 봄과 여름에는 늘고, 가을과 겨울에 줄어드는 것은 기후온난화의 뚜렷한 증거로서
한반도의 아열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綠色成長에의 길



    환경과 자원 문제는 30년 이내에 생명공학에 의한 생태자연 순환으로 풀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지구촌 공영권을 파괴하는 산업 환경공해를 Bio경제로 해소하고자하는 국제화 대응노력의 길이 모색되고 있다.
"녹색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며,
이는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신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시너지 발전 패러다임이다."

     녹색성장은 지속가능발전(경제적 발전, 사회적 평형 환경보호 통합)의 추상성 광범위성 등을 정책실현 가능성면에서 보완
         -경제성장을 하되 경제성장의 패턴을 환경친화적으로 전환시키자는 개념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
        -환경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제성장 추구
        -경제성장과 환경파괴의 탈동조화(Decoupling) 실현

녹색성장 개념의 논의경과

        o Economist지(2000.1.27자)에서 최초로 언급, 다보스클럽을 통해 널리 사용되기 시작
        o 2005년 아.태 환경과 개발에 관한 장관회의에서 “녹색성장을 위한 서울 이니셔티브(SI)가 채택되어 UN ESCAP등 국제사회논의 본격화
         o OECD 각료회의이사회(09.6.24) 선언문에 녹색성장 관련 내용 포함

녹색성장의 개념

1. 환경과 경제의 선순환

        ->성장패턴과 경제구조의 전환을 통해, 환경과 경제양축의 시너지 효과 극대화
        ->핵심 주력산업의 녹색화 저탄소형 녹색산업 육성 가치사슬의 녹색화 추진

2. 삶의 질 개선 및 생활의 녹색혁명

        ->국토 도시 선물 주택단지 등 우리 생활 모든 곳에서 녹색생활 실천 및 녹색산업 소비기반 마련         ->버스 지하철 자전거 등 녹색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고, 지능형 교통체계에 기반한 교통효율 개선추진

3. 국제기대에 부합하는 국가위상 정립

        ->국제적 기후변화 논의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녹색성장을 국가발전의 새로운 모멘텀으로 활용
        ->녹색 가교 국가로서 글로벌 리더쉽 발휘를 통해 세계일류의 녹색선진국으로 발돋움

왜 녹색성장인가?

1. 地球溫暖化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위기의 심화
->지구온난화는 인류생존의 위협요인으로 작용
         o 지난 100년 세계평균기온 0.74도C 상승,          금세기말 최고 6.4도C 상승예상
        ->가뭄 홍수 폭염 생태계 파괴 등의 형태로 표출
         o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손실
         매년 세계 GDP의 5~20%(스턴보고서 2006)
         한국은 지구온난화에 취약하며, 직접적인 영향
        ->국내 평균기온 상승률은 세계 평균수준을 크게 상회
        o 지난 100년간(1912~2008) 우리나라 평균기온이1.7도C 상승
        -> 지구온난화에 따른 한반도 영향 심화
        o 겨울철 지속기간이 약 22~49일 단축
        o 여름철 집중호우와 고온현상 반복
        o 폭염으로 94~05년 사이 2,127명 사망
        o 2007년 말라리아 환자 2,227명 증가

2. 化石燃料 과다 사용

         o 전세계 에너지원의 85%가 화석연료임
         -> 화석연료 과다 사용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급증 (우리나라는 화석연료인 석유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높은 구조)
         ->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고, 신재생에너지 보급수준 미미
         o 1차 에너지원별 비중(2006)
         석유 43.6%, 석탄 24.3%, 원자력 15.9%

3. 新成長動力 창출 필요성

    경제위기를 타개하고, 에너지 자립도를 넓히기 위해 선진국을 중심으로 녹색성장에 대한 관심 확산
        -> ‘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에너지 자립국을 성취한 덴마크 독일 등을 모델로 하는 녹색성장 모델 확산 중
        -> 탄소배출권 시장, 신재생 에너지 등 녹색성장 녹색산업을 새로운 국가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 증가 추세
    o 탄소배출권 시장
    (2007)640억 달러-->(2010) 1,500억 달러
    o 신재생 에너지 시장
    (2007)773억 달러-->(2017)2,545억 달러
    한국은 중화학, 전자 등 주력산업 유성 등을 통해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 했으나, 최근 저성장 국면 진입
     -> 경쟁우위 산업발전으로 비약적 성장을 거두었으나, 최근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 확보 필요
    o GDP규모 1993년 세계 12위를 기록한 이래 15년간 10~13위로 정체 중

녹색성장을 위한 주요국 추진 전략

미국의 집중적 태양발전
    -저비용 중앙집중식 태양발전 시스템 발전
영국의 기후변화 적응 전략
    - 태양열 풍력발전 개발, 2012년까지 20%보급목표
프랑스의 태양광 발전 플랜
    - 지중해 연합 건설을 통해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
    - 사하라 사막에 태양열 발전소 건설
독일의 친환경 에너지 발전전략
     - 친환경에너지 중심으로 풍력발전소 30개 건설추진

4.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 필요성

    기존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한계에 직면
    -->글로벌경쟁심화로 수익창출모델을 변환하지 않으면 기존 경쟁력 유지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

     o 국내의 가격경쟁력에 기초한 요소 투입형, 제조업 수출중심산업 발전전략의 적실성 저하
    --> 환경, 탄소 규제 등 감안 시, 화석연료 의존구조로는 경제 사회 환경의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

     o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인 현 경제구조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높은 의존은 대기 오염 등 환경오염을 심화시킬 전망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새로운 국가 발전의 계기
    -> 녹색 변환을 통해 경제성장과 환경보호를 동시에 추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대두
     o 산업별 가치사슬 전체를 환경 친화적 저탄소형 신패러다임으로 전환해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신규시장을 창출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적극적인 의지와 범국가적인 노력을 통해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
    o 산업을 저탄소 구조로 전환함으로써 산업 발전과 환경문제 해결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고,
     지속가능한 성장잠재력 확충모색
     -> 주변 생활환경 개선 및 자연 생태 보존 등을 통해 쾌적한 삶에 대한 요구충족

=====>>> 정부의 국정운영, 기업의 경영관리 및 국민의 일상생활 등 정치, 경제, 사회의 전 영역에서 기존 패러다임을 변경

정부의 비젼과 3대 전략 및 10대 정책 방향

비젼 : 2020년까지 세계 7대, 2050년까지 세계 5대 녹색강국 진입

전략과 정책방향:
I.기후변화 적응 및 에너지 자립
        1. 효율적 온실가스 감축
        2. 탈석유 에너지 자립 강화
        3. 기후변화 적응역량 강화
II. 신 성장 동력 창출
        4. 녹색기술 개발 및 성장 동력화
        5. 산업의 녹색화 및 녹색산업 육성
         6. 산업구조의 고도화
        7. 녹색경제 기반 조성
III. 삶의 질 개선과 국가위상 강화
         8. 녹색국토, 교통의 조성
        9. 생활의 녹색혁명
        10. 세계적인 녹색성장 모범국가 구현
(녹색성장위원회)
참고: 46억 년 전 원시지구에서의 운석충돌 과정에서 생겨난 탄산가스는 현재의 20만 배에 이르러 온통 가스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지구탄생 후 약 15억년이 지난 데본기 이후, 31억년에 걸쳐서 해양 수중동물에 의한 산호화석에 의해
칼슘성의 석회석(CaCO3):탄산칼슘)이 형성하는 과정에서 탄산가스가 응축되어
석회암의 돌 속에 탄산가스를 가두어 두게 되면서 지구는 차츰 청정화되어 왔었다.
桂林의 리강에는 석회암층이 10Km나 되는 것도 있고, 호주 해안의 산호초 바위가 현재도 생성 중에 있다고 한다.


4. 指標로 본 韓國經濟

    우리가 경제에 관련된 기사나 뉴스를 대할 때, 그 용어에 따른 내용이나
갈피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서도 그저 어물쩍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한 나라를 통째로 보는 경우라 해서 개인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아니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비유해 보고자 한다.


         A. 공급과 수요 그리고 GDP(147)
         B. 통화의 흐름(156)
         C. 국제수지의 구조(177)
         D. 상품 수출입 무역(185)
         E. 서비스 무역(195)

A. 공급 및 수요와 그리고 GDP



     한 농부가 있다고 가정해보면 농산물을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종자, 비료, 농약 등이 투입될 것이다.
이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제공하는 것을 구매해서 생산에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생산을 위한 중간 투입이 되는 것이다.
물론 기업이라면 조달된 원자재가 생산을 위한 대표적인 중간투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농사를 짓기 위해 일꾼을 사서 덴다면 그 보수를 주게 될 것이고,
기업에서는 생산에 참여케 하기 위해 고용한 근로자에 임금을 지급하게 될 것이다.
즉 주인이 아닌 타인을 고용해서 생산에 참여케 하고 지급되는 보상이 피용자 보수가 된다.

    만약 5년간 사용할 수 있는 농기계를 사용한다면 구매한 값에 대한 사용연수로 나눈 값이
생산에 참여한 농기계의 닳은 분의 값어치인 이른바 고정자본 소모가 될 것이다.
물론 기업의 공장이라면 기계의 감가상각액충당액이 그 대표적인 고정자본 소모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농토에 대한 세금을 냈으면 이것도 생산에 관련해서 낸 것이 될 것이고,
기업이라면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 그리고 법인세 등을 내어야 할 것이다.
또 그중 정부보조금을 받았다면 이를 공제한 만큼이 순 생산세가 될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주인인 농부에게 남는 것이 영농잉여가 될 것이며, 기업에서는 영업잉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생산에 참여한 각자의 기여한 몫이라 할 이른바 부가가치가 된다.
이는 주인, 피고용인, 정부 등의 참여자 몫이 된다.

이처럼 생산에 들어간 중간투입과 부가가치를 합한 것이 총생산이 된다.

    농부이건 기업이건 자기가 생산한 것들과는 따로 외부(즉 수입)에서 조달한 것을 합해서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둘을 합한 것을 총 공급이라 할 것이다.

2008년도 경제 총공급과 총수요 구성 (조원,%)
공 급 측 면 수 요 측 면
input 총산출
2,689.0
(82.9%)
국내수요
2,700.6
(83.3%)
중간투입
1,665.1
(A 51.3)
중간수요
1,665.1
(D=A 51.3)
 
 국내최종수요
1,035.5
(E)(31.9)
 
  o소비수요
713.9
(68.9%)
부가가치(투입)
1,023.9
(B 31.6)
민간
557.6
-피용자보수
471.3
46.0%
정부
156.3
-영 업 잉 여
299.2
29.2%
  o투자수요
321.6
(31.1%)
-고정자본소모
136.2
13.3%;
    고정자본형성
299.7
-순 생 산 세
117.2
11.4%
    재고증감
21.9
output
해외수요(수출)
541.3
(F16.7%)
*국내총산출(A+B)
(2,689.0)
(100%)
*최종수요(E+F)
(1,576.8)
( 48.6%)
   
통계불일치
- /1.1
 
supply
 
     
국내공급 (국내총생산=A+B)
해외공급(수입)
553.9
(C 17.1%)
총공급(A+B+C)
3,242.9
  총 수 요
3,242.9
 

다음은 물재와 재화를 쓰는 입장에서 즉 수요측면에서 살펴보자.

    물재를 사용할 때에는 자기가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 넘기는 것이 있다. 쌀가게에서는 쌀을 사서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데, 이처럼 자기가 최종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중간에서 넘겨주려고 하는 물재의 요구가 이른바 중간수요이다. 도매상이 원자재를 넘겨주는 것도 모두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타인에게 넘기지 아니하고 최종적으로 자기가 사용하는 것인데
이에는 직접 소비코자하는 소비수요와 투자에 대비코자 하는 투자수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수출은 국내에서 소비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으로 내어보내는 것이므로 해외로의 최종수요에 속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간수요와 최종수요를 합한 것을 총수요라 한다.
세상은 사후적으로는 공급하는 것과 수요되는 것과는 같아지는 것이므로 총수요는 총공급과 같은 액수가 될 것이다.
중간수요와 최종수요로도 나누지만 국내수요와 해외수요로도 나누기도 한다.(수출은 해외최종수요)

총공급 및 총수요 추이 (조원,(%)
년도 국내 산출 수입 총공급
총수요
국내수요 중간수요 최종수요 수출
 
A
B
C+D
C
D
E
2008
2,689.0
553.9
3,242.9
2,700.6
1,665.1
1,035.5;
541.3
 
(82.9)
(17.1)
(100.0)
(83.3)
(51.3)
(31.9)
(16.7)
2007
2,396.3
413.2
2,809.5
2,396.5
1,436.2
960.3
413.0
 
(85.3)
(14.7)
(100.0)
(85.3)
(51.1)
(34.2)
(14.7)
2006
2,203.0
365.1
2,568.1
2,203.9
1,308.6
895.3
364.2
(85.8)
(14.2)
(100.0)
(85.8)
(51.0)
(34.9)
(14.2)
2005
2,068.8
332.6
2,401.6
2,058.1
1,216.8
841.3
343.3
(86.1)
(13.9)
(100.0)
(85.7)
(50.7)
(35.0)
(14.3)
2000
1,392.9
239.8
1,632.7;
1,395.7
793.3
602.5
237.0
(85.3)
(14.7)
(100.0)
(85.5)
(48.6)
(36.9)
(14.5)
자료:BOK 2009.7.20
2008년도 총공급과 총수요
    자, 이쯤에서 표를 보면서 2008년도 우리나라의 총 공급과 총수요의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우선 공급면에서 총산출액은 2,689조원이다.
그 내용은 생산과정에 중간 투입된 것이 1,665.1조원이며,
생산참여부분의 부가가치가 1,023.9조원이고,
해외에서 수입해서 공급한 것이 553.9조원이다.
이 셋을 합하면 총 산출액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산요소로서 참여한 자에게 배분되는 부가가치 총액(1,023.9조원)이
2008년도 우리나라 GDP (Gross Domestic Products)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산에 참여한 자란 피용자, 영업자, 그리고 참여한 기계 시설 등 이른바 고정자산이 닳은 부분의 가치가 있을 것이며,
여기에 정부가 세금으로 관여한 것이 있을 것이다.

     다음은 수요 측면, 역시 총액은 공급과 같은 2,689조원이다.
수요의 쓰임새라는 것도 사실은 간단하다.
먼저 생산과정에서 중간 투입으로 준 사람이 있으면 이것을 받은 사람은 결국 수요 측 입장이 될 것이므로
중간수요는 당연히 중간투입이나 같은 액수인 1,665.1조원일 것이다.
주는 입장은 공급이고 받는 입장은 수요가 되는 것이니 같은 것을 공급과 수요 양면에서 보는 입장만 다른 것이다.

     자, 그리고 쓰임새의 수요 용도를 보면, 소비하거나, 아니면 투자하거나, 또는 해외로 수출하는 세 가지 일 것이다.
표에서 보듯이 소비(수요)는 713.9조원이고, 투자(수요)는 321.6조원이 되고,
해외(수요)로 내보내는(물품과 서비스) 수출이 541.3조원이 된다.
이렇게 중간수요와 소비 투자 그리고 수출을 합하면 총수요액이 되는 것이다.

     수출과 수입은 해외와의 거래이므로 이들을 해외공급, 해외 수요라고 하면,
이를 제외한 부분은 국내공급, 국내수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수가 있지만, 그리 복잡한 갈래는 아닌 것이다.

일단 이 정도만 총공급과 총수요의 내용의 큼직한 줄기의 갈래만 잡아 놓으면 경제 전반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중 어느 하나하나를 세분해서 볼 때 그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산업별 산출과 연관효과(2007)      (조원,%)
산 업 산출액 구성 (%) 생  산
유발계수
부 가
가치율
중 간
수요율
민간소
비구성
수출율 수출구성
2,396.3
100
1.940
40.1
51.1
100
17.2
100
농림어업
44.2
1.8
1.774
57.0
69.3
2.6
1.0
0.1
광 업;
3.1
0.1
1.705
59.2
100.4
-
2.1
-
제 조 업
1,115.5
46.5
2.073
24.3
58.8
24.6
31.1
83.9
-소비재
162.1
6.8
2.085
29.0
52.0
13.6
12.4
4.9
음식료
76.6
3.2
2.094
28.3
47.0
8.4
4.3
0.8
-기초소재
477.3
19.9
1.967
22.5
77.4
5.1
21.5
24.9
석유석탄
95.7
4.0
1.180
26.3
64.1
3.1
26.6
6.2
화 학;
161.2
6.7
2.055
21.4
74.2
1.7
26.0
10.1
1차금속
140.3
5.9
2.202
17.3
85.9
-
18.1
6.2
-조립가공
476.0
19.9
2.190
24.4
42.6
5.9
47.0
54.2
일반기계
86.4
3.6
2.381
26.1
45.6
0.3
27.0
5.2
전기전자
211.2
8.8
1.857
24.4
44.5
2.7
56.6
28.9
수송장비
164.5;
6.9
2.390
23.5
37.3
2.6
46.6
18.6
-전력건설
222
9.3
1.764
41.9
22.7
2.9;
-
-
전력수도
55.1
2.3
1.474
37.3
72.5
...
-
-
건 설
167.0
7.0
2.055
43.5
6.1
...
-
-
서비스업
967.1
40.4
1.721
58.9
39.8
69.8
-
-
-도소매업
120.1
5.0
1.666
59.3
50.0;
8.2;
-
-
-음식숙박
64.8
2.7
2.025
40.4
34.2
8.4
-
-
-운수보관
92.5
3.9
1.578
40.5
49.9
4.0
-
-
-금융보험
112.2
4.7
1.697
58.0
59.9
7.6
-
-
-부동산등
234.1
9.8
1.550
68.4
53.2
13.6
-
-
-교육보건
140.8
5.9
1.572
68.0
7.3
14.0
-
-
자료: BOK,2009.7.20

     산업별 연관효과를 계산해 놓은 산업연관표에 의해서 산업별 내용을 살펴보면,
2007년도 국내 총생산액은 2,396.3조원이며, 그중 제조업이 46.5%, 서비스업이 40.4%, 농림어업이 1.8% 광업이 01%,
그리고 정부 및 비영리기관 생산 분이 11.3%이다.

    2000년에서 2007년 사이에 생산구성 변화 상황을 보면, 농립어업 부문이 1.0%포인트 하락하였고,
제조업 부문은 0.5%포인트, 서비스업종은 1.0%포인트씩 올라갔고,
정부 및 비영리 부문등 기타부문에서는 0.5%포인트 하락하였다. 특히 농업부문의 상대적 퇴조가 두드러져있다.

생산 구성 추이(%)
  2000 2005 2006 2007 2000/07차이
농림어업     2.8     2.1     2.0     1.8
-1,0%포인트
제 조 업
46.0
46.3
46.3
46.5
+0.5
서비스업
39.4
40.0
40.3
40.4
+1.0
정부및 비영리
11.8
11.3
11.4
11.3
-0.5
자료: BOK, 2009.7.20

    최종수요 1단위가 일어날 때에, 생산이 유발되는 계수는 2007년도에는 전체적으로는 1.862이고,
소비는 1.720, 투자는 2.020, 그리고 수출은 1.975이다.

    즉 수출 1만달러의 상품을 수출하면 국내 생산은 1만9,750달러의 생산이 결과적으로 함께 이뤄지는 것이 된다.
생산은 고용과 소득을 창출하는 것이 된다.

최종수요의 생산유발계수
  2000 2005 2006 2007
1.781
1.852
1.864
1.862
소 비
1.671
1.712
1.721
1.720
투 자
1.923
1.991
2.011
2.027
수 출
1.868
1.980
1.999
1.975
자료: BOK, 2009.7.20


     이번에는 경제주체로서의 國民의 입장에서 소득의 각종 내용의 갈래를 발표된 (2010.3.26자)2008년도 확정계수를 통하여 살펴보자.

    먼저 요소비용 국민소득 즉 생산에 참여한 기본 두 요소 즉 피용자보수와 영업잉여와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을 합한 것이 이것이다. (474.9+295.4+7.6=777.9조원)

    그리고 시장가격 국민소득은 앞의 요소비용국민소득에 정부가 관세나물품세 같은 세금(-보조금) 즉 순생산 수입세를 더한 것이 된다.
                (777.9+120.2=898.2조원)
    마지막으로 국민 가처분 소득이란 것은 앞의 시장가격국민소득에 국외순경상이전소득을 합한 것이다.
                (898.2+(-0.1)=898.1조원)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해외에서의 주고받은 소득도 함께 계산해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가장 많이 회자되는 GDP(국내총생산)이라는 것이 있다.
國家의 입장에서 본다면 피용자, 영업자, 그리고 정부의 수취소득은 비록 아닐지라도,
이 시설이나 기계 같은 것이 기여한 감가상각 충당금 같은 고정자본 소모분도 국가적 소득이 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국내의 부가치 총액을 이른바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s)이라한다.
    물론 이에는 국내에 있는 외국인 활동 분은 포함되며, 우리가 해외에서 활동한 부분은 포함되지 아니한다.
결국 경제주체의 국적에 상관없이 우리 국토 내에서 이뤄진 경제활동의 총결과물의 총액이다.
                (1,026.4조원:부가가치총액2009년 잠정치는1,063조원)

    우리가 보통 총생산이란 용어와 총산출이라는 것이 혼돈되기 쉬운데 총산출은 부가가치와 중간투입액을 합한 것이다.
이는 소득의 개념이 아니라 이른바 생산에 동원된 모든 자원의 합계액이라 할 것이다.
                (1,026.4+1,685.4=2,711.8조원)

     이와 관련하여 국민총생산(GNP : Gross National Products)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GDP에서 국내의 외국인소득은 제외시키고,
해외의 우리국민의 소득은 더하는 즉 순해외소득을 더한 것이다.
                ( 1,026.4+7.7=1,034.1조원)

經濟活動別 國內總生産 및 國民總所得 (당해년가격, 10억원)
  2007 2008 2009(p)
10억원
10억원
증가(%)
10억원
증가%) 실질(%) 구성(%)
농업임업 및 어업
25,208.8
24,686.0
-2.1
24,928.8
1.0
1.6
2.3
광 업
2,001.2
2,336.0
16.7
2,170.3
-7.1
-1.4
0.2
제 조 업
238,610.9
256,209.4
7.4
265,783.0
3.7
-1.6
25.0
전기가스및수도
19,155.3
12,298.6
-35.8
17,412.8
41.6
4.9
1.6
건 설 업
64,979.0
64,612.2
-0.6
66,472.3
2.9
1.9
6.3
서 비 스 업 (*)
524,826.8
559,625.8
6.6
581,464.2
3.9
...
54.7
총부가가치(기초가격)
874,782.0
919,688.0
5.1
958,231.4
4.2
0.4
90.1
순 생 산 물 세
100,231.0
106,763.8
6.5
104,827.7
-1.8
-1.3
9.9
국내총생산(GDP)
975,013.0
1,026,451.8
5.3
1,063,059.1
3.6
0.2
100.0
국외순수취요소소득
1,800.9
7,663.6
-
5,595.0
-
-
0.1
국민총소득(GNI)
976,813.9
1,034,115.4
5.9
1,068,654.1
3.3
1.5
100.5
*서비스부문別 國內總生産 및 國民總所得
  도소매및음식숙박업
93,405.5
100,419.3
7.5
105,343.0
4.9
-0.6
9.9
  운수 및 보관업
40,070.5
41,613.1
3.8
42,145.4
1.3
-4.4
4.0
  금 융 보 험 업
61,114.0
65,132.2
6.6
66,283.3
1.8
3.9
6.2
  부동산 및 임대업
69,435.7
71,886.2
3.5
74,344.6
3.4
0.2
7.0
  정 보 통 신 업
39,198.1
39,666.8
1.2
40,195.2
1.3
0.6
3.8
  사 업 서 비 스
45,056.0
49,905.7
10.8
49,699.6
-0.4
-2.1
4.7
  공공행정 및 국방
55,515.9
59,396.8
7.0
64,430.5
8.5
3.4
6.1
  교 육 서 비 스 업
55,554.4
60,940.1
9.7
63,430.9
4.1
1.1
6.0
  보건및사회서비스
35,451.6
38,452.1
8.5
43,080.3
12.0
8.8
4.1
  문화및오락서비스업
12,209.1
13,048.9
6.9
13,139.3
0.7
-1.0
1.2
  기 타 서 비 스 업
17,816.1
19,084.6
7.1
19,372.0
1.5
0.1
1.8
자료:BOK(2010.3.26)

    한편 자본 조달 측면을 살펴보자. 우리는 국민가처분 소득에서 최종소비 지출를 빼면 이것이 순 저축액이 될 것이다.
                (894.2-713.9=180.2조원)

    총자본 조달액은 이 순저축액에서 감가상각충당금 같은 고정자본소모액과 국외순수취자본이전액을 합한 금액 이 될 것이다.
                (179.5+135.9+0.4=315.8조원)

    2008년도의 경제활동의 조정계수인 국외거래의 순자산증감 내용을 추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수    출        544.1조원
                         수    입      - 556.2
                         경상수지        -12.1
                         수취요소소득      +7.6
                         경상이전         - 0.1
                         자본이전         +0.4
                         순자산증감       -3.9조원

한 가지 사항들을 요리조리 쪼개서 이름 지어진 것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결국 외국 또는 외국인과의 관계를 넣었다 뱄다하는 것과 정부 역할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관계로 각종 복잡한 용어들이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B. 통화의 흐름



     이번에는 통화 즉 돈은 도대체 어디서 얼마나 흘러다니나 하는 것을 알아보자.
돈은 조폐공사에서 인쇄하여 찍지만. 화폐로서의 기능부여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에 의해서 발행되는 것이다.
화폐에 보면 한국은행 총재 도장이 찍혀있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럼 한국은행은 누가 돈 달라 하면 찍어주면 되는 것이니 제멋대로 찍을 수도 있으니, 사실은 돈은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다.
     미국도 돈을 마구 찍는 다는 얘기가 있고, 아프리카 어느 나라도 그렇다한다.
또 전쟁이 난 나라에서도 마구 찍어댄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 한국은행도 그렇게 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한국은행을 믿는 수밖에 없단 말인가?
사람이란 것은 은행 강도질도 하는데, 어찌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이번 미국 금융위기도 금융권에서 잘못한 것이라는데 우리라고 특별나다는 보장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당신은 “믿어라! 하느님 믿듯이 믿는 수밖에 없다.”고 대답 한다면 정말 어이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이도 이것이 답이다.

     우리나라는 관리통화제도이다. 이 관리를 한국은행이 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통화의 총량을 적절히 조절하여 통화가치를 안정시킴으로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성경의 구절만 외워댄다고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은행(사람)마저 못 믿는다면 나라는 망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비교적 정교한 관리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고, 또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이 잘 해오고는 있다고 본다.

     왜 이런 허공에 메어 달린 논리가 나오느냐 하면, 결국은 신용이란 단어가 모든 것을 답해 준다.

돈을 발행하면 한국은행 대차대조표에는 부채로 기록된다. 즉 그 돈 가진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돈을 들고 한국은행에 가서 빚 독촉을 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한마디로 불환지폐이다.
자기가 환불해주지는 않더라고 종이쪽지에 불과한 이 쪽지를 가진 사람을 좀 봐주라는 신용공여 증명서이다.

    화폐금융론이 어떻고, 법화가 어떻고를 강단의 교수처럼 따질 필요가 없이 신용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없지만 있는 것처럼 봐달라는 것이다.
사실은 허구의 탄생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이 허구를 모두 믿으니
한국은행 아닌 (이를 믿는)다른 사람에게 효용이 있기는 있으니 그리 휴지조각은 아닌 셈이다.

    허구에는 자칫 마가 끼게 마련이다. 온갖 꾀가 쏟아진다.
파생에 또 파생, 허구에 또 허구의 껍질을 씌워 팔다가 미국이 저 지경이 된 것이다.
금융업의 발달은 신용의 팽창이고, 뻥튀기로 세상을 지배하는 모습을 우리는 이번 뉴욕과 런던 금융시장의 혼란에서 보지 않았는가?

     우리의 이 화폐와 통화의 본원적 관리는 한국은행에서, 그리고 금감원에서는 금융권의 영업 행태를 감독하고 있다.

    그럼 화폐는 찍지 말란 말이냐? 그럴 수는 없다. 그래도 찍어야만 한다.
이는 화폐의 필요성은 온갖 책에 모두 잘 나와 있다. 지루하게 여기서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자, 그럼 화폐발행부터 살펴보자

본원통화 공급(기간평잔 1조원)
기 간 화폐발행 현금통화 본원통화
2010
39.7
 
67.5
2009
32.6
23.9
61.7
2008
29.3
22.1
52.2
2007
28.1
21.0
48.5
2006
26.7
20.3
41.6
2005
26.1
18.8
38.7

     이 표를 보면 화폐로 발행한 것은 30.8조원이다.
그리고 그중에 시중에 공급한 현금통화 는 23.9조원으로 상당히 안정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원통화(reserve money)는 63조원으로 그 증가가 두드러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무슨 뜻인가?
민간보유 화폐(지폐 및 동전)와 예금은행들이 한국은행에 지입한 지급보증금의 합계액이 본원통화이다.
    이 지급보증금은 시중은행들이 낮은 (현재 2%)이자율을 받는 보증금을 한국은행에 잡히고,
고객을 대상으로 1차로 신용 뻥튀기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한은에서 당초 공급한 것보다 많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때 한국은행에 보증금으로 넣는 지급준비금(보증금)의 이자율을 우리는 지준율이라 해서 금리 중에는 제일 싸다.(기준금리2%)
시중은행이 돈 장사 할 수 있는 밑천을 대주는 것이다.
금융기관 유동성통화지표 
(기간평잔,1조원,증가율)
기간 M1 M2 Lf 예대율
2010
399.4(11.8)
1,639.6(8.7)
2.096.5(8.2)
 
2009
357.3(17.0)
1,508.5( 9.9)
1,937.3( 7.3)
89.5%
2008
307.3(-1.8 )
1,367.7(14.3)
1,794.8(11.9)
88.2
2007
312.8(-7.5)
1,197.0(11.0)
1,603.2(10.2)
87.5
2006
330.1(-0.8)
1,076.6(7.1)
1,454.8(7.6);
83.2
2005
332.9( 8.5)
993.9(6.9)
1,348.8( 7.0)
81.7
*Lf: Lquidity Aggregates of Financial Institutes(금융기관 총유동성)
통화지표 M1=현금통화(23.8조원)+요구불예금+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결제성예금335.9)
M2=M1+ 정기예금 적금 부금(2년미만)+ 금융상품(시장형, 배당형, 금융채 투신증권 종금사어음)
유동성지표 Lf(종전M3)= M2+M2금융상품중 2년이상분+한국증권금융예수금+생보보험계약준비금
Lf= M2 +정부기업발행 유동성시장금융상품(증권사RP, 여신전문기관채권, 국채 지방채 회사채 기업어음등)


     일단 금융기관이 고객의 예금을 수신한다는 것은 은행의 부채가 늘어나는 것이 되며,
금융기관에 예금한 고객은 은행에 돈을 맡겨둔 상태이므로 수중에 직접 쥐고 있지는 않더라도
시중에서 정당한 시기에 언제든지 자금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시중 유동성의 역할을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예금의 종류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즉 자기앞 당좌수표와 같은 요구불 예금은 현금이나 마찬가지로 즉각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정기예금 같은 것은 일정한 기간의 만기가 되거나 해약을 해야만 사용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금융권 유동성 통화지표인 M1 M2 그리고 Lf의 종류가 있게 된다. (윗표 각주 참조)

     우선 본원통화에 요구불 예금을 합한 것을 M1 즉 협의의 통화라고 한다.
이는 시중에서 즉시 구매나 경제활동에 지급수단으로 활용 될 수 있는 유동성이 가장 높은 형태이다.

     다음은 정기 예금 (2년이내)과 같은 일정기간 구속성 자금은 비록 당장의 지급 수단에 대용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금융기관에 맡겨둔 채권이므로 어느 정도의 유동성은 있는 것으로 봐서 이를 준통화라고 해서
앞의 M1과 합한 것을 M2 광의 통화(또는 총통화)라고 한다.
즉 M1통화+준준화=M2로서 광의 통화액이 되는 것이다.

     한걸음 더나가 이 M2에 더하여 국체, 지방채, 회사채, 기업어음 등
유동성 금융상품 발행액을 더한 것을 Lf(종래 M3) 즉 금융기관유동성이라 한다.

     이들 통화 유동성 지표의 표에서 (2009년 5월 현재 평잔)보면 M1 통화가 355.9조원, M2광의통화가 1,491.5조원,
그리고 Lf 금융기관유동성은 1,912.7조가 된다.
     이것은 은행에 예금한 사람은 현찰을 갖고 있지 않아도 그 금액 규모에 따른 경제 활동 즉 소비나 투자 등 지출 수요에 대응 할 수가 있으므로, 그만큼 보이지 않는 돈의 행세를 하는 이른바 유동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즉 시중에서 금융기관에 대하여 채권을 가지고 유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규모는 1,912조원이다.(GDP규모의 거의 2배)
이는 사실 현금통화인 23.9조원과는 비교 안 될 정도로 팽창 부풀려 뻥튀기
즉 점잖은 표현으로 신용창출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금융 메커니즘의 공급 측면이다.

     이 돈(금융기관에 대한 청구권)이 모두 어디에 가있는가 ?
간단하게 보면 민간 정부 해외 세 부문과 기타가 있다.
     즉 총통화는 민간부문 정부부문 해외부문 기타부문 에 공급된 신용인 것이다. 금융기관 입장에서 보면
공급한 돈을 민간이 갖고 있다는 것은 -금융기관에 대한 청구권의 행사가 가능한-대민간신용을 공급한 것이 된다.
통화 개관표는 다음과 같이 축약될 수가 있다.

통화개관표(2009.5)   (단위:1조원)
정부신용(순)
xxx
통화  (M1)
  355.9
민 간  신 용
xxx
준  통  화
1,135.6
해외부문(순)
xxx
기타부문(순)
xxx
총   신  용
1,491.5
총통화(M2)
1,491.5


     표의 좌측의 계수는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에서 나온다.
이 1,491.5조원이 금융기관을 통하여 어떻게 풀려 나가서 어떤 내용으로 1,912조원의 유동성(Lf)을 만들어 냈는가하는
흐름이 곧 금융의 흐름을 잡는 첫 꼭지가 될 것이다.

     자, 이제부터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은행은 간단히 말해서 돈장사하는 곳이다. 싼돈 마련해서(수신), 좀 비싸게 파는(대출:여신) 장사이지요.

     우선 은행은 돈을 어디서 마련하는 지 봅시다.
금융기관 전체의 자산액은 2,683조원입니다. 그런데 자기자본은 206조원 밖에 안 돼 언듯 봐도 10%에도 훨씬 못미친다.
결국 타인자본(부채)이 2,477조원이란 얘기이다.

     총 수신고가 1,886조원이고, 대출한 여신 1,558조원입니다. 즉 고객에서 받아 쥐고 있는 것인 328조원이 은행에 남아 있는 셈이다. 언급한 부분을 제표하면 다음과 같다.

금융기관 대차대조표(2009.3현재) (단위:1조원)
차     변 대      변
보유현금 등
xxx
     타인자본
2,477
여신대출액
1,558
          수신총액
1,886
여타자산등
xxx
     자기자본
  206
부  동  산
xxx
          잉 여 금
-
자 산 총 액
2,683
     부채및자본 총액
2,683

     그런데도 금융권의 전체 당기잉여금은 거의 제로입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주인은 근 30만 명(교육 공무원 숫자와 비슷)에 달하는 종사자들 인 셈이다.
주주 투자자에게 나눠줄 잉여금은 없지만 금융기관 종사자 보수가 높다는 것, 그것도 영업 않고 감독하는 기관이 높다는 것 잘 알려져 있다.

     그럼 왜 은행은 그렇게 근사하게 차려 놓는 것일까요?
뻥튀기장사 참 재미보고 있는 셈이지요. 주변사람들이 부러워도 하고, 또 기업하는 사람들은 벌벌 떨고,
어느 직종치고 금융계만큼 접대 골프 많이 치는 곳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점은 구제금융 받아 보너스 잔치 벌린 미국에서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 금융제도가 너무도 탄탄하게 짜여있어서 혁명이 아니고는 말발이 먹혀들기 어렵게 촘촘히 얽혀있기 대문입니다.
     IMF 사태는 금융기관 때문에 온 것임을 잊어서는 않된다. 마치 국민이 뭔가 잘못 한 듯이 아는데,
사실은 돈 장사하려고 종금사인가 뭔가를 무더기로 만들어서 단기자금 해외에서 들여와 장사하다 뻥 난 것 다 아는 사실이다.

부문별 금융자산 조달과운용(2009년6월현재, 조원)
총금융자산
9,239  
 
개인금융자산
   예금
   주식
1,825  
819  
299   
개인금융 부채
   금융기관대출
      (주택담보)
818  
638  
254   
 
순개인금융자산
1,007  
기업부문자금조달
   간접금융
   직접금융
78.5  
10.5  
61.1  
기업자금운용
   금융기관 예치
   유가증권
44.0 
37.8 
5.2  
 
순기업부채
34.5  
정부부문조달
   국채
   금융기관 차입
48.3  
26.6  
23.8  
정부부문 자금운용
   유가증권


30.7 
14.7 

해외부문조달
-2.6  
해외부문운용
-31.3  

 *주: 총금융자산 및 금융연관비율   단위 : 10억원
2007 2008 2009
12월 12월 6월
총금융자산 8,061,348 8,665,785 9,239,794
금융연관비율(배) 8.25 8.41 8.98
개인부문 금융자산 및 부채잔액 (10억원)
  2007 2008 2009
6월
12월
6월
12월
6월
금융자산(A)
1,633,341
1,712,796
1,734,319
1,677,355
1,825,469
예 금
719,140
715,616
746,992
771,359
819,604
보험및연금
367,426
391,797
408,593
422,469
445,357
수익증권
129,522
168,397
163,397
119,608
139,898
주 식
323,202
346,058
332,929
251,469
299,619
기 타
94,052
90,928
82,408
112,451
120,992
 
금융부채(B)
704,566
743,017
779,777
802,037
818,399
예금취급기관차입금
546,085
571,431
598,297
622,036
638,111
(주택담보대출)
217,824
221,640
229,477
239,688
254,408
보험차입금
65,577
69,831
74,676
76,713
76,390
여신전문기관차입금
36,866
44,289
48,379
47,321
44,036
공적금융차입금
26,199
28,233
28,736
31,143
31,451
기타금융기관차입금)
29,099
28,483
28,927
24,213
27,795
정 부 차 입 금
740
751
762
610
617
 
순금융자산(A-B) 928,775 969,779 954,542 875,319 1,007,070



기업부문자금 조달과운용 (10억원)
  2007 2008 2009
6월
12월
6월
12월
6월
자 금 조 달
99,580
99,570
139,487
92,691
78,563
간 접 금 융
50,153
51,647
76,406
42,363
10,588
(예금취급기관)
47,155
45,245
67,939
39,378
6,975
(기타금융기관)
2,998
6,292
8,466
2,985
3,613
직 접 금 융
25,068
27,387
32,729
27,953
61,158
(기 업 어 음)
12,983
11,554
7,761
4,634
-2,057
(회 사 채)
202
-5,385
2,912
18,253
47,729
(주 식)
7,484
16,884
18,439
1,550
11,796
(출 자 지 분)
4,102
3,933
3,239
2,993
7,484
국 외 조 달
5,149
6,448
1,258
973
2,635
기 타
19,210
19,279
29,379
15,927
4,182
 
자 금 운 용
43,354
67,061
66,384
55,333
44,073
금융기관예치금
9,028
20,024
8,304
37,177
37,893
(결제및단기저축성예금)
-4,114
8,471
-6,832
18,223
21,660
(장기저축성예금)
-2,571
3,319
4,374
16,530
6,444
(양도성예금증서)
7,709
3,306
7,795
-658
4,838
(금 전 신 탁)
4,773
6,961
5,569
2,430
-143
유 가 증 권
9,368
8,905
16,004
5,420
5,295
(금 융 채)
2,239
-2,774
5,037
3,515
-832
(기 업 어 음)
4,721
4,711
-1,685
1,520
-408
(수 익 증 권)
3,752
2,037
7,121
-7,416
-1,133
(주 식)
1,424
6,338
7,638
8,655
4,101
대 외 채 권
6,743
12,318
7,487
4,960
1,915
기 타
18,214
25,814
34,590
7,776
-1,029
		
	      기업부문의 자금부족 및 설비투자 증가율  (단위 : 10억원, %)
	                            2007               2008        2009
							상반기   하반기   상반기  하반기  상반기
		  자금 부족액       56,226   32,509   73,102  37,358  34,489 
		  자 금 부 족 률     12.1     6.3     14.5     7.1    6.9 
		  자 금 조 달 액    99,580   99,570  139,487 92,691  78,563 
		  설비투자증가율     10.4     4.5      4.3    8.5      -6.1 
정부부문 자금조달 및 운용 (10억원)
  2007 2008 2009
상반기
하반기
상반기
하반기
상반기
자 금 조 달
20,141
6,149
10,777
-3,307
48,378
(국     채)
17,218
4,536
15,255
-1,301
26,669
(금융기관차입금)
2,321
-2,484
55
-409
23,857
   
자 금 운 용
48,685
22,200
50,503
-14,226
30,773
  금융기관예치금
23,113
1,171
19,710
-27,031
1,737
(정 부 예 금)
3,630
12,268
1,467
-12,075
2,062
(결제단기저축성예금)
4,288
39
5,661
462
-4,028
(장기저축성예금)
2,468
-2,311
7,331
-3,224
-2,033
(환매 조건부 채권)
2,973
-6,935
207
-2,885
-1,768
(기 타 예 금)
4,426
-4,598
9,127
-9,120
3,160
   정 부 융 자
5,470
9,646
8,140
-2,594
9,898
   유 가 증 권
16,059
11,132
10,871
24,210
14,133
(국 공 채)
2,935
-701
9,554
8,246
5,688
(금 융 채)
2,388
3,730
-9,864
-809
-3,425
(회 사 채)
2,533
808
3,112
7,282
7,839
(주    식)
4,591
5,175
2,665
7,474
-3,621
   대 외 채 권
692
2,282
13,254
-12,133
1,292
기타
3,351
-2,031
-1,471
3,323
3,714
   
차액(운용-조달)
28,544
16,050
39,727
-10,919
-17,605
*BOK

국외부문 자금조달 및 운용 (10억원)
  2007 2008 2009
상반기
하반기
상반기
하반기
상반기
자 금 조 달(대외자산)
43,920
41,365
-9,207
-128,223
-2,657
(해 외 증 권)
29,741
22,731
793
-30,898
-2,346
(외 환 보 유 액)
9,555
4,504
-9,512
-60,019
37,939
(직 접 투 자)
4,842
9,623
6,682
6,970
2,523
(콜 머 니)
-734
1,238
-1,147
2,548
80
(기 타)
-1,827
543
-9,391
-47,702
-41,884
           
자 금 운 용(대외부채)
50,047
30,112
-3,622
-130,985
-31,323
(외국인주식투자)
224
-26,809
-21,484
-21,896
12,561
(해 외 증 권)
13,039
8,152
5,853
-4,263
7,700
(국 내 채 권)
4,016
29,541
12,969
-16,518
3,965
(상 거 래 신 용)
6,230
6,392
3,975
1,832
-6,429
(기 타)
15,017
7,049
-10,645
-85,289
-54,260
           
차 액 (운용 ­ 조달)
6,127
-11,254
5,584
-2,762
-85,289
 
금융부문의 자금조달 (10억원)
  2007 2008 2009
상반기 하반기 상반기 하반기 상반기
자금조달(합 계)
241,380
114,168
275,344
-44,569
137,720
금융권 별
예금취급기관
173,100
87,429
213,832
-37,882
77,507
(은 행)
132,738
20,548
130,171
-66,845
22,664
보험및연금기금
22,683
24,966
16,457
15,653
23,307
기타금융중개기관
44,267
1,901
45,453
-23,610
36,732
금융상품 별
예수금
98,749
45,809
120,100
87,143
105,226
채권
59,523
56,377
92,774
16,923
18,943
-금 융 채
34,288
20,293
30,638
19,278
-2,061
-수익증권
24,801
34,993
61,646
3,113
14,214
국내차입
7,254
-102
3,068
24,393
-3,513
국외조달
24,358
14,593
-4,532
-91,836
-49,970
           
자금운용(합 계)
244,644
120,046
271,702
-34,140
156,421
금 융 권
별예금취급기관
167,676
96,164
208,255
-32,978
87,102
(은 행)
125,674
25,443
138,029
-63,035
27,696
(비 은 행)
42,003
70,721
70,226
30,057
59,407
보험및연금
23,969
21,671
17,904
13,955
22,930
기타금융중개기관
51,271
1,886
43,957
-14,953
41,301
금 융 상 품
별금융기관예치금
33,462
8,081
48,884
37,398
-983
유가증권
58,808
10,274
77,890
-9,709
116,029
(국 채)
8,997
-11,571
6,109
-3,099
21,791
(금 융 채)
26,168
-1,060
11,777
2,430
33,621
(수 익 증 권)
6,964
-4,742
17,238
-11,632
19,555
(주 식)
3,681
26,804
28,525
5,522
986
대출금
93,588
93,357
118,762
62,855
21,376
대외채권
23,964 2
-19,644
2,058
-63,583
-47,654
주 : 1) 한국은행 제외

	    
시중금융부문의 비금융부문에 대한 자금공급
  2007 2008 2009
상반기
하반기
상반기
하반기
상반기
금 융 자 산 잔 액
7,606,080
8,061,348
8,578,117
8,665,785
9,239,794
 
(8.10)
(8.25)
(8.44)
(8.41)
(8.98)
비금융부문 자산
3,029,684
3,206,789
3,292,786
3,161,942
3,454,579
(기 업)
773,299
844,474
859,991
811,650
915,359
(개 인)
1,633,341
1,712,796
1,734,319
1,677,355
1,825,469
비금융부문 부채
1,841,142
1,940,510
2,100,086
2,239,421
2,361,210
(기 업)
886,193
946,675
1,054,180
1,154,852
1,216,590
(개 인)
704,566
743,017
779,777
802,037
818,399
기업자금조달
99,580
99,570
139,487
92,691
78,563
(간 접 금 융)
50,153
51,647
76,406
42,363
10,588
(직 접 금 융)
25,068
27,387
32,729
27,953
61,158
(국 외 조 달)
5,149
1,258
973
6,448
2,635
자 금 운 용
43,354
67,061
66,384
55,333
44,073
차액(운용-조달)
-56,226
-32,509
-73,102
-37,358
-34,489
개인자 금 조 달
34,391
41,727
38,731
24,224
15,469
자 금 운 용
57,662
62,720
70,840
60,964
75,299
차액(운용-조달)
23,271
20,993
32,108
36,740
59,831
정부자 금 조 달
20,141
6,149
10,777
-3,307
48,378
자 금 운 용
48,685
22,200
50,503
-14,226
30,773
차액(운용-조달)
28,544
16,050
39,727
-10,919
-17,605
국외자 금 조 달
43,920
41,365
-9,207
-128,223
-2,657
자 금 운 용
50,047
30,112
-3,622
-130,985
-31,323
차액(운용-조달)
6,127
-11,254
5,584
-2,762
-28,666
금융자 금 조 달
256,166
123,954
273,245
-31,167
185,839
자 금 운 용
254,450
130,674
268,928
-16,868
206,769
차액(운용-조달)
-1,716
6,720
-4,317
14,299
20,930
금 융 거 래 액
454,199
312,766
453,033
-45,781
325,592
 
금융부문의 비금융부문에 대한 자금유형별공급 (10억원)
  2007 2008 2009상반기
상반기
하반기
상반기
하반기
상반기
자 금 공 급
101,216
100,550
160,058
70,073
87,752 (100.0)
기업
59,042
74,299
117,658
52,379
49,086
개인
32,752
38,351
36,236
21,202
14,817
정부
9,422
-12,100
6,163
-3,508
23,848
대 출 금
83,227
89,404
112,697
63,156 (90.1)
27,462 (31.3)
예금취급기관
61,209
70,217
94,337
61,852
23,681
기타 금융 기관
22,018
19,187
18,360
1,304
3,782
유 가 증 권
17,990
11,146
47,361
6,917 (9.9)
60,289 (68.7)
기업어음
6,433
5,448
9,371
2,805
-468
회 사 채
51
-5,969
2,685
4,021
38,360
국 공 채
9,394
-11,367
6,423
-2,621
22,522
주 식
2,112
23,034
28,882
2,712
-125
주 : 한국은행 제외
 
금융거래금리추이(기간평잔, %)
기간 어음부도율 수신금리 대출금리 콜금리
09.4
0.03
4.16
5.91
1.80
2008
0.03
5.71
7.17
4.78
2007
0.02
5.70
6.55
4.77
2006
0.02
4.41
5.99
4.19
2005
0.04
3.62
5.59
3.32
자료 : BOK
 
3

*금융통계월보, 2009.6 금감원

은행 및 금융권 경영상황
  단위 2000 2005 2006 2007 2008 09.3
기관수
1,707
1,395
1,372
1,358
1,366
1,362
 은행
22
19
18
18
18
18
종금사
10
2
2
2
2
2
저축은행
147
111
110
108
106
10
신협
1,317
1,051
1,024
1,007
994
992
생보
23
23
22
22
22
22
손보
17
28
29
28
30
30
직원수
259,128
258,178
270,127
282,592
292,669
-
은행
119,980
124,755
130,990
135,383
139,705
-
자산액
조원
1,158
1,716
1,958
2,237
2,613
2,683
은행
829
1,237
1,394
1,567
1,870
1,915
자기자본
조원
48
141
165
192
198
206
은행
32
83
96
106
109
113
당기순익
조원
-9
23
23
28
-
-
은행
-4
13
13
15
7
0.56
수신고
조원
721
1,252
1,409
1,595
1,835
1,886
은행
518
710
779
837
963
972
총여신
조원
661
959
1,119
1,301
1,535
1,558
은행
526
795
930
1,073
1,288
1,313
BIS
%
-
13.00
12.75
12.31
12.31
12.94
ROA
%
-
1.27
1.11
1.10
0.47
-
ROE
%
-
18.42
14.64
14.60
7.11
-
*금융통계월보, 2009.6 금감원

(주) 금융기관 자금조달(억원)
08년6월중증감 08년6월말잔액
은행계정 52,919 8,633,214
실제요구불 10,322 591,399
저축성예금 10,795 5,161,876 (정기예금) -3,727 3,060,062 (수시입출식) 41,478 1,697,017 CD+RP+표지어음 34,278 1,399,924 은행채 -2,476 1,480,016 자산운용사 -10,414 3,581,520 주식형 펀드 16,747 1,420,173 혼합형 펀드 7,790 473,423 채권형 펀드 -9,370 409,494 MMF -46,725 708,898 신종펀드 21,144 569,533 은행신탁 16,667 715,560 (특정금전신탁) 14,038 539,587 종금사 -10,671 239,425 발행어음 605 188,007 CMA -11,276 51,418 매출어음 11,146 363,796 우체국예금 7,783 421,691 증권사 고객예탁금 -8,608 91,704 *자산운용사는 투자신탁과 투자회사, 신종펀드는 파생상품등 간접펀드 *BOK 2008.7.8
금융기관 여신 (10억원)
  2006 2007 2008 2009.1Q
은 행 대 출        
대기업
-1,322
8,530
23,418
634
중소기업
43,543
65,126
45,044
8,785
가계대출
40,893
17,790
25,007
3,131
(주택담보)
26,785
4,586
18,056
7,620
CP 순 발 행
2,611
3,820
18,511
5,411
회사채순발행
-2,540
-1,766
9,047
15,433
주 식 발 행
5,050
5,050
3,951
616
*조사월보 2009.5 BOK

중앙정부 재정지출 예산(안)

(단위:1조원)
분 야
2009본예산
2010예산안
증가율(%)
 총 규 모
291.8
2.5
  사회복지/보건
74.6
81..0
8.6
  일반공공
48.6
49.5
2.5
  교    육
38.2
37.8
-1.2
  국방(일반회계)
28.5
29.6
3.8
  수송/교통/수자원
24.7
24.8
0.3
  농림해양수산
16.9
17.2
2.1
  산업/중소기업/에너지
16.2
14.4
-10.9
  연구개발
12.3
13.6
10.5
  공공질서/안전/통일외교
12.3
12.9
4.3
  환경보호
5.1
5.4
5.1
  문화/관광
3.5
3.7
7.8
*자료 기획재정부 (09.9.24) 수입예산은 287.8조원(-1.1%)로 4조원 적자예산
*2009년도 추경예산 301조8천억원대비는-3.3%임

 

주요국별 군사비 지출

(단위 : 1억달러)
  국가 SPRI  CIA
군사비
1인당($)
세계비중 군사비
GDP비중
    1. 미  국
4,782
1,604
48.5%
5,181.0
4.06%
    2. 영  국
483
809
5%
428.3
2.3
    3. 프랑스
462
763
5%
450.0
2.6
    6. 독  일
332
401
3%
350.6*
1.4*
    7. 이태리
272
468
3%
281.8*
1.7*
    8. 사우디
252
1,025
3%
180.0
10.0
    9. 러시아
210
147
2%
...
...
    10. 인  도
204
185
2%
190.4
2.5
    5. 중  국
410
31.2
4%
814.7
4.3
    4. 일  본
421
329
4%
443.1
1.0
    11. 한  국
164
344
2%
210.5
2.6
    12. 캐나다
106
327
1%
98.0
0.9
    13. 호  주
105
522
1%
178.4
2.7
    14. 스페인
99
203
1%
99.0*
1.2
    15. 이스라엘
96
1,430
1%
94.4
7.7
*자료 : SIPRI, 2005년도, 중국 러시아는 추정치, 한국은 일본의 40%에도 못미침
          CIA(2006.8.22), 2005년 ppp기준(*표는03년) 한국 8위...

우리나라 국방비 예산 (단위 : 1억원)
주요항목
2008년도
2009년도
증감액
국방비 총액
26조6,490
28조5,326
1조8,836
방위력개선비 합계
7조6,813
8조 6,147
9,334
    지휘통제통신
4,488
3,026
-1,462
    기동전력
6,083
9,212
3,129
    함정
1조1,708
1조2,543
835
    항공기
1조5,248
1조4,336
-882
    화력탄약
8,423
1조     76
1,653
    감시정찰
2,878
4,233
1,355
    신특수무기
1조1,908
1조5,019
3,111
    연구개발
1조4,522
1조6,090
1,568
    기술기획품질경영
555
570
15
    종합지원
1,000
1,012
12
경상운영비합계
18조9,677
19조9,179
9,502
    병력운영
11조6,817
11조9,257
2,440
        인건비
10조2,146
10조4,160
2,014
        급식피복
1조4,671
1조5,097
426
    전력유지
7조2,860
7조9,922
7,062
        군수지원
3조   209
3조3,574
3,365
        시설운영
1조4,709
1조9,014
4,305
        정보화
4,290
4,134
-156




국세수입예산

  
(단위 : 조원)
분 야
08(예산안)
09년(예산)
09(전망)
2010예산안
국  세   총  계
165.6(+4.6%)
164
164.6
171.1(7.1)
  소 득 세
37.8( 0.8)
36.3
33.9
37.0(0.7)

-근로

 
14.9
13.3
14.2(-0.7)

-종합

 
7.3
5.9
5.9(-1.4)

-양도

 
6.3
7.3
8.9(2.6)
  법 인 세
36.0( 6.3)
32.2
36.1
35.4(3.2)
  상속증여세
3.9(23.4)
  부가가치세
4.4( 9.7)
45.6
46.3
48.7(3.1)
  특별소비세
4.6(-7.9)
  증권거래세
3.3(17.5)
  인지세
0.6( 7.0)
  과년도수입
2.6(-10.8)
  교 통 세
12.0(-6.8)
  관   세
7.2( 1.7)
  교육세
4.1(-2.4)
  종합부동산세
3.0(34.3)
  주세(특계)
2.5(-1.4)
  농특세(특계)
3.6(15.7)
*1인당담세액:453만원
*2010년 예산자료:기재부(2009.9.24) 

C. 國際收支의 構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현금을 어느 정도는 항상 갖고 있어야만 한다.
아무리 재력가라도 수중에 현금이 당장에 없으면곤란을 당할 것이다.
집에 아무리 금송아지가 있더라도, 식당에서 자장면이라도 먹고 나서 그 값을 못 내면 보통 난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까운 집안사람 사이라면 약간은 서로 미루어 주어 그런대로 위기를 벗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면부지 바깥 외부 사람이라면 아마 멱살 잡히기 딱 알맞을 것이다.

    개인이 그렇듯이 나라도 국내에서의 빗의 문제라면 우선 갖가지 방안을 찾도록 편의라도 제공되겠지만,
외국과의 당장 외화로 지급해야하는 관계라면 정말로 심각 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외국과의 거래가 아주 밀접하고, 특히 우리나라 같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라면
국가적으로 적절한 규모의 외화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잘 아는 속칭 IMF 사태(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는 바로 이 외화 보유가 바닥을 보여
대외지급이 급박한 상태에 이르러 국제 망신을 치렀었던 것이었다.

    그럼 이 외국과의 외화거래의 수지내용, 즉 외국과의 외화의 수입 지출 사항과 그 잔고사항을 기록하는 것이 국제수지표이다.
집안의 가계부와 같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이때 내국이냐 외국이냐는 개념을 거주자이냐 또는 비거주자이냐 라는 용어로서 구별한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도 거주자 개념에 속하면 외환관리법상 우리나라이고,
내국인이라도 재외상주인 이라면 비거주자로서 외국 취급을 한다.
    다음은 수입과 지출은 실제로 이루어진 (또는 약정하여) 실행된 형태를 기준으로 한다.
수입과 지출은 우선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로 대별된다.

    그중 경상수지는 글자그대로 경상적 대외 거래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대부분 收入주체와 支給주체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며 또한 개별적 사항으로서 종결된다.

    그런데 자본수지는 수지의 주체가 최종적으로는 대부분 같은 것이다. 즉 투자자가 회수도 하게 된다.
회계기장상으로 채권과 채무의 대차 대체거래가 이루어진다.

다음에서 국제수지의 예를 들어 보겠다.

경상수지
    상품수지
        輸出 輸入........상품의 수출과 수입
    서비스수지
        收入 支給......운송 여행 금융 부험
    소득수지
        收入 支給.......노무자송금
    이전수지
        收入 支給 .... 교포송금 원조물자
자본수지
    투자수지
        직접투자 ........................ 회사진출 부동산취득
        증권투자 ..........................주식에의 투자
        파생상품 ............... 금융상품견질부속금융상품
        기타투자
    기타자본이전

실제 요약된 국제수지표는 다음 표와 같다.

   국제수지표

(단위 : 1억달러)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p
I. 경상수지
186.1
140.8
217.7
32.0
327.9
293.91
265.1
  상품및서비스
229.1
181.0
251.6
-5.8
312.3
314.5
265.7
      상품수지
328.6
314.3
371.3
51.7
378.7
400.8
309.5
        수출
2,844.1
3,254.6
3,790.5
4,329.2
3,581.9
4,614.4
5,525.6
         수입
2,612.3
3,093.8
3,508.8
4,272.5
3,203.9
4,213.6
5,216.1
    서비스수지
-99.5
-133.3
-119.7
-57.3
-66.4
-86.3
-43.8
         수입
451.3
518.7
633.5
771.8
585.1
872.8
950.0
         지급
587.9
706.4
831.2
938.5
757.2
959.1
993.8
본원소득수지
-18.2
0.7
1.4
44.4
22.8
10.2
24.6
수입
104.3
145.4
197.8
231.2
157.0
163.5
174.2
지급
119.9
140.1
187.8
172.2
111.5
153.4
149.7
  이전소득수지
-24.8
-40.9
-35.3
-6.7
-7.1
-30.8
-25.2
수입
100.0
95.9
111.6
140.7
124.6
127.0
134.2
지급
124.8
136.8
146.9
147.4
132.7
134.1
165.0
II.자본금융계정
-195.3
-141.5
-236.8
-11.5
-346.5
-272.6
-321.1
   투자수지
70.9
210.9
95.0
-601.9
152.5
203.0
260.0
      직접투자
-0.6
-75.9
-179.4
-169.4
-149.5
-221.8
156.9
      증권투자
-35.2
-232.3
-260.6
-24.1
497.3
424.8
103.1
파생상품수지
17.9
4.8
54.4
-147.7
-30.9
8.3
17.4
      기타투자
44.0
414.2
321.9
-235.9
20.4
-214.14
-110.8
 III. 자본수지
-23.4
31.2
-23.9
1.1
11.9
-2.2
1.5
  준비자산증감
-198.1
-221.1
-151.3
564.5
-686.7
-269.7
-139.1
IV.오차누락
0.7
-26.0
21.2
5.9
-18.6
-19.2
54.6
외환보유고
2,103.9
2,389.5
2,622.2
2,012.2
2,699.9
2,916.0
3,064
종가환율
1,011.6
939.8
936.1
1,259.4
 
1,167.6
*자료:BOK,2012.3.4)
서비스수지 및 본원소득수지(억불)
 
2010년
2011년p
수입
지급
수지
수입
지급
수지
서비스수지
872.8
959.1
-86.3
950.0
993.8
-43.8
운송
389.8
296.8
93.1
370.6
278.0
92.6
여행
103.6
187.8
-84.2
123.0
194.6
-71.6
    (일반)
103.2
142.9
-39.7
122.5
149.9
-27.4
    (유학)
0.4
44.9
-44.5
0.6
44.7
-44.1
건설
119.8
23.0
151.9
151.9
30.9
120.9
사업
168.3
304.2
135.9
189.1
358.3
1-69.2
기타서비스
91.3
147.3
56.0
115.4
132.0
-16.6
    (통신)
8.3
14.6
-6.3
6.9
11.8
-4.9
    (보험)
5.2
8.8
-3.7
4.2
8.1
-3.9
    (금융)
27.4
8.4
18.9
33.7
8.8
24.8
    (로열티)
31.5
90.3
-58.9
43.2
73.0
-29.8
  (정부서비스)
10.2
9.5
0.6
12.0
11.4
0.6
 
본원소득수지
163.5
153.4
10.2
174.2
149.7
24.6
금료임금
7.1
10.8
-3.7
6.9
11.8
-4.9
투자소득
156.4
142.6
13.8
167.4
137.9
29.5
    (이자)
118.8
66.4
52.4
124.0
62.3
61.7
    (배당)
37.6
76.2
-38.6
43.9
75.5
-32.2
    -직접투자
25.4
62.7
37.3
32.6
61.8
-29.2
    -증권
123.2
61.2
61.9
125.8
56.5
69.2
    -기타배당
7.9
18.7
-10.8
9.0
19.5
-10.5
*자료 : BOK, 2012.3.4

금융계정 및 자본수지(억불)
 
2009년
2010년
2011년p
II. 금 융 계 정
-346.5
-272.6
-321.1
A.직접투자
-149.5
-221.8
-156.9
해외직접투자
-172.0
-232.8
-203.5
    (지분자본)
-145.3
-206.1
-175.9
    (기타자본)
-26.7
-26.6
-27.7
외국인직접투자
22.5
10.9
46.6
    (지분자본)
13.8
5.4
37.6
    (기타자본)
8.7
5.5
9.0
B.증권투자
497.3
424.8
103.0
    (자산)
14.4
-11.0
-52.9
    (부채)
482.9
436.7
155.4
C.파생상품
-30.9
8.3
-17.4
    (자산)
748.5
494.8
499.6
    (부채)
-779.4
-486.5
-517.6
D.기타투자
20.4
-214.1
-110.8
    (자산)
16.9
-159.8
-236.1
    (부채)
3.5
-54.3
125.3
III. 자 본 수 지
2.9
-2.2
1.5
이전
3.0
-0.8
1.2
로열티
-0.1
-1.3
0.3
자료:BOK , 2012.3.4

 



    위의 국제수지표는 기업에서의 수지계산서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에서 수지가 흑자로 지속되면 보유외화 자산이 늘어 날 것이고, 적자로 되면 대외국(환) 부채가 늘어날 것이다.
    위 표 아래편에 보면 국제수지표의 계산 결과로 나타난 차액이 이른바 준비자산의 당기간의 증감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누적 외환보유고를 증감 시킨다.

    외환보유고는 어느 시점의 상태인 것에 유의하여 순간이라도 지급불능의 디폴트 상황은 극히 피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어는 시점에서의(기간이 아닌) 외화 보유상태를 표시 하는 것, 즉 기업의 대차대조표처럼 외화자산과 외화부채를 표시한 것은 국제대차표이다.

      국제투자대조표(년말기준 1억달러)    
 
2008
2009
2010
2011
수지(11년)
차변
대변
차변
대변
차변
대변
차변
대변
국제투자
4,895
5,479
6,259
7,308
6,940
8,314
7,420
8,392
-971
1.직접투자
979
947
1,204
1,211
1,432
1,342
1,606
1,357
249
  (지분자본)
884
902
1,091
1,154
1,322
1,273
1,472
1,279
193
2.증권투자
751
2,522
1,011
3,916
1,122
4,891
1,030
4,782
-1,752
(지분증권:주식)
479
1,246
723
2,371
819
3,173
710
2,843
-2,133
(부채성--:채권)
272
1,275
288
1,545
303
1,718
320
1,939
-1,619
3.파생금융상품
104
158
287
326
276
274
266
285
-19
4.기타투자
1,049
1,853
1,056
1,855
1,195
1,807
1,453
1,967
-514
  (대출/차입)
453
1,410
452
1,455
504
1,353
630
1,462
-832
준비자산
2,012
2,700
2,916
3,064
 
3,064 
  *채권/채무
3,419
3,174
4,147
3,457
4,510
3,594
4,964
3,984
980
    (단기)
2,743
1,499
3,404
1,492
3,742
1,398
4,091
1,361
2,730
    (장기)
677
1,675
743
1,965
769
2,197
872
2,622
-1,750
  *순국제투자
-584
-1,049
-1,373
-971
971
  *순 대외채권;
246
690
916
980
-980
*BOK(2012.2.21) 차변:대외투자, 대변:외국인투자
    그러나 기업에서도 자산과 부채에서 이른바 유동성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하듯이
국가간의 자산과 부채의 내용 중 외화현금성 채무와 외화현금성 채권의 대응성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증권시장을 통한 Hot money 유출입과 제2금융권의 단기융통외자의 기간매칭등이 위험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재무 상태는 멀쩡한 기업이 현금 유동성이 맞지 아니하여 부도가 나는 수도 있다.
나라도 또한 같다. 또 예를 들어 기업별로도 보아야 한다.
    예로서 한전이 빚이 있고 포철이 채권이 있다고 해서 서로 이를 맞바꾸어 상계 하지는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가뭄과 남한의 홍수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비록 한반도의 평균 강우량은 적당하더라도)
    그러니 국제대차표 보다도 국제외환유동성확보가 당장의 당면성이 더 높다 할 것이다.
당장 줄 돈이 더 급한 것처럼 단기외채가 무섭다.
    잘못하다가는 IMF로 또..., 그러니 펑펑 들어가는 원유 수입 대전(년 580억달러)이 큰 걸림돌이다.
자동차 바퀴 도는 데에 달러지폐 도 함께 감아 돌아가는 격이다.

    대외 채권 채무  

    (억 달러)
    년 도 총외채 대 외
    채 권
    외 환
    보 유
    순채권 외국인
    투 자
    원유도입
    (Mbbl)
    원 유
    단 가
    2009.6
    3,801
    3,726
    2,317.3
    -76
    2,967
       
    2008
    3,805
    3,482
    2,012.2
    -323
    11,705
    864.8
    98.27
    2007
    3,822
    4,206
    2,622.2
    374
    10,514
    872.5
    69.36
    2006
    2,601
    3,809
    2,389.6
    1,008
    112.4
    888.8
    62.83
    2005
    1,879
    3,171
    2,103.9
    1,292
    115.6
    843.2
    50.53
    2004
    1,722
    2,842
    1,990.7
    1,119
    127.9
    827.5
    36.15
    2000
    1,481
    1,670
    962.0
    188
    15,256
    893.9
    28.22
    (년말기준,억불)
    2005
    2006
    2007p
    2008
    2009.
    대외채무
    1,879
    2,601
    3,807
    3,811
     
    장기
    1,220
    1,463
    2,229
    2,300
     
    단기
    659
    1,137
    1,602
    1,511
     
    대외채권
    3.170
    3,809
    4,205
    3,484
     
    (순대외채)
    1,207
    1,066
    342
    227
     
    외환보유
    2,104
    2,390
    2,622
    2,012
     
    *자료 : 재정경제부

    투자대상국가별 해외직접투자 (억불, %)

    ’06년

    ’07년

    ’08년

    증감율

    비중

    비고

    전      체

    185.6

    277.6

    327.9

    18.1%

    100%

    1.미    국

    21.7

    43.5

    57.6

    32.4

    17.5

    LS전선, 동원수산 참치캔회사인수

    2.이 라 크

    -

    0.01

    45.7

    -

    13.9

    쿠르드유전개발

    3.중    국

    45.0

    64.9

    41.9

    △35.4

    12.7

    4.홍    콩

    11.0

    16.5

    31.1

    88.4

    9.4

    필립핀 조선복합단지 건설용

    5.베 트 남

    17.7

    26.6

    19.2

    △27.8

    5.8

    6.캄보디아

    1.7

    8.1

    12.1

    49.3

    3.6

    7.네델란드

    2.4

    6.8

    7.8

    14.7

    2.3

    8.인도네시아

    2.6

    5.8

    7.0

    20.6

    2.1

    9.브 라 질

    2.1

    2.1

    6.9

    228.5

    2.1

    10.호 주

    1.8

    1.5

    6.4

    326.6

    1.9

    맥아더사 지분인수

    11.아일랜드

    0.004

    8.3

    6.4

    △22.8

    1.9

    12.싱가폴

    6.0

    4.6

    6.2

    34.7

    1.8

    13.러시아

    1.1

    4.3

    5.2

    20.9

    1.5

    상피테스부르크 완성차공장
    14. 기 타

    72.5

    84.6

    74.4

    △12.0

    22.6

    *기재부(2009.2) 2008년도 신고건수 10,187건


    그런데 딜레머가 하나 있다. 외환을 많이 쌓아둔다는 것은 대외 신용도를 높이는 것은 좋지만, 외화자산을 유휴화 한다는 점이다.
또 무작정 외국유동성 자산(유가 증권:주로 미국채)을 갖는 것은 또 다른 위험에 꼬리를 물리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환보유현황

(단위 :기말기준, 억달러)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p
  외환보유액
1,990.6
2,103.1
2,389.6
2,622.2
2,012.2
2,699.9
2,915.7
   유가증권
1,674.3
1,868.3
2,019.9
2,317.8
1,803.8
2,488.6
2,679.3
   (R/P포함)
(1,868.3)
(2,024.7)
(2,259.5)
(2,431.3)
(1,849.3)
   예치금
307.4
231.3
364.0
299.9
201.0
163.4
189.9
   (R/P제외)
(113.4)
(74.9)
(124.3)
(186.4)
(155.5)
   IMF포지션
7.8
3.0
4.4
3.1
5.8
9.8
10.2
   SDR
0.33
0.44
0.5
0.7
0.9
37.3
35.4
  금
0.72
0.74
0.7
0.7
0.8
0.8
0.8.

08.9.15리먼브러더스 파산이후10월230억불, 11월120억불외채도 감소



    그래서 일부에서는 약 3천억 달러정도를 예비하려고, 이른바 외화 위험스왑 (한국 CDS잔고 573억 달러)이라는 것을 하는데,
    오히려 한편에서는 이 또한 그 나라 외환위험지표로 보는 경우도 있어 양면성이 있다.
하여튼 한국은 이제는 제6위의 외환보유와 스왑체결로서 외환에 대해서는 분명 한고비는 넘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언제나 원유를 비롯한 막대한 외환수요가 있고,
한국 경기의 빠른 회복에 증권 시장 에의 Hot money 유입의 우려 등이 있으므로 항상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한국 경제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경상수지 흑자규모도 확대되는 등
국제적 불안 속에서도 어떻든 회복의 길로 나가고는 있다.

한국의 외채내역 (2008.6월현재)

(1억 달러)
부문
금액
비고
정부부문 정부부문
613
외화표시채(518)
은행부문 국내은행
1,274
헤지등 비위험외채(938)
외은지점
831
외은자체 본지점거래
기타부문 비은행금융회사
280
카드사외채
기업
1,182
공기업94, 민간기업1,088
선수금 509, 외투기업차입71
대외채무 상환용채무
비상환채무

2,680
1,518

 
순대외 채권  
27
채권4,225-채무4,198
기획재정부(2008.10.6)   
*한국신용등급 30위권, 신용평가 A   


주요국의 외환보유 (2010년.6월말)

(단위 : 1억달러)
국    가
보 유 액
국    가
보유액
1.중     국
24,543
6. 한     국
2,742
2. 일    본
10,502
7. 홍 콩
2,568
3. 러 시 아
4,612
8. 스위스 
2,555
4. 대    만
3,624
9.브라질
2,531
5. 인    도
2,757
10. 싱 가폴
2,000
*자료 :BOK()

국가별 CDS 잔고

(단위 : 1억달러)
국    가
보 유 액
국    가
보유액
1.이태리
2,102
6.스페인
868
2. 터 키
1,566
7.필립핀
661
3. 브라질
1,277
8. 한 국
573
4. 러시아
1,047
9.독 일
566
5. 멕시코
975
10. 헝가리
487
*CDS(Credit Default Swap:국가외환위험Swap .  
*DTTC,2009.9말 기준)

최근 국제 구제금융
구제금융
시기
규모(억불)
원인
1.미국저축대부조합(S&L)위기 1989.8
2,000
조합도산
2. 한국 외환위기 1997.12
780
보유외환고갈
3. 인도네시아 금융위기 1998.1~99.4
580~647
환율하락물가상승
4. 브라질 경제위기 1998~2002
1,097
아시아위기방어
5.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2000~2001
522
고실업 채무만기
6. 미국금융위기 2007.6~08.
2,850+a
비우량주택담보대출
*포린 폴리시

    최근에는 중동의 UAE와 유럽에서 그리스 스페인 터키 같은 몇몇 나라가 또다시 외환부족으로 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D. 상품 수출입무역



(1) 상품 수출입
    GDP에서나 생산이나 소비에서, 그리고 외환 수급의 국제수지(BOP)에서나
실로 버팀 몫의 결정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상품수출과 상품수입의 무역이다.
    그중에서도 (상품)수출이 모든 분야에서의 만사형통식 긴요한 요소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먼저 그 상품수출이 경제에 미치는 중요성을 살펴보자.

수출의 국민경제효과

    요약하면 우리나라 생산의 1/3, 국민소득의 1/4, 수입의 약 4할은 상품수출에서 온 것이다.
2008년도 기준으로 생산의 887.4조원, 국민소득의 253.9조원(국민1인당 521.4만원)
그리고 수입의 216조원은 이 수출 때문에 생겨난 것이란 뜻이다.
과연 (상품)수출이 국가경제의 버팀목이요, 생명줄의 하나인 것은 틀림이 없다.
최종수요의 유발효과(2006)
  합계(06) 투자 소비 수출 08합계 수출(08)
생산유발액(조원)
2,203.1
470.8
1,004.2
728.0
2,689.0
887.4
유발 계수
1.864
2.011
1.721
1.999
유발의존도
100%
21.4%
45.6%
33.0%
부가가치유발액(조원)
894.4
185.5
487.3
221.6
1,023.9
253.9
유발계수
0.757
0.792
0.835
0.609
유발의존도
100%
24.8%
54.5%
24.8%
수입유발액(십억원)
365.1
82.1
140.4
142.6
553.9
216.0
유발계수
0.290
0.307
0.224
0.391
유발의존도
100%
22.5%
35.8%
39.0%
*BOK, 국민경제, 2009.3

수출의 국민경제적 효과
  2001 2002 2003 2004 2005
수출액(1억달러)
1,504
1,625
1,938
2,538
2,844
수출가율(%)
-12.7
8.0
19.3
31.0
12.0
단가증가율
-13.1
2.4
10.2
7.5
1.6
물량증가율
0.7
13.3
16.9
22.9
10.2
순상품교역조건개선율
-4.5
-0.5
-6.3
-4.2
-7.2
교역조건손실액(억원)
244,716
464,378
경제성장율(%)
3.8
7.0
3.1
4.7
4.0p
수출에의한 성장율
0.5
2.8
3.4
4.3
2.8
경제성장기여율
13.2
40.5
11.2
93.3
69.2
부가가치유발율
외화가득율
57.0
57.0
54.5
54.5
50.7
취업유발효과
취업유발인원(천명)
2,631
3,010
3,624
4,243
4,643
1백만불당취업유발(명)
18
19
19
17
16
총취업기여율
12.2
13.6
16.4
18.8
20.3
생산유발도(배)
2.06
2.01
2.02
2.06
2.10
수입유발효과
수입유발율
43.0
43.0
45.5
45.5
49.3
총수입기여율
45.8
45.9
49.4
51.4
53.7
*2006년도 교역손실액: 68조1,182억원 (*KITA)




상품 수출

    더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그 중요한 경상 외화수입 총액 5,457.8억 달러(BOP기준) 중에서
상품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그의 79.4 %인 4,334.4억 달러이다.
    즉 경상으로 들어오는 외화의 약 8할이 상품수출에 의해 조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돈돈돈! 돌고 도는 즉 원화와 달러화는 모든 길에 통하는 수로가 아닌가.
모든 것이 이 두 길 위를 통해서 물재와 서비스 즉 인간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通貨路 그것이다.
    이러한 상품수출 중에서도 몇 가지 주요 상품수출이 맏형노릇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 통로의 몫에 5대 수출상품의 비중이 실로 막강하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5대 수출 맏효자들 즉 선박, IC, PDP, 승용차, 휴대전화의 2009년 9월 현재 수출 합계액은 980억1,200만불로서
    전체 상품수출의의 37.6%를 점하고 있다.
이는 실로 놀라운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추가로 6~10위를 더한 10대 상품 수출 합계액은 1,334억6,600만불로서 51.2%(우리 상품수출의 1/2)를 점하고 있다.
(결국 6~10위는 12.4%)
물론 수출의 일부(특히 5대 품목)에의 편중현상에 우려되는 점도 있기는 하다.

품목별 수출실적

(단위 : 1백만불)
 
MTICode
2005
2010
2011
증가율
2012
증가율
총 수 출 -
284,419
466,384 556,514 19.3 548,076 -1.3
  1. I C 8311 28,284
44,563
43,490
-2.4
43,838 0.8
 2. 승용자
7411
27,256
31,782
40,927
28.8
42,390
3.6
  3. 선 박 7461 16,346
46,685
54,062
15.8
37,346 -31.0
  4. P  D  P 8361 4,700
31,925
30,164
-5.5
30,143 -0.1
  5. 자동차부품
7420
8,453
18,963
23,088
21.8
24,615
6.6
  6. 경 유
1332
5,552
11,839
20,160
70.3
22,698
12.6
  7. 합섬수지
2140
10,304
17,051
20,110
17.9
19,579
-0.1
  9. 휴대전화
8121
19,095
15,288
15,078
-1.4
12,097
-19.8
  8.제트유및등유 1333 3,719
7,059
11,645
65.0
12,541 7.7
 10. 무선기부품
8128
6,146
9,667
9,639
-0.3
8,022
-16.8
12.건설중장비
7251
3,137
5,945
8,410
41.5
7,663
-8.7
11.기초유분
2110
2,449
4,403
6,692
52.0
7,864
17.5
13.휘발유
1331
897
3,441
6,311
83.4
7,650
21.4
14. 열연강판
6132
3,319
4,472
6,258
39.9
5,657
-9.5
15.기타플라스틱
3109
2,473
4,491
5,095
13.4
5,594
9.6
16.화학중간원료
2120
2,218
3,434
5,037
46.7
5,408
7.7
17.냉연강판
6133
3,097
4,562
5,394
18.2
5,030
-6.7
18.기타화학제품
2190
2,307
4,186
4,778
14.1
4,953
3.3
19.개별소자IC
8313
1,061
4,713
4,920
4.4
4,929
0.2
20.경보신호기
8142
963
1,242
2,699
117.4
4,877
80.7
21.기타정밀화학원료
2289
1,769
4,296
5,756
34.0
4,806
-16.4
22.아연도강판
6134
1,960
3,853
5,016
30.2
4,653
4.3
23.윤활유
1336
905
3,061
4,690
53.2
4,618
-1.7
24.축전지
8352
1,101
3,723
4,632
24.4
4,583
-1.1
25.타이어
3203
2,275
3,335
4,207
26.1
4,573
8.7
26.석유화성원료
2130
2,654
4,213
5,481
30.1
4,452
-18.7
27. 칼러 TV
8211
6,144
5,591
5,543
-0.9
4,412
-20.4
28.인쇄회로
8343
1,346
2,812
3,375
20.0
4,276
26.8
29.광학기기부품
7152
4,189
3,902
3,778
-3.2
4,133
0.4
30.원동기
7111
871
2,335
3,953
69.3
4,087
3.4
31. 편 직 물
4360
2,689
3,698
4,234
14.5
4,070
-3.9
32.화물자동차
7412
1,929
3,124
3,763
20.4
4,051
7.7
33.합성고무
2150
879
2,427
4,046
66.7
3,736
-7.7
34.철강관
6141
1,175
2,362
3,435
45.4
3,724
8.4
35. 전선
8500
1,945
2,978
3,532
18.6
3,692
4.8
36.중 유
1335
2,339
2,013
3,728
85.2
3,508
-5.9
37.나프타
1334
1,390
2,513
3,646
45.1
3,470
-4.8
38.펌프
7112
1,179
2,228
2,697
21.0
3,078
14.2
39. 금
1111
262
2,911
3,073
5.6
3,016
-1.8
40.기타기계류
7901
1,332
2,273
3,021
32.9
2,961
-1.9
41.철구조물
6152
636
1,121
2,689
140.0
2,875
6.9
42.기타중기
8499
443
1,245
1,666
33.8
2,842
70.5
43.은
1112
245
981
2,353
139.8
2,556
8.6
44.동조가공품
6222
1,601
3,021
3,003
-0.6
2,483
-17.3
45.냉장고
8230
1,626
2,381
2,483
7.1
2,450
-1.3
46.중후판
6131
608
1,661
2,764
66.4
2,403
-13.0
*MTI Code 4단위 기준

국가별 수출실적

(단위 : 1백만불)
국가
2005
2010
2011
증가율
2012
증가율
총 수 출
284,419
466,384
556,514
19.3
548,076
-1.3
  1. 중국
61,915
116,838
134,205
14.9
134,331
0.1
  2. 미국
41,343
49,816
56,203
12.8
58,524
4.1
  3. 일본
24,027
28,176
39,713
40.9
38,850
-2.1
  4. 홍콩
15,531
25,294
30,975
22.5
32,609
5.3
  5. 싱가폴
7,407
15,244
20,855
36.8
22,892
9.9
  6. 베트남
3,432
9,652
13,551
40.4
15,954
18.5
  7. 대만
10,863
14,830
18,198
22.7
14,819
-18.6
  8.인도네시아
5,046
8,897
13,563
52.4
13,946
2.8
  9. 인디아
4,598
11,435
12,686
10.9
11,921
-5.8
 10. 러시아
3,864
7,760
10,306
32.8
11,099
7.7
  (1~10소계)
156,326
287,942
350,255
21.6
354,945
1.3
 11.브라질
2,411
7,753
11,824
52.5
10,288
-13.0
 12.호주
3,812
6,642
8,163
22.9
9,269
13.5
 13.사우디
2,903
4,557
6,965
52.9
9,122
31.0
 14. 멕시코
3,789
8,846
9,728
10.0
9,041
-7.1
 15.필립핀
3,220
5,838
7,343
25.8
8,229
12.1
 16.태국
3,381
6,460
8,468
31.1
8,217
-2.9
 17.말레지아
4,608
6,115
6,276
2.6
7,803
24.3
 18. 독일
10,304
10,702
9,508
-11.2
7,511
-20.9
 19.UEA
2,733
5,487
7,266
32.4
6,852
-5.7
 20.이란
2,141
4,597
7,187
56.3
6,262
3.2
(11~20)소계
36,372
66,421
82,220
24.0
82,634
0.8
 (1~20)소계
191,345
354,356
434,138
22.5
437,579
0.8
 21. 네델란드
3,647
5,306
4,628
-12.8
5,059
9.3
 22.영국
5,339
5,555
4,970
-10.5
4,897
-1.4
 23.카나다
3,446
4,102
4,930
20.2
4,828
-2.0
 24.슬로바키아
692
4,424
4,104
-7.2
4,626
12.7
 25.터키
2,782
3,753
5,085
35.5
4,552
-10.2
 26.파나마
1,623
4,054
3,798
-6.3
3,978
4.7
 27.마샬군도
1,141
4,687
7,050
50.4
3,934
-44.2
 28.라이베리아
1,987
5,402
7,346
36.0
3,804
-48.5
 29.폴란드
1,175
4,381
4,101
-6.4
3,678
-10.3
 30.이태리
4,297
3,569
4,107
15.1
3,262
-20.6
 31.몰타
478
1,655
2,457
48.4
2,679
9.0
 32.프랑스
3,172
3,004
5,708
90.0
2,601
-54.4
 33.칠레
1,151
2,947
2,381
-19.2
2,469
3.7
 34.벨지움
831
806
2,487
208.7
2,258
0.1
 35.남아공
959
1,668
2,255
35.2
2,218
2.9
* 중미일 3대국수출이 2,317억달러42.3%에 이름
*10까지는 3,549억 달러로 64.8%,20위까지는 79.8%임 *자료 : KITA

KORUS 산업별 영향

(단위:수출입=1억불 )
산업
내용
1~5년
6~10년
11~15년
연평균
제조업 수출
17억불
29
30
25
수입
4.5억불
3.3
3.4
3.7
생산(1억원)
35,463
65,112
65,397
55,324
농  업 대미수입
1.5억불
4.0
5.7
3.7
기타수입
1.0억불
2.4
3.5
2.3
생산(억원)
-2,825
-7,412
-9,856
6,698
수산업 수출
37.4만불
86.7만불
---
62.1만불
수입
7.43만불
11.8만불
15.98만불
11.74만불
생산(억원)
-234
-286
-323
-281
자료:재정경제부

 


상품 수입



                    우리들은 흔히 말하기를 “부존자원이 별로 없다”고 한다. 이제는 인력마져 부족하여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품목별 수입실적

(단위 : 1백만불)
MTICode
2005
2010
2011
증가율
2012
증가율
총 수 입
261,238
425,212
524,375
23.3
519,982
-0.9
  1. 원   유
1310
42,606
68,662
100,779
46.8
108,295
7.4
  2. LNG
1340
8,646
17,006
23,881
40.4
27,407
14.9
  3. I   C
8311
21,324
24,491
25,860
5.6
25,792
-0.3
  4. 나프타
1334
6,543
14,953
18,860
26.1
20,498
8.7
  5. 유연탄
1322
4,803
11,425
16,044
40.4
14,240
-11.3
  6. 철 광
1120
1,929
6,647
11,385
71.3
9,533
-16.2
  7. 정밀화학원료
2289
3,627
6,511
8,157
25.3
7,950
-2.5
  8. 반도체장비 7321 5,603
9,110
8,443
-7.3
7,851
-7.0
  9.플라스틱품
3109
2,551
5,410
5,723
5.8
5,588
-2.4
  10. L P G
1350
1,933
4,313
5,661
31.3
5,576
-1.4
  11. 동괴
6221
2,375
4,771
6,070
27.2
5,273
-13.0
  12.자동차부품
7420
3,006
4,948
5,842
18.1
4,919
-15.7
  13.고 철
6184
2,275
3,816
5,026
31.7
4,862
-3.3
  14. 개별소자
8313
2,365
4,606
4,639
0.7
4,746
2.3
  15. 동 광
1130
1,734
4,537
5,641
24.3
4,571
-18.9
  16.승용차
7411
1,370
2,902
3,629
25.0
4,567
25.8
  17. 의약품
2262
2,018
3,887
4,235
8.9
4,521
6.8
  18. 열연강판
6132
3,905
5,894
5,396
-8.5
4,496
-16.7
  19.알미늄괴
6211
2,846
3,963
4,498
13.5
4,274
-4.9
  20.기타석유화학품
2190
2,425
3,420
4,333
26.7
4,188
-3.3
  21 화공제품
2900
2,258
3,931
4,395
11.8
4,140
-5.9
  22.합성수지
2140
2,333
3,371
4,009
18.9
4,118
2.7
 23.배전및제어기
8423
1,102
2,057
3,234
57.2
3,910
20.8
 24. 직물제의류
4412
1,802
2,714
3,842
41.6
3,895
1.4
 25.광학기계부품
7152
1,229
2,690
3,225
19.9
3,707
14.9
 26.PDP
8361
780
4,209
4,073
-3.2
3,606
-11.5
 27.사료
0136
1,401
2,450
3,013
22.9
3,499
16.2
 28.펌프
7112
1,706
3,192
3,063
-4.0
3,401
11.0
 29. 중유
1335
214
1,548
1,874
21.0
3,350
78.8
 30. 기타금속광물
1190
1,049
2,310
3,203
38.6
3,324
3.8
  31. 중 후 판
6131
2,122
3,137
4,418
40.8
3,318
-24.9
 32.기초유분
2110
1,835
2,585
3,324
28.6
3,221
-3.2
 33.원동기
7111
1,378
2,749
3,422
24.5
3,209
-6.3
 34.컴퓨터
8131
1,592
3,078
3,241
5.3
3,047
-6.0
*MTI Code 4단위
*석유 가스 석탄등 에너지자원 수입1,407억불(비중26.8%) 증가율( 44%)커

            그러하니 우리가 국내에 사용하거나 수출품 제조에 필요한 물품을 수입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경제규모의 확대에 따라 이 또한 필연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즉 외화 획득용 원료기재로 들여오는 것이 30% 이고, 국내의 내수용으로 수입된 것이 57%수준이다.

            무엇보다도 원유 LPG 유연탄을 비롯한 에너지원 수입비중이 1/4이 넘는 26.8%로 막강하고 ,
            IC, 나프타, 화학원료, 중후판 등의 산업분야의 필수 불가결한 기초품목의 수입비중도 또한 크다.
            그리고 원유 원목 원면 원당과 그리고 철광석, 구리, 알미늄과 같은 원광석 등,
            이 원(原)자 품목을 비롯한 국산불능 기초 원자재라고 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전량 수입해야만 한다.
            2010년의 내수용 수입규모는 3,053억 달러로 57%에 달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에서는 수출뿐만 아니라 수입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대외 분야와 밀착되어 있다.

용도별 수입(1백만달러)
  2005 2009 2010 2011
금액
금액
증가율
구성비
금액 증가율
구성비
금액 증가율
구성비
총 계
261,238
323,085
-25.8
100
425,212
31.6
100
534,375
23.3
100%
외화획득용
79,074
91,962
-31.9
28.2
122,920
33.7
28.9
160,208
30.3
30.0
일반내수용
149,074
183,155
-27.0
56.7
243,951
33.2
57.4
305,377
25.2
57.1
*기타(12.9%)는 보세공장 및 보세지역, 자유지역, 해외제작 등 반입, KITA

국가별 수입실적

(단위 : 1백만불)
국가 및 지역
2005
2010
2011
증가율
2012
증가율
총 수 입
261,238
425,212
524,375
23.3
519,582
-0.9
 1. 중국
38,648
71,574
86,426
20.8
80,778
-6.5
 2. 일본
48,403
64,296
68,302
6.2
64,351
-5.8
 3. 미국
30,586
40,403
44,567
10.3
43,337
-2.8
 4. 사우디*
16,106
26,820
36,976
37.9
39,722
7.4
 5. 카타르 *
5,599
11,915
20,754
74.2
25,506
22.9
 6. 호주
9,859
20,456
26,323
28.7
22,978
-12.7
 7. 쿠웨이트 *
5,977
10,850
16,958
56.3
18,306
7.9
 8. 독일
9,774
14,305
16,959
18.6
17,641
4.0
 9 인도네시아
8,184
13,986
17,216
23.1
15,678
-8.9
 10. UAE *
10,018
12,107
14,759
21.3
15,116
2.4
  (1~10소계)
183,154
286,712
349,239
21.8
343,413
-1.7
  11. 대만
8,050
13,647
14,693
7.7
14,011
-4.6
  12.러시아
3,937
9,899
10,855
9.7
11,355
4.6
  13.이라크*
675
4,428
9,137
106.4
10,223
11.9
  14.말레지아
6,012
9,531
10,464
9.8
9,796
-6.4
  15.싱가폴
5,318
7,850
8,965
14.2
9,675
7.9
  16.이 란*
3,535
6,940
11,333
63.3
8,531
-24.9
  17. 인 도
2,122
5,674
7,893
39.1
6,924
-12.3
  18.영국
3,149
3,266
3,813
16.8
6,360
66.6
  19.브라질
2,501
4,712
6,340
34.6
6,804
-4.1
  20.베트남
694
3,331
5,084
52.6
5,718
12.5
(11~20소계)
38,513
71,315
92,602
29.8
89,397
-3.5
(1 ~ 20소계)
221,667
358,027
441,841
23.4
432,810
-2.0
   21.태국
2,689
4,169
5,411
29.8
5,352
-1.1
   22.오만
3,705
4,096
5,363
30.9
5,306
-1.1
   23.카나다
2,604
4,351
6,609
51.9
5,246
-20.7
   24.놀웨이
639
3,673
2,595
-29.4
5,095
96.3
   25.프랑스
2,759
4,283
6,313
47.4
4,924
-22.4
  26. 이태리
2,778
3,723
4,371
17.4
4,826
10.3
  27.칠 레
2,279
4,221
4,862
15.2
4,677
-3.7
  28.네델란드
2,760
4,189
4,424
5.6
3,991
-9.8
  29. 필리핀
2,316
3,488
3,571
2.4
3,282
-8.1
  30.멕시코
460
1,521
2,316
52.3
2,595
12.1
  31.스위스
1,168
2,003
2,555
27.6
2,581
1.0
  32.남아공
1,094
2,272
3,106
26.7
2,135
-31.3
  33.홍콩
2,043
1,946
2,315
19.0
2,059
-11.1
*KOTIS
*중미일 3국 수입비중 36.3%,산유국비중약 19.2%로 수입선은 67%는일부에 편중됨
*10위권까지 수입비중은 66.1%, 20위권까지는 83.3%임

Top 10 주요국의 상품교역 규모 (단위:1억달러)
국가 2010 2011 2012.1~11
교역액 수출 수입 교역액 수출 수입 교역액 수출 수입
1. 미  국
32,447
12,776
19,681
37,461
14,806
22,655
29,027
11,523
17,540
2. 중  국
29,743
15,804
13,939
36,421
18,986
17,435
28,425
14,954
13,471
3. 독  일
22,388
11,963
10,425
27,278
14,739
12,539
19,302
10,560
8,742
4. 일  본
14,657
7,717
6,940
16,769
8,228
8,541
12,772
6,083
6,689
5. 프랑스
11,066
5,107
5,959
13,118
5,971
7,147
9,297
4,236
5,061
6. 화  란
10,812
5,687
5,125
12,576
6,604
5,972
9,237
4,844
4,393
7. 영  국
9,521
3,535
5,391
11,096
8,574
3,507
5,067
8 한  국
8,962
4,710
4,252
10,796
5,552
5,244
7,979
4,802
3,177
9. 이태리
9,171
4,406
4,765
10,799
5,230
5,569
7,371
2,711
4,660
10. 홍 콩
8,238
3,903
4,335
9,670
4,556
5,108
6,942
러시아      
5,220
3,904
카나다
8,174
3,871
4,302
9,150
4,524
4,626
벨기에      
4,763
자료 : IMF(단, 교역액은 수출입 단순합산액임)

         


                 우리가 사용하는 교역, 무역 또는 수출이나 수입이라 할 때 무심코 상품에 관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지마는,
                사실은 상품과 서비스 두 가지가 있으므로 이를 구체적으로 적시 할 필요가 있다.
                즉 교역에는 상품교역과 서비스 교역이 있는 것이며, 국제수지표에서도 이를 상품수지 서비스 수지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교역에서 우리는 이제 삼품 교역이 이쯤에 이르렀으면, 서비스 교역에도 균형 잡힌 관심을 둘 때가 되었다고 본다.
                2009년도 우리나라의 상품교역 6,865억달러, 서비스 교역 1,322억달러로 교역규모는 8,187억 달러이며,
                그중 수출 4,208억달러, 수입 3,979억달러 라고 상품과 서비스를 함께 인식하는 습관도 들여야 할 것이다.


KORUS 산업별 영향

(단위:수출입=1억불 )
산업
내용
1~5년
6~10년
11~15년
연평균
제조업 수출
17억불
29
30
25
수입
4.5억불
3.3
3.4
3.7
생산(1억원)
35,463
65,112
65,397
55,324
농  업 대미수입
1.5억불
4.0
5.7
3.7
기타수입
1.0억불
2.4
3.5
2.3
생산(억원)
-2,825
-7,412
-9,856
6,698
수산업 수출
37.4만불
86.7만불
---
62.1만불
수입
7.43만불
11.8만불
15.98만불
11.74만불
생산(억원)
-234
-286
-323
-281
자료:재정경제부

 


 

우리나라는 2009년도 상반기에 제9위 상품교역 (종전은 11위) 추정하고 있다.

주요국의 상품교역 실적(2008) (단위:1억달러)
국가 교역액 수출 수입
금액
%
금액
%
09(상)
금액
%
세계
-
-
160,700
15
142,440
16
3. 미  국
34,569
8.6
12,874
12
4,995
21,695
7
1. 독  일
26,657
11.8
14,619
11
5,216
12,038
14
2. 중  국
25,608
17.8
14,283
17
5,216
11,325
18
4. 일  본
14,031
5.1
7,820
9
2,510
6,211
23
6. 프랑스
13,110
12.2
6,054
12
2,227
7,056
14
7. 이태리
10,929
5.9
5,380
8
1,890
5,549
8
5. 화  란
12,061
15.7
6,330
15
2,113
5,731
16
10. 영  국
10,906
2.1
4,586
4
1,652
6,320
1
8. 벨기에
9,451
12.0
4,756
10
1,724
4,695
14
11. 카나다
8,748
8.2
4,565
9
1,522
4,183
7
12. 한  국
8,573
17.7
4,220
14
1,654
4,353
22
9. 러시아
7,635
32.0
4,716
33
1,260
2,919
31
13. 홍  콩
7,632
6.1
3,702
6
1,444
3,930
6
17. 스페인
6,697
9.3
2,683
6
4,014
7
14. 싱가폴
6,579
28.9
3,382
14
3,197
22
16. 멕시코
6,149
-8.0
2,917
7
3,232
9
18. 대  만
4,960
6.4
2,556
4
2,404
10
15, 사우디
4,284
27.5
3,134
33
1,151
22
자료 : WTO(2009.10.28)*2009(상반기)는 지경부 추정자료, 한국9위

            2010년 상반기 한국의 세계수출순위 7위로 부상

2010년상반기 주요국 수출(1억달러)
국    가
금    액
국    가
금    액
1.중국
7,061
6.프랑스
2,559
2.미국
6,117
7. 한  국
2,215
3. 독일
6,051
8.이태리
2,138
4. 일본
3,624
9.벨기에
2,013
5. 화란
2,742
10. 영  국
1,914
*WTO

 


    우리가 사용하는 교역, 무역 또는 수출이나 수입이라 할 때 무심코 상품에 관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지마는,
사실은 상품과 서비스 두 가지가 있으므로 이를 구체적으로 적시 할 필요가 있다.
즉 교역에는 상품교역과 서비스 교역이 있는 것이며, 국제수지표에서도 이를 상품수지 서비스 수지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교역에서 우리는 이제 삼품 교역이 이쯤에 이르렀으면, 서비스 교역에도 균형 잡힌 관심을 둘 때가 되었다고 본다.
2008년도 우리나라의 상품교역 8,573억달러, 서비스 교역 1,659억달러로 국제교역규모는 이 둘을 합한 1조232억 달러이며,
    그중 수출 4,961억달러, 수입 5,271억달러 라고 상품과 서비스를 함께 인식하는 습관도 들여야 할 것이다.
(언론이나 정부에서는 2008년에 13위 수출국으로 뒷걸음질 했었다는 것은 간과한 채,
하필 국가별 격변이 극심한 2009년도 상반기의 잠정 추정으로 9위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좀 개면적은 면이 없지도 않다)
WTO에서 발표한 2008년도 한국의 교역 규모 순위는 12위 이었다.

주요국의 교역규모(2008) (1억달러)
  수 출 수 입 교역규모
상품
서비스
상품
서비스
상품
서비스
세   계
160,700
34,000
142,440
30,650
(151,570)
(32,325)
1.독  일
14,619
2,416
12,038
2,830
26,657
5,246
2.중  국
14,283
1,464
11,325
1,580
25,608
3,044
3. 미  국
12,874
5,214
21,695
3,679
34,526
8,893
4.일  본
7,820
1,464
7,056
1,674
14,876
3,138
5.화  란
6,330
1,016
5,731
908
12,061
1,924
6.프랑스
6,054
1,605
7,056
1,394
13,110
2,999
7.이태리
5,380
1,219
5,549
1,317
10,929
2,536
8.벨기에
4,756
861
4,695
819
9,451
1,680
10.영  국
4,586
2,830
6,320
1,962
10,906
4,792
11.캐나다
4,565
648
4,183
866
8,748
1,514
12.한  국
(13위) 4,220
(16위) 741
4,353
(10위) 918
(12위) 8,573
1,659
13.홍  콩
3,702
923
3,930
458
7,602
1,381
14. 싱가폴
3,382
829
3,197
789
6,579
1,718
15. 사우디
3,134
...
1,151
346
4,285
...
16.멕시코
2,917
185
3,232
239
6,149
424
17.스페인
2,683
1,426
4,014
1,043
6,697
2,469
9. 러시아
4,716
507
2,919
746
7,635
1,253
*W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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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서비스 무역



    GDP에서나 생산이나 소비에서, 그리고 외환 수급의 국제수지(BOP)에서나 대외교역이라 할 때에는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그 한 갈래라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이제부터는 만성적자인 서비스교역에 대하여 그간의 상품교역에 기울여 왔었던 것처럼 관심을 두어야 할 분야이다.
힘들게 벌은 외화를 특히 여행 등에서 너무나 허망하게 소진하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종합적으로 챙기는 곳이 마땅치 않다.
    실로 우리의 서비스 교역은 취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 새로이 개척하듯이 해야 할 분야이며,
또 그럴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분야의 하나이다.

    2009년도 서비스수입(收入:輸出) 771.8억달러, 지급(輸入)은 938.5억 달러로서 서비스무역 수지는 166.3억 달러 적자였다.


다음은 우리의 서비스교역의 국제적 위상이 어느 수준인지 알아보자.

    2008년도 우리나라 서비스 수출은 741억 달러로서 세계 16위이고, 서비스 수입은 918억 달러로서 10위이다.
과거 그동안 상품수출에서 극복한 경쟁국들의 모습이 판에 박은 듯 또 그대로 앞에서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제는 지난날 그랬듯이 이 분야에서도 세계로 뻗어 나아가서 이를 따라 잡아야 할 것이다.



서비스 수지 (1억달러)
  2006 2007 2008 2009p
서 비 스 수 지
-189.6
-197.7
-166.7
-172.0
수 입
499.0       
633.5       
771.8
585.1       
지 급
688.5
831.3
938.5
757.1
운 수       
26.7
44.8
80.0
55.7
수 입
258.1       
335.6       
447.7       
289.4       
지 급
231.3
290.8
367.7
233.6
여 행       
-130.6
-158.4
-92.9
-38.9
수 입
57.9       
61.4       
97.7     
94.4       
지 급
188.5
219.8
190.6
133.3
<일반 여행>
-85.8
-108.6
-48.6
0.6
수 입
57.6       
60.9       
97.2       
93.9       
지 급
143.4
169.5
145.8
93.3
<유학/연수>
-44.9
-49.8
-44.3
-39.4
수 입
0.3       
0.4       
0.5       
0.5       
지 급
45.1
50.3
44.8
40.0
기타 서비스
-85.7
-84.1
-153.8
-188.9
수 입
183.0       
236.5       
226.4       
201.3       
지 급
268.7
320.7
380.2
390.2
(사업 서비스)
-71.7
-74.1
-142.8
-157.9
수 입
105.3       
144.2       
129.7      
114.1       
지 급
177.0
218.3
272.5
272.1
*BOP기준
        
국가별 상업 서비스(2008) (1억달러)
서비스 수출 서비스 수입
 
금액
구성비
증가율
금액
구성비
증가율
전세계
37,800
100
12
전세계
34.900
100
12
1.미  국
5,214
13.9
10
1.미  국
3,679
10.5
8
2.영  국
2,830
7.5
1
2.독  일
2,830
8.1
11
3.독  일
2,416
6.4
11
3.영  국
1,962
5.6
0
4.프랑스
1,650
4.2
11
4.일  본
1,674
4.8
13
5.중  국
1,464
3.9
20
5.중  국
1,580
4.5
22
6.일  본
1,464
3.9
15
6.프랑스
1,394
4.0
8
7.스페인
1,426
3.8
12
7.이태리
1,317
3.8
11
8.이태리
1,219
3.2
10
8.아일랜드
1,062
3.0
12
9.인  도
1,026
2.7
17
9.스페인
1,043
3.0
9
10. 화란
1,016
2.7
8
10. 한  국
918
2.6
12
11.아일랜드
992
2.6
12
11.화  란
908
2.6
8
12. 홍  콩
923
2.4
9
12.카나다
866
2.5
6
13. 벨지움
861
2.3
16
13.인  도
836
2.4
18
14. 싱가폴
829
2.2
3
14.벨지움
819
2.3
17
15. 스위스
752
2.0
16
15.싱가폴
789
2.3
6
16. 한  국
741
2.0
20
16.러시아
746
2.1
29
17.덴마크
720
1.9
17
17덴마크
623
1.8
16
18.스웨덴
716
1.9
13
18.스웨덴
543
1.6
13
19룩셈불크
689
1.8
5
19.태  국
463
1.3
21
20.카나다
648
1.7
2
20.홍  콩
458
1.3
8
                                              

            한국과 미국의 서비스교역 분야별 비교
서비스분야(년)   한국(억달러)   미국(억달러)
               수출  수입     수출    수입
운송(2007)     338   299      772     957
여행(2007)      61   219    1,188     816
기타상업(2007) 220   318    2,604    1,586  
금융(2006)     25.43 5.47   428.14  142.97 
문화오락2006)   3.69 6.75   110.78    8.65  
보험(2006)        -  8.54    92.71  335.82
communication  6.42 10.12    65.78   51.69  
기타사업      105.32 177.05 749.26  467.82   
영상(2006)     81.07 2.99   110.78    8.45 
컴퓨터(2006)    1.82 3.11     62.80 105.22   
통신(2006)      4.23 6.13     62.67  45.57   
특허(2006)     20.46 46.50   623.76 264.33 
   세계 서비스 교역 구성 동향            (2007, 1억달러) 
           금  액구     성    비
            2007  2000 2004 2005 2006 2007
서비스 수출 
상업서비스총액3290 100.0 100.0 100.0 100.0 100.0    
 운송서비스750 23.5 23.1 23.3 22.6 22.8     
 여  행855 32.0 28.8 27.7 27.0 26.0    
 기타상업서비스1685 44.5 48.1 49.0 50.4 51.2 
 서비스 수입
 상업서비스 총액3085 100.0 100.0 100.0 100.0 100.0    
 운송서비스s890 28.8 28.3 29.1 28.9 28.9   
 여 행775 29.7 27.7 26.9 25.9 25.2    
 기타 상업서비스1415 41.5 44.0 44.1 45.1 45.9 


운송서비스(2007, 10억달러)
운송서비스Value  Share년           증가율
         2007  2000 2007   2000-07 2005 2006 2007
Exporters
1..E U (27)337.2 42.5 45.0 12 11 7 21 
    Extra-EU수출163.3    ... 21.8   ...12718
2.미 국  77.2 14.5 10.3 6121013
3.일본   42.0 7.4 5.6 711 512
4. Korea 33.8 3.9 4.5 146 831
5. 중국  31.3 1.1 4.2 36283649
6. 홍콩  23.6 3.7 3.2 917105
7. 싱가폴23.1 3.4 3.1 1012910
8. 놀웨이18.9 2.8 2.5 1017-118
9. 러시아11.8 1.0 1.6 19171117
10. 카나다11.7 2.2 1.6 614109
Above 15650.087.086.4 
  -   -   -   -
Importers
1. E U (27)321.235.636.012101018 
Extra-EU수입140.1    ... 15.7   ...101115
2. 미국95.715.710.761253
3. 일본49.08.05.563614
4. 중국43.32.54.923162126
5. 인도   31.12.13.520522523
6. Korea  29.9 2.6 3.4 15141529
7. 싱가폴 25.9 3.1 2.911141113
8. 카나다 18.9 2.2 2.111181712
9. 태국   17.9 1.6 2.015331310
10. U A E(e)15.61.11.8   ...2621   ...
Above 15710.081.679.4   
-   -   -   -

여행서비스(2007, 10억달러)
           Value  ShareAnnual percentage change
           2007  2000 2007    2000-07 2005 2006 2007
Exporters
1.E U(27)  366.2 41.8  42.7     9       4    9   15    
   Extra-EU105.0    ...12.3     ...     6   10   17
2.United States118.8 20.7 13.9  3       8    5   11
3. China        37.2  3.4  4.3 13      14   16   10
4. Australia    22.3  2.0  2.6 13      11    6   25
5. Turkey       18.5  1.6  2.2 13      14   -7   10
6. Canada       15.6  2.3  1.8  5       7    7    6
7. Thailand     15.6  1.6  1.8 11      -5   40   16
8 Hong Kong     13.7  1.2  1.6 13      141  31    8
9. Macao        13.5  0.6  1.6 ...      7   23   ...
10. Malaysia    12.9  1.1  1.5 14       8   18   24
11. Mexico      12.9  1.8  1.5  7       9    3    6
12. Switzerland 11.8  1.4  1.4  9       5    5   11
13. India       11.1  0.7  1.3 18       21  19   24
14. Russia       9.6  0.7  1.1 16       6   30   26
15. Japan        9.3  0.9  1.1 11      10   28   10
Above 15       690.0 81.8 80.4    
-   -   -   -
Importers
1.E U (27)     356.8  44.6 45.9  96515    
Extra-EU       129.0    ... 16.6   ...5419
2. U S          81.6 15.6 10.5 3556
3. China        29.8 3.0  3.8  12141222
4. Japan        26.5 5.4  3.4  2-2-2-1
5. Canada       25.1 2.9  3.2  11141322
6. Russia       22.3 2.1  2.9  14145228. 
7. Korea        20.9 1.7  2.7  17252211
9. Hong Kong    15.1 2.9  1.9  3067
10. Australia   14.3 1.5  1.8  1210422
Above 15       655.0 86.2 84.5   -   -   -   -


금융서비스(2006, 백만불)
수출금액구성비증가율수입금액구성증가율
1.E U (27)12075258.628                 1.E U (27)5676664.127       
   Extra-EU (27) exports5303325.723       Extra-EU (27) imports2137124.124
2.United States4281420.819             2.United States1429716.213
3. Switzerland116965.712               3.Japan29863.411
4. Hong Kong 9268 4.5 48               4.Canada28643.222
5. Japan   6151 3.0  22        5.Hong Kong20172.344
6. Singapore4064 2.0 34        6.Taipei13901.61
7. Korea, 2543 1.2 54          7.India13161.515
8. India  2071 1.0 41          8. Switzerland12811.425
9. Canada 1897 0.9 19          9. Singapore9721.134
10. Taipei12320.6-19      10. Russia9041.01
11. Norway8200.416         11. China8911.0459
12. Australia7560.4-1      12. Norway8791.0-23
13. Brazil7380.445         13. Brazil8611.017
14. South Africa7060.332    14. Korea5470.6133
15. Russia5890.351          15. Turkey5240.636
Above 15  206095100.0   -  Above 15  88495100.0   -


가타상업서비스(2007, 10억불)
           금액구성비년 증가율2007200020072000-07200520062007
Exporters
1. E U (27)846.445.150.216121522
       Extra-EU398.9    ... 23.7   ...121725
2. United States260.419.715.510121317
3. Japan75.76.04.510161610
4. India69.8    ... 4.1   ...   ...3819
5. China53.11.63.226202546
6. Hong Kong45.33.32.711151717
7. Switzerland44.32.52.615181225
8. Singapore35.71.72.118131315
9. Canada34.13.22.071265
10. Korea22.01.41.313182031
Above 15 1570.091.393.1   -   -   -   -
Importers
1.E U (27)683.145.648.214101320  
     Extra-EU275.9    ... 19.5   ...101122
2.United States158.612.511.21191514
3. Japan73.18.15.2631714
4. China56.22.04.024182635
5. India37.3    ... 2.6   ...   ...4322
6. Canada36.33.62.68686
7. Singapore33.12.02.31671716
8. Korea31.82.52.212161622
9. Russia26.20.81.827182339
10. Brazil18.01.21.314431821
Above 151230.085.286.9   -   -   -   -

문화 오락 서비스(2006, 백만불)
             수 출금액구성비 증가율              수 입금액구성비증가율
1. E U (27)   141554   3.7    -1       1. E U (27) 1658361.8 1     
    Extra-EU 582318.0        -3                  Extra-EU705326.3-6
2. U S A      110783   4.2     9       2. Canada   22168.317
3. Canada22847.110         3. Malaysia14285.3-23 17
5. Malaysia8642.7-45        5. Australia 851 3.2 10
6. Australia5021.615        6. U S A     845 3.2 -9
7. Norway4221.320           7. Korea     671 2.5 41
8. Mexico  a 3831.23        8. Norway    588 2.2 16
9. Korea  369 1.1 38        9. Russia    542 2.0 23
10. Hong Kong 280 0.9 4     10. Brazil   533 2.0 18
Above15 32365 100.0-         Above15 26815  100.0   -


보험서비스(2006, 백만불)
수출금액구성비 증가율수입금액 구성비증가율
1.E U (27) 30744 53.6 30      1.United States3358233.218      
   Extra-EU 18006 31.4138   2. E U (27)2690426.63
2.United States927616.219        Extra-EU 87938.7-13
3. Switzerland52299.119     3. Mexico   9278 9.2  6
4. Canada34576.08           4. China    8831 8.7  23
5. Japan15762.780            5. Canada  4871 4.8  6
6. Singapore14662.621        6. Japan   4574 4.51 42
7. Mexico12632.2-19          7. Singapore 3082 3.0 21
8. India11161.920            8. India  2664  2.6 19
9. China5481.00              9. Thailand 1791 1.8 8
10. Taipei5320.946          10. Turkey 1140  1.1 28
11. Australia5300.90        11. Taipei 1002  1.0  4
12. Turkey5220.962          12. Egypt   978  1.0 25
13. Hong Kong4170.71        13. Iraq    885  0.9 -6
14. Russia3770.717           14. Korea  854  0.8 17
15. Brazil3240.6142          15. Brazil 755  0.7 8
Above 15  57375100.0   -    Above 15  101190 100.0   -

컴뮤니케이션 서비스(2006, 백만불)
수 출금 액구성비 증가율수입금액구성비증가율
1.E U (27) 37202 62.7 18     1.E U (27)3654368.821       
Extra-EU   10970  18.5 21       Extra-EU 1205922.721
2.United States 6578 11.1 19  2.United States51639.70
3. Kuwait a    3398 5.7162  3. Canada19553.7-3
4. Canada      2302 3.9 6        4. Hong Kong10722.0-6
5. India       2191 3.7 11    5. Korea10121.931
6. Indonesia   1103 1.9 10    6. Singapore9791.810
7. Switzerland 1102 1.9 -7    7. Russia9171.723
8. Hong Kong   834 1.4 -12   8. India8991.735
9. Russia      803 1.4 22    9. Switzerland8031.5-14
10. China      738 1.2 52    10. China7641.427
11. Australia  646 1.1  3    11.Japan7321.419
12. Korea      642 1.1 45    12. Malaysia  a 6531.2-4
13. Malaysia a 641 1.1  4    13. Australia6431.23
14. Singapore  614 1.0 10    14. Indonesia5711.115
15. Philippines575 1.0 10    15.Taipei3930.7-22
Above 15       59365100.0   -Above 15 53100 100.0 
  
*a : Telecommunications services.

기타상업서비스(2006, 백만달러)
수출금액구성비증가율수입금액 구성비증가율
1. E U (27)34396653.812   1. E U (27)31073459.512       
    Extra-EU 16068825.112       Extra-EU 11739622.514
2. United States7492611.716   2.United States467829.018
3. India  a309234.8   ...     3.Japan297735.712
4. Japan306774.812            4. India214534.151
5. China289734.524            5. China206053.927
6. Hong Kong269304.211        6. Korea177053.414
7. Singapore225443.59         7. Canada129302.57
8. Canada149482.33            8. Singapore119192.315
9. Taipe147792.324            9. Taipei89091.73
10. Korea105321.612          10. Brazil88981.719
Above 15639845100.0-              Above 15522660100.0-

영상서비스(2006, 백만달러)
수  출금액 구성비 증가율수입금액 구성비증가율
1.United States1107846.39     1.E U (27)1197463.7-8
2.E U (27)888737.1-9            Extra-EU 577730.7-10       
    Extra-EU 381615.9-11      2. Canada203010.818
3. Canada20738.79             3. Japan9815.29
4. Mexico3831.63              4. United States8454.5-9
5. Hong Kong2581.15           5. Australia7043.719
6. Norway2301.020             6. Russia4592.421
7. Argentina2150.917          7. Brazil3872.123
8. Korea1700.733             8. Norway3782.013
9. Russia1540.621            9. Mexico3261.718
10. Australia1510.620       10. Korea2291.244
Above 1523945100.0           -Above 1518810100.0   -

컴퓨터 서비스(2006, 백만 달러)
수 출금액구성비 증가율수입금액구성비증가율
1.E U (27)6039859.514      1. E U(27)3243961.714   
   Extra-EU 2222521.927    Extra-EU 1108121.114
2. India  a2106120.7   ...  2. U S  b 1052220.024
3. U S b 62086.18          3. India19793.861
4. Israel52895.217        4. Brazil19473.718
5. Canada35833.53         5. Canada14012.711
6. Norway13761.453        6. Norway12682.426
7. Australia10401.019     7. Australia9151.716
8. Russia5760.654          8. Malaysia5181.037
9. Malaysia5720.631        9. Russia4760.926
10. Costa Rica3710.446    10. Korea3110.6   ...
11. Argentina3420.348     11. Hong Kong3100.6-16
12. Hong Kong3010.345     12. Argentina2060.413
13. Korea1820.2   ...      13. Colombia1320.320
14. Uruguay1220.147        14. Syria950.2-5
15. Sri Lanka980.119      15. Philippines670.18
Above 15101520100.0   -Above 1552585100.0   -

통신서비스(2006, 백만달러)
         수 출금 액  구성비증가율 수입금액구성비증가율
1. E U (27)3016165.520E U (27)2997875.724       
Extra-EU 822517.923       Extra-EU 933023.620
2. United States625713.620United States455711.51
3. Kuwait33987.4162Russia9002.325
4. India10962.411Malaysia6531.6-4
5. Russia7391.61 9Korea6131.5   ...
6. Malaysia6411.44India4501.135
7. Philippines5721.2   ...Australia4031.0-2
8. Hong Kong5661.2-17Hong Kong3490.9-19
9. Mexico4661.0-15Israel3180.850
10. Korea4230.9   ...Argentina2660.711
11. Turkey4160.91Turkey2470.635
12. Morocco3870.8-13South Africa2310.626
13. Croatia3250.738Norway2280.64
14. Norway3200.76Lebanon2170.556
15.Lebanon3050.727Colombia1820.537
Above 1546070100.0   -Above 1539590100.0   -
특허료서비스 (2006, 백만달러)
수  출금액구성비증가율수입금액구성비증가율
1.United States6237841.85    1.E U (27)6506641.27
2.E U (27)4985233.43       Extra-EU 4002725.44
Extra-EU 2964319.92          2. United States2643316.87
3. Japan2009613.514          3. Japan155009.86
4. Switzerland76815.1-11     4. Singapore104706.617
5. Canada32452.214           5. Switzerland88605.6-6
6. Korea20461.47             6. Canada73204.67
7. Singapore7300.517         7. China66344.225
8. Norway6740.563            8. Korea46502.92
9. Australia6210.412         9. Taipei23211.529
10. Israel5930.43            10. Australia21901.49
11. Russia2990.215           11. Thailand20461.322
12. Hong Kong2590.26         12. Russia20021.326
13. Taipei2440.24            13. Brazil16641.118
14. Paraguay2360.28          14. Hong Kong13570.95
15. China2050.130            15. South Africa12820.820
Above 15149160100.0   -      Above 15157795100.0   -
  

<==처음으로   <<== 목차로   <<== 서비스 무역   유머와 속담 ==>  

<회원문학 코너>>



새 벽  창 문


                                      황   호   익    시

                   새벽 창문을 여는 마음

                   이토록 상쾌할 줄이야

                   갈 바람도 인사하듯

                   비집고 들어오는데

                   그처럼 귀여울 줄이야


                   눈을 감아도 보이는

                   님의얼굴 따사로워


                   그리울 때 보려고

                   이다끔씩만

                   열어 보련다

 

나비의 새벽


                                       황   호   익    시

                   날 밝으면

                   망건 쓰고

                   새 각시 맞으러

                   읍내 갈 터인데


                   제비꽃 새댁

                   문뜩 찾아들면

                   옷고름 맬새 없네

                   새 서방 맞으러

                   먼 고을 갈터


                   의아리꽃 여유로워

                   느긋한 날개 짓

                   서방님 맞으러

                   잔치마당 가려니


                   훨훨 날아들어

                   혼절에 취해

                   꿈길 꽃술 열었으니

                   사연과 서룬 마음

                   사그려 주려마
              서울, 산, 나
                          이 호 윤 회원

         흔히 서울이 고향인 사람은 고향이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 나에게도 고향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에게도 고향이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서울이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 잡게 된 것 이다.


    그것은 서울에 산이 있음으로서 비롯된 것이다.

    서울에서 다년간 근무하다가 본국으로 귀임한 외국 사람들 가운데 한국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로 서울의‘산’을 꼽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확실히 산에 관한 한 서울은 세계의 그 어느 곳보다 축복 받은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보다 훨씬 산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만 해도 수도인 동경의 경우 산은 말할 것도 없고, 변변한 구릉하나 없기 때문에 가벼운 등산이라도 할 만한 산까지 가는 데에는 열차나 고속도로로 적어도 2시간 정도는 달려야 된다고 한다.
미국의 워싱턴이나 유럽 여러 나라의 구도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 서울은 어떠한가.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 등 3개 봉우리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해서 삼각산이라고 불리던 북한산을 비롯해서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의 위용을 자랑하는 도봉산과, 그밖에 수락산, 불암산, 관악산, 청계산 등
해발 500 이상 되는 산들만해도 수두룩하며, 언제나 아늑하고 조화로운 자태로 서울을 감싸고 있다.

    더욱이 이들 모두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만으로도 도심에서 불과 1시간대에 닿을 수 있으니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으랴.

         어디 그뿐인가.
         서울 중심부 한복판에 자리한 남산은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오를 수 있는
         만인의 휴식처로서,
         사방 어디를 내려다보든지
         서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손에 잡히듯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굽어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삭막한 가슴은 어느새 훈훈함과
         여유로움으로 가득 채워진다.


    공원 등 녹지공간이 협소해서 때로는 회색의 도시로 비유되기도 하는 서울이 그런대로 푸르름을 느끼게 하고, 또 맑은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산들이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리라.

    10년 전 내가 처음으로 서울의 산들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흔히 디스크라 불리는 만성적 요통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던 나에게 누군가 산행을 권유 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내가 그 권유를 받아들이기 전 까지, 사실 나는 서울의 산들에 대해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별다른 관심이나 흥미도 갖지 못한 채 살아온 터였다.

    매주 일요일을 산행이로 정하고, 실해에 옮기기 시작했던 당시만 해도 말이 산행이지 평시에서조차 걷기 힘들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50m높이도 못되는 아파트 뒷동산을 정복(?)하는 데에만 수개월이 거렸고, 그보다 조금 높은 인근의 산의 등정에 성공한 것은 1년도 훨씬 지난 후였다.

    그 후로부터 2,3년의 힘든 고비가 지난 후, 어느 정도 걷는데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처음으로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산에 대해 가지고 있던 그때까지의 인식이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등산이 디스크 치료라는 단순한 투병의 차원을 넘어, 마치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고향을 찾았을 때 느끼게 되는 어머니의 아늑하고 편안한 품처럼, 그래서 고달픈 삶이지만 다시 내일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갖고 제자리로 돌아 갈수 있는 것처럼, 매주 오르는 서울의 산들은 어느덧 포근한 마음의 고향, 평안한 영혼의 안식처로 서서히 바뀌어 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소 예외는 있겠지만 우리들 육신의 병이 대부분 마음의 병을 슬기롭게 다스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믿음을 갖게 된 것도 바로 그 무렵부터였다.

         매주 오르는 고향의 저상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산하의 모습은 언제나 장엄하고 아름답다.
         북한산과 도봉산에서 내려다보는
         드넓은 산자락과 평화스러운 우리들 삶의 터전은
         과연 내가 저속에서 매일같이 숨 쉬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있는 곳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의 경외 스러움을 갖게 한다.


    수락산과 불암산에서 바라보는 북한산과 도봉산의 신비한 어우러짐은 균형과 조화의 극치를 이룬 한 폭의 동양화를 대하고 있는 듯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옷을 갈아입음으로써
         서울의 산들은 메말라 가는 우리의 가슴에
         언제나 신선한 감동을 선사해주며,
         맑은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에 따라
         어느 때는 가슴 저미는 희열을 안겨주는가 하면,
         때로는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깊이 고뇌 할 수 있는 귀중한 순간과
         겸허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베풀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 주위 사람들의 나에 대한 인사가 바뀌었다.

“요새 허리는 좀 어떠십니까?”에서 “요즘은 어느 산에 다니십니까?”라고.
더 이상 나의허리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리라. 아울러 앞으로도 꾸준히 산에 오르라는 무언의 격려이기도 하리라.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오랫동안 참을 수 없는 고통과 한때는 절망까지도 안겨주었던 디스크로 인해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서울의 산들을 가까이 하는 계기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건강은 물론 마음의 고향까지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새로운 삶의 의지를 일깨워 주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나의 몸과 마음을 굳게 지켜줄 산들이,
         고향이 바로 곁에 있기에 나는 오늘도 편안하고,
         힘찬 마음으로 하루아침을 연다.

         그리고 기원한다. 서울이,
         서울의 산들이 영원하기를....


                                                                         월간 “산” (2002.6월호)에서
             산수훈(山水訓)
                                                                            곽 희(郭熙)

편자주: 우리 무우회의 몇몇 클럽활동 중에서 아마도 산악회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기분이, 몸소 산에 올라 산하를 굽어 음미하는 감상에 어찌 비할까마는,
우리가 산에 관하여 라면 중국 北宋시의 곽희(郭熙)가 지은 임천고치(林泉高致) 중의 산수훈(山水訓)이,
아마도 특히 동양 사람에게는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가히 교본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는 지라,
대자연을 관찰하여 그 특징과 법칙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기어. 이를 소개하는 바입니다.

산은 큰 물체[大物]이다.

     그 형상이 솟아 빼어난 듯, 거만한 듯,
    조망이 널찍하여 툭 터져 있는 듯,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듯,
    다리를 펴고 앉아 있는 듯,
    둥그스름하게 큰 듯, 웅장하고 호방한 듯,
    정신을 전일하게 한 듯, 엄중한 듯,
    눈이 예쁘게 뒤돌아보는 듯,
    조회에서 읍하고 있는 듯,
    위에 덮개가 있는 듯,
    아래에 무엇을 타고 있는 듯,
    앞에 의거할 것이 있는 듯, 뒤에 기댈 것이 있는 듯해야 한다.

    또 아래로 조감하면서 마치 무엇에 임해서 보는 듯해야 하고,
     마치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이것을 즐기면서 노닐면서
     마치 무엇을 지휘하는 듯해야
     이것이 곧 산의 대체적인 모습이다.

물은 활동하는 사물[活物]이다.


    그 형상이 깊고 고요한 듯,
    부드럽고 매끄러운 듯,
    넓고 넓은 듯,
    빙빙 돌아 흐르는 듯,
    살찌고 기름진 듯,
    용솟음치며 다가오는 듯,
    격렬하게 쏘는 듯,
    샘이 많은 듯, 끝없이 멀리 흘러가는 듯하게 해야 한다.

산은 물과 함께 있어야 활기를 얻고,
물은 산을 드리우고 있어야 그 아름다움이 은근하다.

    또 폭포는 하늘에서 꽂히는 듯 하고,
    급히 흘러 부딪히며 떨어져 땅 속으로 들어가는 듯,
    고기 잡고 낚시하는 광경이 평화로운 듯,
    초목이 무성해서 이들이들한 듯,
    안개와 구름이 끼어 빼어나게 고운 듯,
    계곡에 햇빛이 비치어 찬란한 듯하면,
    이것이 곧 물이 활동하는 모습이다.

산은 물로써 혈맥을 삼고,
덥혀있는 초목으로 모발을 삼으며,
안개와 구름으로써 신비로운 채광(神彩)을 삼는다.

    그러므로 산은 물을 얻어야 활기가